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말 퇴임하는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64)이 22일 마지막 유럽의회 연설을 했다. 임기 내내 유럽 경제위기와 씨름해야 했던 ‘유럽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호소한 것은 ‘경기부양’이었다.
융커 위원장은 이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의회 연단에 서서 “유럽을 견고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경로로 되돌려야 한다”며 11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융커플랜을 성공시켜달라고 당부했다.
공식 명칭이 ‘유럽을 위한 투자계획’인 융커플랜은 그가 5년 전 EU의 행정부인 집행위원회를 맡으며 내놓았던 것이다. 유럽투자은행(EIB)과 유럽전략투자기금(EFSI)을 두 축으로 민간 금융을 활성화해 유럽 내에 돈이 돌게 하는 것이 골자다. 융커는 이날 연설에서 이 계획으로 그동안 역내 투자액을 4320억유로 늘리는 효과를 거뒀다고 자평했다. 2014년 취임할 당시 금융위기로 “무너진 유럽을 돕고자”했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맡았다는 회고도 했다.
유럽 정치 중심에 있었던 ‘미스터 유로’
융커는 ‘유럽 정치’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강제징집됐던 노동자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전쟁의 참혹함을 많이 들어서 유럽의 화해와 평화를 꿈꾸게 됐다”고 즐겨 말하곤 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공부했고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는 물론 라틴어도 구사한다. 1974년 20세의 나이에 기독민주인민당(CSV)에 가입하며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룩셈부르크는 소국이지만 융커를 통해 유럽 무대에서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융커는 서른 살 때인 1984년부터 1999년까지 룩셈부르크 고용노동장관을 지냈다. 한번에 여러 각료직을 겸직한 것도 그의 경력에서 눈에 띄는 부분이다. 1989~2009년 20년 동안 금융장관을 했는데, 일부 시기는 고용노동장관 시절과 겹친다. 1995~2013년엔 총리를 역임했다. 동시에 2009년까지는 금융장관을 겸했고, 2009년부터는 재무장관을 함께 맡았다.
유럽무대로 활동폭을 넓힌 것은 1985년이었다. 당시 룩셈부르크가 EU의 전신인 유럽공동체(EC) 순회의장국이 된 것이 계기가 됐다. 융커는 이 때 EC의 사회·예산위원회를 맡은 이후로, 국가 이기주의 대신 통합을 주장하는 ‘친유럽’ 성향을 견지해왔다. 1996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자크 시라크 당시 프랑스 대통령과 헬무트 콜 당시 독일 총리 사이를 중재, 유럽 통화정책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낸 일은 유명하다. EU의 설계도로 불리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만드는 데에도 깊이 개입했다.
2005년 유로화를 쓰는 나라들의 모임인 유로그룹의 첫 상임의장이 돼 2013년까지 이끌며 ‘미스터 유로’라는 별명을 얻었다. 재정 위기에 봉착한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키프로스의 구제 방안을 조정하는 힘겨운 임무가 그에게 맡겨졌다. 총리직과 유로그룹 의장직을 마치고 2014년부터 브뤼셀로 옮겨가 5년간 EU 집행위원장을 지냈다. 뼛속까지 관료인 동시에 세계 최장수 선출직 정치인 중 한 명이기도 한 이례적인 경력을 갖고 있는 셈이다.
임기 내내 경제위기, 브렉시트와 씨름
포르투갈 정치인인 주제 마누엘 바로주의 뒤를 이어 EU 집행위원장이 된 융커는 디지털 단일시장을 창출하고 역내 에너지시스템을 통합하고 유럽 경제·통화기구를 개혁하려 애썼다.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도 추진했다. 하지만 그의 임기를 메운 두 골칫거리는 금융위기 뒷처리와 브렉시트였다. 두 이슈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융커는 마지막 연설에서 “지금 EU의 실업률이 2000년 이래 가장 낮다”고 강조했다. 실제 역내 실업률은 2000년 9.2%에서 2013년 11%로 정점을 찍었고 현재는 6.2%(8월 기준)로 낮아졌다. 그러나 지역별 실업률은 천차만별이다. dpa통신에 따르면 청년실업률이 그리스는 33%, 스페인은 32.2%, 이탈리아는 27.1%다. 이들 남유럽 국가의 청년들에게, 금융 부국 출신 EU 수장의 고별사는 ‘남의 이야기’일 것이다. 영국의 브렉시트는 끝모를 협상 속에 후임자의 과제로 남겨졌다.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과의 무역협정은 아마존 산불 때문에,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벽에 부딪쳤다.
융커의 화려한 경력에는 얼룩도 없지 않다. 이른바 ‘룩스리크스’는 그를 궁지로 몰아넣은 사건이다. 룩셈부르크는 스위스와 함께 도피성 자금의 은닉처이자 조세회피처로 악명 높다. EU 집행위원장 취임을 며칠 앞두고, 2014년 11월 초 룩셈부르크 정부 문건이 폭로됐다. 융커 총리 시절에 정부가 유럽 역내 기업들이 자국으로 자금을 이전시키도록 지원했다는 내용이었다. 기업들의 탈세를 돕고 그 대가로 이전된 자금의 1%를 챙긴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너무 솔직해’ 구설 오르기도
돌출 행동도 도마에 오르곤 했다. 그리스의 젊은 좌파 총리 알렉시스 치프라스에게 넥타이를 매라고 요구했다거나, 샤를 미셸 벨기에 총리의 민머리에 일부러 입을 맞췄다거나, 헝가리의 극우파 빅토르 오르반 총리를 향해서는 “독재자가 온다”고 소개하는 식이었다. 2016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난민 수용정책을 지지한다면서 “국경은 정치인들이 만든 최악의 발명품”이라고 말해 회원국들의 난민 저항감을 오히려 키웠다. 그 해 사망한 쿠바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에 대해서는 “세계가 영웅을 잃었다”고 애도했으며 지난해에는 칼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융커는 집행위원장에서 물러난 뒤에는 정계에서 완전히 은퇴하고 책을 쓰겠다고 했다. 하지만 힘겨운 과제들을 물려받을 차기 집행위원회는 출범부터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6일 유럽의회가 인사청문회에서 프랑스·루마니아·헝가리 출신 집행위원 후보를 탈락시키면서 11월 1일로 예정됐던 집행위원단 인준투표가 연기된 것이다. 융커의 퇴임은 당초 이달말로 예정돼 있었으나 이 때문에 한 달 늦춰졌다. 독일 출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차기 집행위원장 선출을 이끌어내며 목소리를 키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자국 집행위원이 퇴짜를 맞자 불만을 터뜨렸다고 이코노미스트 등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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