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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깊이보기]처형, 폭격, 피란민…터키군 잔혹행위에 시리아 북부 인도적 재앙

딸기21 2019. 10. 14. 15:26

쿠르드족 거주지역인 시리아 북부 라스알아인에서 13일 터키군의 공습으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터키군은 이날 라스알아인을 비롯한 몇몇 도시들을 쿠르드 통제로부터 ‘해방’시켰다고 주장했다.  라스알아인EPA연합뉴스

 

“세계에는 눈(eyes)이 없는가. 우리는 누구에게도, 아무 짓도 저지르지 않았다.”

 

시리아 북부에서 터키군의 처형과 잔혹행위가 기승을 부린다. 미국과 터키, 러시아와 시리아 정부가 ‘지정학적 계산’에 골몰할 때 쿠르드족 민간인들은 폭격에 숨지거나 다치고, 집을 떠나 피란길에 오른다. 하지만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전쟁범죄’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철군을 서두르고 있다.

 

다시 피란길...난민 13만명

 

터키군이 라스알아인 등 시리아 북부 도시들을 ‘해방’시켰다고 주장한 13일, 소셜미디어에는 쿠르드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상을 담은 사진과 동영상들이 잇따라 올라왔다. 폭격으로 흙먼지에 덮인 민가 주변에 아이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고, 집은 불타고 있다. 곳곳에서 주민들이 폭격을 피하기 위해 터널 밑으로 숨거나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 헤맨다. 터키군 F16 전투기들이 훑고 지나간 마을들은 온통 초토화됐다.

 

이라크 쿠르드매체 러다우, 아랍에미리트연합 일간지 더네이션 등이 전한 현지의 참상이다. 로칸 카스르라는 17세 소녀는 어머니, 형제들과 어둠을 뚫고 간신히 몸을 피했지만 쿠르드민병대에서 싸워온 아버지와 연락이 닿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다. 하사카 마을에 살던 로칸은 민병대가 이슬람국가(IS)와 싸우는 동안, 집을 떠나 75km 떨어진 학교에서 유엔난민기구의 도움으로 살고 있었다. 하지만 터키군 공습이 시작되자 주민 수백명과 함께 학교마저 버리고 다시 도망치는 처지가 됐다. 가진 것이라곤 소지품 몇 개뿐이다. 그는 더네이션에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13일 시리아 침공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던 쿠르드계 정당 당원이 체포돼 끌려가고 있다.  이스탄불AP연합뉴스

 

이만 마토라는 40세 여성은 IS와 쿠르드민병대의 싸움이 격렬하게 벌어졌던 코바니 출신이다. 2015년 격전 중에 아버지와 오빠, 사촌 8명을 잃은 그는 로칸이 머물던 하사카 주변의 학교로 옮겨와 교실에 차려진 임시난민촌에 머물렀다. 하지만 터키군 공격에 세 아이의 손을 붙잡고 다시 피란길에 올랐다. 그는 “이제야 비로소 안전해졌다는 생각을 하면서 전쟁의 느낌을 잊어가고 있었는데, 에르도안(터키 대통령)이 우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만은 “(터키군에) 숨진 사람들은 IS와 싸웠던 바로 그 사람들”이라며 “우린 그래도 여전히 미국을 믿는다”고 말했다.

 

유엔은 터키가 ‘평화의 봄’이라는 이름으로 쿠르드 공격을 시작한 뒤 13만명이 피란을 떠났으며 40만명이 구호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터키는 시리아 북부 국경지대에 ‘안전지대’를 만들어 터키로 유입됐던 난민 300만명을 재정착시키겠다고 했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우려했던 대로, 난민들만 더 양산하고 있는 셈이다.

 

“전쟁범죄? 그런 것 같다”

 

라스알아인으로 가는 도로에서는 13일 오후 차량들이 포격을 당해 14명이 숨지고 70여명이 다쳤다. 공격당한 이들 중에는 시리아 NPA통신 취재진을 비롯해 최소 10명의 기자들도 있었고 그 중 일부는 사망했다. 무장경호원들도 있었지만 속수무책이었으며 잘려나간 사지가 흩어져 생지옥이 된 현장 사진들이 돌고 있다. 병원으로 실려간 한 여성은 러다우에 “그냥 그곳에 있었을 뿐인데 공격을 받았다”면서 “세계에는 눈이 없느냐, 우린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13일 시리아 북부 데리크에서 터키의 지원을 받는 무장세력에게 ‘처형’당한 쿠르드족 여성 정치인 헤브린 칼라프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다. 데리크AFP연합뉴스

 

소셜미디어에는 무장한 군인들이 몇몇 남성을 처형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들이 돌았다. 미군 관리들은 NBC뉴스에 터키군이 쿠르드족을 처형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 국무부 관리도 이 방송에 나와 “시리아 북부가 매우 불안정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매우 괴로운 소식들”이라고 했다. 시리아 내전 인명피해를 집계해온 시리아인권관측소(SOHR)는 터키군이 배후조종하는 시리아 무장세력들이 여성 정치인 헤브린 칼라프 등 9명을 처형했다고 밝혔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13일 CBS방송 ‘페이스 더 네이션’에 출연해 터키군 잔혹행위를 인정했다. 진행자가 “터키군이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취지로 묻자 에스퍼 장관은 “그런 것 같다”면서 터키를 비난했다. 백악관은 이날 “박해받는 민족적·종교적 소수집단을 보호하기 위해” 5000만달러를 내겠다고 했으나, 주로 공화당 우파들의 요구에 따라 기독교 공동체를 지원하는 데에 쓰일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정부는 인도적 재앙을 인정하면서도 시리아 주둔 미군 철군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지난 2월 밝힌대로 남서부 이라크 접경지역인 알탄프 기지의 미군 300여명을 남겨두고, 나머지 약 1000명은 “최대한 빨리 안전하게” 빼내겠다고 에스퍼 장관은 말했다.

 

러시아 개입하나

 

쿠르드민병대(YPG)가 주축이 된 반정부군인 시리아민주군(SDF)은 그동안 IS와의 전쟁을 주도해왔다. 그런데 터키군이 화력을 쏟아붓자 쿠르드는 결국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과 손을 잡았다. 로자바(쿠르드 자치정부)는 페이스북을 통해 정부군이 시리아 북부에 배치될 수 있도록 아사드 정부와 협정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정부군은 터키군이 점령한 아프린과 코바니 등 주요 도시 탈환작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터키군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 무장세력이 13일 시리아 북부 탈아비야드를 장악하고 순찰을 돌고 있다.  탈아비야드AP연합뉴스

 

아사드 정권은 러시아와 밀착돼 있다. 러시아는 시리아 타르투스에 옛소련권 국가를 제외하고는 유일한 해외 군사기지를 두고 있었으며, 시리아 내전이 격화되자 지중해 항구도시 라타키아에 공군기지를 만들었다. 이 기지의 러시아군도 터키군을 막는 데에 개입할 것으로 보인다. 자치정부의 방위책임자로 코바니 지역 쿠르드민병대 사령관을 맡고 있는 이스메트 셰이크 하산은 러시아 미디어 RT에 “러시아와 시리아군이 코바니와 만비지 지역에 들어올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또다른 쿠르드 지도자도 “라타키아 기지에서 러시아군과 협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13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터키가 “용인할 수 없는 인도적 상황”을 만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두 정상은 터키에 무기 수출을 보류할 것이라며 공격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터키에 무기를 많이 팔아온 이탈리아의 주세페 콘테 총리는 유럽연합(EU) 차원에서 터키에 대한 무기수출 금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