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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중동평화정착 플랜을 발표했네요.
오바마가 2009년 취임하고 이집트 카이로에서 이슬람권과의 화해를 설파했고 또 이란에도 화해의 손을 내민 적이 있지만 중동평화 문제, 즉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 명확한 로드맵을 밝힌 것은 처음입니다.
오바마는 미국시간 19일 국무부 청사에서 연설하면서 “이-팔 양측간 국경선은 1967년 당시의 경계선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못박았습니다. 그러면서 “양측이 그 기준에 따라 서로 영토를 주고받는데 합의하면 분명하고 안정적인 국경선을 그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쫓아내고 1948년 건국됐죠. 그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아랍계 주민들 수백만명이 난민이 되고 숱한 피해가 있었지만 어쨌든 이스라엘의 건국은 유엔의 승인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그걸로 만족 못하고 몇차례 중동전쟁을 일으켰죠. 1967년 전쟁은 엿새만에 이스라엘 승리로 끝났다 해서 ‘6일전쟁’이라고도 불리는데요. 공식적으론 3차 중동전쟁이죠. 그 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인 동예루살렘과, 시리아 땅인 골란고원, 이집트 땅인 시나이반도 등을 점령했습니다. 나중에 이집트와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시나이 반도는 돌려줬고, 골란고원은 오랜 세월에 걸쳐 -_- 시리아와 반환 협상을 벌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내 점령지들은 그대로 장악하고 있죠. 모두 불법 점령입니다. 유엔에서도 수차례에 걸쳐 반환하라고 결의안을 채택했던 바 있고요. 그걸 오바마가 “돌려주라”고 말한 겁니다.
Syrian families evacuating the Golan Heights in 1967 /Wikipedia
미국이 불법 점령지를 돌려주라고 이렇게 명시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입니다.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라고 봐야죠. 국제사회가 모두 불법이라고 얘기하는 이 문제에서 미국이 이스라엘 편을 들어줘왔기 때문에 아랍권에 반미감정이 깔리고 이-팔 화해가 되지 않았던 거니까요.
물론 미국도 그동안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고,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반발을 의식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팔 국경선 문제는 “당사자들 간 협상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우회적으로 이스라엘 편을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이스라엘 편에 서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팔 평화정착에는 걸림돌로 작용해왔습니다. 이미 1993년 오슬로 협정 때 미국 중재로 이-팔 양측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에 합의했는데, 그게 진전을 보려면 독립국가의 영토를 확정하는 것이 전제가 돼야 하니까요.
오바마의 선언은 일방적 이스라엘 편들기에서 탈피해 진정한 평화정착 중재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밝힌 겁니다. 오바마는 “이스라엘 안보에 우리가 계속 기여한다는 점은 변함없지만, 진실을 말하는 것은 우정 못잖게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또 “현상유지는 지속될 수 없다”면서 “이스라엘이 평화를 계속 진전시키기 위해서 과감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자기네 입장만 고수하는 태도를 바꿔서 점령지 내주고 진심으로 나서지 않으면 이제는 더 버틸 수 없다, 국제적인 압박 속에서 미국이 이스라엘 편 들어준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얘기로 들리는데요. 문제는 앞으로의 실천과 이스라엘의 태도겠죠.
팔레스타인의 마무드 압바스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의 지속적인 노력에 감사한다”면서 긴급 지도부 회의를 소집했다고 합니다. 아랍권 국가들하고도 향후 대응책을 논의하겠죠. 다만 가자지구의 강경 무장정치조직인 하마스는 “오바마는 슬로건 발표만 하지 말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권리를 보호할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아랍권은 전반적으로 환영입니다. 유엔 주재 이집트 대사는 오바마 연설을 환영하면서, 평화회담을 어떻게 재개할지 구체적인 방안은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은 격앙된 반응입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0일 워싱턴에서 오바마와 회담을 합니다. 네타냐후는 회담 앞두고 낸 성명에서 “이스라엘의 실체를 희생해서 팔레스타인을 존립시킬 수는 없다”고 반발했습니다.
네타냐후는 조지 W 부시대통령 시절인 2004년에 미국이 팔레스타인 땅에 있는 이스라엘 정착촌들을 그대로 이스라엘이 갖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현재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영토
오바마는 중동 민주화혁명에 대해서도 얘기했습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민주화 시위에 대해 언급하면서 “역사적인 기회를 맞았다”고 말했습니다. 오바마가 말한 ‘역사적인 기회’는 “미국의 가치를 보여줄 기회”를 가리킵니다.
미국이 반세기 이상 중동 친미독재국가들을 지원하면서 글로벌 석유 수급구조의 안정을 꾀하는 정책을 취해왔는데, 앞으로 중동전략이 일대 변화를 겪을 것 같습니다. 오바마는 “미국은 이 지역 국민들에 대한 폭력과 억압에 반대한다”면서 “역내 개혁을 촉진하고 민주주의로의 변화를 지지하는 게 미국의 정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에 대해서는 퇴진을 거듭 촉구하면서도, 현재 상황이 리비아보다 오히려 더 심각해 보이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에게는 “정치권력을 주도적으로 이양해야 한다”면서 살짝 발을 뺐습니다. 미군기지가 있는 산유국 바레인에는 왕정과 반정부세력 양측이 대화에 나서라 하고, 예멘 대통령에게는 퇴진하라 했습니다. 딱히 일관성 있어 보이진 않네요. 외신들도 “중동 민심을 달래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들을 하고 있습니다.
오바마는 또한 중동 민주주의를 미국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원할지 밝혔습니다. 금융안정, 개혁 촉진, 시장경제와의 접목을 바탕으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과거 아랍사회주의 식의 경제체제 때문에 낙후된 이 지역을 자본주의 세계시장에 적극 편입시키겠다는 뜻이죠.
튀니지와 이집트에는 대규모 경제지원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중동판 마셜플랜이라는 얘기가 나오는건데요. 이집트에는 10억달러 규모 부채를 없애주기로 했습니다. 동시에 인프라를 만들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10억달러 규모의 지급보증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이집트와 튀니지 등 중동·북아프리카 민간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20억달러 투자하기로 했고요. 중동 북아프리카 무역투자파트너십계획(TIPI)이란 것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돈인데요. 일각에선 “그 재원은 어디서 마련하느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다음번 G8 정상회담에서 오바마가 이 문제를 의제로 다룬다고 하니, 부국들이 돈을 좀 내놔야 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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