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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모토 레이지, '니벨룽겐의 반지'

마쓰모토 레이지의 '니벨룽겐의 반지'(서울문화사) 1부와 2부를 읽었습니다. 마쓰모토 레이지 하면, 우리나라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우주전함 야마토, 하록선장, 그리고 은하철도 999. 국민학교 저학년 때 은하철도 999 만화책을 몇권 봤는데, 기분이 아주 이상하고 음침한 느낌이 들었다는 기억만 남아 있습니다. 재작년에 극장용 후속편을 비디오로 빌려다봤는데 영 꽝이더군요. 니벨룽겐의 반지는 아시다시피 독일의 전설이죠. 그리고 바그너(와그너?)의 오페라이기도 하구요. 마쓰모토는 바그너의 팬이라고 하는군요. 이 만화는 그 오페라를 모티브로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물론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는 아니고, SF물입니다. 첫 장면부터 저의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우주선입니다. 일본의 SF물은 메카닉..

딸기네 책방 2001.03.21

은빛 여우

지난 주말에 조지 마틴의 판타지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를 열심히 읽었다. 얼마나 재미있게 읽었냐면, 내 몸통이 거의 소설 속으로 들어갔다. 판타지 소설에 흔히 나오듯이, 각 등장인물들에게는 가문의 문장이라는 게 있다. 나는 내 문장을 '은빛 여우'로 정했다. 왜냐? 멋있어보일 것 같아서. 얼음과 불의 나라는 동부, 서부, 북부, 남부로 나뉘어 있는데 주인공은 북부의 영주이다. 그러니 내 눈에 북부가 가장 멋있어 보일 수밖에. 실은 나는 추운 곳을 아주 싫어하는데, 주인공을 따라서 북쪽 나라에 살기로 했다. 주인공보다 더 훨씬 북쪽에. 북쪽 나라에는 언제나 늑대가 있다. 그러니 나도 내 문장을 늑대 종류로 정해야 하는데 주인공 집안의 문장이 바로 다이어울프(늑대)가 아닌가. 그래서 할 수 없이 나는 늑대..

내 그림자 중의 하나는

내 그림자 중의 하나는 모든 그림자가 그렇듯이 늘 나를 따라다니는데, 그림자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고 정답게 생각하는 놈이다. 내가 간간이 사색을 할 때마다 내 뒤에서 나를 흘낏흘낏 바라보는 이 그림자는 가끔씩 건방지게도, 내 등뒤에서 고개를 내밀고 내 손이 하는 일들을 지켜보기도 한다. 내가 지뢰찾기에 열중해 있을 때, 내가 컴퓨터 고스톱을 치고 있을 때, 내가 홈페이지에다 시덥잖은 소리를 쳐넣고 있을 때 무슨 재미난 구경거리나 생긴 것처럼 들여다본다. 어린 아이들은 손가락을 자기 코 앞에 갖다대고 그걸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눈알을 가운데로 모으는 놀이를 한다. 난 어른이 된 지금도 가끔 그 놀이를 하는데, 손가락을 동원하지 않고 맨 얼굴로도 코 주위에 눈알들이 모이게 할 수가 있다. 그림자는 생선처..

[스크랩] 에필로그 - 칼 세이건이 인류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

에필로그 - 칼 세이건이 인류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 (Billions and Billions) 칼 세이건 (지은이), 김한영 (옮긴이) | 사이언스북스 칼 세이건. 의 작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대중적인 우주과학자. TV에 많이 등장했고 각종 사안의 코멘터로도 애용됐던. 그 외에, 내가 이 사람에 대해 갖고 있는 지식은 없었다. 는 말 그대로 에필로그다. 과학저술가로서 명성을 떨쳤던 세이건이 골수암으로 죽어가면서 '인류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다. '마지막'에 방점을 찍는다면, 그가 남긴 에필로그가 환경파괴에 대한 경고문이라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저 광활한 우주를 바라보고 살았던 스타 과학자가 하고 싶은 얘기가 바로 환경 얘기였다. 물론 책 뒷부분에는 낙태에 대한 입장 등 기고문과 연설문들이 몇개 실..

기억창고에서 끄집어낸 해적판 이야기

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최근 읽은 만화 한 편을 소개하면. '하늘은 붉은 강가'는 바로 '나같은 사람', 나이도 잊은 채 어렸을 때 만화방에서 죽때리던 기억에 사로잡혀 헛된 망상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만화다. 여기서 잠시 딸기의 전사(前史)를 알아볼 필요가 있음. 국민학교 때부터 각종 만화방을 섭렵했었다. 그 때 가장 감명깊게 읽었던 만화 중의 하나가 바로 '나일강의 소녀' 시리즈였으니. 작가 이름은 당시 해적판에는 '유혜정'이라고 돼 있었음. 1부인 '나일강의 소녀'에 이어 '나일강의 여신', '나일강의 사랑', '나일강이여 영원히', 그리고 연속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나일강의 수수께끼'와 같은 후속편들이 줄줄이 따라붙는 대작이었다. 이 만화를 보고 고고학자가 될 결심을 했다니,..

H2

나한테도 열일곱살이 있었을텐데, 대체 어디로 갔을까. 바다 건너온 만화책이 이렇게 마음을 흔들어놓다니. 내 마음은 지금 마구 흔들려서, 공중을 떠돌고 있다. 머릿속마저, 야구공처럼 어딘가를 한정없이 날아다니고 있다. 열일곱살. 그 나이를 떠올리면서 칙칙한 교실과 여고괴담 분위기의 유관순 초상화, 무거운 도시락통 같은 걸 떠올려야 된다는 건 비극이다. 그래서 난 좀 다른 걸 떠올려보기로 했다. 내가 열일곱살 때, 서울올림픽이 있었다. 그날, 친구와 올림픽공원에 갔었다. 9월17일, 날짜도 잊어버리지 않는다. 올림픽 개막식 날이었으니까. 올림픽 공원에 갔다는 것 외에는 딱히 내세울만한 추억거리가 그날 벌어졌던 것도 아닌데, 내 머리 속에는 열일곱살에 대한 그런 단편적인 기억들만 떠오른다. 조각조각 흩어진 기..

리드뱅

Lie-De-Vin (리드뱅) Berlion (글) | Corbeyran(그림) | 비앤비(B&B) 여러 만화제에서의 수상경력이 가장 먼저 눈에 띄임. 첨엔 무슨 엽기물처럼 보이다가, 그 다음에는 이웃집 미스테리 여인을 둘러싼 탐정소설로 보이지만 결국에 가서 보면 한 소년의 '성장'을 둘러싼 이야기. 아주 재미있음. 엄마 없는 소년. 성격이 판이한 '고모들'과 함께 사는 고아. 얼굴엔 포도주색의 반점이 있음. '룰루'라는 개를 키웠음. 왜 하필 주인공은 개 이야기를 이렇게 많이 하는 걸까? 룰루가 어떤 끔찍한 경위로 인해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대체 무슨 엽기적인 이야기가 나올까 의심해가며, 대체 이 만화의 장르는 무엇일까를 생각했음. 이 때까지 나의 결론- 이건 탐정물이다! 이웃집 여인의 살인극 ..

딸기네 책방 2001.02.20

토요일밤에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다

오늘은 -벌써 어제가 됐나- 낮에 회사에서 대학 친구들과 이른바 '채팅'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든 MSN 메신저를 다운받으면 하루 종일 채팅을 할 수가 있다. 실은 '하루 종일'이라는 건 좀 맞지 않고, 내가 친구로 지정해놓은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인터넷에 접속해 있을 때면 아무 때고 대화를 나눌 수가 있다.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프로그램을 다운받았다. 회사 컴퓨터는 늘 켜져 있고 랜으로 연결돼 있으니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다. 그런데 '대화방'이라는 말과 '채팅룸'이라는 말은 참 다른 것 같다. 우리 말과 영어라서 다르다는 게 아니고, '채팅'은 잡동사니 수다를 떠는 것이지 '대화'라는 말로 번역되기엔 좀 그렇다는 의미다. 실제 내가 채팅한 내용은 어디까지나 '채팅'이었을 뿐이지 '대화'라고 ..

부유해진 세계, 가난해진 사람들

부유해진 세계, 가난해진 사람들 Richesse du Monde, Pauvrete's des Nations 다니엘 코엔 (지은이) | 주명철 (옮긴이) | 시유시 파리 제1대학 경제학교수인 다니엘 코엔의 저서입니다. 아시아 경제위기 이전에 쓰여졌다는 점과, 프랑스의 학자가 쓴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었습니다. 유럽인들은 가난한 나라들의 세계 무역시장 진출을 마치 무슨 야만인들의 침략이나 되는 양 경계하고 무서워하고 있는데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말고 내부적으로 잘 해라, 내부의 불평등을 없앨 궁리를 하는게 세계화에 대한 가장 올바른 대처방식이다, 그런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세계화-> 불평등 확산'의 직접적인 등식을 거부하고 있네요. 여기저기 쓴 글을 모아놓은 것 같아서 크게 재미있지는 않았는데 하..

딸기네 책방 2001.02.02

헬로 키티

모처럼 재미있게 주말을 보냈다. 뭐 특별히 '재미난' 일을 했던 건 아니지만, 나와 남편이 같이 주말에 집 밖으로 나갔다는 것만 해도 우리 부부에겐 대단한 일이었다. 더우기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모두 외출을 했으니,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이 역사에 남을 외출의 첫 걸음은 토요일 오후 2시30분에 이뤄졌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정도로 일찍 일어난 것은 딸기의 허즈번드에게는 거의 있기 힘든, 매우 드문 일이다. 외출 장소는 일산 킴스클럽. 그동안 장 보는 것을 게을리한 탓에 집에 모자라는 것들이 많았다. 내 바지와 남편의 트레이닝복(일명 땀복이라 부르는 것), 라면, 귤, 김, 햄, 싱크볼, 뒤집개를 샀다. 그리고 남편의 숙원사업이던 키티 인형을 샀다. 이걸 사줬더니 남편은 간만에 주말 내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