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라운드업] 시리아 내전

딸기21 2019. 10. 27. 18:37

2010년 12월, 튀니지를 시발점으로 ‘아랍의 봄’이라 불린 일군의 시위와 혁명이 일어납니다. 2011년 2월에는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이 축출됐고, 리비아에서는 무아마르 카다피에 맞선 내전이 일어납니다. 북아프리카에서 시작된 봄바람은 중동으로도 옮겨갑니다. 예멘의 정권이 무너지고, 바레인과 이란 등지에서도 시위가 일어납니다.

 

시리아로도 혁명의 불이 옮겨 붙습니다. 하페즈 알아사드 정권에 이어 대를 이어 철권을 휘두르던 바샤르 알아사드에 반대하는 시위가 시작된 것이죠. 발단은 어린 소년들이 담벼락에 아사드를 비난하는 낙서를 한 것이었습니다. 이 소년들이 잡혀가 고문당하는 일이 벌어졌고, 이에 맞서서 시위가 시작됩니다.

현재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최악의 인도적 참사라 할 시리아 내전의 진행과정을 정리합니다.


이제는 폐허가 되어가는... 시리아의 유서깊은 도시 알레포



2011년

 

3월 15일

시리아에서 ‘혁명의 요람’이라 불리는 저항의 도시, 남부의 다라(Daraa)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납니다. 시위는 곧 전국으로 확산됩니다. 아사드 정권은 시위대를 대거 체포하고, 강경 진압과 구금과 고문으로 대응합니다. 


4월

전국 주요 도시에 군대가 배치돼 시위대에 발포합니다.


 

5월

아사드는 유화조치로 이슬람 무장조직 아흐라르 앗샴(Ahrar ash-Sham) 조직원들을 비롯한 정치범 수백 명을 석방합니다. 하지만 저항은 점점 더 거세집니다.

 

6월 4일

정부군 상당수가 아사드 정권을 등지고 시위대에 투항, 반군에 합류합니다. 터키와 접경한 이들리브 주의 소도시 지스르 앗슈구르(Jisr ash-Shugur)에서 무기를 탈취한 시민들이 정부군에 맞서 첫 ‘교전’을 합니다. 정부군이 장례식장에 총을 쏘자, 이에 맞서 시민들이 정부군 건물에 응사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이날의 충돌로 보안장교 8명이 사망했고, 시위대가 경찰서를 점거해 무기를 확보합니다.


다마스쿠스에서 벌어진 '친아사드' 관제 시위 www.todayszaman.com


7월 29일

반정부 진영에 합류한 일군의 장교들이 자유시리아군(FSA) 결성을 선언합니다. FSA는 아사드에 맞선 시리아 반정부 진영의 공식 무장 저항군이 됩니다. 이로써 반정부 시위는 ‘내전’으로 공식화합니다.

 

7월 31일

‘라마단 학살’이라 불리는 정부군의 조직적 시위대 살해가 전국에서 벌어집니다. 여러 도시에서 142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8월 13~19일

정부군이 해안도시 라타키아(Latakia)를 봉쇄하고 맹공격을 퍼붓습니다.

 

8월 23일

반정부 그룹 대표들이 터키에 모여 ‘시리아 국민협의회(Syrian National Council)’를 결성합니다.

 

9월 27일~10월 1일

탱크와 헬기로 무장한 정부군이 홈스 주의 라스탄(Rastan)에서 반정부군과 교전을 벌입니다. 내전 첫 해, 정부군과 FSA 간에 벌어진 가장 길고 맹렬한 전투였습니다. 결국 FSA는 퇴각합니다.

 

10월

FSA는 터키 정부의 허용 아래 시리아와 접경한 터키 남부 하타이 주에 사령부를 꾸리고 반격을 준비합니다. 반정부군은 이들리브 등 국경지대의 여러 도시를 장악합니다.

 

11월 8일

정부군은 6차례의 폭격 뒤 대도시인 홈스를 에워쌉니다. 반정부군은 홈스를 ‘혁명의 수도’로 선언합니다. 반정부군은 홈스를 거점 삼아 12월까지 다마스쿠스 외곽 하라스타에 있는 정보기관 본부를 비롯해 홈스의 공군기지, 이들리브의 바트당 지역사무소 등 곳곳을 공격합니다.


폐허가 된 홈스 / www.thetimes.co.uk

  

2012년

 

1월

정부군이 전국에서 반정부군 거점과 민간인 지역을 맹공격합니다. 다마스쿠스 외곽에서는 탱크를 동원해 반정부군과 교전합니다.

 

1월 29일~2월 5일

라스탄에서 전투가 벌어져 반정부군이 승리합니다.

 

3월 9일

카름알자이툰(Karm al-Zeitoun)에서 정부군이 민간인 지역을 공격해 여성과 아이들 등 47명을 학살합니다.

 

3월 14일

며칠 간의 교전 끝에 정부군이 이들리브를 다시 장악합니다. 반정부 활동가들은 이 지역에서 정부군의 학살에 숨진 이들이 4월초까지 1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합니다.

 

4월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아랍연맹 공동 시리아 특사로 활동하면서 ‘시리아의 벗들(Friends of Syria)’ 이니셔티브를 구성하고 휴전안을 제시합니다.

 

4월 12일

정부군과 반정부군이 유엔 중재 하에 휴전에 들어가지만, 지켜지지 않습니다. 코피 아난은 휴전 실패를 인정하며 “이란을 해법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시리아의 벗들’ 이니셔티브는 결국 6월 초에 무산되지요.


코피 아난과 아사드 www.thetimes.co.uk


5월 25일

홈스 주의 훌라 마을에서 친정부 민병조직인 샤비하(Shabiha)가 여성 34명과 어린이 49명 등 108명의 주민을 즉결처형 등으로 학살합니다(훌라 학살). 반정부군은 이 사건 뒤 정부군에 휴전을 제안하는 최후통첩을 보냅니다.

 

6월 1일

FSA가 “방어 작전”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하자 아사드 대통령은 반정부 봉기를 완전 진압하겠다고 발표합니다.

 

6월 6일

하마 주의 중부에 있는 알쿠바이르(Al-Qubeir)는 시아 일파인 알라위파 지역에 에워싸인 수니파 마을입니다. 이 곳에서 정부군과 샤비하 민병대에 의한 학살로 민간인 78명이 목숨을 잃습니다(알쿠바이르 학살).

 

6월 12일

유엔이 최초로 ‘시리아는 내전 상태에 있다’고 공식 선언합니다.

 

6월 22일

시리아군이 터키군 F-4 전투기를 격추해 터키군 조종사 2명이 사망하면서 시리아와 터키 간 긴장이 고조됩니다. 하지만 아사드의 ‘사과’로 봉합됩니다.

  

7월 18일

시리아 국방장관 다우드 라지하와 전 국방장관 하산 투르크마니, 아사드의 처남인 아세프 샤우카트 장군이 다마스쿠스에서 폭탄에 살해됩니다. 정보국장 히샴 이크티야르도 함께 있다가 부상을 입고 20일에 결국 사망합니다. FSA와 반정부 진영 내 또 다른 무장분파인 ‘리와 알이슬람(Liwa al-Islam)’이 자신들의 공격이라 주장합니다.


알레포의 자유시리아군(FSA) 병사들 / www.theguardian.com


7월 25일

7월 말이 되자 전쟁의 중심이 알레포로 옮겨갑니다. 정부군이 알레포와 다마스쿠스의 반군 거점들을 전투기로 폭격합니다.

 

8월 2일

코피 아난은 휴전 실패의 책임을 지고 유엔-아랍연맹 시리아 특사에서 사퇴합니다.

 

9월 19일

반정부군이 터키로 이어지는 알라카 주의 국경지대를 장악합니다. 터키, 이라크와의 국경을 통제하게 됨으로써 반정부군은 군수품 공급 등에서 엄청난 이점을 확보하게 됩니다. 9월 말이 되자 반정부군은 터키에 있던 사령부를 시리아 북부로 옮깁니다.

 

10월 9일

반정부군이 이들리브 주의 마아라트 알누만(Maarat al-Numan)을 장악합니다. 다마스쿠스와 알레포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위치한 전략 요충지입니다.

 

10월 18일

FSA가 다마스쿠스 외곽에서 가장 큰 근교도시인 두마를 장악합니다. 라크다르 브라히미 유엔-아랍연맹 시리아 특사는 10월 말의 이드 알 아드하 축제에 맞춰 휴전을 이끌어내려고 중재에 들어갑니다만 정부군과 반정부군은 오히려 대규모 교전을 계속합니다.


라크다르 브라히미 유엔-아랍연맹 시리아 특사 / www.globalpost.com

 

10월 30일

브라히미 특사가 제안한 휴전 기간이 공식적으로 종료됩니다. 정부군은 다마스쿠스를 공습합니다. 다마스쿠스 시내 조바르(Jobar) 지역에 처음으로 정부군 전투기가 폭격을 가합니다. 

 

11월 18일

반군이 시리아 북부에서 정부군의 최대 기지인 알레포 주의 46군사기지를 장악합니다. 반정부군에 합류한 전직 장성 모하메드 아흐메드 알 파지는 이 기지의 점령을 “혁명 시작 이래 최대의 성과”라 칭했습니다. 몇 주 동안 계속된 반군의 46군사기지 공격으로 정부군 300명 이상이 숨지고 60명 이상이 포로로 붙잡혔습니다.

 

12월

반정부군은 다마스쿠스를 노린 공격을 계속합니다. 다마스쿠스 부근 야르무크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반정부군이 장악합니다.

 

2013년

 

1월 11일

알누스라 전선 등 반정부 진영 내 이슬람 극단세력이 타프타나즈 공군기지를 장악합니다.

 

2월 11일

이슬람 반군이 락까 주의 알타우라(Al-Thawrah) 마을을 장악합니다. 시리아 수력발전에서 큰 몫을 담당하는 타브카 댐과 가까운 곳입니다. 이튿날 반군은 알레포에서 동쪽으로 60km 떨어진 자라(Jarrah)의 공군기지도 점령합니다. 사흘 뒤에는 극단세력인 알누스라전선이 이라크 국경과 가까운 알하사카 주의 샤다데(Shadadeh)를 점령합니다.

 

2월 20일

다마스쿠스 근교 마즈라(Mazraa)의 바트당 지역당사 부근에서 차량 폭탄테러가 일어나 53명이 숨지고 235명이 다쳤습니다. 이라크 알카에다가 전시에 벌였던 폭탄테러가 시리아에서도 빈발하게 됩니다.


2월 21일

FSA가 레바논에 있는 이슬람 무장세력 헤즈볼라의 거점들을 공격합니다. 헤즈볼라는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지원을 받아왔기 때문에, 내전에서 아사드 지키기에 나섭니다. 레바논과 인접한 시리아의 쿠아사르(Quasar) 지역을 놓고 헤즈볼라와 FSA 간 교전이 벌어지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3월 2일

정부군이 북부 도시 락까(Raqqa)를 탈환합니다. 이 과정에서 정부군과 반정부군 모두 대규모 피해를 입습니다. 정부군은 같은 날 알레포로 들어가는 고속도로 주변 마을들을 장악합니다.


www.naharnet.com

150 Syrian Regime Forces Killed in Khan al-Assal Battle / www.naharnet.com

 

3월 4~6일

격렬한 교전 끝에 반군이 락까 전체를 장악합니다. 락까는 시리아의 주도(州都)들 중 첫 번째로 반군에 떨어진 도시가 됩니다. 도시 곳곳에서 시민들이 아사드 부자의 포스터를 찢으며 축제를 벌입니다.

 

3월 18일

시리아 공군이 레바논을 폭격합니다. 국경에 인접한 와디 알카일 계곡(Wadi al-Khayl Valley) 지대가 폭격을 맞았습니다.

 

3월 21일

마즈라의 모스크 앞에서 자폭테러가 일어나 친아사드 성향의 수니 고위 성직자 셰이크 모하메드 알 부티 등 41명 이상이 사망합니다.

 

3월 23일

반정부군이 시리아와 요르단을 잇는 고속도로변에 위치한 다라 남부의 공군기지를 접수합니다. 이튿날에는 요르단 국경에서 25km 떨어진 마을들과 알 라이 군사검문소를 장악합니다.

 

 

3월 26일

반정부군의 발목을 잡는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쿠사이르를 장악한 반정부군 내 무장조직 ‘알 파루크 알 무스타킬라 여단(Al Farooq al-Mustakilla Brigade)’ 소속 사령관 칼레드 알 하마드(아부 사카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가 정부군을 죽이고 인육을 먹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올리고, 이 영상이 5월에 퍼지면서 일파만파를 일으킵니다.

 

4월 21일

4월에 들어서면서 헤즈볼라가 본격적으로 전선에 뛰어듭니다. 친아사드 병력이 레바논 국경지대 부라니야(Burhaniya), 사크라자(Saqraja) 등의 마을을 점령합니다.


 

4월 24일

5주 간의 전투 끝에 정부군이 다마스쿠스 동부 오타이바(Otaiba)를 장악합니다. 8개월 동안 반정부군에 점령돼 요르단으로부터 들어오는 무기 공급로로 이용되던 지역이었습니다. 북부에서는 반정부군이 알레포 부근의 메나그(Mennagh) 군사기지를 점령하는 등 승리를 거둡니다.

 

5월 3일

친정부 민병대 샤비하가 바니야스(Baniyas) 일대에서 50~100명을 학살했다고 영국에 있는 시리아인권관측소(SOHR)가 밝힙니다.

 

5월 8일

정부군이 요르단 접경 키르베트 가잘레(Khirbet Ghazaleh) 마을을 점령합니다. 1000명 넘는 반군 병사들이 퇴각하면서 다라로 이어지는 보급로가 끊깁니다.

 

 

6월 7~16일

헤즈볼라의 지원을 받은 정부군이 쿠사이르 북부 마을들을 점령합니다. 알레포 주에서도 곳곳에서 탈환작전을 개시합니다. 정부군은 알레포 주변지역을 점령합니다. 알레포에서 격전이 이어집니다.

 

6월 10일

시아파 친정부 민병대와 반정부군이 데이르에조르 부근에서 서로 보복전을 벌여 주민 등 60명이 목숨을 잃습니다.


6월 15일

정부군이 다마스쿠스 외곽 아흐마디야(Ahmadiyeh)를 점령합니다. 일주일 뒤에는 정부군이 반군 거점인 탈칼라크(Talkalakh)를 점령합니다. 26일에는 홈스 주의 반군 거점 알카리아타인(Al-Qariatayn)을 장악합니다.

 

7월 12일

FSA는 이슬람 극단조직인 ‘이라크·레반트(시리아)이슬람국가(ISIL)’가 반정부군 사령관 카말 하마미를 살해했다고 발표합니다. 반정부 진영 내 야권과 이슬람 극단세력 간 분열이 가시화됩니다. 

 

7월 18일

쿠르드계 무장조직인 PYD가 반정부 진영 내 알카에다 성향 조직 알누스라전선과 싸워 북부의 라스알아인(Ras al-Ain)을 점령합니다. 이후 쿠르드 조직과 지하디스트 간 싸움이 석달 간 계속됩니다. (극단주의에 맞선 쿠르드의 싸움은 그후 미군과의 협력 속에 IS 격퇴전으로 이어집니다)


7월 25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시리아 내전 사망자가 10만명이 넘었다"고 공식 발표합니다.


 

8월 4~5일

중화기로 무장한 반정부군과 정부군이 라타키아 주에서 치열한 교전을 벌입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이 과정에서 민간인 190명이 숨졌으며 그 중 67명은 ‘처형’됐다고 발표합니다. 이 외에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해 민간인 200명이 포로로 잡힙니다.

 

8월 21일

다마스쿠스 외곽 구타(Ghouta) 지역에서 화학무기 공격으로 어린이들을 비롯해 수백 명이 목숨을 잃습니다.



9월 10일

휴먼라이츠워치는 시리아 화학무기 공격이 정부군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보고서를 공개합니다.

 

9월 16일

유엔 시리아 화학무기 조사단은 구타 지역에서 대규모 화학무기가 사용됐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제출합니다. 하지만 누가 사용했는지는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9월 18일

ISIL이 FSA 장악 지역을 공격해 반정부 진영 내 충돌이 벌어집니다.

 

9월 20일

친정부 성향 알라위파 민병대가 하마 주의 셰이크 하디드(Sheik Hadid)에서 수니파 민간인 15명을 살해합니다. 이로써 내전에 ‘종파 분쟁’ 양상이 더해지고, 점점 심해집니다.

 

9월 28일

반정부군이 시리아-요르단 국경 람타(Ramtha) 검문소를 장악합니다. 교전 중 ‘외국인 전사’ 7명을 포함한 반정부군과 정부군 26명이 사망합니다.

 

10월 3일

정부군이 알레포로 이어지는 요충지인 카나시르(Khanasir)를 장악합니다. 정부군은 이어 7일에는 카나시르와 알레포 간 보급로를 엽니다.


 

10월 9일

헤즈볼라와 이라크에서 건너온 친아사드 시아파 전사들이 다마스쿠스 남부 셰이크 오마르(Sheikh Omar)를 장악합니다. 일주일 뒤 헤즈볼라와 친아사드 민병대 ‘알압바스 여단’ 병사들이 다마스쿠스 남부를 점령합니다.

 


10월 26일

쿠르드 반정부군이 알누스라 전선과 사흘 간의 교전 뒤 알하사카 주에 있는 야루비야(Yarubiya) 국경통제소를 장악합니다.


 

11월

정부군이 치열한 교전 뒤 알레포 공항 부근 80군사기지 등을 탈환합니다. 15일에는 정부군이 알레포 부근 텔 하셀(Tell Hassel) 시를 점령합니다.

 

12월 2일

FSA가 사흘간의 교전 뒤에 역사적인 기독교 마을인 말룰라(Ma‘loula)를 점령합니다. 반정부군은 이 곳에서 수녀 12명을 인질로 잡습니다. 

나비 필레이 유엔 최고인권대표는 시리아 내전 과정에서 벌어진 반인도범죄의 책임자로 아사드를 지목합니다. 유엔이 아사드의 전범 책임을 공식 거론한 것은 처음입니다.


 

통폭탄에 폐허가 된 알레포 시가지. www.euronews.com


2014년

 

1월 3일

반정부 진영 내 FSA와 ‘무자히딘 군대’, 알누스라전선이 ISIL이 차지한 알레포 인근과 이들리브 주 일대를 합동 공격합니다. 반정부 진영 내부에서도 ISIL은 극도의 폭력성 때문에 배척을 당합니다.

 

1월 6일

반정부군이 락까를 빼앗습니다. 하지만 1월 중순에는 ISIL이 다시 락까 전체를 탈환합니다. 이틀 뒤에는 반정부군이 알레포에서 ISIL을 몰아냅니다.


 

1월 18일

알레포에서 정부군이 민간인 지역에 ‘통폭탄(barrel bomb)’을 떨어뜨려 60명 이상이 희생됩니다.

 


1월 29일

터키 공군기가 알레포 주의 접경지대에서 ISIL을 폭격합니다. 이 공격으로 ISIL 조직원 12명이 사망합니다. 그 사이 정부군은 알레포에서 또 통폭탄을 투하해 최소 62명이 숨집니다.

 

2월

알카에다 계열인 알누스라전선도 ISIL 축출에 적극 합류합니다.

 

2월 1~5일

알레포에서 정부군의 잇단 통폭탄 공격으로 246명 이상이 목숨을 잃습니다.


2월 15일

스위스에서 '제네바2 회담'으로 불리는 평화회담이 몇 차례 열렸지만 성과 없이 끝났습니다.

 

3월

북부에서 반정부 진영 내 싸움이 한창일 동안 정부군은 칼라문(Qalamoun) 산악지대와 홈스 주의 전략 요충인 자라(Zara) 등을 속속 장악합니다.


 

4월 1일

4년 째 이어진 내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15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영국에 본부를 둔 시리아인권관측소(SOHR)는 2011년 3월 18일 시리아에서 첫 사망자가 발생한 이후 전날까지 집계된 사망자는 15만344명이라고 밝혔습니다. 


6월 10일

ISIL이 이라크로 넘어가, 이라크 북부 대도시 모술을 장악합니다. 이로써 시리아 내전은 극단주의 조직 ISIL과의 싸움이라는 새 국면으로 바뀝니다.


6월 29일 

ISIL 이름을 '이슬람국가(IS)'라 바꾸고, 시리아와 이라크 북부에 '이슬람 칼리프 국가'를 수립했다고 선언합니다. 이 조직 수장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는 스스로 '칼리프 이브라힘'이라 주장합니다.



8월 8일 

미군이 IS에 장악된 이라크 북부를 공습합니다. 이로써 버락 오바마 정부는 이라크를 공격한 미국의 네번째 행정부가 됩니다.


8월 16일

IS는 이라크 북부 산악지대에 살고 있던 소수 공동체인 야지디 80명을 학살합니다.


8월 19일

IS가 미국인 기자 제임스 폴리를 참수하는 동영상이 공개됩니다. 미국은 군사개입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9월 2일 

IS가 또 다른 미국인 기자 스티븐 소틀로프를 참수하는 동영상이 공개됩니다.


9월 10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시리아 국경 내 공습을 승인합니다. 시리아 내 IS 시설들을 타격하겠다는 '제한적 공습' 방침입니다만, 이로써 오바마는 십수년 째 계속돼온 미국의 대테러전의 범위를 시리아로까지 넓힌 셈이 됐습니다.



9월 23일

미국이 시리아를 공습했습니다. 홍해에 있는 알레이버크 구축함과 걸프(페르시아만)의 조지HW부시 항모에서 발진한 전투기와 토마호크 미사일들이, IS의 사령부가 있는 락까의 주요 빌딩들을 공습했습니다.


10월 10일 

IS 전투원들이 며칠 간의 교전 끝에 터키와 접경한 북부 쿠르드 도시 코바니를 점령합니다. 


2015년 


1월 28일

아사드 정부군을 지원하고 있는 레바논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셰바 농업단지를 미사일로 공격, 이스라엘군 2명이 사망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에 보복 폭격을 했고, 이 과정에서 레바논 내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활동을 하던 스페인 국적의 유엔 평화유지군이 사살됐습니다. 


2월 15일

몇 달에 걸친 격렬한 공방전 끝에 쿠르드민병대(YPG)가 코바니를 탈환합니다. 이로써 북부에서 IS에 맞선 전쟁은 전기를 맞습니다.


2월 24일

시리아인권관측소는 IS가 텔타메르 지역에서 시리아정교 신자 90명을 납치했다고 밝혔습니다.


시리아 내전 4년, 절망 속에 파묻히다 


지난 한 해 동안 전쟁통에 사망한 시리아 주민은 7만6000명에 달했다. 4년간의 사망자를 합치면 21만명을 넘어선다. 10분마다 한 명씩 죽어나간 셈이다. 인구의 절반인 1000만명은 집을 버리고 피란을 떠났다. 그중 380만 명은 살길을 찾아 국경을 넘었다. 레바논의 시리아 난민 절반 이상은 불안정한 주거 환경에 노출돼 있으며, 요르단 도심에 사는 난민의 3분의 2는 절대빈곤선 이하 수준으로 생활하고 있다. 수많은 난민들이 구걸과 성매매, 미성년 노동과 조혼에 내몰린다.


3월 20일

미군 무인기(드론) MQ-1 프레데터가 라타키아 주에서 발견됐습니다. 미군이 이전에 개입하지 않았던 지역으로까지 군사활동을 넓히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습니다.


3월 28일

알카에다 계열인 알누스라전선 산하 조직이 중부 도시 이들리브를 점령합니다. 



5월 20일


8월 31일

IS는 끝내 시리아의 2000년 된 고대유적인 팔미라 신전을 폭파합니다.


9월 2일 

터키의 휴양지 보드룸 해안에서 지중해를 건너려던 3살 난민 아이 아일란 쿠르디의 주검이 발견됐습니다. 세계가 이 참극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9월 30일

러시아가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기 위해 시리아 공습을 시작합니다.



10월 11일

미국산 무기가 극단세력에 흘러갈까 우려해 직접 지원을 꺼려오던 미군이 반군에게 무기를 '공중투하'합니다. 



11월 12일

미군은 인질 참수로 악명을 떨친 IS 전투원 모함메드 엠와지, 일명 '지하디 존'을 폭격으로 사살했다고 밝혔습니다.


11월 14일

11월 13일에 프랑스 파리에서 IS의 동시다발 테러가 일어나 129명이 숨졌습니다. 프랑스는 즉시 보복에 나섰습니다. 프랑스군은 라팔 등 전투기 12대를 동원, 락까를 공습했습니다. 9월에 프랑스가 국제동맹군에 가세한 이후 최대 규모의 공격이었습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16일에는 "프랑스는 전쟁 중"이라며 "IS를 파괴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11월 24일

터키군이 터키 영공을 넘어왔다는 이유로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합니다. 푸틴은 "등에 칼을 꽂은 것"이라며 맹비난했습니다.


2016년 


2월 13일

터키는 IS와의 싸움보다는 쿠르드족 압박에 더 집중합니다. 터키군이 알레포 북부의 쿠르드민병대(YPG)를 박격포로 공격합니다.


2월 27일 

유엔 안보리는 만장일치로 적대행위를 중단하도록 하는 시리아 휴전 결의를 채택합니다. 하지만 미·러 사이에 합의된 휴전은 실효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3월 15일 

러시아군은 시리아에서 일부 철수했으나 공습은 계속합니다. 


3월 24일 

정부군이 러시아의 공습 지원 속에 2015년 5월부터 IS에 점령됐던 팔미라를 탈환합니다. 


4월 15일 알레포에서 일주일 동안의 격렬한 교전 끝에 정부군 82명, 반군 94명, IS 전투원 34명 등 210명 이상이 목숨을 잃습니다.


5월 23일

자블레와 타르투스의 정부군 지역에서 차량 자폭테러가 연쇄적으로 일어나 15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6월 8일

정부군이 알레포에서 유니세프가 운영하던 알하킴 아동병원 등을 폭격해 의료시설이 무너지고 15명이 사망했습니다.


6월 9일

2012년 봉쇄 이래 처음으로 반군 장악지역인 다라야(Darayya)에 유엔 구호식량이 도착합니다.


"시리아를 공습하라" 미 국무부 직원들, 독재정권 방치한다며 오바마에 '항의'


6월 26일

정부군과 러시아군 공습으로 데이르에조르 교외 알쿠리야 마을에서 민간인 58명 등 82명이 숨졌습니다.


7월 10일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인 알누스라전선에 맞선 국제사회의 군사행동을 촉구합니다.


7월 16일

정부군과 러시아군의 알레포 공습으로 아이들을 비롯해 민간인 25명 이상이 희생됐고 마아디의 병원이 폭격을 받았습니다.



7월 19일

미군 주도 동맹군 공습으로 IS가 장악한 북부 만비즈에서 어린이 11명 등 민간인 56명이 사망합니다.


7월 28일

정부군이 알레포를 완전히 포위합니다. 아사드는 반군에 석 달의 사면기간을 줄 테니 투항하라고 통보합니다.


7월 30일

알레포 주민들의 재앙이 계속되는 가운데, 러시아는 구호물품이 알레포로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적 회랑을 열겠다고 발표합니다.



8월 14일

터키와 접경한 아트메(Atme)에서 자폭테러로 반군 병사 50명이 숨졌습니다. 


시리아, 이제 알레포만 남았다…반군거점지역 다라야 반군 정부에 투항 



9월 11일

미국과 러시아의 휴전 합의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공습과 교전이 이어져 100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쿠르디 1주기, 폭격 구덩이에서 수영하는 시리아 아이들…"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9월 17일

미군이 데이르에조르의 시리아 정부군 기지를 오폭합니다. 정부군 62명 가량이 숨졌다고 RT는 보도했습니다. 뒤에 이 사건은 미군의 정보 착오에 따른 실수로 드러났습니다.


10월 9일

정부군이 알레포 동부 15~20%를 점령합니다.



10월 18일

러시아군과 정부군이 알레포, 다마스쿠스, 하마, 라타키아에서 8시간 휴전 조치에 따라 공습을 중단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날 벨기에군의 오폭으로 시리아 민간인 6명이 숨졌습니다.



11월 27일

러시아의 지원 속에 정부군이 알레포에 입성합니다.


12월 5일

러시아와 중국은 알레포의 인도적 재앙을 막기 위한 유엔 안보리 휴전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합니다. 시리아인들이 안보리 정치싸움의 제물이 된 것입니다. 


12월 6일

정부군이 알레포 반군지역 3분의 2 가량을 탈환합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미-러 사이에 이미 합의된 반군 철수계획을 반군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12월 11일

IS가 팔미라를 다시 점령합니다.


12월 12일

정부군이 알레포를 장악했습니다. 러시아는 이튿날 반군 철수가 시작됐다고 발표했습니다. 


2017년 


2월 24일

자유시리아군이 ‘유프라테스 방패 작전(Operation Euphrates Shield)’으로 알바브(al-Bab)를 장악하고, 알레포 외곽 소도시들을 IS로부터 탈환합니다.


3월 2일

정부군이 러시아군의 지원 속에 고대 유적도시 팔미라를 IS로부터 재탈환했습니다.


[뉴스 깊이보기] 급변하는 시리아·이라크 판세…러·시리아군 맹공세


3월 9일

미 해병대가 시리아 북부 락까에서 자유시리아군과 함께 공세를 펼칩니다.



3월 17일

이스라엘 전투기가 시리아 접경지대에서 아사드 지원에 나선 레바논 헤즈볼라를 공습합니다. 이스라엘은 시리아 땅인 골란고원을 불법 점령하고 있으며, 유엔의 반환 결의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시리아 정부군은 이스라엘이 팔미라 부근까지도 공습했다고 비난했습니다. 


3월 22일

자유시리아군 수백 명이 미군기를 타고 이동해 유프라테스 강의 타브카 댐을 장악하고 락까의 IS 보급로를 끊었습니다(타브카 댐 전투)


4월 4일

이들리브주 칸셰이칸(Khan Shaykhun) 마을에서 정부군의 소행으로 보이는 화학무기 공격으로 100명 가까이 숨졌습니다.


이들리브미디어센터(IMC)가 공개한 사진. 칸셰이칸에서 정부군 화학무기 공격을 당한 아이가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시리아 화학무기 안이한 제재…또 ‘대가’ 치른 건 어린이들 

갈팡질팡하는 미국의 시리아 정책


4월 7일

미군이 홈스주에 있는 아사드 정부군의 샤이라트 공군기지를 토마호크 미사일로 폭격했습니다. 미국이 직접 아사드 정부를 겨냥해 군사공격을 한 것은 처음입니다.


지중해의 미군 구축함 로스 호에서 시리아를 향해 발사되는 토마호크 미사일. _ 미 해군

미국 '군사개입 신호탄' 토마호크...59발 쏘는 데에 670억원 퍼부었다

미국, 시리아 폭격... 또 '레짐 체인지'?


5월 2일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에서 시리아 내전 평화협상이 열렸습니다. 러시아와 터키는 시리아 변경에 ‘안전지대’를 만드는 것을 지지한다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반정부 진영은 이란이 협상에 참여하는 것에 반대하며 박차고 나갔습니다.


5월 9일

미국 트럼프 정부는 시리아 내 쿠르드 반군의 무장을 지원해주는 계획을 승인했습니다. 터키가 극도로 민감하게 여기는 사안이죠. 쿠르드민병대(YPG)가 주축이 된 시리아민주군(SDF)은 IS의 ‘수도’ 격인 락까를 탈환하기 위한 핵심 병력입니다.


5월 16일

미국 주도 동맹군의 폭격으로 알보카말에서 아이들 11명과 여성 6명 등 민간인 42명이 사망했습니다.


5월 26일

미국 주도 동맹군의 폭격으로 알마야딘에서 민간인 108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6월 18일

미군 F/A-18E 수퍼호넷 전투기가 락까 부근에서 시리아군 Su-22 전투기를 격추했습니다. Su-22가 쿠르드 지역의 시리아민주군(SDF) 기지를 폭격한 뒤에 벌어진 일입니다.


6월 22일

미국이 IS로부터 탈환한 지역에 국무부 직원들과 보안팀을 파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6월 30일

시리아인권관측소는 IS가 알레포 주에서 철수했다고 밝혔습니다.


시민들 삶 무너져도 시리아는 굴러간다...내전 6년, 시리아의 경제는? 


아사드 대통령의 얼굴이 담긴 2000파운드 신권 화폐.

7년째 전쟁 중인 시리아에 새 화폐가 등장했다.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얼굴이 담긴 2000파운드 지폐다. 오랜 내전에 서민들의 삶은 무너졌지만 경제 구조는 외부의 예상과 달리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다. 지정학적 중요성 탓에, 이권이 걸린 나라들이 돈을 계속 투입하는 까닭이다.
2일(현지시간)부터 수도 다마스쿠스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2000파운드 신권이 유통된다고 국영 SANA통신이 전했다. 신권의 가치는 약 3.9달러, 4500원이다. 기존 최고액 지폐는 아사드의 아버지 하페즈 전 대통령이 전면에 인쇄된 1000파운드짜리였다. 


7월 24일

러시아 합참의장은 시리아 홈스 북부와 구타 동부를 비롯한 지역에 ‘안전지대(de-escalation zones)’를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7월 31일

시리아인권네트워크는 정부군이 7월 한 달 동안 통폭탄 244개를 다마스쿠스 교외와 다라아, 하마, 홈스 등의 ‘안전지대’에 투하했다고 밝혔습니다.



9월 1일

쿠르드 중심의 SDF가 락까의 구시가지를 장악했습니다.


9월 5일

이란계 민병대와 러시아 군사고문, 러시아군의 공습이라는 지원을 받아온 시리아 정부군이 3년 간의 공방 끝에 데이르에조르에서 IS를 몰아냈습니다.


9월 6일

유엔 조사단은 4월 샤이쿤에서 벌어진 화학무기 공격에 대한 보고서를 내고 아사드 정부가 27건의 화학무기 공격을 가했다고 밝혔습니다.



9월 9일

시리아 정부군이 9개월 동안 이어진 IS의 데이르에조르 공항 봉쇄를 깼습니다.


9월 11일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해온 레바논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가 “시리아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선언했습니다.


9월 26일

정부는 쿠르드 지역의 자치를 허용할 수 있다고 시사했습니다.


9월 28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앙카라에서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만나, 시리아 '안전지대'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IS는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던 알바그다디가 ‘십자군과 배신자들’에 대한 공격을 촉구하는 동영상을 공개했습니다.


10월 4일

러시아군으로 보이는 전투기가 알아샤라에서 도망치려던 난민들의 고무보트를 공격해 민간인 60명 이상이 숨졌습니다.


10월 17일

SDF는 락까를 탈환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로써 IS는 이라크의 모술과 시리아의 락까라는 두 중심지를 모두 잃었습니다. 



2018년


1월 20일

터키군이 시리아 쿠르드족이 장악한 아프린을 공격합니다. 


2월 4일

시리아 정부군이 이들리브주의 반군 지역에서 화학무기(염소가스)를 사용했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주민 100여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4월 7일

동(東)구타에서 정부군의 화학무기 공격으로 다시 100명 가까이 목숨을 잃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이후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시리아 공습을 경고합니다.


4월 14일
미국·영국·프랑스군이 시리아를 공습했습니다. 




9월 17일

이스라엘이 시리아 서부 여러 곳을 공습합니다. 이스라엘 전투기에 반격하는 과정에서, 시리아군이 러시아 비행기를 격추해 러시아인 15명이 숨졌습니다. 러시아와 터키가 시리아 이들리브주에 완충지대를 만들기로 합의한 직후였습니다. 러시아는 자국기 격추 관련해 이스라엘을 비난했습니다. 


12월 12일

쿠르드족은 시리아민주군의 병력을 기반으로 2012년부터 북서부에서 자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터키군은 로자바(쿠르드 자치지역) 공격을 며칠 내로 시작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12월 19일 

터키는 일단 시리아 북부 공격 계획을 보류했습니다. 그러자마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갑자기 시리아 북부에서 철군하겠다고 발표합니다. 터키의 쿠르드 지역 침공을 허용해준  


12월 28일

아사드 정부군이 북부 요충지에 있는 만비즈를 공격합니다. 쿠르드군이 장악하고 있고, 쿠르드와 협력해온 미군도 주둔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12월 30일

시리아 정부는 이라크군이 시리아 영토에서 IS를 공격하는 걸 허용한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이튿날 이라크군은 시리아 서부 데이르에조르의 IS 거점을 공격합니다.


2019년


1월 1~10일 

반정부 진영 내에서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과 민족해방전선(NLF) 사이에 분란이 일어납니다. 양측은 1월 9일 휴전을 약속했지만 NLF가 이들리브 지역을 HTS에 빼앗기는 과정에서 터키의 지원을 받는 자유시리아군 민병대가 아프린을 차지해버립니다.


3월 23일

거의 마지막까지 IS의 거점으로 남아 있던 바구즈에서 몇 주에 걸쳐 교전이 벌어졌습니다. 친터키 자유시리아군은 이 지역을 마침내 장악했다면서 5년 간의 ‘칼리프 국가’는 시리아에서 패퇴했다고 선언합니다. 이곳에서 활동하던 IS 잔당들과 그 가족들은 수용소에 수감됩니다.


5월 6일

시리아 정부군은 러시아 공군의 지원 속에 HTS와 NLF가 경쟁하고 있던 북서부 지역에 지상군을 투입합니다. 


시리아에 남을 미군 200명, 사막에서 무얼 할까


8월 7일

미국과 터키는 시리아 북부 국경지대에 안전지대(완충지대)를 만들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합니다. 



10월 5일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시리아 북부를 공격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구정은의 '수상한 GPS'] 미국의 배신? 그래도 갈 길 가는 '세계 최대 소수민족' 쿠르드


10월 7일

미국은 터키가 공격할 예정인 시리아 북부의 미군을 철수시킨다고 발표합니다.


10월 9일

에르도안은 시리아 북부 공격이 시작됐다고 발표합니다.


[구정은의 '수상한 GPS'] 우리가 몰랐던 ‘쿠르드족’



사담 후세인은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을 탄압했다. 이란과의 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에는 ‘이란과 내통했다’는 죄를 뒤집어씌워 쿠르드족을 대량학살했다. 사담의 사촌이자 심복이었던 알리 하산 알 마지드는 쿠르드족 말살작전을 주도, 화학무기와 폭격을 가해 18만명 이상의 쿠르드족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것이 1988년의 ‘할라브자 학살’이다. 알리는 사린, VX 등 독가스를 써서 ‘케미컬 알리’라는 악명이 붙었다.


10월 13일

러시아의 중재 속에, 시리아 정부와 로자바(쿠르드 자치정부)는 터키의 침공에 맞서 협력하기로 협정을 맺습니다. 이렇게 오랜 전쟁은 터키 때문에 꼬이고 꼬여서 아사드와 쿠르드가 손을 잡는 상황으로 귀결되고 말았습니다. 



10월 22일 

푸틴과 에르도안은 새 안전지대 계획에 합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과 완충지대 약속을 맺은 에르도안은 이제 트럼프 대신 푸틴으로 파트너를 바꾼 겁니다.


러시아는 어떻게 중동의 키플레이어가 됐나


10월 27일

미군의 공습으로 IS 수괴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숨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뉴스 깊이보기] 알바그다디 사망 이후…IS 격퇴전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