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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와 이라크 전쟁

이라크 하면 석유가 떠오르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다. 이라크전쟁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운데, 내 주변에 계신 분들 중에 이라크전과 석유의 관계를 쓰라는 분들이 있으시다. 그 분들이 내게 요구하는 것은 "미국은 이라크의 석유를 노리고 있다, 러시아와 프랑스도 노리고 있다, 그래서 싸운다"라는 식의 아주 단순한 구도인데,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한 국가의 이익이라는 것은 보통 장기적 전략적인 것이고, 당장의 전쟁에서 미국이 이라크 석유를 무진장 퍼가려 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단순논리로는 국가라는 행위자의 모든 행동을 일관되게 표현하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이라크 전쟁의 본질은 석유전쟁이다. 조지 W 부시와 콜린 파월이 수차례 "이라크 공격 목적은 석유가 아니다"라고 강조했지만 이라크전쟁이 석유전쟁이라는 데..

푸핫... 가디언에 실린 '사담-부시 가상 대담'

사담 vs 부시! 영국 가디언 인터넷판에 실린 가상대담임다. 어제 사담이 부시한테 공개토론 제안했는데 부시가 거절했죠. 가디언이 그걸 재미나게 가상으로 만들어놨네요. 토니 블레어(진행자) : 조지 W. 부시와 사담 후세인의 첫 텔레비전 토론을 뉴욕유엔본부에서 생방송으로 보내 드립니다. 우선 각자 간단한 인사말을 해 주시지요. 부시 : 나의 사악한 친구가 전세계에 자유를 확산하기 위한 위대한 미국 기관중 하나인 유엔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후세인 : 고맙소, 대악마. 오늘의 토론을 통해 평화와 인류의 발전을 향한 이라크 국민의 염원과 중동을 파괴하려는 미국의 열망 사이에서 약간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기를 기대하는 바입니다. 부시 : 대답해야 하나요? 블레어 : 아닙니다. 첫번째 질문은 간단히 말해 "당신은..

0, 無에 관한 책 2권- 카플란의 '존재하는 무 0의 세계'와 존 배로의 '無0진공'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 존재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 0, 무(無)의 역사와 의미를 다룬 책 두권이 나왔다. 로버트 카플란의 '존재하는 무 0의 세계'와 존 배로의 '無0진공'이다. 배로의 책은 원제가 아예 '무에 관한 책(The Book of Nothing)'이다. 0이라는 개념이 언제 인간의 머릿속에 떠올랐는지, 그리고 그것이 동그라미로 기호화된 것은 언제인지, 숫자 0의 과거를 들여다보는 데에서 두 책 모두 출발한다. 카플란의 책은 0과 무의 개념을 '박물관 순례' 스타일로 설명하고 있다. 바빌로니아에서 탄생한 0은 고대 그리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라는 강적을 만나면서 세계관의 외곽(지평선 너머)으로 사라졌다가 인도에서 화려하게 부활한다. 중세와 근대를 거쳐 '디지털의 지배자'로 군림하게..

불량감자 다 나와!

"이제는 프렌치 프라이(French fries) 대신 '프리덤 프라이(freedom fries)'로 불러 주세요" 이라크 공격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둘러싼 미국과 프랑스의 대립이 몇달째 계속되고 있죠. 기어이 감정 싸움으로까지 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국가간에 벌어지는 일들이, 어린애들 싸우는 것처럼 유치하게 보일 때도 많습니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지난달 프랑스를 가리켜서 '늙은 유럽'이라고 지칭해서 프랑스의 반발을 샀는가 하면 20일에는 미국 편에 서 있는 영국의 언론이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을 벌레로 묘사한 기사를 실어 말썽을 빚었습니다. 며칠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 외무장관 회의에서는 '늙은 유럽'이 유행어가 되기도 했답니다. 프랑스 외무장관이 ″늙은 유럽에서 온 사람이 한..

[스크랩] 엘리너 파전의 '작은 책 창고' 서문

내가 어릴 때 살았던 우리집에는 아주 작은 방이 하나 있었다. 우리는 그 방을 '작은 책 창고'라고 불렀다. 사실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집의 방은 모두 서재라고 부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2층에 있는 우리들 어린이 방도 책으로 가득 차 있었고, 아래층 아버지의 서재도 책으로 꽉 차 있었다. 책은 그리고 식당의 벽을 메우고 어머니의 방과 계단을 올라가 여기저기 침실까지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당시 우리들에게는 책 없이 생활하는 것보다 옷을 입지 않고 사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책을 읽지 않는 것은 마치 음식을 먹지 않는 것처럼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책이 가득 찬 온 집안의 어느 방보다도 책이 내 눈에 들어와 박힌 곳은 바로 '작은 책 창고'였다. 그것은 마치 꽃과 잡..

딸기네 책방 2003.02.22

어제 인터-바르샤 경기

으으으으으...으아아아아아! 어제도 12시부터 텔렉스실에 숨어들어가, 담요 덮고 몹시도 방만한 자세로 앉아서 테레비에 눈알 두개를 고정시켰습니다(갑자기 회색눈깔분자 와나캣이 떠오름). 그런데...혹시들, 어제 이 경기 보셨어요? 혹시 이 글 읽으시는 분들 중에 바르샤 편 있으신가요? 그런 분은, 조용히, 모니커 꼭대기 오른쪽의 가위표를 누르시기 바랍니다. 저는 당근 인터 편이죠. 그럼 그럼, 앞으로 바티가 뛰게 될 팀인데... 글구 제가 좋아하는 '인간성 좋은 떡대' 비에리가 있는 팀 아니겠습니까. 어제도 다시 한번 확인했지만, 비에리 몸매는 진짜 죽이더군요(라고 쓰면 또 어느분이 Q&A에 항의하실지도 모르겠네여). 가만 보니 얼굴도 잘 생긴 편이라는 생각이...솔~솔~ 그 멍청하고 게으르고 비겁하고 맘..

조 사코,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Palestine 조 사코 (지은이) | 함규진 (옮긴이) | 글논그림밭 | 2002-09-16 조 사코의 . 말 하려고 시작하면 할 말이 많겠지만 너무 귀찮아서, 읽고난 뒤에 얌전히 책꽂이에 꽂아놨다. 라고 해봤자 지금의 정신상태를 반영하듯 책꽂이 주변은 어수선하기 짝이 없지만. 책 자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미국인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청년이 팔레스타인 땅을 돌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그린 만화책이다. 우선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만화다운 코믹함과 극도의 리얼리티가 양립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대단히 잘 그린 그림들이다. 내용은? 군데군데 유머가 엿보이면서도 슬픔을 슬픔답게, 괴로움을 괴로움답게 잘 잡아냈다. 그러면서도 과장하지 않는다. "그냥 보란 말이야, 팔레스타인 사람..

딸기네 책방 2003.02.20

존재하는 무, 0의 세계

존재하는 무, 0의 세계 The Nothing That Is a Natural History of Zero로버트 카플란 (지은이) | 심재관 (옮긴이) | 이끌리오 | 2003-02-10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 존재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 존재와 없음의 문제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것은 숫자 ‘영(0)’이다. 로버트 카플란의 ‘존재하는 무 0의 세계’는 0이라는 숫자를 통해 존재의 역설을 증명하고, 인간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를 살핀다. 저자는 0이라는 숫자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으로 역사적 접근방식을 택했다. 고대유적을 모아놓은 박물관을 돌며 0이 남긴 자취와 그것이 취해온 다양한 형태들을 파악하는 것이다(‘숫자 따라 세계여행’ 식의 나열로 읽지 말고 저자의 안내를 따라 상세..

동화책과 트라우마

"장화 홍련 이야기가 나한테는 트라우마같은 거였어." 얼마전 함께 산책하던 여자선배가 그런 얘기를 했다. 동화책 읽다가 정신적 외상을 입었던 기억, 다들 한두가지씩은 갖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트라우마' 얘기로 옮아갔는데, 나한테 내상을 입힌 책이 있다면 두말할 나위 없이 로빈훗과 콩쥐팥쥐다. 먼저 콩쥐팥쥐 얘기부터 하자면 뒷부분 콩쥐가 신발 덕에 원님 각시가 되고 난 이후의 줄거리인데, 팥쥐가 콩쥐를 죽여서(아마도 여기서부터 이 단순한 이야기는 동화의 레벨을 훌쩍 넘어서게 되는 것이 아닐까) 연못 속에 던진다. 그리고 연꽃으로 다시 태어난 콩쥐는 아무도 안 볼 때에 팥쥐의 머리를 잡아당기고 팔뚝을 때린다. 난 이 부분을 읽을 때, 착하디 착한 것으로 설정돼 있는 콩쥐가 왜 갑자기 변했는지 이해하..

딸기네 책방 2003.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