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리스 레스보스 섬의 수용소에 머물던 난민 33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2일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바티칸은 난민들을 데려오기 위해 자선부문을 담당하는 콘라드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을 이날 레스보스에 파견했다.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은 3일 난민들과 함께 바티칸으로 돌아온다. 이번 파견에 앞서 교황은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에게 “그리스 사람들에게, 그리고 난민들에게 연대를 다시 일깨우라”는 주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교황청이 난민을 받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6년 4월에 교황은 레스보스 섬의 난민촌을 찾았고, 난민 3명을 비행기에 함께 태우고 바티칸으로 돌아왔다. 이들을 포함해 시리아 무슬림 세 가족 12명이 바티칸에 정착했다. 내전 중 폭격에 집을 잃고 터키를 거쳐 레스보스로 간 사람들이었다. 두 달 뒤에는 시리아 기독교도 9명을 더 받아들였다. 그해 교황청에 난민·이주민 담당국이 신설됐다. 이번에 오는 이들은 아프가니스탄, 카메룬, 토고 출신의 난민 가족들과 청년들이다. 바티칸은 “더 나아간 연대의 몸짓”을 보여주려는 교황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스에는 올들어서만 난민 3만5000명 이상이 유입된 것으로 추산된다. 레스보스 섬에 현재 8만5000명에 이르는 난민들이 머물고 있는데 대부분은 시리아인이고, 아프가니스탄과 아프리카 출신들도 있다. 모리아 캠프 등 이 섬의 몇몇 수용소들은 여건이 매우 열악하며 9월에는 화재와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유엔과 구호기관들은 유럽 각국에 난민들을 받아들이라고 호소해왔다.
2013년 3월 즉위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마 밖으로 나가는 첫 외출의 행선지로 ‘난민섬’을 택했다. 그해 7월 지중해의 난민·이주민 기착지 람페두사 섬을 찾은 교황은 부서진 난민선의 목재로 만든 연단에서 연설을 했다. 그곳을 첫 방문지로 선택함으로써 바티칸이 난민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음을 선언적으로 보여줬고, 유럽과 세계에도 관심을 촉구했다. 지난 9월 29일에도 교황은 성베드로 광장에 모인 4만명의 신자들 앞에서 ‘세계 난민과 이주민의 날’ 미사를 집전하면서 “외국인과 이주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쓰고버리는 문화의 희생자들과 함께 해야 하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바티칸은 1929년 ‘라테른 협정’을 통해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지위를 얻었다. 주민은 올해 기준 799명이다. 바티칸에서 일하는 사람은 2400명이 넘지만 대부분은 바티칸 밖에서 산다. 주민들 중에도 시민권 보유자는 450명뿐이다. 2011년 3월 발효된 시민권법에는 ‘주민’에 관한 규정이 새로 생겼는데, 이 규정에 따르면 바티칸의 주민이 반드시 ‘시민’일 필요는 없다. 다른 나라들과 달리 바티칸에는 ‘출생’을 통해 자연적으로 시민이 되는 이들은 없다. 등록신청과 심사를 거쳐 시민이 되면 출신국 국적을 포기해야 하지만, 이탈리아 국적자들은 예외적으로 이중국적을 유지할 수 있다.
시민이 아닌 주민들은 임시거주 혹은 상주 허가를 받아 머물고 있다. 대부분은 성직자들과 교황청 직원들, 그리고 교황청 경호를 맡는 스위스 근위대 병사들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한 뒤로는 교황의 고국인 아르헨티나 출신 주민들이 늘었다. 난민들이 들어옴으로써 이제 바티칸에는 시리아에 이어 아프간·카메룬·토고 출신 주민들이 생겨나게 됐다. 이달 말에는 레스보스에서 난민 10명이 더 온다. 가톨릭뉴스서비스(CNS)는 난민들을 받기 위해 교황청이 이탈리아 내무부와 몇 달에 걸쳐 ‘협상’을 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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