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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공연장 테러, 'IS 호라산'과 푸틴

딸기21 2024. 4. 16.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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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서부 크라스노고르스크의 음악 공연장에 3월 22일 괴한 4명이 들이닥쳐 총탄으로 안에 있던 사람들을 공격하고, 소이탄으로 공연장에 불을 질렀다. 140명 가까이 사망하고 180여명이 다쳤다.

아프가니스탄에 근거지를 둔 이슬람국가-호라산(IS-K)이 자신들의 공격이라고 주장했다. 이 공격에 가담한 괴한들 중 한 명이 촬영한 동영상도 공개했다.

2004년 러시아 남부 북오세티야 자치공화국의 초등학교에서 인질극이 벌어지고 진압 과정에서 314명이 목숨을 잃었던 ‘베슬란 사건’ 이래 러시아에서 발생한 가장 끔찍한 테러 공격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 공격을 야만적인 테러행위라고 불렀고, 3월 24일을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했다.

 

ISIS claimed responsibility for the deadly attack on Moscow's Crocus City Hall, which took place as a concert was about to start. AFP



러시아 당국은 테러 용의자 4명을 비롯해 11명을 체포, 구금했다. 총격을 직접 벌인 주범 4명은 모두 타지키스탄 국적이라고 러시아 당국은 발표했다. IS가 거의 궤멸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최근 나이지리아에서 IS 추종세력의 학생들 집단 납치가 다시 벌어졌고 이번 모스크바 사건까지 벌어지면서 세계가 다시 테러 공포에 휩싸일 판이다.

ISIS-K(IS호라산)는 탈레반과도 싸우고. 이란과도 싸우고. 러시아와도 싸우는 무지막지한 조직이다. 2010년대 중반 알카에다 잔당, 탈레반에서 떨어져나온 사람들, 그리고 이라크-시리아를 근거지로 했던 IS의 아프간 지부에서 나온 잔당들이 IS 호라산이라는 이름으로 조직을 결성했다.

 

처음에는 탈레반과 연결돼 있던 하카니 그룹이라는 아프간 내 무장조직과 연결됐던 것으로 보인다. 하카니 그룹을 통해서 탈레반과도 협력하는 것 아니냐 했는데, 지금은 탈레반과 IS호라산이 서로 적이다. 2021년 미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하고 힘의 공백이 생겼을 때 카불 국제공항에서 자폭테러를 저질러서 미군 13명과 아프간인 170명 가까이 살해했다. 이후 재집권한 탈레반은 호라산그룹과 싸우고 있다.

 

미국의 '새로운 적' 호라산 그룹??

탈레반은 테러조직이 아닌 이슬람 극단주의 정치조직이다. 자국민들을 극도로 억압적으로 통치하는 것이지, 외부 상대로 테러를 저지르지는 않는다. 반면 호라산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외부로 공격을 확대해왔다. 아프간과 파키스탄 접경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는데 시아파 무슬림이나, 아프간 내 소수민족 중 하나인 하자라족 등도 공격하곤 한다.

2022년 4월과 5월에는 아프간 땅에서 북쪽의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으로 로켓을 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1월, 이란 케르만에서 솔레이마니 4주기 추모행사가 열리는데 그걸 겨냥해서 2중 자폭테러를 일으켜 94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러고 나서 이번 모스크바 공격을 벌인 것이다.

 

[라운드업] 아프간 카불 공항 테러 상황 정리

 

하필 이 시점에 모스크바를 공격한 이유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스필오버와 연관짓지 않을 수 없다. 곳곳의 무장세력들이 준동하는 시점에 자신들도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었을 것이고, 또 러시아와 이슬람주의자들과의 오랜 악연(옛소련의 아프간 침공/시리아 내전에서 러시아의 아사드 지원/중앙아시아 이슬람 세력에 대한 푸틴 정권의 탄압 등등)도 있었을 것이고.

 

오랜 '악연'이라고 했는데, 소련이 아프간 점령했을 때 미국이 무자히딘들 반소련 항쟁을 지원하고, 그게 결국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가 됐다는 것은 다 알려진 이야기다. 정리하면 미국의 지원을 받아 아프간에서 소련과 싸웠던 자들이 알카에다를 만들었고(그리고 9.11 테러를 저질렀고), 알카에다에 가담했던 이라크인이 이라크알카에다를 만들었고, 그 이라크알카에다에 가담했던 인물이 이슬람국가(IS)를 만들었고, IS 추종세력과 잔당들이 모여 결성한 분파가 IS호라산인 것인데.

하지만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일 수도 있다. 이슬람주의 무장조직이 등장하는 단초가 된 것이 소련의 아프간 침공이라고들 하는데,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한 것이 이미 그 무렵부터 이슬람 극단주의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유라시아 복판에 이슬람공화국이 등장했고, 소련은 그 영향으로 아프간과 거기서부터 이어지는 중앙아시아 소련 공화국들에 이슬람주의가 퍼지고 모스크바의 통제력이 떨어질까 우려했다는 기록들이 나중에 공개됐다는 것이다. (박건영 <국제관계사>)

 

푸틴도 그런 우려(에 더해 권위주의적 통치체제 강화 측면에서)러시아 내 체첸, 다게스탄 등 자치공화국들의 이슬람주의를 극도로 탄압해왔다. 그것 때문에 ‘아랍의 봄’ 민주화 혁명도 극도로 반대한 측면이 있고(스티븐 리 마이어스, <뉴 차르>). 그렇게 역사가 돌고도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이번 사건이 벌어진 뒤에 우크라이나 침공 이 러시아를 비판해온 나라들도 애도를 보냈다.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관은 "러시아 국민에게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고 했고 안토니오 구테레스 유엔 사무 총장, 유럽 연합, 북대서양 조약기구 등은 일제히 테러범들을 비난하고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레바논 헤즈볼라와 팔레스타인 하마스도 공격을 비난했다. 다시 강조하지만, 헤즈볼라나 하마스 같은 무장 정치조직과 테러조직은 다르다.


각국은 IS 잔당들을 비롯해 극단세력의 테러공격 또 일어날까 경계한다. 미국은 프랑스 주재 대사관을 통해서 미국민들에게 주의를 요청했다. IS의 테러공격으로 2015~2016년 엄청난 비극을 겪었던 프랑스 정부는 보안 경보를 최고 수준으로 올렸다.

중앙아시아의 타지키스탄이 이번 사건 관련해서 관심사가 되고 있다. 주범 4명이 모두 타지크인들이었으니까.


타지키스탄은 옛소련에서 갈라져나온 나라다. 독립 3년 뒤부터 지금까지 에모말리 라흐몬 대통령이 장기집권하고 있다. 억압적인 권위주의 통치자이고 러시아 푸틴 정권과 사이가 나쁘지 않다. 하지만 타지키스탄 정부는 테러범들 때문에 러시아와 관계가 악화될까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타지키스탄은 정부 통계상 인구 96%가 수니파 무슬림이지만 테러리즘과 관련해서 많이 거론된 나라는 아니다. 그러나 몇 차례 공격이 벌어진 적 있었고 위험 요인이 없지는 않았다. 타지키스탄의 반체제 이슬람 무장 세력은 1998년 알카에다와 동맹을 맺고 중앙아시아를 이슬람 국가로 통합하겠다면서 이슬람 투쟁조직을 결성한 바 있다. 타지키스탄 극단주의자들은 주로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운동과 연결돼 있고 히즈붓 타흐리르, 즉 ‘해방당’이라는 이름의 조직 등이 당국으로부터 테러조직으로 규정돼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에 몇 차례 소규모 공격이 벌어진 것 말고는 이렇다할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시리아 일대에서 IS가 기승을 부릴 때에 타지키스탄에서도 추종세력이 적발됐다. 중국은 신장의 분리주의 무장조직들이 아프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등의 이슬람 조직들과 관련돼 있다고 의심한다.

지금 문제는 타지크쪽도 있지만 러시아에서 이번 사건 뒤 타지크를 비롯한 중앙아시아 출신 이주자들 공격이 늘고 있는 것이다. 타지키스탄 이민자들이 운행하는 택시 탑승거부라든가. 타지키스탄 출신 구타사건 등이 일어났다. 당국도 이를 사실상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 볼고그라드 등지에서 경찰이 중앙아시아 출신 이민자들이 사는 숙소를 급습했다. 타지크뿐 아니라 우즈베크인도 경찰의 집중 단속 대상이다.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은 자국민들에게 러시아 여행 경보를 발령했다.

그런데 푸틴은 테러범들의 배후에 우크라이나가 있다고 주장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나치 성향'이라며 러시아의 침공을 정당화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테러범들을 나치에 비유하고, 이들이 우크라이나로 넘어가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근거는? 현재로선 별로 없어 보인다. 사건 직후 친크렘린 러시아 방송은 테러공격에 우크라이나가 연루된 것처럼 연출한 영상을 방송했는데 오디오 딥페이크를 이용해서 편집한 것으로 드러났다. 발트해 국가 라트비아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러시아측 매체에 ‘우크라이나 개입 의혹을 강조하라’ 지시를 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렇게 이슬람 세력을 억압해온 러시아가, 이번 공격은 왜 막지 못했을까. 테러가 나면 항상 정보 실패 얘기가 나온다. 옥중에서 사망한 인권변호사 알렉세인 나발니 측은 당국이 정치적 반대자를 억압하고 시민을 감시하고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탄압하기 바빠 정작 자신들의 책무인 안전 유지는 도외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변인이 러시아에 경계를 하라고 정보를 줬는데 푸틴이 이달 초에 이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면서 조롱하다시피 했다고 한다. 

푸틴은 1990년대 후반에 체첸 분리주의자들을 고강도로 탄압해서 정치적으로 성장한 인물이다. 당시 체첸 분리주의자들의 테러공격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모스크바 극장 테러, 베슬란 초등학교 사건 등 몇 차례 대형 사건이 벌어졌다. 푸틴의 대응방식은 사건이 일어나면 인질극이든 뭐든 자국민들의 목숨까지 가볍게 여겨 가면서 초고강도로 진압하는 식이다. 그러면서 '서방'의 '반러시아 세력'에게 책임을 돌리곤 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사건이 재발하는 것을 막는 것보다 서방에 책임을 돌리고 자신에게 반대하는 세력을 억압하는 계기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 20년 전 베슬란 사건 때에도 인질범들을 잡는다면서 무리한 진압작전으로 300여명을 죽게 만들어놓고, 서방을 비난한 다음에 주지사 직선제 없애고 권력을 강화한 전례가 있다.

참, 모스크바 공격 뒤 "그동안 푸틴은 중동 국가들과 관계가 좋지 않았느냐"며 의문을 표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중동 정책과 아프간 문제는 엄연히 다르다. 아프간과 중앙아시아는 중동이 아니고 '아랍'도 아니다. 푸틴이 몇년 간 공들였던 곳은 아랍에미리트연합,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국가였다. 걸프 산유국들이 친미 일변도였다가 2010년대 중반 이후로, 정확히 말하면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관계가 껄끄러워진 이래로 중국, 러시아와 관계를 많이 확대했다. 중국, 러시아도 아랍국들과 긴밀해질 이유가 있었고. 푸틴은 또 시리아 내전 때 아사드 독재정권을 지원해서 군사기지를 넓혔고, 작년 말에도 사우디,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했다(2022년의 러-이란-튀르키예 정상회담은 동상이몽의 실사판이었지만).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대량학살 뒤 미국의 중동 역내 입지가 더욱 약해진 것도 푸틴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중동 국가의 정부들과 정치경제군사적 관계를 강화하는 거지, 이슬람에 친화적이라고는 절대 볼 수 없다. 사실 러시아는 이스라엘과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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