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블로그는 딸기네 마을의 일부분입니다.
이 블로그는 누구든 보실 수 있지만, 딸기네 마을에 들어와서 서평이나 여행기를 보시려면
게시판 윗부분 join 버튼을 누르고 가입을 하셔야 합니다.

침팬지섬.

from 잠보! 아프리카 2010/07/28 21:40
코트디부아르 바닷가, 아비장에서 그랑라우 Grand Lahou 로 가는 길에 침팬지 섬이 있어요.
섬 이름이 뭐냐니깐, 그냥 침팬지 섬이라고 하네요 ;;

호수 한가운데에 작은 섬이 있어서, 거기가 침팬지 보호구역이랍니다.
건너편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구경만 했어요 ^^;;



왼편에 보이는 것이 침팬지 섬.




왼쪽에 지킴이 보이시죠?







침팬지는 보호 대상 영장류죠. 인류가 '멸종위기'로 몰아간 사촌... 
하도 멀리서 봐가지고 얼굴은 안 보였어요 ㅠ.ㅠ



저 둘이 무슨 사이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함께 가셨던 분이... 한국말은 못하시고, 영어는 좀 하시고, 불어만 잘하시고, 침팬지에 대해선 잘 모르시고....
저는 한국말은 딥따 잘하고, 영어는 초큼밖에 못 하고, 불어는 전혀 모르고, 침팬지에 대해선 관심만 많고....






잘 안 보여서 호수 구경만 했어요.








어쨌든 이로써 저는 3대 멸종위기 영장류 중 오랑우탄과 침팬지를 야생으로 본 셈이 됐습니다.
솔직히 침팬지는 너무 떨어져 있어서 봤다고 하기도 힘들지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잠보! 아프리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침팬지섬.  (0) 2010/07/28
부아케의 수녀원에서.  (4) 2010/07/23
바르는 에이즈 예방약  (2) 2010/07/20
'제2의 알카에다'?  (0) 2010/07/15
아프리카의 대학 구경  (4) 2010/07/07
코나크로 아이들  (6) 2010/07/02
이슬람은 종교이자 법, 사회를 움직이는 체계입니다. 무하마드는 사막의 예언자였던 동시에 움마(공동체)를 조직해 거대한 세력을 형성한 정치가였지요. 이슬람에서는 정치와 종교가 출발부터 밀접히 결합돼 있었는데요(그렇다고 오늘날 극단주의자들처럼 정치와 종교의 통합에 찬성하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이슬람은 '사제' 즉 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가 없지만(모든 사람은 직접 신에게 기도하고 대화합니다) 남들이 보기에 성직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있습니다. 셰이크, 이맘, 아야툴라(이란 시아파), 호자(터키-중앙아시아식), 물라(아프가니스탄-'선생'이라는 뜻) 같은 것들이 대략 그런 거지요. 동네의 유식한 어른이 글 모르는 이들에게 꾸란을 읽어주고 암송해주는 경우 그 사람들을 저렇게들 부르기도 하고요. 마드라사(이슬람 학교)에서 종교 가르치는 이들을 가리키기도 하고... 

통칭해서 걍 성직자라고 하더라도, 예배를 주관하는 다른 종교의 성직자들과는 좀 역할이 다릅니다. 이란의 경우를 예로 들면, 아야툴라(더 높은 사람은 그랜드 아야툴라)들은 곧 법관입니다. 이란 보수파와 개혁파가 싸운다, 이런 뉴스를 보면 사법부와 입법부가 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법부는 성직자이자 곧 법관이고 입법부는 국민들이 선거로 뽑은 의원들인 거죠(물론 정치인들 중에도 이슬람 성직자를 겸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요).
그런 아야툴라들, 이란 말고 다른 나라의 수니파들 중에선 무프티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곧 법관입니다. 이슬람법인 샤리아에 따라 다스려지는 이란 같은 나라는 물론이고 이집트같은 세속주의(정-교 분리) 나라에도 이슬람 법정이 있고 법관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무프티나 아야툴라들이 내리는 '파트와'는 말하자면 판례, 혹은 훈령에 해당됩니다. 이러저러한 사건에서 이슬람법에 따라 이러저러하게 판결한다- 예를 들면, 아야툴라 호메이니가 이슬람을 모독했다며 살만 루시디 목을 쳐라, 하고 내린 것이 파트와였습니다.

파트와 중에서도 그랜드 무프티나 그랜드 아야툴라가 내린 파트와가 더 쎕니다. 특히 이슬람 수니파들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수니 신학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는 곳이 카이로의 알 아즈하르입니다. 이슬람권이 자랑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알 아즈하르 대학이고요. 알 아즈하르 모스크(성원)가 나란히 있습니다.

이름만 듣던 알 아즈하르를 물어물어 찾아갔습니다(라고 하기엔... 걍 카이로 시내 복판에 있어요;;
혹시나혹시나 그곳에 관심 가진 분이 있으시다면... 카이로에서 관광객들 많이 가는 칼 칼릴리 시장 건너편)
대학에는 들어갈 수가 없고, 모스크에만 찾아갔습니다. 




아즈하르 모스크 앞 시장골목입니다.







시장골목에서 빵 파는 할아버지. 뒷모습 근사하죠?




여기가 아즈하르 성원. 바닥은 역시 반질반질 하얀 돌. 




미나레트.




실내에선 사람들이 앉거나 누워서 기도를 하거나 놀고;; 있습니다.

모스크도 현대화하기 때문에... 미흐라브(메카 방향을 표시해주는 일종의 벽감) 앞에 전광판이 달려서 기도시간을 알려주더군요 ㅎㅎ



이제부터는 이슬람과 전혀 상관 없는, 자투리 사진들... 




기자의 대피라미드 앞 사막입니다.
피라미드 사진은 생략. -_-




스핑크스 올라가는 길.
역시, 스핑크스 사진은 생략. ㅋㅋ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1976년 7월, 중국 허베이(河北)성 탕산(唐山) 주변의 한 우물에서는 하루에 세번씩 우물의 물이 갑자기 솟구쳤다 가라앉았다. 또 다른 우물에서는 그 달 들어서 가스가 세 차례 새어나와 주민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지진의 전조였다. 탕산은 물론이고 베이징, 톈진, 보하이, 장자커우 등지에서 이상 징후가 속속 탐지되고 있었다. 
국가지진국에서 일하던 왕청민(汪成民)은 탕산 주변 지각작용을 분석해 “7월22일부터 8월5일 사이에 큰 지진이 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마자거우쾅(馬家溝曠) 지진대의 지진전문가 마시룽(馬希融)과 겅칭궈(耿慶國), 탕산시 지진사무실의 양유천(楊友宸) 등도 상부에 지진 가능성을 보고했다. 


대지진이 일어나기 보름도 더 전에, 이미 이렇게 ‘경보’는 나와 있었다. 하지만 문화대혁명에 정신이 팔려 있던 공산당 상층부는 지진 경보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급 관리들의 경고는 묵살됐다. 뿐만 아니라 양유천은 갑자기 ‘노동개조’ 대상이 돼 지진 직전 사무실을 떠야 했다. 
왕청민은 60명을 직접 만나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 이르고 대책을 당부했다. 왕청민에게 귀기울인 사람 중 하나는 칭룽(靑龍) 만족 자치현의 관리 왕충칭(王春靑)이었다. 7월 25일과 26일, 칭룽 자치현 현장 란광치(?廣岐)는 왕충칭의 말을 듣고 비상회의를 열었다. 47만명의 주민들에게 지진시 대피법을 알리고 건물 안전을 점검했다. 란 현장의 결정은 정치생명을 건 도박이었다. ‘주민들을 들쑤신다’는 이유로 인민재판을 받거나 감옥에 갈 수도 있었다.





7월28일 새벽 3시 42분, 천지가 흔들렸다. 20세기 지진 중 최악의 피해를 낸 것으로 추정되는 탕산 대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규모 7.8, 15초에 걸친 지진으로 “온 땅이 평평해졌다.” 
100만명이 살고 있던 탕산 시는 초토화돼 남아 있는 건물이 없었다. 강력한 여진들이 16시간 동안 이어졌다. 중국 정부는 당초 24만~25만5000명이 죽었다고 발표했다. 나중에 허베이성 혁명위원회는 “65만5000명이 숨지고 77만9000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현명하고 용감한 관리들을 두었던 칭룽현에서는 기적이 일어났다. 한 명의 사망자도 없었던 것이다. 란광치는 포상을 받는 대신 오히려 함구령을 들어야 했다. 

1976년은 중국에는 ‘저주받은 해’였다. 인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저우언라이(周恩來)가 그 해 1월 숨을 거뒀고, 6월에는 공산당 지도자 주더(朱德)가 사망했다. 탕산 대지진으로 수십만명이 죽어갈 때, 다른 곳에서는 문화대혁명이라는 정치적 재앙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진 한달 여 뒤인 9월 9일에는 마오쩌둥(毛澤東)이 숨졌다. 정치적으로도 지진이 벌어지던 시기였다. 덩샤오핑과의 권력다툼에 혈안이 돼있던 마오쩌둥의 부인 장칭(江靑)은 “수십만명이 죽었을 뿐이다. 그래서? 덩을 탄핵하는 것은 8억 인민과 관련된 문제다”라 주장했다. 장칭과 4인방에게 탕산 대지진을 들먹이는 덩샤오핑은 ‘혁명을 방해하려 지진 공포를 부추기는 존재’였다. 중국 정부는 유엔의 지진 구호 제의도 거부했다.




묵살된 지진 경보와 칭룽현의 기적은 사람들의 눈앞에서 자취를 감췄다. 마오의 후계자로 내정된 화궈펑(華國鋒)이 탕산을 한 차례 찾아갔지만 ‘개인적인 방문’일 뿐이었다.

시대가 바뀌어 덩샤오핑이 권력을 잡았으나 탕산의 진실은 그후로도 오래도록 묻혀있어야 했다. 95년 유엔은 “당국의 현명한 대응과 준비로 재앙의 피해를 줄일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며 칭룽의 기적을 조명했다. 10년 뒤인 2005년에는 경보 과정에 관여했던 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장칭저우(張慶洲)의 조사 보고서 <탕산경세록>이 출간돼 당시의 비화를 폭로했다. 




지난 12일 탕산에서는 이란성 쌍둥이 남매가 지진으로 운명이 바뀌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탕산 대지진>이 개봉됐다. 개봉식에 온 주민 1만명은 빗속에서도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희생자 유족들과 생존자들, 제작진이 함께 눈물을 흘렸다고 중국 언론들이 전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어제의 오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숱한 비화를 낳은 탕산대지진  (0) 2010/07/27
아스완 하이댐  (0) 2010/07/20
이라크의 7.14 혁명  (0) 2010/07/13
미-소 이어준 소녀  (0) 2010/07/06
나치제국의 내분, '긴칼의밤'  (0) 2010/06/30
아르헨 축구의 악몽, '푸에르타 도세 참사'  (0) 2010/06/23
카이로의 시타델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미나레트와 돔을 아주 제대로 갖춘 모스크가 있어요.
모하마드 알리 모스크입니다. 




시타델 입구의 안내지도인데요.
위쪽을 자세히 보시면 살라흐 알 딘(앗딘) 시타델이라고 써있어요.
살라딘 시절의 유적이라는 얘기입니다만.... 실제로 남아있는 것은 대부분 그 후의 유적들입니다.

보여드릴 모스크는 19세기 중반(1830~1848) 이집트를 다스렸던 모하마드 알리 파샤(파샤는 터키식 직책) 때 지어진 것이고요.




딱 보면 오스만투르크식입니다. 이스탄불의 블루모스크 쯤 되어보이는 위용입니다만... 물론 크기는 훨씬 작습니다.




옆길에서 본 모습인데, 근사하죠?





입구로 들어가보면 이런 모습입니다. 



흑, 미나레트가 넘 높아서 윗부분이 잘렸네요 




안마당이 50미터x50미터라고 하는데, 알라바스터(설화석고)로 덮여 있어요. 
엄청 뜨겁습니다. 역시 맨발로 다녀야 하는 곳이고요. 뜨겁긴 하지만 너무 아름다워요.




회랑의 창살.





모스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제법 시원해요.
시타델 돌아다니면서 더위에 허덕이다가, 잠시 들어와 앉아서 숨 좀 돌리고, 땀도 식히고.








안에서 올려다본 돔.




역시 오스만 스타일입니다.




모스크 안에서 연애질을 하고 있는 것으로 사료되는 커플...




나를 구경하러 온 소년.... ^^;;




귀여운 꼬마는 에즈마. 엄마 아빠는 터키계 무슬림인데 독일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살다가 여행왔다고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한국인과 터키인은 '형제'... ㅎㅎㅎ





모스크 밖으로 나가 내려다본 카이로 시내.








이 사람이 모스크를 지은 무하마드 알리 파샤랍니다. 사진은 위키에서 퍼옴.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지난번 이집트 여행 때 카이로의 시타델에 갔습니다. 시타델은 옛날의 요새, 성채를 가리키는 말인데... 카이로의 시타델은 예전에도 가본 적이 있었고, 요르단 암만의 시타델도 구경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암만의 시타델은 규모가 많이 작아요. 카이로의 시타델은 워낙 크기도 크고 (아주 오래된 것이 아니다보니) 보존 상태도 좋아서 제법 근사한 구경거리입니다. 
뭐, 대단히 유서깊고 유명한 '세계적인 급'의 모스크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모스크는 다 아름다우니까요.

카이로 시타델 입구에서 오른편으로, 가장 먼저 만나는 모하메드 엘 나세르 모스크입니다.




모스크 올라가는 길.





담벼락의 문. 어디서나 이쁜 문은 왜 이렇게 많은지.




가는 길에 올려다본 모스크.




자, 이제 들어갑니다.






정확히 말하면... 보통의 '모스크'하고는 좀 다르지요. '실내'가 없이, 회랑과 돔만 있으니까요.
그래도 안에 메카의 방향을 알려주는 미흐라브(이슬람은 우상숭배를 거부해 icon 들이나 그림이 없기 때문에 미흐라브 방향을 향해 예배를 드려요)가 있고, 민바르(설교단)도 있으니 모스크는 모스크...






왼쪽 살짝 파고들어간 것이 미흐라브, 오른쪽 문과 계단으로 이뤄진 설교단이 민바르.
디자인이 엄청 이뻐요.








모스크는 이슬람권 지역분포상 대개(남아시아, 동남아시아를 빼면) 덥고 건조한 곳에 있지요.
그래서 뜨거운 햇살과의 대비를 항상 보게 됩니다.
사막과 햇빛이 모스크의 선과 형태를 만들어준다고 할까요.







저런 선을 보면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비교적 소박한 모스크입니다만...






입구를 지나 미흐라브 쪽으로 양탄자가 깔려 있습니다.
맨발로 걸어가려면 어찌나 뜨거운지.




새까맣고 지저분한 내 발. ㅎㅎㅎ




다소 엽기적으로 보이던 나무...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코트디부아르 내륙 부아케에 있는 동안에는, 전에 얘기했듯이 수녀원에서 사흘간 머물렀어요.

한국에서 그리로 가신 박프란체스카 수녀님이 계신 곳. 박수녀님과 콩고민주공화국(DRC) 수녀님 두 분, 그리고 수녀회 총장을 지내시고 다시 DRC로 가시는 막트 수녀님, 수녀회의 아프리카 책임자로 DRC에 계시다 잠시 부아케 방문 중이던 한국인 권가브리엘 수녀님이랑 함께 보낸 시간이었습니다.

경치가 좋고 신기해서가 아니라, 거기 있었던 시간이 제게 참 좋았기에 추억의 앨범 삼아 사진들 올려 놓습니다.








수녀원 마당 한쪽에 있는 초가집(?)




여기가 제가 묵은 곳. 수녀님들이 사시는 집입니다. 수녀원이라고 하면 좀 거창하게 들리죠?




앞뜰 쪽으로 돌아가면 이런 모습이고요.
모기 장난 아닙니다. 밤마다 박수녀님이 한국 지하도 같은 데에서 파는 전기 모기잡이 채를 들고 사냥을 하세요.
드드득 드드득... 작렬하는 모기 소리.. 








집 옆에는 꽃이 피어있고요.




앞마당 건너편에 저런 건물이 있어요.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을 데려다가, 수녀님들이 빨랫줄같은 끈으로 가방 만드는 법을 가르치세요.
글도 가르치시고... 아이들이 가방을 만들어 내다 팔아 '자립'을 하도록 돕는거지요.
저도 가방 하나 선물로 받았답니다. 히히히.





얘는 수녀원의 식구인 미키.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야단을 쳐도 안 떨어지고 옆에 붙어있으려고 해요.





여기가, 제가 묵었던 방입니다.
에어컨은 없지만... 모기가 들끓지만.... 소박하고 깔끔하고, 한쪽에 샤워기랑 세면대, 
그리고 침대엔 공주 모기장도 있어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잠보! 아프리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침팬지섬.  (0) 2010/07/28
부아케의 수녀원에서.  (4) 2010/07/23
바르는 에이즈 예방약  (2) 2010/07/20
'제2의 알카에다'?  (0) 2010/07/15
아프리카의 대학 구경  (4) 2010/07/07
코나크로 아이들  (6) 2010/07/02
영국의 선사유적지 ‘스톤헨지’ 부근에서 또다른 미스터리의 유적(아래 그래픽)이 발견됐다.
BBC 등 영국 언론들은 22일 잉글랜드 샐리스베리 평야의 스톤헨지에서 서북쪽으로 900 떨어진 곳에, 스톤헨지와 비슷한 나무 구조물들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영국과 오스트리아 학자들로 구성된 고고학 연구팀은 땅을 파지 않고 레이저 촬영으로 땅 밑을 검색, 5000년 가량 된 통나무 구조물을 찾아냈다. 
아직 정확한 형태와 구조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지름이 75㎝에 이르는 나무 기둥 24개로 구성된 것으로 보인다. 버밍엄 대학 빈스 가프니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이 기둥들이 지름 25 정도의 원을 그리며 무덤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번에 발견된 지하구조물 위의 땅에는 나무 기둥이 꽂혀있던 것으로 보이는 작은 구멍들이 둥글게 늘어서 있다.





연구팀은 오스트리아 루드비히 볼츠만 탐사재단과 영국 문화유산트러스트기금의 지원을 받아 지난 19일부터 스톤헨지 주변 땅속 탐색을 시작했다. 올해 안에 스톤헨지 반경 4㎞ 지역을 탐색, 2D·3D 지도를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향후 3년 간 반경 14㎞ 지역을 훑는다는 계획이다. 가프니 교수는 BBC방송 인터뷰에서 “이 일대 ‘보이지 않는 스톤헨지’들을 찾아 디지털 차트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영국 고고학자들은 1999년 스톤헨지 3.2㎞ 지점에서 비슷한 형태의 목조 구조물을 발굴한 적 있다. ‘우든(목조)헨지’라 명명된 이 구조물들의 관계와 기능 등을 둘러싸고 학자들 사이에선 의견이 분분했다. 이번에 우든헨지가 다시 발견됨으로써, 샐리스베리 평야 일대는 당초 학자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밀도 높은 선사인들의 성소(聖所)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이번 발굴에 참여한 고고학자 아만다 채드먼은 “기둥의 배치로 보아 선사인들은 동지와 하지를 매우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는 이들도 있다. 잉글랜드 번머스대학의 팀 다빌 교수는 “새로 발견된 것은 헨지(둥글게 늘어선 유적)라기보다는 그냥 무덤으로만 보인다”고 말했다. 스톤헨지는 선사시대 유럽인들이 모여드는 거대한 무덤이었고, 그 주변에 비슷한 무덤들이 산재했을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미국 켄터키주에 사는 벤 세일러는 17세 고등학생이다. 세일러는 두달 전 켄터키에서 가장 오래된 야외극장인 ‘파이오니어 플레이하우스’가 호우에 무너지자 웹사이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에 극장을 되살리기 위한 주민 모임을 만들었다. 지금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전 덴마크 총리는 총리 재직시절 페이스북 사용자 100명과 만나 조깅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미국 여성 홀리 로즈는 페이스북을 통해 유방암 조기검진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페이스북 사용자가 전세계에서 5억명을 돌파했다. 온라인에서 사람과 사람들을 이어주는 이른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특성상 한번 가속도가 붙으면 사용자가 기하급수로 늘어나게 되지만, 5억명이라는 것은 경이적인 수치다. 한 하버드대 학생이 ‘학생들끼리 서로 알고 지내도록 하기 위해’ 만든 사이트는 6년만에 구글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이트의 하나로 떠올랐다.
설립자인 마크 저커버그 현 최고경영자(26. 아래 사진)는 페이스북 블로그를 통해 “21일 오전(미국시간) 사용자(active user) 수가 5억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그는 “이제 더 많은 이들이, 서로 연결될 기회를 더 많이 갖게 됐다”면서 “페이스북의 사명은 이 세상이 더 열리고, 더 연결되게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페이스북이 만들어진 것은 2004년. 당시 하버드대에 다니던 저커버그는 취미삼아 학생들끼리 안면을 터주는 사이트를 만들었다. 당시 그는 학생들 얼굴 사진을 얻으려고 대학 전산망을 해킹했다가 학교 측에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어쨌든 유행을 탄 페이스북은 하버드대와 아이비리그를 거쳐 미국 여러 대학들로 퍼져나갔다. 2006년 ‘13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도록 한 뒤에는 세계적인 사이트로 부상했다. 저커버그는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구글 창업자들)의 뒤를 잇는 젊은 벤처사업가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페이스북이 인기를 누리는 것은 한줄 블로그에서부터 인터넷 카페와 게시판 기능까지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히 놀라운 ‘친구 추천’ 능력이 성공요인이었다. 가입자가 출신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 등의 개인정보를 입력하면 친구 추천이라는 형식으로 경력이 겹치는 인물들을 찾아내 준다.
취미, 좋아하는 영화나 TV 드라마, 주거지역, 소속된 동호회, 이메일 주소록 등 개인이 가진 모든 요소들이 페이스북에서는 네트워크의 고리가 된다. 수십년간 못 만나본 고교 동창, 우연히도 같은 드라마의 팬으로 등록된 옆 동네 사람, 같은 온라인 게임에 관심이 있어 지구 반대편에서 아이템 선물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모두 페이스북에서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엮인다. 가입하지 않은 이들에게까지 자동으로 초대장을 날려주는 페이스북의 네트워킹 기능은 성가실 정도다.
지난해 이란 대선 뒤 소요 때에는 트위터, 유튜브와 함께 페이스북도 시위 확산에 한몫 했다. 새너제이 머큐리뉴스는 21일 “페이스북은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 방식, 뉴스를 얻는 방식, 지역사회와 정치조직에 연결되는 방식을 바꾸었다”면서 냉전이 끝난 뒤 유행했던 ‘신세계질서(New World Order)’에 빗대 “신웹질서(New Web Order)를 만들었다”고 평했다.
페이스북 측은 지금 70개 언어로 사이트를 만들어놓고 있으며, 페이스북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모은 ‘페이스북 스토리즈’라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벤 세일러와 라스무센 총리 등의 이야기는 페이스북 스토리의 예로 저커버그가 블로그에서 언급한 것들이다.

페이스북의 미래에 대해서는 관측이 엇갈린다. 사용자가 1억명을 돌파하는 데에는 5년이 걸렸지만 그 두배로 늘어나는 데에는 1년이 채 안 걸렸다. 이어 3억, 4억명으로 늘어나는 데에는 5개월 정도씩 밖에 걸리지 않았다. AP통신은 “내년 쯤이면 사용자가 10억명에 육박할 것”이라 보도했다.
현재 사용자 5억명 중 1억2500만명 이상이 미국인이고, 그 나머지는 대부분 유럽과 아시아 사람들이다. 인도, 브라질, 러시아인들이 최근 페이스북에 눈뜨기 시작했기 때문에 급증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 베트남, 파키스탄 등 페이스북 접속을 금지한 나라들이 고삐를 풀어주면 사용자가 수십억명에 이를 수도 있다. 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프가 소유한 마이스페이스는 페이스북과 성격이 비슷하고 그보다 앞서 인기를 끌었지만 사용자 수가 6700만명에 그치고 있다.

“기업 입장이라면 구글과 페이스북 중 어느 쪽에 광고를 넣기 좋겠는가? 당연히 페이스북이다.”
미국 정보통신 전문가 밥 멧칼프는 무료 사이트인 페이스북이 지난해부터 광고수익을 내기 시작한 점을 거론하며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미국 포드 자동차는 오토쇼에서 새 유틸리티차량(UV)을 선보이는 대신, 지난 19일 페이스북 홍보페이지를 통한 광고라는 새로운 마케팅을 선보였다. BBC방송은 페이스북 등 SNS에 맞는 광고·마케팅 방법을 찾아주는 이른바 ‘소셜미디어 컨설턴트’라는 새로운 직종이 생겨났다고 보도했다.
<페이스북 효과(The Facebook Effect)>라는 책을 쓴 데이비드 커크패트릭은 “페이스북의 핵심은 투명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추구한다는 점”이라며, 이 사이트를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떠오르게 만든 동력도 열린 사회를 지향하는 문제의식 자체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터넷 사이트들은 부침이 심하다. SNS들도 유행을 탄다. 특히 ‘더 열리고 더 연결된다’는 페이스북의 성격 자체에서 온갖 문제가 파생된다. 페이스북은 사생활 노출 논란에 시달려왔다. 몇달 전 뉴욕타임스는 “늘 자기 이야기를 웹에 공개하던 IT 세대들 사이에 디지털 접속을 끊으려는 반작용이 확대되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며칠 전 뉴욕타임스는 페이스북의 자동 친구 추천과 연결 기능 때문에 죽은 사람에 대한 아픈 기억을 억지로 떠올려야만 하는 경우까지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미 고인이 된 사람들의 사망 사실이 등록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abc방송은 21일 “사용자가 가장 많은 동시에, 사용자들의 만족도도 가장 떨어지는 웹사이트로 페이스북이 뽑혔다”고 보도했다. 개인정보 보호가 잘 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불만거리였다. 미국소비자조사지수(ACSI) 조사에 따르면 페이스북 사용자들의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서 64점을 기록, 그보다 1점 낮은 마이스페이스와 함께 웹서비스 부문에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검색엔진 구글은 80점, 빙(Bing)과 위키피디아는 77점 야후와 유튜브는 각각 76, 73점이었다. 물론 “어차피 페이스북은 프라이버시와는 양립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지지자들도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러시아가 1조 가까운 돈을 들여 극동에 새 우주기지를 세우기로 했다. 여전히 황무지로 남아있는 극동을 개발하고 민간 우주여행객들을 끌어들여 외화 수입도 늘리기 위한 우주인프라 투자다.

BBC방송 등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247억루블(약 9750억원)을 투자, 중국 국경과 인접한 극동에 새 우주기지를 짓는다는 계획을 발표했다고 20일 보도했다.
위치는 블라디보스토크 북서쪽 아무르 오블라스트(주)의 우글레고르스크. 이 곳은 1961년 군 기지가 만들어지면서 형성된 마을로, 5300명의 주민이 폐쇄된 군사지역 내에 살고 있다. 러시아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기지가 이 곳에 있지만 주변은 모두 개발되지 않은 벌판이다.
푸틴은 이곳에 유인·무인우주선 발사가 가능한 ‘보스토치니 코스모드롬(동방 우주기지)’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에 착공, 2015년부터 가동을 시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다. 2018년 완공될 700㎢ 넓이의 코스모드롬에는 유인우주선 발사대 2대를 포함, 7대의 발사대가 들어서게 된다.


러시아는 모스크바 북서부 플레세츠크와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에 코스모드롬을 갖고 있으나 유인우주선을 내보낼 수 있는 곳은 바이코누르 뿐이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우주기지인 바이코누르 코스모드롬은 옛소련 시절인 1962년 지어졌다. 보스토크, 보스코드, 소유스 등 러시아가 자랑하는 우주왕복선들이 지금까지 108차례 이 곳을 통해 지구 밖으로 나갔다. 미국이 우주왕복선 운행을 대폭 줄인 뒤 국제우주정거장(ISS)을 잇는 사실상 유일한 우주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시설이 낡은데다, 이제는 독립국이 된 카자흐스탄에 매년 1억1500만달러의 사용료를 내야 하는 부담이 있다. 보스토치니 코스모드롬이 만들어지면 바이코누르 기지의 과부하를 줄이고 앞으로 늘어날 민간 우주여행 수요를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푸틴은 설명했다. 장차 재개될 우주개발 경쟁에 대비하려는 목적도 있다. BBC방송은 러시아가 화성 유인탐사계획 등 행성간 우주비행 계획에 부쩍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미국은 내년 2월로 유인우주선 운항을 완전히 중단하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당분간 러시아의 독점시대가 열리게 된다.




기사와 상관... 아주 약간 있는 바이코누르의 겨울 풍경. 걍 시원하라고...


새 우주기지 건설계획 뒤에는 소외된 극동을 달래려는 의도도 들어있다. 극동에서는 블라디보스토크 등을 중심으로 해서 지난해부터 경제난에 항의하는 반푸틴 시위가 잇따랐다.
코스모드롬을 비롯해 부대시설과 주변 인프라까지 다 합치면 4000억루블 이상의 경제효과가 있을 것으로 러시아 정부는 보고 있다. 로스코스모스(러시아우주국)의 아나톨리 페르미노프 국장은 기자회견에서 “기지를 짓는 데에 전문인력 3만명이 투입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 측은 우주기지를 계기로 아직 개발되지 않은 극동에 하이테크 기업들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이며, 우주기지 자체 고용인원만 2만~2만5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바르는 젤 형태의 에이즈 예방약이 임상실험에서 처음으로 효과를 입증했다. 여성들의 감염 예방과 태아의 수직감염을 막는 데에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에이즈연구프로그램(Caprisa) 연구팀은 항구도시 더반에서 동성애자가 아닌 18~40세 여성 889명을 대상으로 에이즈 치료제 테노포비르(tenofovir) 성분이 포함된 젤의 임상실험을 했다.
연구팀은 실험대상 여성의 절반에게는 치료제가 들어간 젤을 주고, 절반에게는 가짜약을 줬다. 그리고 섹스 전후 12시간 안에 질 입구에 바르게 했다. 1년 후 가짜 젤을 바른 여성들 중에는 60명이 에이즈바이러스(HIV)에 감염된 반면, 치료제를 바른 그룹에서는 38명에 그쳤다. 감염율을 절반으로 떨어진 것이다.





2년반이 지난 뒤에는 비교군보다 감염이 39% 적어, 첫 해보다는 효과가 낮았다. 하지만 약효가 떨어졌다기보다는 실험 2년차 이후에 여성들이 젤 사용을 소홀히 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연구팀을 이끈 살림 압둘 카림 박사는 BBC 인터뷰에서 “젤을 꾸준히 바른 여성들 사이에서는 예방효과가 확실했다”고 말했다. 카림 박사는 이 연구결과를 19일자 사이언스에 공개하고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린 국제에이즈회의에서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값싼 살균제를 이용한 ‘바르는 예방약’이 나온 것은 획기적인 일”이라 평가했다. 특히 이 방식은 여성들이 스스로 감염을 막을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에이즈가 극심한 사하라이남 아프리카에서는 HIV 감염자의 60%가 여성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콘돔 사용 말고는 딱히 방법이 없어, 예방을 전적으로 남성들에게 맡겨야했다. 유엔에이즈계획의 미셸 시디브 사무총장은 “이번 연구는 아프리카의 여성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잠보! 아프리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침팬지섬.  (0) 2010/07/28
부아케의 수녀원에서.  (4) 2010/07/23
바르는 에이즈 예방약  (2) 2010/07/20
'제2의 알카에다'?  (0) 2010/07/15
아프리카의 대학 구경  (4) 2010/07/07
코나크로 아이들  (6) 2010/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