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850

차태서, <30년의 위기>

30년의 위기 차태서.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3/12 성균관대 차태서 교수님의 신간. 미국 정치사를 이런 시각으로 보고 이렇게 과감하게(!) 써주시는 한국 학자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넘 반갑고 기쁘다. 2020년대 초반은 세계사에서 하나의 거대한 순환(cycle)이 종료되었음을 조망하게 되는 시간이다. 2021년 여름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와 탈레반 재집권, 2022년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은 단극체제의 균열과 자유세계질서 프로젝트의 종식을 재삼 확인시켜주었다. 특히 두 에피소드 모두 탈냉전기 미국에 의해 추진된 단선론적 역사철학에 근거한 거대 사회공학 구상이 모순에 부딪혀 나타난 후과라는 점에서, 각 사건은 오늘 날 세계체제 요동의 징후로서 읽혀진다. 회고건대, 팍스아메리카나의 거대한 ..

딸기네 책방 2024.03.16

에릭 홉스봄 ‘극단의 시대’

극단의 시대 상/하 에릭 홉스봄. 이용우 옮김. 까치 이전의 장기 19세기 3부작보다 나는 이 책이 더 재미있었다. 이미 자신 있게 평가할 수 있는 것은 황금시대가 낳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변동의 엄청난 규모와 충격이다. 그 영향으로 인한 전세계의 인간생활의 변화는 뒤집을 수 없을 만큼 깊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변화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금세기의 3/4분기는, 인류의 압도적 다수가 먹을 것을 재배하고 가축을 돌보며 살아간 긴 시대를 끝냈다는 이유만으로도, 석기시대의 농업 발명으로 시작된 인류사의 7,000-8,000년을 끝냈다고 말하는 쪽이 더욱 설득력 있다. 이에 비해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의 역사는, 아마도 역사적 중요성이 덜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23 러시아가 어디에 있..

딸기네 책방 2024.03.16

케네스 월츠 ‘인간 국가 전쟁’

인간 국가 전쟁 케네스 월츠, 정성훈 옮김, 아카넷. 3/9 월츠의 국제정치이론을 작년에 다시 읽었지만 처음 읽었을 때는 마찬가지로 어려웠다. 하지만 월츠의 은 훨씬 재미있다는 박상준 교수님의 말씀에 넘어가 이 책을 사서 읽음. 실제로 훨씬 재미있었다. 이른바 '민주평화론‘이라고 잘못 이름 붙여진 주장 의 근거를 살펴보고, 그 타당성을 검증해볼 것이다. 나는 개입주의적 자유주의자들과 개입주의에 반대하는 자유주의자들을 명확히 구분한 뒤, 오늘날 미국의 대외정책 입안자들이 빈번히 무시하고 있는, 개입주의적 자유주의자들의 성향 속에 숨겨진 위험에 대해 경고하였다. 평화는 전쟁을 위한 가장 숭고한 대의로 탈바꿈될 수 있으며, 만약 민주주의를 평화지향적 국가 형태 중의 하나라고 본다면 여타의 국가들을 민주정으로 ..

딸기네 책방 2024.03.09

에릭 홉스봄 ‘역사론’

역사론 에릭 홉스봄. 강성호 옮김. 민음사. 2/24 홉스봄 책을 읽는 김에 ‘역사론’도 꺼내 들었다. 읽다만 흔적이. 책을 오래 오래 읽기는 해도 다 끝까지 읽는데, 이 책은 대체 언제적에 읽다 만 것인지. 나는 역사가가 실재를 탐구한다는 견해를 강하게 옹호한다. 역사가는 확정된 사실과 꾸민 이야기 사이를, 증거를 필요로 하고 증거에 근거한 역사적 진술과 그렇지 않은 진술 사이를 근본적으로, 아주 중점적으로 구분하면서 시작해야 한다. 비록 시작했을 때와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상대주의는 법정에서 쓸모가 없는 것처럼 역사에서도 쓸모가 없다. 만약 독자들이 피고석에 앉게 된다면 실증적인 증거에 호소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포스트모던적 변호 방침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죄인을 변호하려는 변..

딸기네 책방 2024.02.24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 브래드 스톤 지음. 야나 마키에이라 옮김. 21세기북스. 2/3 상반기 안에 추수밭에 넘길 책을 써야 해서 사읽었다. 2012년까지의 상황만 나오기 때문에 아쉽긴 하지만 그럭저럭 재미있었다. 사실상 베조스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베조스의 캐릭터와 결합된 아마존이라는 기업의 우여곡절 성장기를 그리고 있다. 역시나 베조스의 성격 및 가치관과 이어진 ‘검소함’ 문화와 착취적 성격을 계속 놓치지 않았고, 특히 뒷부분은 시장 지배자가 된 아마존이 새로운 아이디어로 출발한 싹수 있는 스타트업들을 어떻게 위협하고 목 졸라 인수해버렸는지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아마존의 사내 관습은 매우 특이하다. 회의에서 파워포인트나 슬라이드 프레젠테이션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

딸기네 책방 2024.02.04

조르조 아감벤, <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

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 조르조 아감벤. 정문영 옮김. 새물결. 12/31 2023년 여름, 오애리 선배와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를 보고 왔다. 심리적 충격이 너무 커서 스치듯 털어놓기가 쉽지 않다. 보스니아의 스레브레니차를 다녀오고 나서 며칠 뒤 아우슈비츠에서 또 엄청난 충격을 받고 나니 숨이 막혀왔다. 둘이서 “앞으로 10년 동안 제노사이드는 생각지 말자”고 했는데, 아무래도 마음의 정리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이 책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이 책이 그 해의 마지막 책으로 기록됐다. 오래도록 잡고 있었으니까. 적을 것들도 많고 되새겨 사유해야 할 것들도 많은데 사실 잘 되지 않는다. 이해하지 못한 것들 투성이이고, 어떤 것은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나뿐 아니라 어쩌면 모든 인류가 이해하지 못할..

딸기네 책방 2024.01.17

2023년 읽은 책

1. 불의 기억 1, 2, 3.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박병규 옮김. 따님. 1/13 2. 대서양의 두 제국. 존 H 엘리엇. 김원중 옮김. 그린비. 1/19 3. 수탈된 대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박광순 옮김. 범우사. 2/9 4. 칼리반. 로베르토 페르난데스 레타마르. 김현균 옮김 그린비. 2/13 5. Factfulness. Hans Rosling. FLATIRON BOOKS. 2/18 6. 문화적 냉전, CIA와 지식인들. 프랜시스 스토너 손더스. 유광태, 임채원 옮김. 그린비. 3/20 7. 아랍의 봄. 구기연 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3/27 8. 유럽중심주의. 사미르 아민. 김용규 옮김. 세종출판사. 5/5 9. 신의 은총을 넘어서. 마이클 그린. 장휘, 권나혜 옮김. 아산정책연구원. 5/..

스티븐 핑커 <지금 다시 계몽>

지금 다시 계몽 스티븐 핑커. 김한영 옮김. 사이언스북스. 12/29 핑커의 책은 대체로 다 보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 책도 구입. 그런데 언어학자, 인지과학자로서의 핑커를 보여주는 은 재미있었는데 부터는 너무 ‘모든 것 평론가’로 간 느낌. 그렇다 해서 딱히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얘기하는 것들 대부분에 동의한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안 읽어도 될 것 같다.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장밋빛 안경을 끼고 본다는 사실을 오래 전에 발견했다. 자신은 이혼, 해고, 사고, 병, 혹은 범죄의 희생양이 될 확률이 일반 사람보다 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론 연구자들은 이것을 낙관주의 간극(Optimism Gap)이라고 부른다. 20여 년 동안 좋을 때도 있고..

딸기네 책방 2023.12.31

구정은, 오애리 <전쟁과 학살을 넘어>

2023년 여름, 저자들은 동유럽을 함께 여행했다. 숱하게 기사를 쓰면서 지명으로만 남았던 보스니아가 첫 방문지였다. 1990년대 옛 유고연방의 내전 시간 수많은 이들이 죽어나갔고 묻혔던 곳이다. 아름다운 사라예보의 노을 지는 언덕에 줄지어선 흰 묘비들은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안겼다. 세르비아와의 국경선 근처에 있는 스레브레니차를 찾아갔다. 세르비아계 혹은 정교도들은 그곳에서 사흘 만에 8000명이 넘는 보스니아계 혹은 무슬림을 학살했다.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어째서 이런 학살이 벌어졌을까. 민족이란 무엇이며 종교란 무엇이길래 이런 잔혹사가 펼쳐지는 것일까. 유고 연방의 70년 역사는 이들에게 어떤 것을 남겼을까. 의문이 꼬리를 물었고,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 보스니아의 상점들에서는 옛 유고의 지도자이..

장 자크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인간 불평등 기원론 장자크 루소. 주경복, 고봉만 옮김. 책세상. 11/14 김용민 교수님 수업을 듣는데 생각보다 엄청 재미있다. 특히 루소!!! 우리가 이 법[자연법]에 대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법이 되기 위해서는 법의 강제를 받는 사람의 의지가 그 법을 의식하고 그것에 복종할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그것이 자연적이기 위해서는 그 법이 자연의 소리에서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인간 영혼의 최초이자 가장 단순한 작용들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거기에 이성보다 앞선 두 개의 원리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우리의 안락과 자기 보존에 대해 스스로 큰 관심을 갖는다는 원리이며, 다른 하나는 모든 감성적 존재, 주로 우리 동포가 죽거나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면 자연스럽게 혐오감을 느..

딸기네 책방 2023.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