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9일, ‘이라크-레반트(시리아) 이슬람국가(ISIL·IS)’라는 조직이 ‘칼리프 국가’를 수립했다고 세계에 선언했다. 7월 4일, 이라크 북부 모술의 알누리 대(大)모스크에서 주민들이 라마단을 맞아 기도를 하는 모습을 배경으로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48)가 등장하는 동영상이 공개됐다. 스스로를 ‘이브라힘 칼리프’라 부르며 세계를 테러 공포에 떨게 만든 알바그다디의 첫 등장이었다.
이라크는 2003년 미국의 침공 이후 10여년이 흐르면서 종파간 투쟁이나 테러공격도 가라앉고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이라크는 물론이고 시리아까지 이어지는 광대한 영역에서 극단조직이 ‘국가 수립’을 선언할 만큼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특히 이라크의 제2 도시이자 북부 석유생산 중심지인 모술을 이들이 장악했다는 사실은 미국의 정보전 실패를 충격적으로 보여줬다. 알바그다디의 선언 이후에 반독재 투쟁으로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극단주의와의 전쟁’이 돼버렸고, IS 추종자들의 테러공격에 세계가 공포에 떨었다. 미국이 27일(현지시간) 알바그다디 사망 사실을 공식 발표하면 시리아인들도, 세계 사람들도 한 시름 놓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극단주의와의 싸움이 완전히 끝나는 것은 아니다.
시리아 내전 틈타 세력 키워
알바그다디는 1971년 바그다드 북부 사마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이브라힘 아와드 이브라힘이다. 바그다드대학에서 이슬람학을 공부했다는 정도 외에, 성장 배경은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이 사우디아라비아 갑부 아들로 막대한 자금을 가지고 테러의 총기획자가 된 것과 달리, 알바그다디는 이라크 주둔 미군과 싸우면서 힘을 키운 지하디스트(전사) 출신이다. IS의 수괴로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이라크나 미국 정보당국이 주시하던 인물은 아니었다. 알카에다에서 갈라져나온 ‘이라크알카에다(AQI)’에서 활동했다고 하지만 당시에도 두드러진 인물은 아니었다.
상징적 효과가 큰 주요 시설이나 이교도들을 공격해 세계에 충격을 준 알카에다와 달리 이라크알카에다는 같은 무슬림 주민들을 노린 테러와 잔혹행위를 벌였고, 이 때문에 결국 알카에다와 갈라섰다. 이후 이들을 이끈 것은 아부 오마르라는 인물이었는데 그가 2010년 미군 공습에 숨진 뒤 알바그다디가 조직을 물려받았다. 2013년 내전 중인 시리아로 근거지를 옮겼고, 반정부 진영 내 이슬람주의자들과 알카에다 계열 조직들을 흡수했다. 2014년 4월 IS는 “알카에다는 더이상 지하드(성전)의 기지가 아니다”라고 주장했고 몇 달만에 칼리프 국가 수립을 선언했다.
알바그다디는 2014년 10월 미군 등 연합군의 폭격에 부상을 입었으며 그 후 몇 차례나 사망설이 돌았다. 하지만 모두 루머로 판명됐다. 2015년 2월 요르단 공군의 거센 공습으로 IS 조직원 7000명이 시리아에서 사망했지만 이미 알바그다디는 이라크로 넘어가 모술에 머물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연합군이 모술의 은신처로 알려진 곳을 맹폭했으나 역시 제거에 실패했다.
능란한 온라인 ‘선전전’
IS는 시리아와 이라크 북부를 점령한 뒤 인신매매와 석유 밀거래로 자금을 모았다. 중동은 물론이고 아시아와 유럽 여러 곳에서 극단주의에 빠진 청년들을 모집해 훈련시켰다. 이들을 이용해 시리아 내전에서 영역권을 형성하고 테러공격을 저질렀다. 그러나 지도자 알바그다디가 직접 외부에 모습을 드러낸 적은 없다. 그의 전술은 온라인을 활용한 선전전에 집중됐다. ‘다비크’라는 온라인 잡지와 알푸르칸이라는 자체 미디어기구 등을 만들어, 중요한 공격 전후에 온라인 메시지를 공개하며 추종자들을 움직였다.
알바그다디는 2014년 11월 17분 분량의 음성메시지를 소셜미디어에 유포, 무슬림들을 향해 “한 명의 전사들이 남을 때까지” 싸우라고 촉구했다. 2015년 5월의 메시지에서는 사우디 등 중동의 친서방 세력을 비난했고, 12월의 메시지에서는 서방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사망설이 돌 때마다 메시지를 공개해 건재를 과시하는 것도 그의 전술 중 하나였다.
2016년 11월에는 사우디, 터키, 리비아 등 이슬람 국가들에서도 투쟁에 나서야 한다면서 같은 무슬림인 시아파와 알라위파 신자들까지도 공격하라고 지지자들을 선동했다. 이듬해 9월에는 재차 서방을 향한 공격을 부추기는 메시지를 내보냈다. 그가 이런 선동을 하는 동안 프랑스, 리비아, 이집트, 튀니지, 미국, 벨기에, 방글라데시, 영국 등에서 잇달아 IS 조직원이나 추종세력의 무차별 테러공격이 벌어졌다.
시리아에서 연합군과 쿠르드민병대가 극단주의자들과의 전면전에 나서면서 IS 세력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1년 가까이 조용했던 알바그다디는 지난해 8월 메시지에서 불리한 전황을 인정하면서 ‘역량을 보전’하라고 지시했다. 올들어서 그의 생존이 확인된 것은 4월 29일이었다. 5년만에 음성만이 아닌 동영상을 공개했는데, 중상설을 일축하려는 듯 공격용 라이플을 든 모습이었다.
조직 와해에 결정타 될까
인질 납치와 참수, 노예 거래와 문화재 파괴 등 반인도적·반문명적 만행을 일삼은 IS는 이미 거의 와해된 상황이다. 알바그다디 사망은 결정적인 일격이 될 수 있다. 또 이 조직의 특징이 각국의 불안정한 청년층을 선동해 공격에 나서게 하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수괴의 죽음은 잠재적 추종세력을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미군이 시리아 북부에서 빠져나가며 IS와의 전선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어서 낙관할 수만은 없다.
알바그다디의 후계자는 이라크인인 압둘라 카르다시다. 사담 후세인 정권의 군 장교 출신으로, 2016년 알바그다디의 최측근인 아부 알라 알아프리가 숨진 뒤 2인자 자리를 꿰찬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압적이고 잔혹한 성격 탓에 조직 내 별명이 ‘교수’ ‘파괴자’다. 알바그다디와 마찬가지로 미군 점령기에 알카에다에 들어가면서 지하디스트가 됐다. 카르다시 외에 미군이 수배령을 내린 IS의 주요 인물은 아미르 무함마드 사이드 압달라흐만, 사미 자심 무하마드 알자부리, 무타즈 누만 압드나이프 나짐 등 여럿이다. 지난 8월 IS가 운영하는 미디어는 카르다시가 후계자로 지명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알바그다디만큼 조직을 장악하지는 못했고, 지도부가 이미 분열됐다는 분석도 있다.
알자지라방송은 “최소한 IS의 새 지도부가 자리를 굳히기 전까지 단기적으로는 조직에 심대한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CNN방송은 시리아 북부 전황이 불안정해진 상황에서 알바그다디 사망이 알려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터키의 시리아 북부 침공을 허용하고 쿠르드민병대를 약화시켜 비난을 받고 있다. 지난달 16일 공개된 알바그다디의 마지막 음성메시지는 이라크·시리아에서 체포된 조직원들과 그 가족들을 해방시키라는 내용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체포된 조직원·가족들이 풀려나게 만든 것은 미국이다. 터키군 침공 뒤 어수선한 틈을 타 쿠르드 지역 수감시설에서 잔당들이 도망쳤기 때문이다.
지난 8월 미 국방부 보고에 따르면 시리아와 이라크의 IS 전투원은 1만4000~1만8000명 정도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다시 규합될 것인지가 아니라, 극단주의가 기승을 부릴 수 있게 만드는 토양을 없애는 것이다. 알카에다에서 이라크알카에다로, 다시 IS로 극단조직의 주도권이 넘어갔듯이 IS의 뒤를 이은 다른 조직이 언제라도 나올 수 있다. 극단주의와 싸운 쿠르드를 배신하고 역내 불안정을 키운 트럼프 정부의 행태를 안보전문가들이 우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IS는 또한 리비아 등지에 거점을 만들어놨으며 이집트 시나이반도, 아프가니스탄, 필리핀 등에 추종 조직들을 거느리고 있다. 시리아와 이라크의 IS가 타격을 입고 무너졌다 해도 느슨한 연계로 움직이는 다른 나라의 소규모 조직들까지 모두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CNN은 “알바그다디는 비밀스런 지도자였을 뿐 개인 숭배를 조장한 적이 없다”면서 그의 사망이 절대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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