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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수상한 GPS‘] 희토류 때문에 이사가는 키루나 마을

북극에서 145km 떨어진 스웨덴 최북단 작은 도시 키루나. 면적은 2만㎢ 가까우니 꽤 큰 지역이다. 그러나 사실 도시라 하기도 힘든, 인구 1만6000명의 마을이다. 원래는 원주민 사미족이 순록 키우며 살아왔던 곳이지만 광업 도시로 더 유명. 1900년 스웨덴 정부가 이곳 철 광산을 개발하면서 엘카브(LKAB)라는 국영 광업회사를 만들었다. 광산 노동자들이 살 수 있게 만든 마을이 키루나다. 엘카브는 유럽 철광석의 약 80%를 생산한다. 키루나는 유럽의 주요 철 산지이자, 스웨덴 산업의 버팀목인 셈이다. 그런데 이 도시는 요즘 이사 준비가 한창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광산이 점점 커졌고, 지반이 불안정해지자 정부와 엘카브 측은 2014년 키루나를 통째로 이동시키기로 결정했다. 3km 떨어진 새 마을에 도..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 - 교환의 세계>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 교환의 세계페르낭 브로델, 주경철 옮김. 까치 올해의 고전읽기 마무리는 브로델인데 두꺼운 책 3권으로 돼있어서 읽는 데에 역시나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올해 읽은 책 권 수를 늘리기 위해 이 세 권은 각자 한 권인 것처럼 세기로 했다. 캬캬 이 책에서 의도한 것은 접합(articulation), 진화(evolution) 그리고 기존 질서를 유지시키는 거대한 힘 내지 사르트르가 이야기한 바 있는 "타성의 폭력(violence inerte)”을 인식하기 위한 이해의 노력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회, 정치, 경제가 서로 만나는 연구이다. 거의 움직일 줄 모르는 여 러 다른 체제들을 넘나들며 같은 성격을 가진 경험을 과감하게 대조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마르크 블로크가 권고한 비교 방..

딸기네 책방 16:11:33

찰스 킨들버거, <대공황의 세계>

대공황의 세계. The World in Depression 1929-1939. 찰스 P. 킨들버거. 박명섭 옮김. 부키. 12/14헤게모니 안정화 이론을 주장한 킨들버거의 책. 금융 통화 쪽은 어려워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적지 않았지만 재미있었다. 표현도 은근히 웃기고. 다만 번역에서 예의 일본식 표기(재무성 외무성 등등)뿐 아니라 밀(wheat)도 몽땅 ‘소맥‘이라고 쓴 거 보면 일본판 중역 냄새도 좀… 1970년대의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독일로부터 배상금을 가차없이 징수하고자 한 연합국 측의 시도는 거의 의미가 없었다. 독일에 전쟁과 재건의 비용을 동시에 물릴 수 있다는 생각은 더욱 더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당시 이 같은 방침을 취하게 된 것과 관련해서는 충분한 선례가 있었다. 1871년 에 독일..

딸기네 책방 2025.12.14

[구정은의 ‘현실지구‘] 자원고갈, 환경파괴, 물난리… 인도네시아 아체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북쪽 끝에 있는 아체 주는 특별자치 지역이다. 주도 반다아체를 중심으로 5만7000㎢에 이르는 땅에 555만 명이 살고 있다. 토착 민족이 여럿 있지만 인구 70%를 차지하는 아체인이 가장 큰 집단이고 대부분 무슬림이다. 서쪽으로는 인도양, 북동쪽으로는 말라카 해협이 있다. 동쪽 바다 건너로는 말레이시아와 태국이 있고 북쪽으로 나아가면 인도 영해와 접하게 된다. 오래 전부터 아랍 무역상들이 활동하던 무역 중심지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아체는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을 맨 먼저 받아들였고,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이슬람이 확산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5세기 말 건국된 아체 술탄국은 한때 말라카 해협 일대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국가였다. 이후의 역사는 수난과 투쟁의 연속이었..

안드레아스 말름,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안드레아스 말름 지음, 추선영 옮김. 두번째테제. 10/18 라는 제목은 강렬하고 도발적이다. 하지만 6만 명 이상을 학살한데다 그 중 일부는 ‘굶겨죽인’ 이스라엘의 행위가 세계의 모든 규범을 파괴하고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비견될 충격을 안겨주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스웨덴의 좌파 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안드레아스 말름의 이 책은 이스라엘의 그 충격적인 행위를 서구 제국주의의 행로와 연결해 설명한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이 시작된 이후 쓰인 ‘긴급 고발’ 성격의 작은 팜플렛으로, 화석연료로 지구를 파괴하는 자들이 이스라엘의 학살 행위를 지지하는 자들과 동일한 세력임을 강조한다.책은 1840년의 ‘아크레 전투’로 시작한다. 오늘날의 이스라엘 지중해 ..

딸기네 책방 2025.12.12

[구정은의 ‘수상한 GPS‘] 홍콩은 왜 ‘관짝집‘의 도시가 되었나

홍콩에서 초대형 화재가 났다. 사망자가 150명이 넘고 주변 체육관 등에는 이재민 대피소들이 생겼다. 말 그대로 재난이다. 공사를 하면서 외벽에 대나무 비계를 덧댄 것, 창문을 스티로폼으로 밀폐한 것 등등 안전 불감증을 보여주는 정황이 나왔고 당국은 아파트 관리회사 직원들을 살인 혐의로 수사 중이다. 세계 어디서나, 대형사고가 일어나면 늘 드러나는 패턴이다. 그런데 이번 화재는 보기만 해도 아찔한 홍콩의 그 빽빽한 고층아파트들의 이미지와 맞물리면서 ‘올 것이 왔다’는 우울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홍콩은 왜 그런 도시가 됐을까. 홍콩 면적이 1114㎢이고 750만명이 살고 있으니, 600㎢ 남짓에 930만명이 사는 서울에 비하면 인구밀도가 외려 낮다. 그런데도 홍콩의 주거 지역은 유난히 밀도가 높은 것으..

[구정은의 ‘수상한 GPS‘] COP30, ‘회의 그 자체‘가 도마에 오른 기후대응 회의

벨렝. 포르투갈어로 베들레헴을 가리킨다. 브라질 북부 파라 주의 주도이자 아마존 강의 관문, 인구 140만 명의 분주한 항구 도시다. 적도 바로 아래, 아마존 지류인 파라 강이 대서양과 만나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여기서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 제30차 당사국 총회(COP30)가 열렸다. 기후협약에 가입한 나라들이 매년 모여서 약속을 얼마나 지켰는지 점검하는 자리다. "향후 10년 동안 기후대응 속도를 높이고 성과를 거둘 수 있게 하자."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6일 개막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21일까지 이어진 이 회의에는 협약에 가입한 200개 가까운 나라 가운데 대부분이 참여했다. 총 193개국과 유럽연합(EU)이 참석했고 북한도 대표단을 보냈다. 한동안 국제 무대에서 떨어져 있었..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 일상생활의 구조>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 일상생활의 구조페르낭 브로델. 주경철 옮김. 까치. 11/20엄청 방대하고 재미있다!!!(경제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전산업화 시기 의 유럽(유럽 이외의 세계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배제하는 것도 문제이지만)의 발전은 인류역사의 분기점인 산업혁명이 도래하기까지 점진적으로 시장, 기업, 자본주의적 투자라는 합리적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실제로 관찰한 19세기 이전의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묘사하기 좋아하는 것은 이른바 시장경제이다. 그러나 불투명한 영역, 흔히 기록이 불충분하여 관찰하기 힘든 영역이 시장 밑에 펼쳐져 있다. 그것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고 어마어마한 규모로 존재하는 기본활동의 영역이다. 지표면에 자리 잡고 있는 이 폭넓은 ..

딸기네 책방 2025.11.20

필립 샌즈,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EAST WEST STREET. 필립 샌즈. 정철승, 황문주 옮김. 더봄. 11/19뚜올슬랭(캄보디아), 시에라리온, 사라예보와 스레브레니차, 아우슈비츠, 르완다. 어쩌다 보니 다크 투어를 선호하는 사람처럼 되어버렸다. 재작년 아우슈비츠, 그리고 지난해 키갈리(르완다)를 끝으로 더 이상 학살이나 제노사이드는 생각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이 책이 너무 오래 책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결국 꺼내들었다. 재미는 있었는데 읽는 데에 석달 가까이 걸렸다. 국제법적 배경과 논쟁을 기대했는데, 그보다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후손이 집안의 상처를 추적해가며 또 다른 희생자와 생존자들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돼 있다(솔직히 이런 부분은 살짝 지루했다). 국제법 전문가이자 국제형사..

딸기네 책방 2025.11.19

[구정은의 ‘현실지구‘]네덜란드 ‘중도의 승리‘가 던지는 메시지

지난달 29일 치러진 네덜란드 총선에서 중도파 민주66(D66)이 승리했다. 1당이 됐다고는 하지만 어쩐지 찝찝하다. 유럽의 대표적인 극우정당인 헤이르트 빌더르스의 자유당(PVV)과 동점이다. 150석 하원에서 각각 26석을 확보하며 초접전을 벌였는데, 민주66이 해외 거주자 우편투표에서 2만8000여표를 더 얻어 근소하게 득표율은 앞섰다. 정부를 구성하려면 과반인 76석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최대 민주66의 의석은 겨우 저 정도이고 득표율은 다들 고만고만하다. 1~5위 정당이 모두 10%대다. 바꿔 말하면 ‘정당 난립’구도여서 최소 4개 이상 정당이 연합해야 정부를 꾸릴 수 있다. 대부분의 정당들이 극우와는 손 잡지 않겠다고 해서 연정협상의 주도권은 민주66이 가졌다. 롭 예턴 당대표는 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