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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협 칼럼] 100년의 불신

소셜미디어에는 날마다 언론보도를 팩트체크하는 글들이 올라온다. 팩트를 점검하는 것은 언론의 기능인데, 다른 무엇도 아닌 언론이 점검의 대상이 돼버렸다. 팩트가 틀린 기사가 너무 많으니 이젠 기자들이 어떤 의도로 뭘 어떻게 틀렸는지 시민들이 체크한다. 정치적 분열과 대립이 극심해지면서 언론 기사와 팩트체크가 한쌍으로 묶여버렸다.. 영국 옥스퍼드대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조사에서 한국의 언론 신뢰도가 38개국 중 최하위로 나타났다는 보도를 봤다. ‘뉴스 대부분을 신뢰할 수 있다’고 응답한 사람 비율이 한국에선 22%에 그쳤다. 5명 중 4명은 언론을 안 믿는다는 게 놀랍지도 않다. 이 조사결과에 아무도 놀라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야말로 언론인들이 놀라야 마땅한 현실이다. 틀리고 왜곡된 보도가 너무 많다는 것을 ..

장 지글러, '유엔을 말하다'

유엔과 일한 장 지글러의 책 중 가장 유명한 는 읽지 못했고 을 읽었는데 아주 재미있었다. 얼마 전 책을 주문하면서 지글러의 책 2권도 함께 장바구니에 넣었다. 그중 한 권이 (이현웅 옮김. 갈라파고스)였다. 이 책도 정말 재미있었다. 지글러가 책에서 언급한 사건들은 대체로 내가 아는 것들이나 국제뉴스로 다루기도 했던 것들이다. 그 맥락과 이면을 속속들이 전해주니 더 재미있을 수밖에. 이슈의 줄기들을 모르는 사람들이 읽어도 좋을 듯. 국제부 후배들이나, 세계를 좀 알고 싶은 사람들에겐 지난 세기의 후반부 이후 지구 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훑어주는 월드뉴스 요약본으로도 강추. 채무에 짓눌리는 국가는 주기적으로 협상해야 한다. 이런 협상은 이전의 채권을 사들이고 '재조정된' 새로운 채권을 유통시키는 것..

딸기네 책방 2019.06.14

페드루 페레이라, '완벽한 이론'

완벽한 이론-일반상대성이론 100년사 페드루 페레이라. 전대호 옮김. 까치. 일전에 읽은 에 이어, 이번엔 상대성이론 100년사. 과학적 상상력은 도통 없으니 책의 내용을 이해했다고는 말하기 힘들지만, 무쟈게 어려운 수학적 물리학적 설명을 대부분 생략하고도 이 책은 차고도 넘치게 재미있다. 양자혁명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역시 초반부의 주인공은 아인슈타인이다. 하지만 책의 후반부로 이어지는 것은 아인슈타인의 아이디어를 이어받고 뒤집어보고 궁리해보며 '우주'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수많은 물리학자들. 로저 펜로즈나 마틴 리스의 책은 한 10년 전에 읽어본 듯한데, 그 때도 "어렵긴 하지만 정말 멋지다!" 감탄하면서 읽었더랬다. 100년 전 상투메 프린시페에서 빛의 굴절을 관찰한 아서 에딩턴에서부터 프레디 ..

[구정은의 ‘수상한 GPS’]아프리카가 화웨이 편에 설 수밖에 없는 이유

지난해 프랑스 르몽드는 중국이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아프리카연합(AU) 본부를 정탐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기부를 받아 2012년 AU가 새 건물을 지었고 화웨이가 통신설비를 맡았는데 이때부터 중국이 감청 등 정보수집을 해왔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AU가 2017년 서버를 바꿨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사 파키 마하마트 AU 의장은 “순전한 거짓 선동”이라고 일축하며 화웨이 편을 들었다. 지난달 31일 AU는 중국 화웨이와 정보·통신기술 협력기간을 3년 더 늘리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화웨이는 “양해각서의 목적은 브로드밴드,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컴퓨팅, 5G, 인공지능의 5개 분야에서 파트너십을 다지는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미국은 화웨이를 ‘세계로 퍼진 중국의 스파이’로 ..

[구정은의 ‘수상한 GPS’]‘이란 지킴이’ 중국으로 향하는 유조선  

2001년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배의 이름은 ‘구마노가와’였다. 일본에서 만들어져 세계의 대양을 돌아다녔다. 길이 330m에 폭 60m, 최대 30만2200t의 원유를 실을 수 있는 거대한 유조선은 이후로 두 차례 소속 회사와 국적이 바뀌었으며 이름도 그때마다 달라졌다. 지금은 서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 선적(船籍)을 둔 ‘퍼시픽브라보’ 호다. 2001년 도쿄 서쪽 가와사키에서 제작된 배는 ‘갤럭시 나비에라 마리타임’이라는 회사에 팔렸다. 파나마에 사무실을 둔 회사의 소유였지만 선적은 라이베리아였다. 2017년 11월 구마노가와의 국적은 태평양의 섬나라 마셜제도로 바뀌었고 이름은 ‘실버글로리’가 됐다. 이란 기름 싣고 중국으로 민간 상선은 소유주의 국적과 상관 없이 원하는 나라에 선적을 두는 ‘편의치적(F..

[구정은의 '수상한 GPS']카타르 기지의 미군 폭격기, 이란으로 날아갈까

호르 알우데이드. 카타르 남동쪽, 걸프(페르시아만)의 바닷물이 내륙을 비집고 들어온 좁은 해협이다. 카타르 정부가 개발을 막고 있는 이 지역에선 물길 사이로 파도가 일고 철새들이 오간다. 바닷가에서 한 걸음만 들어가면 주변엔 사막이 펼쳐져 있고 듄들이 솟아 있다. 북쪽 내륙에 알우데이드 공군기지가 있다. 지난 9일 그곳에 미군 B52 전폭기가 착륙했다. ‘이란의 위협’에 대비해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작전을 담당하는 미군 중부사령부가 전폭기를 보냈고, 한동안 철수시켰던 패트리어트 시스템도 다시 배치하는 중이다. 이웃 아랍국들과 다투고 이란과는 미묘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온 카타르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정세 속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 핵심에 알우데이드 공군기지가 있다. 미국이 이란을 공격할 경우, 이곳..

[기협 칼럼] 기자의 윤리, 기자의 범죄

기자에게는 어느 정도의 윤리의식 혹은 도덕성이 필요할까. 윤리의식의 절대적인 양을 측정할 수는 없으니 질문을 좀 다듬어보자. 기자에게는 ‘보통 사람들’ ‘독자들’보다 더 높은 윤리의식이나 도덕성이 필요할까. 기자의 윤리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보편적인 윤리의식이 있는가 하면, 취재와 보도를 하면서 지켜야 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윤리가 있다. 둘은 분리될 수도 있고, 때로는 하나일 수도 있다. 기자들이 취재나 보도를 하면서 금품을 받아선 안 되고, ‘취재 편의’라는 명목으로 합당하지 않은 대우를 요구하거나 받아서도 안 된다.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보도를 해서도 안 된다. 사실이 아닌 내용을 보도해서도 안 되고, 특정 사실을 부풀리거나 왜곡해서도 안 된다. 이론적으로 기자들이라면 이쯤은 안..

[구정은의 ‘수상한 GPS’]아마존이 기름 부은 글로벌 ‘당일배송’ 전쟁...택배의 미래는

로켓배송, 당일배송, 자정 전 주문하면 새벽 배송. 유통과 소비의 흐름이 빨라지고 삶의 속도도 빨라진다. 물류에 휩싸인 사람들의 노동은 힘들어진다. 전 세계가 ‘당일배송’의 영향권 아래에 드는 날도 곧 올까. 아마존이 글로벌 ‘당일배송’에 시동을 걸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미국 아마존은 지난 26일(현지시간) ‘24시간 내 배송’ 서비스를 늘리기 위해 올 2분기에만 8억달러(약 9300억원)를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동안 ‘프라임 고객’들에게 주문 뒤 48시간 내 무료 배송을 해왔는데, 배송시간을 절반인 24시간으로 줄이겠다고 했다. 당장은 프라임 회원에 한해 서비스하겠다고 했지만 프라임 회원 숫자만 이미 1억명이다. 아마존은 지난달 ‘35달러 이상 구매고객’으로 프라임 회원 가입의 문턱..

폴 긴스버그, '이탈리아 현대사'

이탈리아 현대사를 연구한 학자 중에 꽤나 많이 인용되는 폴 긴스버그의 (안준범 옮김. 후마니타스)를 읽었다. 600쪽이 좀 넘고, 뒷부분에 지도와 참고자료가 잔뜩 붙어 있으니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이다. 이탈리아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의문은 '도대체 이 나라에선 100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였다. 마르코가 엄마를 찾아 나서게 만든 이민의 행렬, '백인'으로도 분류되지 못했던 미국의 이탈리아인들, 낙후된 농촌 사람들과 마피아, 스페인 내전 때 기차를 타고 우르르 공화국을 지키겠다고 찾아갔던 의용병들, 무솔리니와 파시즘, 돈 까밀로와 빼뽀네, 패션산업과 백색가전, 베를루스코니와 붕가붕가. 그밖에 내게 이탈리아의 이미지를 그려준 것들이 있다면 어릴 적 동화집에 나왔던 '롬바르디아의 소년 척후병..

딸기네 책방 2019.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