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주 서부 미들랜드와 오데사에서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또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 최소 5명이 숨졌습니다. 총격범은 우체국 우편배달 차량을 탈취한 뒤 미들랜드의 고속도로에서 오데사까지 30여km 거리를 이동하면서 시민들에게 총기를 난사했고, 오데사의 영화관 앞에서 경찰에 사살됐습니다.
범인은 ‘30대 중반의 백인 남성’이라고만 알려졌습니다. 텍사스에서는 지난달 4일 엘패소의 월마트에서 히스패닉계를 노린 총기난사가 일어나 22명이 숨졌습니다. 그런데도 텍사스주는 9월1일부터 총기규제를 오히려 완화한 10개 법안을 시행합니다.
미국은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 인구 대비 총기 숫자가 많습니다. 내전·분쟁국가도 아닌데 연간 4만명 가까운 이들이 총탄에 목숨을 잃습니다. 그런데도 총기를 규제하자는 목소리는 번번이 의회에서 묻힙니다. 총기 관련단체의 로비 때문입니다. 미국의 총기 문제를 그래픽으로 살펴봅니다.
예멘보다 총기 소지가 더 많은 나라
총기 감시사이트인 ‘스몰암스서베이(Small Arms Survey)’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서 민간인이 보유한 총기는 2017년 기준으로 약 3억9300만개입니다. 지난해 미국의 인구가 3억2720만명이었습니다. 100명 당 총기 120.5개, 인구보다 총 숫자가 더 많습니다.
잇단 총기난사에 세계 각국 “웬만하면 미국 여행 가지 마라”
아라비아반도의 예멘은 무장세력들이 판치는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공습을 퍼부으면서 대량 난민사태가 일어나기도 했지요. 치안이 불안정하기로 유명한 에멘의 100명 당 총기 숫자 52.8개와 비교해도 미국이 두 배가 넘습니다.
영국 BBC방송은 1일 미국의 총기 문제를 지적하면서, 총기 가격이 너무 싸다는 점을 보여주는 그래픽을 선보였습니다. 미국에서 일반 권총은 1정에 약 200달러에, 그보다 살상력이 훨씬 큰 ‘공격용 라이플’은 1500달러가량에 거래된다고 합니다.
사고, 자살, 살인…늘어나는 사망자 수
총 값이 싸고 총기를 가진 사람이 늘어나면 총격 피해도 커지게 마련입니다. 총기폭력아카이브(Gun Violence Archive)에 따르면 2014년 1월부터 지난달 5일까지, 약 5년 7개월 동안 미국에서 총탄에 숨진 사람은 총 8만280명입니다. 총기에 숨지거나 다친 아이들도 많습니다. 11세 이하 아이들 3766명, 12~17세 청소년 1만6069명이 총격에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총기 사망자 수는 해가 갈수록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총기 성능이 좋아진데다, 발사속도를 높여 소총을 반자동소총처럼 만들어주는 액세서리들까지 팔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사회 전반에 혐오감정이 늘어나고 마이너리티를 겨냥한 증오감이 퍼진 것도 원인 중 하나겠지요. 엘패소 총격이 그런 예였습니다.
총기폭력아카이브 통계를 보면, 9월 1일 기준으로 올들어 발생한 전체 총기사고 건수는 3만7607건이고 그 중 281건이 다수를 겨냥한 총기난사였습니다. 사망자수는 9914명, 17세 이하 청소년·어린이 사상자 수는 2517명입니다. 총기를 옹호하는 이들이 주장하는 ‘방어 목적’의 총기 발사는 1014건에 그쳤습니다. 자살·살인 외에 ‘의도하지 않은 총기 발사’ 즉 단순 사고도 1089건이나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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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학교들
1999년 콜로라도주 컬럼바인 고등학교, 2012년 코네티컷주 샌디훅 초등학교, 2018년 플로리다주 스톤맨더글러스 고등학교…. 아이들이 안전해야 다녀할 학교는 이제 총기난사의 주된 무대 중 한 곳이 됐습니다.
‘K-12 학교총격 데이터베이스’ 사이트에 따르면 학교에서 총탄에 숨진 사람 수(범인 포함)도 전체 총기사망자 수와 마찬가지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스톤맨더글러스 고교에서 학생과 교직원 17명이 숨진 것을 비롯해, 학교에서 총격에 숨진 사람 수가 61명에 이르렀습니다.
규제를 향한 머나먼 길
총기에 매우 우호적이던 미국의 여론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갤럽 조사에서 현행 총기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46%로, 지금 수준에 ‘만족한다’(39%)거나 ‘완화해야 한다’(8%)는 응답을 웃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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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공화당과 민주당 중 어느 정당 지지 성향이냐에 따라 총기를 둘러싼 견해는 크게 엇갈렸습니다. 공화당 지지성향 응답자들은 대체로 총기 규제에 미온적이거나 반대하는 입장인 반면, 민주당 지지성향 응답자들은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총기 성소’ 되겠다는 마을, 총기협회와 싸우는 블룸버그
정치적 입장에 따라 총기규제에 대한 생각도 크게 영향을 받고, 이 때문에 공화당 주지사들이 들어선 주에서는 잇단 사고에도 오히려 규제가 느슨해지기까지 합니다. 대표적인 곳이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잇달아 총기난사가 일어난 텍사스주입니다. 캘리포니아주 등이 총기 규제를 강화한 것과 달리 텍사스주는 엘패소 총격 뒤에 오히려 규제를 더 풀었습니다. 학교나 종교시설에서의 총기소유 허용도 크게 늘렸습니다. ‘총기난사범에게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총기를 들고 다니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이런 규제완화 뒤에는 막강한 이익집단인 전미총기협회(NRA)의 로비가 있습니다. 이 단체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뒤인 2017년과 2018년 로비자금을 크게 늘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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