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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와 헤르만 헤세의 점심

소크라테스와 헤르만 헤세의 점심 Le Miroir des Idees 미셸 투르니에 (지은이) | 김정란 (옮긴이) | 북라인 번역자인 김정란교수는 이 책에 대해 ‘먹을 수 있는 철학책’이라면서 ‘철학지망생이었던 한 명의 작가가 써낸 매우 흥미로운 철학요리서’라는 설명을 붙였다. 벌써 지난 봄에, 이 책의 앞부분을 읽다가 그만 흐름을 놓치고 말았다. 옆의 선배 자리에 쓰레기처럼 쌓여 있던 더미에서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이 책을 찾아냈다. 알고보니 그 더미는 내 ‘쓰레기들’이었는데. 책상과 책상 사이의 좁은 틈을 기준으로 ‘내 세상’과 ‘타인의 영역’을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규칙이 많고 꼼꼼한 사람들의 얘기인데도 난 내가 그런 사람인줄 착각하고 있었다. 고양이 이야기는 전에도 한번 한 일이 있..

딸기네 책방 2001.05.30

제인 구달, '희망의 이유'

희망의 이유 제인 구달 (지은이) | 박순영 (옮긴이) | 궁리 | 2003-11-03 제인구달의 '희망의 이유'를 이제야 다 읽었습니다. 지난해 이맘때였나, 아사다 지로의 '프리즌 호텔'을 읽으면서 펑펑 운 다음으로는 처음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세 번이나 울었습니다. 제인의 남편 데렉이 죽었을 때에나, 제인이 불쌍한 어린 침팬지의 눈망울이 슬퍼보였단 얘기를 했을 때에나, 뭔가 뭉클한 것이 느껴져서요. 인간은 기본적으로 선한가, 악한가. 제인이 연구한 대상은 침팬지였지만 그 속에서 일생동안 파고들었던 주제는 바로 그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속에서 어떤 절대적인 것을 추구하고, 그것을 느끼는 것. 어떤 때에는 자연이라는 이름으로, 야생동물이라는 얼굴로, 또 때로는 홀로코스트라는 극악한 형상을 가진 잔혹..

피해다니기

항상 하는 얘기지만, 그리고 결코 자랑은 아니지만 언제나 자기방어를 잘 한다고나 할까. 정확히 말하면 누군가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것은 아니고, 그저 스스로 마음 편하기 위한 기제들을 잘 만들어놓고 있다는 얘기다. 내가 '여우의 신포도 정신'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덕택에 언제나 '미련'이 없다. (좀 '미련'하기는 하지만^^) 돈들여 가방을 산 뒤에는 다른 가방 가게 앞을 지나가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내가 산 가방이 제일 예뻐보인다. 사람이니까, 언제나 '선택'을 해야 하는데 늘상 남보다 쉽게 선택을 하고도 여간해서는 후회를 하지 않는다. 내가 태어났을 때 별로 가진 것(이쁜 얼굴 같은 것^^)이 없어 보여서 하느님이 선물로 그런 남다른(?) 능력을 주셨는지도 모르겠다. 사는 게 재미있냐고 ..

선계전 봉신연의

봉신연의 후지사키 류 (지은이) | 대원씨아이(만화) 후지사키 류의 '봉신연의'. 어제 22권까지 부리나케 읽었는데, 오후에 연합뉴스에 '봉신연의 23권 완간'이라는 기사가 떴더군요. 신나라~ 내가 원하는 게 바로 이런 거였습니다. "치고 박고 싸우고 갈수록 전력이 강화되는, 이 폭력의 미학"... 이라고 생각하는 건 결코 아니지만, 평소 저의 취향과는 정 반대인 이 만화를 제가 왜 그렇게 재미있어 하느냐. 전 이 세상에 없는 이상한 것들을 꼭 보고 싶은데, 이 만화에는 참으로 이상한 것들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기묘한 얼굴의 도사와 선인들은 물론이고 동식물에 연원을 둔 여러 종류의 요괴 따위 말이죠. 글구 제가 은빛 여우를 타고 다니게 된 동기이기도 한, 희한한 영수(靈獸?)들! 주인공 태공망의 영수는,..

딸기네 책방 2001.04.03

[스크랩] 서정주,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네가 죽으면

석남꽃 서정주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네가 죽으면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나도 죽어서 나 죽는 바람에 네가 놀래 깨어나면 너 깨는 서슬에 나도 깨어나서 한 서른 해만 더 살아 볼꺼나 죽어서도 살아서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서른 해만 더 한번 살아 볼꺼나 머리 속에 오래동안, 그것도 꽤 자주, 맴돌던 시가 바로 저 이었다. 고3 때였던 것 같다. 우리 학교의 책상은 흰 종이로 씌워서 비닐을 덮게 돼 있었는데, 시험 기간에는 한 반의 절반씩이 반을 바꿔 다른 교실로 간다. 어느 시험에서였는지 내가 옮겨가 앉은 책상에 저 시가 씌여 있었다. 문학소녀였던 그 자리의 주인이 베껴놓았던 것 같은데, 하는 구절을 맘 속에 넣어두고 있었지만 누구의 시인지는 알지 못했다. 어린 시절인데, 왜 저 시가 그렇게 가슴에 남았을까...

딸기네 책방 2001.04.01

하워드 진, <오만한 제국>

오만한 제국 Declaration of Independence: Cross-Examining America Ideology 하워드 진 (지은이) | 이아정 (옮긴이) | 당대 혼자 살고 있는 한 사나이가 있었는데, 누군가가 문을 두드려서 대답을 했다. 문을 열자 강건한 몸집에 잔인한 얼굴을 한 '폭군'이 서 있었다. 폭군이 물었다. "복종하겠느냐?" 사나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옆으로 비켜섰다. 폭군은 들어와서 사나이의 집을 차지했다. 사나이는 수년 동안 그를 시중들었다. 그리고는 그 폭군은 음식에 든 독 때문에 앓아눕게 되었고, 죽었다. 사나이는 그 시체를 싸서 문을 열고 나가 치워버리고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문을 닫았다. 그리고 단호히 말했다. "아니오" 역사에 관한 책을 읽고 나서, 굉장히 ..

딸기네 책방 2001.03.29

게놈 - 23장에 담긴 인간의 자서전

게놈 - 23장에 담긴 인간의 자서전 매트 리들리. 문과 공부를 한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나는 '비교적' 과학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관심의 이유는 지적 호기심, 혹은 지적 허영심, 쉽게 말하면 '알고 싶은 게 많아서' 이고, 어렵게 말하면 내가 물질 중심의 사고관을 갖고 있기 때문인데, 이 모든 이유들을 한마디로 하면 '알고싶어서'다. 인식의 지평을 넓힌다는 것. 올해에는 특히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소식들이 많았다. 내 호기심을 자극한 첫번째 것은 인간게놈지도가 완성됐다는 것. 인간게놈지도를 완성시킨 것은 두 집단인데, 하나는 '모험(벤처)적인 과학자' 크레이그 벤터가 이끄는 셀레라 제노믹스라는 '기업'이고, 또 하나는 '공리적인 과학자' 존 설스턴이 이끄는 HGP(인간게놈프로젝트)라는 단체..

마쓰모토 레이지, '니벨룽겐의 반지'

마쓰모토 레이지의 '니벨룽겐의 반지'(서울문화사) 1부와 2부를 읽었습니다. 마쓰모토 레이지 하면, 우리나라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우주전함 야마토, 하록선장, 그리고 은하철도 999. 국민학교 저학년 때 은하철도 999 만화책을 몇권 봤는데, 기분이 아주 이상하고 음침한 느낌이 들었다는 기억만 남아 있습니다. 재작년에 극장용 후속편을 비디오로 빌려다봤는데 영 꽝이더군요. 니벨룽겐의 반지는 아시다시피 독일의 전설이죠. 그리고 바그너(와그너?)의 오페라이기도 하구요. 마쓰모토는 바그너의 팬이라고 하는군요. 이 만화는 그 오페라를 모티브로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물론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는 아니고, SF물입니다. 첫 장면부터 저의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우주선입니다. 일본의 SF물은 메카닉..

딸기네 책방 2001.03.21

은빛 여우

지난 주말에 조지 마틴의 판타지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를 열심히 읽었다. 얼마나 재미있게 읽었냐면, 내 몸통이 거의 소설 속으로 들어갔다. 판타지 소설에 흔히 나오듯이, 각 등장인물들에게는 가문의 문장이라는 게 있다. 나는 내 문장을 '은빛 여우'로 정했다. 왜냐? 멋있어보일 것 같아서. 얼음과 불의 나라는 동부, 서부, 북부, 남부로 나뉘어 있는데 주인공은 북부의 영주이다. 그러니 내 눈에 북부가 가장 멋있어 보일 수밖에. 실은 나는 추운 곳을 아주 싫어하는데, 주인공을 따라서 북쪽 나라에 살기로 했다. 주인공보다 더 훨씬 북쪽에. 북쪽 나라에는 언제나 늑대가 있다. 그러니 나도 내 문장을 늑대 종류로 정해야 하는데 주인공 집안의 문장이 바로 다이어울프(늑대)가 아닌가. 그래서 할 수 없이 나는 늑대..

내 그림자 중의 하나는

내 그림자 중의 하나는 모든 그림자가 그렇듯이 늘 나를 따라다니는데, 그림자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고 정답게 생각하는 놈이다. 내가 간간이 사색을 할 때마다 내 뒤에서 나를 흘낏흘낏 바라보는 이 그림자는 가끔씩 건방지게도, 내 등뒤에서 고개를 내밀고 내 손이 하는 일들을 지켜보기도 한다. 내가 지뢰찾기에 열중해 있을 때, 내가 컴퓨터 고스톱을 치고 있을 때, 내가 홈페이지에다 시덥잖은 소리를 쳐넣고 있을 때 무슨 재미난 구경거리나 생긴 것처럼 들여다본다. 어린 아이들은 손가락을 자기 코 앞에 갖다대고 그걸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눈알을 가운데로 모으는 놀이를 한다. 난 어른이 된 지금도 가끔 그 놀이를 하는데, 손가락을 동원하지 않고 맨 얼굴로도 코 주위에 눈알들이 모이게 할 수가 있다. 그림자는 생선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