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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새로운 디아스포라 ... 시리아 난민 문제

딸기21 2013. 10. 17.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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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부터 1차 세계대전 무렵,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이라는 '알 나크바(대재앙)'을 맞으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대거 쫓겨나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지요.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2천년전 디아스포라는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현존하는 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라 부릅니다. 그리고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축출된 파흘라비 왕조의 지지자이거나 혹은 이슬람혁명을 지지하지 않았거나 하는 이유로 이란을 떠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페르시안 디아스포라, 혹은 이란 디아스포라라 하지요. 1980년대 레바논 내전은 인도양과 태평양과 대서양을 넘나드는 레바논인들의 디아스포라를 낳았습니다. 


이제 중동에 또 하나의 디아스포라가 벌어지고 있군요. 시리아 디아스포라. 아직 이렇게 '명명'돼 있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양상은 시리안 디아스포라라 불러도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시리아를 탈출한 난민이 250만명이 넘는다는데, 이것이 9월 유엔난민기구(UNHCR)가 파악한 것이고 이 숫자는 지금도 계속 늘고 있으니까요. 시리아 내부에서 자기 집을 버리고 떠나 헤매는 사람들, 국제기구에서 내부유민(IDP)이라 불리는 사람들도 100만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국경 넘어 '엑소더스'


Photo: Claire Williot/IRIN The Palestinian refugee camp Sabra in Lebanon is overcrowded

시리아 난민들이 자기네 나라를 탈출하기 시작한 것은 2011년부터이고 지난해 본격화됐지만 특히 올들어 반군과 정부군 간 교전이 거세지면서 '엑소더스'가 벌어졌습니다. 통계 수치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습니다마는, 일단 지난 7~9월 사이 유엔난민기구 등이 밝힌 시리아 난민 현황을 좀 보지요. 


가장 많은 이들이 머물고 있는 곳은 시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레바논과 요르단입니다. 레바논에 약 80만명, 요르단에 50만명 정도가 있는데 두 지역에서 난민들의 생활은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레바논은 1980년대 시리아 이스라엘 레바논 팔레스타인이 모두 뒤섞인 내전을 치렀고, 이미 팔레스타인 난민(말이 좋아 난민이지 사실상 제 땅으로 돌아갈 길이 이스라엘에 완전히 막혀 영구히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레바논은 난민 캠프를 공식 설치하는 대신 이곳저곳에 시리아 사람들이 국경넘어 들어와 머무는 것을 허용하는 방식인 듯합니다. 문제는 이 경우 유엔이나 유엔과 연결된 국제구호기관이 설치한 공식 캠프가 아니라서... '집세'가 턱없이 비싸다는 점. 난민들이 시리아에서 한밑천씩 들고나왔을 가능성은 적고.... 


또한 레바논 정치권은 복잡한 민족, 종교적 구성에 따라 갈리어 있는데 난민 문제는 물론이고 시리아 사태 자체를 바라보는 이들 정파 간 시각이 제각각입니다. 특히 레바논 남부와 동부, 시리아 이스라엘과 접경한 곳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헤즈볼라는 친시리아계입니다. 헤즈볼라는 아예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살리기 위해 내전에 뛰어들었습니다. 지금 정파간 분열 때문에 정부 구성조차 제대로 안 되고 있는 형편... 이 곳에 간 난민들이 안정적인 구호를 받으리라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요르단은 인구의 60%를 팔레스타인계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불안정한 구조'를 요르단 왕실과 정치권은 오랜 세월 불편하게 여겨왔습니다. 이제 시리아 난민들이 대거 국경을 넘어 밀려들어오는 상황. 지난해 2월 요르단은 시리아 국경과 인접한 북부 지역에 난민촌을 공식 개설했습니다. 이미 지난해에 난민 숫자는 10만명 단위를 넘어섰고, 지금은 50만명이 요르단 내에 거주합니다. 요르단 북부의 자타리 난민촌은 이제 요르단에서 인구 규모로 몇째 가는 도시 아닌 도시가 됐다고. 이제 요르단은 난민 때문에 경제가 휘청일 지경이라고 합니다. 요르단 계획부는 난민촌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이 연간 8억511만달러, 국내총생산(GDP)의 2%에 육박한다며 세계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요르단의 자타리 Jaatari 시리아 난민촌



요르단의 시리아 난민들 관련해서 하나 더 짚어야 할 점은, 똑같이 시리아를 탈출해왔건만 팔레스타인계에 대한 차별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요르단에서 자리잡고 있는 팔레스타인계와 합쳐 분란의 소지가 될까 우려하는 것이겠지요. 시리아에 있던 팔레스타인계가 지난해 4월부터 탈출해서 요르단에 들어왔는데 요르단 정부는 이들을 다른 시리아 난민들과 다르게 격리수용하고 있습니다. 민족/출신 등 정체성에 따른 격리는 국제적으로 절대 허용돼서는 안 될 일입니다만...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가 이 문제에 대해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Jordan: Bias at the Syrian Border


가자지구 등 팔레스타인 지역 내 난민촌을 관리하고 있는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는 시리아에서 난민으로 살다 '이중의 난민'이 되어 요르단이나 레바논으로 다시 옮겨온 팔레스타인계의 열악한 현실을 크게 걱정하고 있습니다.


Palestinian refugees in Syria becoming ‘an imperilled community’ — UNRWA /요르단타임스

Analysis: Palestinian refugees from Syria feel abandoned /irinnews.org


시리아 북쪽에 있는 터키로도 난민들이 많이 넘어갔습니다. 40만명 이상이 터키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무래도 시리아 주변 나라들 중에서 터키가 가장 잘 사는 곳이다보니, 여기 넘어간 난민들의 사정이 제일 낫다고는 합니다. 요르단 자타리의 난민촌이 황무지의 천막집이어서 모래바람에 종종 넘어가버리곤 하는 반면, 터키의 난민촌은 좀더 안정적이라고는 하는데요. 문제는, 터키는 난민 유입을 몹시 억제하고 있다는 것. 공식적으로 터키 정부는 시리아의 여권을 지닌 사람이 자국으로 언제라도 들어올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시리아에서, 정부가 발행하는 여권을 손에 쥐고 국경을 넘는 '난민'은 극소수라는 점이죠... 

터키 정부는 시리아 내전 첫해인 2011년 여름에 하타이(Hatay) 주 일대에 난민촌을 지었는데, 당초 정부는 국제사회의 지원을 거부했습니다. 외부 돈까지 받게 되면 빼도박도 못하게 난민 천지가 될 것이라 여겼던 게지요. 하지만 이제는 역부족이다보니 손을 벌리지 않을 수 없고(또 당연히 국제사회가 지원해줘야 하는 것이고요) 벌써 7억달러 이상 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미 군사행동 가능성은 없어지긴 했지만, 만일의 경우 서방이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압박하기 위해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게 되면 역시 서방국들이 터키에 상당한 금액을 집어줘야 할 겁니다. 


Thousands of Syrian refugees pour over the border to Iraq Galiya Gubaeva/UNHCR



시리아 난민들의 기착지 중 하나는 이라크입니다. 이라크도 시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만, 이 일대는 쿠르디스탄 즉 쿠르드족 지역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라크 쿠르드족은 북부에 쿠르드자치지역을 만들어 자치정부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사실 쿠르드족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민족, 세계 최대의 소수민족이라 불릴 정도로 비운의 역사를 안고 있습니다만... 시리아 사태가 터지고 난 뒤 시리아에서 구박받던 쿠르드족은 다른 난민들과는 조금 다른 처지가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상당수가 이라크 쿠르드자치지역으로 들어가 동족들의 보호를 받고 있거든요. 


President of Iraqi Kurdistan ready to defend Kurds in Syria /RT

Syrian Kurds Find More Than a Refuge in Northern Iraq /뉴욕타임스


시리아는 아랍국이긴 하지만 걸프 아랍국과는 지리적으로도 좀 떨어져 있고(역사적으로 시리아가 위치한 지중해 지역은 오늘날 서양인들이 보기에 레바논의 어원이된 레반트 즉 '해뜨는 땅' 혹은 근동 Near East 이라 불렸던 지역이죠) 걸프 아랍국들은 난민을 잘 받아주지도 않습니다. 카타를 '에미르(군주)의 손님'이라는 수사와 함께 42명 정도의 난민을 받아줬다 하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시리아 난민들 보살피라고 레바논에 1000만달러를 줬다는군요 -_-

시리아와 적대해왔지만 그렇다고 멀리하기엔 너무 가까이 국경 접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공식적으로 시리아 난민들을 받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구호기구들이 요르단의 난민촌에서 시리아인들을 돕고 있고, 심하게 다친 시리아 난민들이 이스라엘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도 합니다. 동유럽에 해당되는 아르메니아로도 시리아인 3200여명이 옮겨갔습니다. 주로 시리아의 소수민족이던 아르메니아계 난민입니다.


기약없는 귀환 대신 바다 건너로


아예 바다 건너 머나먼 나라로 돌아오지 않을 길을 떠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시리아가 언제 다시 살만한 나라로 돌아갈 지 알 수 없으니까요. 유럽과 남미까지 이동해가는 사람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시리아 내 소수파인 정교도들이 있는데요. 동방기독교라고도 하지요. 동서 교회의 분열 뒤 동로마제국(비잔틴)은 오늘날 '정교'(Orthodox)라 불리는 동방기독교로 남았고, 나머지 서유럽은 로마가톨릭이 됐고... 정교 진영은 나라에 따라 러시아정교, 시리아정교, 아르메니아정교, 에티오피아정교, 이집트콥트기독교(종류는 좀 다르지만) 등으로 제각각 분화됐습니다. 시리아와 레바논에 이런 정교 신자들이 좀 있는데, 시리아 정교도들 일부는 내전 뒤 교회의 도움을 받아 미국에 가 정착했다고 합니다. 


미국은 시리아 난민 구호에 8억달러 이상의 돈을 댔고, 지금까지 2000명 정도 되는 난민을 수용해 정착할 권리를 내줬습니다. 캐나다는 향후 2년간 시리아인 1300명을 정착시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시리아와 정말 멀리 떨어져 있는 남미의 콜롬비아도 난민을 받아들이겠다고 했습니다만, 워낙 멀어서 그런지... 실제로 간 사람들이 있는지는 모르겠군요.


유럽에서도 일부 난민을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유럽이 요즘 난민들 아주 박대하는데, 시리아 상황이 이슈가 되고 나니 인도적 차원에서 나몰라라 할 수는 없었던 거지요. 세계에서 난민들에게 가장 관대한 나라 스웨덴은 지난해 이미 8000명 이상의 난민을 받았고, 보호처를 찾는 시리아인들을 수용하겠다고 지난달 공식 발표했습니다. 


Sweden opens doors to Syrian refugees /도이체벨레



독일도 지난해부터 난민 8000명을 받아들였습니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이 아닌 스위스 역시 유엔의 요청이 있으면 시리아 난민을 수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사실 독일의 경우, 유럽국들 중 중동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편이고 또 시리아 등 아랍계 거주민들이 이미 많이 있습니다. 제가 엄청 좋아라 하는 시리아 출신 소설가 라픽 샤미도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지요. 17일 프랑스24 방송에 따르면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유엔의 요청에 따라 500명의 시리아 난민을 프랑스에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합니다.


러시아는 레바논과 요르단에 난민 구호비용 1000만달러를 지원했고, 난민신청자 500명 정도를 받아들였습니다. 키프로스도 난민들 받겠다고 했습니다만 자기네 경제 위기부터 해결하는 편이...


요즘 가장 안타까운 것은 열악한 난민선을 타고 지중해를 건너다 배가 침몰하면서 고기밥이 되곤 하는 난민들입니다. 이런 배에 탄 사람들 중 대부분은 북아프리카 튀니지나 리비아, 혹은 동아프리카 소말리아나 에리트레아에서 가난과 전란을 피해 유럽으로 넘어가고자 하는 '이주 희망자들'입니다. 국제규약 상의 난민(asylum seeker)와는 좀 차이가 있지요. 통칭 refugee 라고는 하지만 유럽국들은 이들을 불법 이주자 immigrant 라 보고 거부합니다. 


그런데 시리아 사태가 터지고 난 뒤, 북아프리카까지 와서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시리아인 난민들이 크게 늘었습니다. 시리아인들이 리비아까지 갔다가 난민 수용시설이 모자라 동물원에 갇히고, 유럽으로 가려다가 무장조직의 총격을 받는 일도 있었습니다. 


국제사회가 그놈의 '화학무기'에 목 매달고 있는 사이, 250만명이 이렇게 고통을 받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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