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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시리아 도시'에서 교차한 터키·시리아·러시아·미군…만비즈 주민들의 운명은

딸기21 2019. 10. 16.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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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북부 도시 만비즈 주변에 15일 터키군 탱크가 늘어서 있다. 터키군과 시리아 정부군이 대치하고 러시아군까지 개입하면서 만비즈는 내전의 ‘새로운 전선’이 되고 있다.  만비즈 AP연합뉴스

 

시리아 북부, 유프라테스강에서 30km 떨어진 만비즈는 인구가 10만명에 조금 못 미치는 소도시다. 하지만 앗시리아제국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3000년의 역사를 지닌 곳이다. ‘예수 시절의 언어’라 불리는, 지금은 사멸한 고대 언어 ‘아람어’로 샘물을 뜻하는 단어에서 나온 지명이라고 한다.

 

시리아의 오래된 도시들이 대개 그렇듯, 만비즈도 고대 중·근동 신화 속 여신의 신전에 로마 목욕탕과 원주와 극장, 비잔틴의 교회와 성벽, 이슬람의 마드라사(학교)들이 오랜 역사를 자랑해온 곳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잦은 전쟁을 겪으며 유적들은 많이 파괴됐지만 명멸해간 제국과 민족의 흔적들은 지금 이곳의 주민들에게 핏줄로 이어져 온다. 주민 80%는 아랍계이지만 19세기 후반 오스만제국 시절에 강제로 이주당한 소수민족 체르케스계를 비롯해 쿠르드계, 체첸계 등 29개 민족집단들이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모자이크처럼 섞여 살아온 주민들은 지금 터키와 시리아,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 놓여 최악의 위기를 맞을 판이다.

 

터키 국방부는 시리아 침공 일주일째인 15일(현지시간) “유프라테스강 동쪽에서 진행중인 ‘평화의 봄’ 작전을 통해 테러범 611명을 무력화했다”고 발표했다. 쿠르드 전투원들을 살해하거나 체포했다는 뜻이다.

 

터키군은 쿠르드민병대가 주축이 된 시리아민주군(SDF)을 공격해 시리아 북부도시 탈아브야드, 라스알아인을 잇달아 점령했고 이제 유프라테스 서쪽의 만비즈에 병력을 집중시켰다. 터키의 공격에 맞서 쿠르드는 아사드 정권과 손을 잡았고, 시리아 정부군도 만비즈에 입성했다. 터키군이 공격을 개시하면 만비즈에서 시리아군과 맞붙게 되는 것이다.

 

시리아 국영방송이 전한 15일 북부 도시 만비즈의 모습. 반정부군, 이슬람국가(IS), 쿠르드민병대에 차례로 장악됐던 이 도시에 2012년 이후 처음으로 정부군이 입성하자 주민들이 시리아 국기와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사진을 들고 환영하는 장면이다.  시리아TV·AFP연합뉴스

 

도시를 가운데 놓고 양측이 대치 중인 가운데, 시리아의 요청을 받은 러시아군도 이 지역에 들어와 순찰을 강화하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반면 시리아 주둔 미군 대변인은 이날 “만비즈 철군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미군이 철수하고 터키군이 쿠르드 부대를 제거하면 만비즈 주민들은 터키군의 군화발 아래에 놓이게 된다. 공포에 떨던 일부 주민들은 친정부 세력이 국기와 아사드의 초상화를 흔들며 정부군을 환영했다. 이 장면을 담은 동영상들이 소셜미디어에 퍼졌고, 시리아TV 등 국영방송들은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선전 기회로 삼았다.

 

2011년 내전이 시작된 뒤 만비즈는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에 맞선 반정부군에 장악됐다. 그러다가 이슬람국가(IS)에 점령당했고, 얼마전까지는 쿠르드민병대가 주축이 된 시리아자유군(SDF)과 쿠르드 자치정부의 영역이었다. 정부군이 이 지역에 들어온 것은 2012년 이후 처음이다.

 

러시아가 비록 아사드 정권을 돕고 있으나, 터키와도 긴밀한 관계다. 러시아 측은 터키의 시리아 급습이 IS와의 전쟁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비난하면서도 “터키의 군사작전은 제한적인 선에서 멈춰야 한다”고 했다. ‘중재’를 하겠다고 나선 러시아군은 터키군과 시리아군의 물리적 충돌과 최악 참사를 막으려 하겠지만, 주민들이 러시아군을 믿고 안심할 수는 없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주민들은 결국 오랫동안 핍박을 가해온 아사드의 정부군을 환호로 맞는 처지가 돼버렸다.

 

8년을 넘긴 내전은 ‘중·서부 아사드 영역, 북·동부 쿠르드 자치지역’으로 정리되는 양상이었다. 하지만 터키의 침공으로 상황은 급변했다. 정부군의 세력 확대, 미군 철군과 러시아군의 본격 개입이 맞물리면서 만비즈가 내전의 ‘새로운 전선’이 되고 있다고 알자지라방송은 전했다.

 

 

터키는 시리아 국경을 따라 길이 480km, 폭 30km의 ‘안전지대’를 만들어 터키로 넘어갔던 시리아 난민 ‘수백만명’을 이주시키려 하고 있다. 사실상의 강제이주 계획이다. 쿠르드군을 무력화할 교두보로 터키가 점찍은 곳이 만비즈다. 미국과 터키는 지난해에 안전지대를 만들기 위한 이른바 ‘만비즈 로드맵’에 합의했다. 터키가 이 계획대로 쿠르드군을 제거하면 결국은 쿠르드에 대한 ‘인종청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이미 유엔과 인권단체들은 16만~25만명이 피란길에 올랐다고 보고하고 있다.

 

반면 정부군은 정부군대로 만비즈를 노린다. 이 도시가 내전 기간 여러 세력의 각축장이 된 것은 시리아 북부의 경제중심지인데다, 중요한 교통 요지이기 때문이다. 만비즈를 지나는 M4 고속도로는 최대 도시 알레포와 라카, 러시아 공군기지가 있는 서부 지중해 항구도시 라타키아, 동부 유전도시 데이르에조르 등지로 이어진다. 만비즈를 차지하면 아사드 측은 내전에서 결정적인 승기를 잡을 수 있다.

 

터키의 시리아 분석가 오마르 쿠치는 알자지라에 “시리아자유군이 놀랍도록 빨리 무너졌다”면서 “시리아 정부가 통제력을 회복하면 국가를 이루려는 ‘로자바(쿠르드 자치지역)’의 꿈은 끝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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