팃포탯.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경제전쟁의 무대가 무역에서 환율로 번졌다. 5일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이 7위안을 돌파하자 미국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해버렸다. 1994년 이후 25년 만이다. 지난 6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때 만나 타협책을 모색했던 ‘오사카 휴전’은 37일만에 깨졌다.
물 건너간 타협
5일에서 6일 사이, 홍콩과 베이징과 워싱턴은 숨가쁘게 돌아갔다. 중국 당국이 달러 대비 위안화 기준환율을 7위안에 거의 가깝게 올려서 고시하자 홍콩 역외시장에선 순식간에 심리적 저지선이라던 7위안 선이 무너졌다. 중국은 이어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기반인 중부 농업지대에 타격을 입히는 조치였다. 그러자 미국 재무부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국제통화기금(IMF)과 협력, 중국이 불공정한 경쟁을 함으로써 얻은 이익을 제거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미 재무부 보고서에서만 해도 중국은 대미 무역흑자 비중이 큰 ‘관찰대상국’으로 분류되는 데 그쳤다.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일부러 낮게 유지해 수출에 유리한 환경을 만든다는 것은 미국의 오랜 주장이었으나, 최근 몇년 간 중국은 직접적인 시장 개입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트럼프 정부는 교역 상대국의 통화정책을 모니터링하고 평가하는 절차를 무시한 채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만들어버렸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고 해서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당장 보복을 가할 수는 없다. 법에 따라 미국 정부는 환율조작국으로 지목된 나라와 협상해, 낮은 환율과 무역흑자를 ‘시정’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하지만 미·중 두 나라가 환율 협상을 한다 해도 화해를 하기는 힘들 것이 분명하다. 두 나라는 이미 1년 넘게 무역협상을 해왔지만 진전이 없었다. 환율 협상으로 1년 내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미국은 정부 발주 계약에서 중국 기업들을 제외하거나 미국 기업의 투자를 제한하는 식의 제재를 취할 수 있다.
미국의 경제 무기 ‘환율조작국’
‘환율조작국’은 미국 재무부가 쓰는 독특한 용어다. 환율조작 혹은 외환시장 개입은 널리 쓰이는 통화정책의 하나이지만 미국은 ‘자국 화폐의 가치를 의도적으로 낮춰 수출에 유리하게 만드는 나라들 때문에 미국이 무역적자를 보고 있다’는 논리를 뒷받침하는 데에 이 개념을 활용한다.
미국이 환율조작국을 문제삼고 보복을 공식화한 것은 로널드 레이건 정부를 거치며 이른바 쌍둥이 적자(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극에 달했던 1980년대 후반이었다. 1988년 통과된 ‘무역 경쟁력에 관한 종합법’에 따라 미국 재무부는 환율을 조작하는 나라들의 리스트를 만들고, 상대 국가와의 협상을 통해 평가절상을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보복조치를 취했다. 1988년 미국 시장에 수출을 많이 하던 한국과 일본, 대만이 그 대상이 됐으며 중국도 1992년부터 1994년까지 환율조작국으로 분류됐다.
2015년 미국은 교역촉진강화법이라는 걸 만들었다. 이 법에 따라 재무부는 매년 4월과 10월, 1년에 두 차례 세계경제와 환율정책을 검토하는 보고서를 낸다. ‘1988년 법’의 기준을 충족시켰는지가 미국의 무역 파트너들을 평가하는 기준이다. 평가 항목은 세 가지다. 지난 1년간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200억달러가 넘는지, 경상수지 흑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가 넘는지, 방향성을 정해놓고 지속적으로 환율시장에 개입하는지다. 미국 수출기업들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해야 한다며 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줄기차게 로비를 해왔다.
‘약달러’ 예고한 트럼프
중요한 것은 경제전쟁의 전선이 넓어지고, 보복과 보복의 악순환 속에 갈등이 증폭되는 길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양측이 무역전쟁에서 관세가 아닌 다른 도구를 휘두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미국이 최근 발표한 추가 보복관세와 위안화의 2% 하락은 큰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며칠 새 무역전쟁이 더 악화되고 더 길어질 것임이 분명해졌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크루그먼은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은 이로운 것이고 이기기 쉽다는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 반대로 중국은 자신들이 “캐나다와 멕시코와는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썼다.
환율전쟁이 본격화하면 미국이 약달러를 유도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10일 트럼프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달러화 가치를 낮출 방안을 찾으라는 주문을 했다고 보도했다. CNBC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참모들과 회의한 뒤 환율시장에 개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지난달 26일 보도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2초 만에라도 (환율시장 개입을) 할 수 있다. 뭘 안 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5일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중국의 환율조작을 비난하며 “연준(연방준비제도)은 보고 있나?”라는 글을 올렸다. 중국의 시장 개입을 공격해놓고, 미국은 약달러로 가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싸워야 하면 싸운다”
미국은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비밀 회동인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가 열리고 있는 시기에 맞춰 환율조작국 지정이라는 폭탄을 던졌다. 이번 회의에서 중국 지도부는 미국과의 무역갈등, 홍콩 대규모 시위 등 난제를 놓고 씨름하고 있는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또 다른 공격을 가한 셈이다. 워싱턴 전략국제연구소(CSIS)의 중국 전문가 보니 글레이저는 블룸버그통신에 “이보다 나쁜 타이밍은 없다”고 말했다.
타협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이강(易鋼) 인민은행장은 “이달 들어 미국 달러보다 평가절하된 통화가 많았으며, (위안화 절화는) 시장이 결정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는 6일 사설에서 7위안 선이 무너진 ‘포치(破七)’에 대한 대응으로 환율조작국 지정을 한 것은 “너무 터무니없다”고 비난했다.
미국이 중국산 제품을 포괄적 카테고리로 묶어 관세를 부과하면 중국은 농산물 수입금지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아픈 손가락을 겨냥한 대응으로 맞서고 있다. 무역전쟁에서 중국의 기본 태도는 “싸우고 싶지는 않지만 싸움도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환구시보 사설은 “중국은 무역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미국 행정부가 시작한 방자한 게임에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빠르게 커지는 내수시장과 발전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내수 시장을 더 키우기 위해 야간 경제 활성화와 감세 같은 즉각적인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다만 환율을 이용한 추가 반격에는 신중할 가능성이 높다. 이강 인민은행장은 “중국은 책임감있는 대국으로, G20 합의에 따라 시장이 환율을 결정하는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경쟁적인 평가절하나 환율을 무역전쟁 수단으로 삼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환율은 변동성이 커서 자칫 통제 불가능한 상황으로 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2015년 8월 위안화 가치를 낮췄다가 자본유출과 증시폭락이라는 부메랑을 맞았다. 그후로는 환율시장 투기 단속을 강화하고 시스템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에 주력해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당시 사례를 들며, 중국이 과거의 실수를 피해가려 할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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