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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베리, 백인의 양자가 된 호주 원주민 소년

난베리 Nanberry재키 프렌치. 김인 옮김. 내인생의책 어쩌다 보니 호주 원주민의 절멸에 대한 책을 또 읽게 됐다. 오래 전 읽었던 은 '멸종'을 당하게 된 원주민 소년의 이야기였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는 는 이른바 '잃어버린 아이들' 즉 백인 이주민들의 '동화정책' 때문에 부모 곁을 떠나 강제로 백인들 손에서 자라게 된 아이들의 탈출기였다. 는 좀 다르다. 난베리라는 이름의 원주민 소년이 백인들과 함께 들어온 천연두로 가족을 잃고 백인 의사에게 구조된다. 백인 의사는 난베리를 치료하고, 자기 아들로 입양하고, 영어를 가르치고, '잉글랜드인'처럼 키운다. 그 속에서 난베리가 겪는 혼란과 정체성 고민 같은 것들이 소설의 한 축이다. 또 다른 축은 '백인들'이다. 이전의 백인들이 침략자, 멸종을 불러온 ..

딸기네 책방 2018.12.17

화교가 없는 나라

내게 '화교'는 '주현미와 하희라'다. 중학교 때였나, 주현미라는 트로트 가수가 대박 히트를 쳤는데 그가 화교라고 해서 다들 신기해했다. 말 그대로 신기한 일이었다. 외국인을 볼 일이 별로 없는, 이주민이나 경계인이나 주변인을 본 적이 없는 당시의 한국 중학생에게 주현미는 화교의 대표였다.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화교학교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한국인은 아니지만, '외국인=서양인=미국인'으로 인식되던 때에 '우리 안의 외국인' 혹은 '한국인같은 외국인'은 그리 눈길을 끄는 대상은 아니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중국어 수업을 들었다. 진짜 외국인, 독일인 유학생이 어설픈 동작으로 한자를 칠판에 쓸 때마다 우리는 키득거렸다. 강사 선생님이 어느 날 강의실 창밖을 보면서 누군가와 눈이 ..

딸기네 책방 2018.12.09

2018년에 읽은 책

1. 대량살상수학무기. 캐시 오닐. 김정혜 옮김. 흐름. 1/4 문제의식은 좋은데 생각보다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 2. 칼 마르크스. 이사야 벌린. 안규남 옮김. 미다스북스. 1/5 너무나 재미있었다. 책 한 권을 하루에 다 읽은 것이 얼마만인지. 마르크스의 생애를 넘어 18세기 유럽 사상사를 담았다. 3. 자본주의 역사와 중국의 21세기. 황런위. 이재정 옮김. 이산. 1/7 4. 일하지 않을 권리. 데이비드 프레인. 장상미 옮김. 동녘. 1/8 5. 공감의 시대. 제레미 리프킨. 이경남 옮김. 민음사. 1/12 6. 공감의 시대. 프란스 드 발. 7.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 싯다르타 무케르지. 이한음 옮김. 까치. 1/25 8. 공통체. 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정남영·윤영광 옮김. 사월의..

[구정은의 세상]아고라와 유치원···국회의원들을 벌 주려면

다음이 아고라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한다. 다음 뉴스는 사이트에 “그동안 ‘대한민국 제1의 여론광장’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다양한 의견들이 오갔습니다. 이제 15년간의 소임을 마치고 물러납니다”라는 안내글을 올렸다. 여론광장의 큰 축이던 게시판들은 ‘게시물 백업’이라는 최후의 서비스와 함께 사라진다. 아고라도, 한때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미네르바’도, 이젠 지나간 이름들로 남게 됐다. 싸이월드나 프리챌처럼 한 시절 사람들을 끌어모으다가 쇠락하는 인터넷 서비스들이 적지 않지만 아고라의 소멸은 ‘빛이 바래기 마련인 추억’을 넘어선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기자 초년병 때, PC통신이 막 유행하고 있었다. “나우누리 아이디 @koje***는 무엇무엇이라고 지적했다”는 식으로 유저 반응이 기사에 인용되곤..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

돈 훌리안은 소치밀코의 가장 외딴 섬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나뭇가지로 지은 그의 초가집은 인형과 개들이 지켰다. 쓰레기장에서 주운 망가진 인형들은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인형들은 악령들로부터 그를 보호했다. 깡마른 개 네 마리는 사악한 사람들로부터도 지켜 주었다. 그러나 인형도 개들도 인어는 쫓아버릴 줄 몰랐다.깊은 바닷속에서 인어들이 그를 불렀다. 돈 훌리안은 그만의 주문을 알고 있었다. 인어들이 그를 데리러 와서 그의 이름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노래할 때마다 그는 맞받아 노래하며 인어들을 내쳤다.“내 말이 그 말이야, 내 말이 그 말이야, 악마라 날 데려갔으면, 하느님이 날 데려갔으면, 하지만 넌 안 돼, 하지만 넌 안 돼.”또 이렇게 노래하기도 했다. “여기서 꺼져, 여기서 꺼져, 너의 치명적인 ..

올해 꼭 적어두고 싶은 책, 히가시 다이사쿠 <적과의 대화>

올해 읽은 책들 중에, 대중적으로 화제가 되지는 않았더라도 정말이지 너무 재미있어서 꼭 기록해두고 싶은 것이 두 권 있다. 그 중의 하나가 히가시 다이사쿠라는 저널리스트 출신 일본 학자가 정리한 (서각수 옮김. 원더박스)라는 책이다. 부제는 '1997년 하노이, 미국과 베트남의 3박 4일.' 책 표지는 팜플렛처럼 단순하다. 초록색 바탕에 테이블이 그려져 있고, 한글 제목과 영어 원제(MISSED OPPORTUNITIES?)가 적혀 있다. 저자인 히가시 다이사쿠는 한자 이름이 東大作이다. 이름이 '대작'이라니. 책은 '대작'이 아닌 얇은 분량의 기록 겸 취재기이지만 어느 대작 못지 않게 흥미롭고 여러 문제들을 던진다. 저자는 NHK에서 일하며 시사다큐 프로그램들을 만들다가 캐나다로 유학해 국제정치학을 공부..

딸기네 책방 2018.12.03

[기협 칼럼] 취약한 사회

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전화가 불통이다. IPTV로 즐겨 보던 중국드라마를 못 보게 된 것 정도는 별일 아니지만, 인터넷만 끊긴 게 아니고 전화가 아예 먹통이 된 건 처음이었다. 우리집 인터넷이 문제가 아니라 뭔가 사고가 났구나 하면서 동네를 서성이다가 3G 연결망이 이어진 곳을 찾아 뉴스를 확인했다. KT 아현지사에 화재가 났다고 했다. 인명피해가 없었던 것은 다행이지만, 정보기술(IT) 사회의 약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가족 중 한 명이 어느 통신사의 협력업체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다. 이날 먹통 사태에 대해 대뜸 꺼낸 말은 “KT가 금융사업에 치중하면서 엔지니어들을 많이 잘라냈다”는 것이었다. 일요일, 우리 부서의 이혜인 기자가 취재를 해보니 그동안 KT가 구조조정을 참 많이도 했던 모양이었다. 그 회사만..

어스퀘이크, 마스퀘이크

화성탐사선 인사이트가 무사히 안착했다고. 미 항공우주국(NASA)의 미션 웹사이트 들어가보니 이번에 간 인사이트는 움직여 다니는 로버가 아니고 한 자리에 머무는 랜더인데, 로버를 풀어놓는 그동안의 랜더나 오로지 고정돼 있는 것들과 다르게 본체에 연결된 지진계와 탐침을 땅 위로 내려놓는 모양이다. 가운데 흰 색깔 팔이 'arm'이다. 어깨, 팔꿈치, 손목으로 이어진 똑똑한 팔인데 길이가 1.8m라고 함. 손가락은 5개. 짜식... 테스트할 때의 사진을 보면 이 팔로 지진계랑 시추장비를 내려놓는 모양. 동그란 솥뚜껑같은 지진계의 꼭지를 손가락으로 쥐고 들어올려 살포시 내려놓는 듯. NASA에서 '화성의 맥박을 잰다'고 소개를 했는데, 화성의 지진은 earthquake가 아닌 Marsquake라고 친절히도 써..

2018년 10월, 도쿄 가을여행

나무늘보랑 10월 말 도쿄 여행.어차피 도쿄는 여러 번 가본 곳이라 슬슬 놀멘놀멘 돌아다녔다. 단기연수 와 있는 유학생네 짐 풀고, 둘이 전철 타고 키치조지로.이노카시라 공원과 '미타카의 숲' 산책.알고 보니 우리 요니는 엄청 잘 걷는 거였어.요니와 함께 여행다닐 때에는 무지무지 많이 걸어다녔는데나무늘보는 두어시간 걸으면 지친다는 사실을 발견. 둘째 날, 본격적인 '관광'.목적지는 가마쿠라. 언제나 참 좋아하는 곳.가마쿠라 역에 내려서 기노쿠니야 수퍼에 들렀다.수퍼 앞 꽃가게를 일본스럽게, 이쁘게도 꾸며놨다. 나무늘보는 에노덴을 처음 타본다 하여.가마쿠라고교앞 역에 한번 하차해주고.이날 날씨가 큰일 했다. 정말정말 좋았다!더위혐오 유학생은 왜 여름이 끝나지 않느냐며 투덜투덜.낮 기온 20도를 넘겼음. 딱..

[구정은의 세상] 맘들의 분노, 맘들을 향한 분노

사립유치원 원장들이 아이들에게 써야 할 돈을 멋대로 빼내 물건을 사고, 월급도 수당도 마음대로 정해 보너스를 챙기고 아들딸에게까지 줬단다. 엄마들이 충분히 분노할만한 일이다. 경기 김포에선 아이 엄마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아동학대를 했다는 소문이 돌아 학대교사로 지목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생각 없는 젊은 엄마들, 제 아이만 귀한 줄 알고 헛소문에 휘둘려 ‘신상털기’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사람에 대한 분노가 쏟아졌다. ‘맘카페’는 온라인 적폐로 지목됐다. 엄마들의 분노, 엄마들을 향한 분노. 비난과 손가락질의 강도를 보면 후자가 훨씬 더 센 것같다. 근래 여론의 바로미터처럼 돼버린 청와대 청원을 보면 사립유치원 비리를 뿌리 뽑고 처벌을 강화하라는 청원에는 8000여명, 아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