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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돌입

창밖을 보니 비가 생각보다 많이 오고 있을 때. 장마철이니까 비가 올 만도 한데 왜 놀라는 걸까. 우산도 챙겨왔는데. 방금전처럼, 사무실의 커다란 유리창을 쳐다보니 비가 쏟아지고 빗방울이 송글송글 유리를 덮고 있는 것이 보일 때면 깜짝 놀라곤 한다...실은, 사무실 텔레비전에서 남자의 딱딱한 말소리가 들릴 때에도 나는 자꾸 놀란다. 아주 약간의 긴장. 우리 사무실에서 오전에 텔레비전 소리 크게 틀어놓는 것은, 대통령이나 혹은 누군가의 중요한 발표가 있을 때이다. 내각 교체라든가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라든가, 아니면 청문회라든가, 하여튼 뭐 그런거. 하긴, 귀기울여 들어봤자 세상 별로 달라지는 거 없더라만 그래도 '긴장된 목소리의 누군가'가 말을 하는 걸 들으면 나도 덩달아 긴장된다... 프로젝트를 추진키로 ..

무서운 아르헨티나

어제 케이블에서 틀어주는 축구경기를 봤다. 아르헨티나 리그 1위인 리베르 플라테(River Plate)와 3위인 힘나시아와의 경기였는데, 좀 오래된 경기인지 리베르 플라테에는 아르헨 국가대표인 아리엘 오르테가가 뛰고 있었다. 화질이 좀 별로이긴 했지만 경기 자체는 아주 재미있었다. 또 심판이 한-포르투갈전에서 후앙 핀투에게 레드카드 줬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이 경기의 히어로는 리베르 플라테의 페르난도 카베나기(Fernando CAVENAGHI) 선수. 이제 19살인데, 후반전이 반 정도 흘렀을 때 아주 멋있는 중거리 슈웃! (카베나기는 나이는 어리지만 이탈리아의 명문 클럽 유벤투스와 라치오에서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한다. K리그에도 이런 애 하나 있었으면!) 힘나시아는 힘겹게 만회골을 뽑으려고 애썼지..

면역체계가 무너진 축빠

런던 임페리얼 컬리지의 앤드루 조지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면역학 연구동향'이라는 전문지 7월호에 내놓은 논문 내용. (논문을 다 읽은 것은 물론 아니고, 미 생명공학협회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생명공학의 최근 연구동향을 쉽게 훑어볼 수 있다. 과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 권해주고 싶은 홈페이지다. 업계 소식도 아주 잘 나와 있다. 뉴욕타임스나 BBC같은 보통의 언론들보다 하루이틀씩 빨리 소식이 실린다.) 인간게놈지도가 작년에 만들어졌는데, 첫째 리처드 르원틴 같은 사람이 '20년 가도 다 못 할 것'이라고 악담(?)했던 작업이 10년만에 끝나버렸다는 것, 둘째, 인간의 유전자 숫자가 생각보다 적었다는 것. 10만개는 될 줄 알았는데 기껏 3만개(아직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밖에 ..

추억은 계속됩니다

어제 우리나라와 독일팀의 경기를 보고 잠시 아지님과 드라이브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우리나라 사람들 모두)는 이번 월드컵을 평생 잊지 못할 거라고. 2002년 6월, 23명의 선수들 뿐 아니라 모두가(정말 모두가!) 함께 땀에 절어 울고 웃었던, 기쁨과 탄식을 함께 나누었던 초여름날의 기억은 평생토록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을 겁니다. 거리에서 혹은 집에서까지도 'red'라는 흰 글자가 선명히 새겨진 빨간 티셔츠를 입고 환호하면서 보냈던 이 여름날은, 제 인생에서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겁니다. 미사여구가 아니라, 정말로, 네덜란드라는 먼 나라에서 온 이방인 거스 히딩크가 스물 세명의 청년들을 조련해 일궈낸 기적같은 사건은 우리에게는 마음속 보물로 영원히 남아있을 겁니다. 히딩크가 ..

딸기 선정 오늘의 인물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 파이낸셜 타임스(FT)의 저주 FT가 저주를 했다...는 말은 농담이고, '저주성' 보도를 했다는 얘기다. 요약하자면 "한국이 승승장구 하고 있다. 생각지도 못했던 선전이기는 하지만, 사실 그동안 월드컵 주최국들은 모두 좋은 성적을 냈었다(이른바 홈 어드밴티지?). 잉글랜드(FT는 영국 신문)도 마찬가지였다. 월드컵 72년 사상, 자기나라에서 개최하면서도 결승 못 올라간 나라는 1954년 스위스 한 나라 뿐이다. 그렇지만 이번에 잘 했다고 해서 한국이 앞으로도 계속 축구를 잘 할 것인지는 아무도 몰라. 66년 8강 진출이라는 쇼킹한 업적을 달성했던 북한을 봐라. 그 뒤로는 아예 콧배기도 못 내밀지 않니? 62년 개최국인 칠레도 그 뒤로는 영 꽝이다... (이렇게 한참 악담 아닌 ..

누가 칸에게 바나나를?

국면이 좀 바뀐 것 같다. 심판의 공정성을 둘러싼 '스캔들'이 우리가 예기치 않았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외로운 선지자의 광야의 외침...은 아니고, 아침에 이 문제를 놓고 잠시 부서 내에서 설왕설래가 있었다. 혹자들(주로 국제문제를 다루지 않는 부서의 관계자들)은 "축구 못하던 나라가 갑자기 잘 하니까 시샘해서 하는 소리들"이라는 말로 일축해 버렸는가 하면, 또 다른 축에서는 "각국이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서 심판 판정 문제를 편들거나 혹은 비난하거나 하는 분위기"라며 조금 다른 맥락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느끼는 것은, 판정 시비가 이제 위험한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 외신들을 훑어보니 분위기가 완전히 변했다. 지금까지는 '한국과 이탈리아의 문제'로 취급됐었지만 스페인전 이후로..

기억의 궁전

얼마전에 라는 영어책을 봤다. "딱 50문장만 외우면 영어의 말문이 터진다"는, 그런 책이다. 심심한 차에 문장 50개를 외워버리기로 했다(아직 출근하기 전의 일이다). 문장 하나하나를 외우는 것은 쉬웠다. 아주 쉬운 문장들이었으니깐... 문제는 50개를 순서대로 외워야 한다는 것. 이 시점에서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졌으니, 단 하루만에 50문장을 00번에서 49번까지 순서대로 좌라락 외우는 개가를 올렸다는 것이다. 별로 힘 안 들이고, 침대에 드러누워 그림을 한번 훑었더니 정말 책에 써있는대로 쭈욱- 외워지는 것이었다. 이 어찌 '기적의 학습법'이라 아니할쏘냐. 머릿 속에 그림을 그려놓고 그 그림의 부분부분에 문장을 걸어두면, 그림을 떠올리면서 문장들도 함께 떠올릴 수 있다는 건데, 오 놀라워라... 사..

[스크랩] 라픽 샤미 '말하는 나무판자가 말을 하지 않게 된 이야기'

다니엘 삼촌은 타고난 발명가였다. 그렇게 어린아이 같은 동심을 지닌 삼촌이 세 번이나 구속되어 고문을 받았던 건 지금까지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첫번째 구속은 별 것 아닌 일로 시작된 싸움 때문이었다. 손님 하나가 수리비를 내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삼촌은 손님과 실랑이를 벌였다. 그 손님의 친척이 비밀경찰이라는 것을 몰랐던 삼촌은 시계를 가져가기 전에 수리비를 달라고 고집했다. 말이 말을 부르고 언성이 높아지자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당신이 사기꾼이라는 건 우리 가게에 들어설 때 벌써 알아봤지." 삼촌이 소리쳤다. "어떻게 알았다는 거지? 예언가라도 되나?" 손님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그래 예언가다." 흥분한 삼촌이 말했다. "어디 다시 한번 말씀해보시지." 손님이 빈정댔다. "그래, 난 예..

딸기네 책방 2002.06.21

라픽 샤미, '1001개의 거짓말'

1001개의 거짓말 라픽 샤미 (지은이) | 유혜자 (옮긴이) | 문학동네 | 2002-04-08 오랜만에,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책을 읽었다. 라픽 사미의 소설이라면 예전에 '한줌의 별빛'을 읽은 적이 있다. 시리아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 소년 사이의 우정을 그린 것이었는데, 아주 느낌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1001개의 거짓말'은 소설이라면 소설이고, 우화라면 우화이고, 또 주인공 사딕의 주장대로, 거짓말이라면 거짓말이다. 그렇지만 어느 것이 거짓말이고 어느 것이 진실인지, 이 다단한 세상에서 선뜻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무엇이든 진실의 일면과 거짓의 일면을 갖고 있는데. 순환논법에 회의론이냐고 묻는다면, 단언컨대 그건 아니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유려한 말솜씨로 사딕이 풀어내는 여러가지..

딸기네 책방 2002.06.21

'고급언론'은 없다-

우리나라 스포츠신문들이 '피구, 담합 제의'라는 말도 안 되는 기사를 써서 나라망신을 시킨 요즘. '고급언론'으로 평가받는 다른나라 언론들도 마찬가지다. 그 잘난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나, 공영방송의 대표격인 BBC방송도 '민족주의'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 '사실상의 결승전'이라 일컬어지는 월드컵 브라질-잉글랜드 경기를 앞둔 20일, 양국의 열성 축구팬들의 백태와 언론들의 '설전'이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양국 가운데 더 긴장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그동안의 전적에서 브라질보다 아래에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영국. '고급언론'으로 정평나 있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 BBC방송 등이 모두 나서서 브라질 대표팀의 약점 들춰내기에 나섰다. "브라질의 약점은 중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