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총격전, 마약 카르텔, 미심쩍은 퇴치작전. 멕시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지난 18일 멕시코 서부 해안에 있는 시날로아주 쿨리아칸에서 치안군과 갱들이 총격전을 벌여 8명이 숨졌다. 미국 교도소에 수감중인 마약왕 ‘엘차포’ 호아킨 구스만의 아들 오비디오를 체포하기 위한 급습작전이었다. 하지만 마약갱들은 거세게 저항했고, 당국은 ‘생쥐’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오비디오를 붙잡자마자 다시 풀어줬다.
앞서 14일 미초아칸에서는 마약카르텔 조직원들이 경찰 14명을 살해했다. 이튿날에는 게레로주 테포치카에서 총격전이 벌어져 15명이 숨졌다. 최근 올가 산체스 코르데로 내무장관은 치안군 7만명을 전국에 배치했다면서 마약갱들과의 전쟁에서 “곧 성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말 취임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MLO·암로) 대통령의 치안 대책이 가시화되는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잇단 총격전으로 정부의 대국민 선언은 무색해졌다.
쿨리아칸에서 군과 대치한 것은 ‘카르텔 데 시날로아’라는 범죄조직이다. 남미와 미국을 잇는 마약 밀매와 돈세탁으로 돈을 버는 이 조직은 엘차포의 이름을 따 ‘구스만 카르텔’ 혹은 ‘태평양 카르텔’이라고도 불린다. 1988년 결성됐고 쿨리아칸이 이들의 근거지다. 아편·마리화나 생산지로 멕시코의 ‘황금 삼각형’이라 불리는 시날로아, 두랑고, 치와와 지역에서 주로 활동한다. 미국과 가까운 바하칼리포르니아, 소노라 일대도 세력권에 포함된다.
티후아나 카르텔, 후아레스 카르텔, 로스세타스 등 라이벌 카르텔들과 ‘전쟁’을 벌여 수시로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기도 했다. 멕시코의 카르텔들은 최근 몇년 새 합종연횡을 통해 몇 개의 연합들로 재편됐고, 티후아나와 후아레스는 거의 시날로아에 복속됐다. 한때 악명 높았던 카르텔 델 골포(걸프 카르텔)은 로스 세타스 등 몇몇 조직으로 나뉘었다가 지금은 중·서부 지역에서 타마울리파스라는 연합체를 결성했다.
인사이트크라임 등에 따르면 멕시코 31개 주 가운데 17개 주, 세계적으로는 50여개국에 시날로아의 조직원들이 있다. 하지만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다. 미국 정보기관들은 이들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마약밀매조직’으로 평가한다. 미국으로 가는 코카인, 헤로인, 메스암페타민, 마리화나, MDMA(일명 ‘엑스터시’) 상당수를 이들이 공급한다. 엘차포를 잡기 위해 미국이 애썼던 것도, 탈옥했다 다시 체포된 그를 2014년 미국 감옥으로 데려간 것도 이 때문이다.
구스만이 미국으로 이송된 뒤로는 ‘엘마요’라고 불리는 이스마엘 삼바다 가르시아와 구스만의 아들들이 조직을 이끌고 있다. 구스만의 아들 알프레도와 이반 아치발도, 오비디오를 가리켜 현지 언론들은 ‘로스 차피토스’(엘차포의 아들들)라고 부른다. 엘마요와 차피토스 사이에 세력다툼으로 내분이 일어나고 있다는 추측도 있다. 도시에서 대놓고 당국과 대치해 총격전을 벌이는 것은 엘마요가 아닌 구스만 아들들의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조직 내부 사정이 어찌 됐든 여전히 이들은 막강하고, 암로 정부의 범죄조직 퇴치작전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오비디오 체포작전이 실패한 뒤 알폰소 두라소 공공치안장관은 “인원을 35명밖에 배치하지 못 했다”고 인정했다. 미국이 2001년부터 블랙리스트에 올렸던 마약조직 간부를 붙잡는 데에 이례적으로 적은 숫자를 보냈던 것이다. 실제 치안군은 오비디오를 붙잡았다가 수적으로 우세한 갱들에 둘러싸이자 풀어줬다.
정부 내에서조차 불만이 터져나왔다. 멕시코뉴스데일리 등에 따르면 루이스 크레센시오 산도발 국방장관은 작전을 “성급하게 감행했다”고 비판했다. 소동이 벌어진 사이에 쿨리아칸 교도소 수감자 50여명이 도망쳤고, 소셜미디어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도주하는 탈옥수들의 모습이 올라왔다. 논란이 일자 두라소 장관은 “특별한 작전이 아니라 일상적인 순찰을 하던 중에 체포했던 것”이라고 변명했다.
장관 사임 요구가 빗발치자 암로 대통령은 “갱들과 전쟁이 벌어질까봐 석방한 것이며, 이는 옳은 결정이었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쿨리아칸 주민들은 더 큰 유혈사태를 피했다는 데에 안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소동으로 치안당국은 무능력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알레한드로 호페라는 치안전문가는 트위터에서 “계획도 실행도 형편없었던 작전이고, 하나도 옳지 않은 결정이었다”라고 비판했다. 쿨리아칸 일간지 엘데바테에 따르면 당국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20일 낙하산부대를 이 지역에 주둔시켰다.
갱들 앞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것은 결국 새 정부도 손대지 못하는 뿌리 깊은 부패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군과 경찰 조직마저 친분에 따라 특정 카르텔 편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미초아칸에서 경찰들을 매복공격해 살해한 ‘할리스코 신세대 카르텔(CJNG)’은 범행 현장에 ‘다른 조직을 돕지 말라’는 메모를 남겼다. 라이벌 조직을 편드는 경찰들을 공격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어진 테포치카 총격전은 무장한 자경단과 군인들 사이에 벌어졌다. 마약갱들이 판치자 몇몇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자경단을 조직해 갱들과 싸우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지키겠다며 치안당국과도 수시로 대치한다. 암로 대통령은 앞서 8월 이런 자경단들도 ‘불법 단체’라고 규정했지만 뾰족한 대책은 없다. 테포치카와 가까운 이괄라에서는 5년 전 시장 부부와 결탁된 갱들이 대학생 시위대 43명을 납치해갔다. 전원 숨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직도 진상을 밝히지 못해 지난달 항의시위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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