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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반니노 과레스키, <약속을 지킨 소녀>

딸기21 2002. 12. 5.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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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니노 과레스키는 우리나라에서는 ‘돈 까밀로와 빼뽀네(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로 알려져 있지만, 이 작자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은 재미있고 우스꽝스런 까밀로 연작보다는 바로 이 작품입니다. 제 기억의 박물관에서는 ‘보리와 임금님’ 다음으로 소중한 것이 이 이야기랍니다.
여러번 베껴쓰기도 했었어요. 친구들에게 편지 쓰면서, 열심히 또박또박 베껴서서 보내주기까지 했다니까요. 그런데 서른씩이나 먹어서 지금 읽어보면, 어쩌면 유치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네요


조반니노 과레스키, <약속을 지킨 소녀>


여자라고? 아니, 여자는 필요없다.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약간 흥청거리는 일이라면 난 언제나 찬성이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나에겐 이미 내 소녀가 있다. 그녀는 파브리꼰의 길을 따라 늘어선 세 번째 전봇대에서 매일 저녁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열 네 살이었고, 파브리꼰의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서양자두나무 한 그루가 담장 너머로 가지를 늘어 뜨리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자전거를 멈추었다. 어느 소녀가 손에 바구니를 들고 들판에서 오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불렀다. 나보다 훨씬 키가 크고 몸매가 잘 잡힌 것으로 보아 분명 열 아홉 살은 되었을 것이다.

"나 목마 좀 태워 줘."
그녀에게 말했다. 소녀는 바구니를 내려 놓고 나는 그녀의 어깨 위로 올라섰다. 가지에는 자두가 넘치게 달려 있었고 나는 윗도리 가득히 노란 자두를 땄다.



"치마를 벌려. 절반으로 나누게."
내가 소녀에게 말했다. 소녀는 필요없다고 대답했다.
"넌 자두를 좋아하지 않니?"
내가 물었다.
"좋아해. 하지만 나는 언제든지 딸 수가 있어. 이 나무는 우리거야. 난 저기서 살고 있어."

조반니노 과레스키

그 때 나는 열 네 살이었고 짧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미장이 조수 일을 하고 있었고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보다 훨씬 더 키가 컸고 처녀처럼 몸매가 잡혀 있었다.

"너 사람을 놀리는구나."
나는 소녀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하지만 이 못생긴 키다리야. 난 네 얼굴을 박살 낼 수도 있어!"
소녀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이틀 후 저녁 똑같은 길에서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났다.
"안녕. 키다리!"
내가 소리쳤다. 그리고는 입안 가득히 욕을 퍼부었다.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는 나폴리에서 욕을 배운 미장이 십장보다 더 잘했었다. 그 뒤 여러번 소녀를 만났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전거에서 뛰어 내려 소녀의 길을 가로 막았다.
"무엇 때문에 날 그렇게 쳐다보는지 알고 싶어."
나는 베레모의 챙을 한쪽으로 홱 젖히면서 물었다. 소녀는 물처럼 투명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전혀 본 적이 없는 두 눈이었다.
"난 너를 보고 있지 않아."
소녀가 겁에 질려 대답했다. 나는 다시 자전거에 올라탔다.
"조심하라구, 키다리! 난 농담하는게 아냐!"

일주일 후 나는 소녀를 다시 보았는데 어떤 청년과 함께내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나는 자전거 페달 위에서 벌떡 일어서 미친 듯이 밟아 댔다. 청년의 2미터 쯤 뒤에서 속력을 늦추었고, 곁을 가까이 스쳐지나면서 어깨로 힘껏 밀쳤다. 청년은 무화과 껍질처럼 땅바닥에 길게 널부러졌다. 뒤에서 나한테 갈보새끼라고 욕하는 걸 들었다.
그래서 나는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자갈 더미 곁의 전봇대에 기대어 놓았다. 청년이 미친 듯이 나를 향해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스무 살 정도의 청년이었고 날 한 주먹에 때려 뉘일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미장이 조수 일을 하고 있었고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았었다.나는 때맞추어 돌멩이로 그 녀석의 얼굴을 정통으로 맞추었다.

우리 아버지는 특이한 기술자였다. 아버지가 멍키스페너를 손에 들고 있으면 온 동네가 다 도망갔다. 하지만 그런 우리 아버지도 내가 돌멩이 하나를 움켜쥐는 걸 보면 뒤로 물러서곤 했다. 그리고 날 때리기 위해서는 내가 잠들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우리 아버지도 그러셨는데, 저런 멍청이 정도야!

'돈까밀로와 빼뽀네'의 삽화


그의 얼굴은 피범벅이 되었고 나는 훌쩍 자전거에 올라타 멀리 달아났다. 나는 이틀 동안 멀리 돌아서 다녔다. 그러다가 사흘 째 되는 날 저녁 나는 다시 파브리꼰의 길로 돌아왔다. 소녀를 보자 나는 바싹 뒤쫒아가 미국식으로 자전거 안장에서 뒤로 훌쩍 뛰어내렸다.

요즈음 소년들이 자전거 타는 걸 보면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흙받이, 종, 브레이크, 전기 헤드라이트, 변속기만 이용할 뿐 무엇을 한단 말인가? 나는 녹이 덕지덕지 슨 프레라 자전거를 갖고 있었지만 광장의 열 여섯 계단을 내려가기 위해 절대로 내리지 않았다. 핸들을 꽉 움켜쥐고 번개처럼 달려 내려가곤 했다.

나는 자전거에서 내려 소녀 앞에 섰다. 핸들에 매달린 배낭에서 망치를 꺼내어 들었다.
"다시 한 번 다른 녀석과 함께 있는 걸 보면, 너와 그 녀석 대갈통을 바숴놓을 거야."
그녀는 그 미칠 정도로 물처럼 맑은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왜 그런 말을 하지?"
소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나도 몰랐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래야 되니까 그래."
내가 대답했다.
"너는 혼자 다니든가 아니면 나하고만 다녀야 해."
"난 열 아홉 살인데 넌 기껏해야 열 네 살이야. 네가 최소한 열 여덟만 되어도 문제는 달라. 난 이제 처녀가 되었지만 넌 아직 소년이야."
"그러면 내가 열 여덟이 될 때까지 기다리라구!"
내가 소리쳤다.
"다른 놈과 함께 다니지 않도록 조심해. 아니면 죽을 줄 알아!"

그 때 나는 미장이 조수 일을 하고 있었고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었다. 사람들이 여자 이야기를 하면 나는 벌떡 일어나 가 버리곤 했다. 여자란 나에게 썩은 무화과보다도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소녀만은 다른 녀석과 만나지 않아야 했다.

나는 거의 4년 동안 일요일만 빼고 매일 저녁 그 소녀를 만났다. 소녀는 언제나 파브리꼰의 길가 세 번째 전봇대에 기대어 서서 나를 기다렸다.비가 올 때면 그 멋진 우산을 펼쳐 들고 있었다. 나는 단 한번도 자전거를 멈추지 않았다.
"안녕."
내가 지나가면서 말하면
"안녕"
하고 소녀는 대답했다.

열 여덟 살이 되던 날 나는 자전거에서 내렸다.
"이제 열 여덟 살이 되었어."
내가 말했다.
"이제 나와 산책할 수 있어. 만약 어리석은 짓 하면 머리통을 까부술 거야."
그녀는 이제 스물 세 살이었고 완전한 처녀가 되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물처럼 맑은 눈을 갖고 있었으며 여전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열 여덟살이 되었지만 나는 스물 세 살이 되었어. 내가 너처럼 젊은 애하고 함께 있는 걸 보면 청년들이 나한테 돌멩이를 던질 거야."
나는 자전거를 땅바닥에 내팽개치고 납작한 돌멩이 하나를 집어들고서 말했다.
"저기 세 번째 전봇대의 애자가 보이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정통으로 맞추었고 그 곳엔 벌레처럼 헐벗은 쇠고리만 남았다.
"돌멩이를 던지기 전에 청년들은 어떻게 던지는가를 배워야 한다구!"
내가 소리쳤다.
"내가 말하는 것은,"
소녀가 말했다.
"처녀가 어린 소년하고 돌아 다니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하는 거야. 최소한 네가 군대라도 마쳤다면."

나는 베레모의 챙을 왼쪽으로 홱 돌렸다.
"이봐, 혹시 날 멍청이로 놀리는 것은 아니겠지? 군대를 마치면 난 스물 한 살, 넌 스물 여섯이 될 거야. 그 때 가서 또 다른 이야기를 하겠지?"
"아니야."
소녀가 대답했다.
"열 여덟과 스물 셋하고 스물 하나와 스물 여섯은 완전히 다른 거야. 앞으로 나갈수록 나이 차이는 별로 중요해지지 않아. 남자가 스물 한 살이거나 스물 여섯 살 이거나 그건 똑같은 거야."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나는 결코 속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군대를 마쳤을 때 다시 이야기하자."
내가 자전거에 올라 타면서 말했다.
"하지만 조심해. 내가 돌아와서 널 찾지 못하면 네 아버지 침대 밑에 숨어 있어도 네 대갈통을 부숴놓을 거야!"

돈까밀로와 빼뽀네



매일 저녁 그녀가 세 번째 전봇대 아래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절대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았다. 내가 "안녕." 하고 말하면 그녀는 "안녕." 하고 대답했다. 소집 영장을 받았을 때 나는 그녀에게 소리쳤다.
"내일 군대 간다!"
"그래 잘가."
소녀는 대답했다.

지금 내 군대 생활을 모두 기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18개월의 군대 생활이었고 부대에서 나는 집에서처럼 지냈다. 3개월은 막사에서만 지냈다. 말하자면 매일 저녁 외출 금지이거나 부대 안에서만 지내야 했다. 18개월이 지나자 나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오후 늦게 도착했다. 사복으로 갈아입지도 않은 채 나는 자전거에 뛰어올라 파브리꼰의 길로 달렸다. 만약 그녀가 또 다른 변명을 늘어 놓았으면 난 그녀의 등 위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을 것이다. 날은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었고 나는 도대체 어디서 그녀를 찾아낼까 생각하며 미친 듯이 달렸다.

그런데 그렇게 찾을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정확히 세 번째 전봇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헤어졌을 때와 똑같았다. 두 눈도 역시 똑같았다. 나는 그녀 앞에서 내려섰다.

"나 제대했어."
나는 제대증을 보이면서 말했다.
"이탈리아가 앉아 있는 도장이지. 이건 완전한 제대를 뜻해. 그런데 만약 이탈리아가 서 있는 도장이면 임시 제대가 되는 거야."
"정말 멋지구나."
그녀가 대답했다. 나는 너무 정신 없이 달렸기 때문에 목이 말랐다.
"그 전처럼 자두 몇 개 먹을 수 있을까?"
내가 물었다. 소녀는 한숨을 쉬었다.
"안됐지만 자두나무는 불탔어."
"불탔다고?" 나는 깜짝 놀랐다.
"자두나무가 불에 타다니 무슨 소리야?"
"여섯 달 전이었어. 어느 날 밤 헛간에 불이 나서 집과 마당의 나무들까지 모두 성냥개비처럼 타 버렸어. 모두 타 버렸지. 두 시간 후에는 벽밖에 남지 않았어. 저기 보이지?"
나는 그 쪽을 바라보았다. 시커먼 벽이 보였고 창문 하나가 붉은 하늘을 향해 열려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너는?"
내가 물었다.
"나도 역시."
그녀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나도 역시 나머지 것들과 마찬가지야. 한 줌의 재로 모두 끝나버렸어."
나는 전봇대에 기대어 서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는 뚫어지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과 그녀의 몸통을 통하여 전봇대의 나뭇결과 호숫가의 풀들이 보였다.
내가 그녀의 이마에 손가락을 대자 전봇대가 만져졌다.

"내가 널 아프게 했니?"
내가 물었다.
"전혀 아프지 않아."

우리는 잠시 말 없이 서 있었다. 하늘은 더욱 더 어둡게 물들어 갔다.

영화 '돈까밀로와 빼뽀네'의 한 장면



"그래서?" 마침내 내가 물었다.
"나는 널 기다렸어."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내 잘못이 절대 아니라는 걸, 약속을 지켰다는 걸 너에게 보여주려고 말이야. 이제 가도 되겠니?"

그 때 나는 스물 한 살이었고 75밀리 박격포라도 가져왔을 것이다. 내가 지나갈 때면 여자들은 마치 장군의 사열이라도 하듯이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나를 눈이 찢어져라 응시하곤 했었다.

"그러면,"
소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이제는 가도 되겠니?"
"안돼."
내가 대답했다.
"너는 내가 다른 일을 끝마칠 때까지 날 기다려야 해. 아름다운 아가씨야, 날 놀리면 안돼."
"좋아."
소녀가 대답했다. 마치 미소를 띠는 것 같았다.
나는 곧바로 자전거 위에 올라탔다. 이제 벌써 12년 동안이나 우리는 매일 저녁 만나곤 한다. 나는 영원토록 소녀를 만날 것이다. 나는 지나가면서 절대로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는다.
"안녕."
"안녕."

이해가 가실는지? 여하튼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약간 흥청거리는 일이라면 난 언제나 찬성이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나에게는 이미 파브리꼰의 길가 세 번째 전봇대에서 매일 저녁 나를 기다리고 있는 소녀가 있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이봐 친구, 왜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거요?"
"대답하지요. 그건 사실이기 때문이요. 산과 강 사이에 있는 그 조그마한 땅덩어리에서는 다른 곳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들은 그 곳 풍경과 잘 어울리는 일들이요. 그 곳에서는 산 사람에게나 죽은 사람에게 아주 좋은 특수한 공기가 감돌고 있소. 그 곳에서는 개들도 영혼을 갖고 있습니다.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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