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젠장할.
오늘부터 일주일간을 '통곡의 기간'으로 정할까 혹은 열받는데 아예 결승전 시청을 말아버릴까 하다가, AC밀란을 응원하기 위해서라도 결승은 꼭 봐야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습니다(어차피 볼 거면서 ^^).
열받는 세월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귀염둥이들이 떼거지로 몰려있는 발렌시아가 선전에도 불구하고 인터에 밀리면서 1차로 상심. 그치만 인터 역시 괜찮은 팀이니까 밀란 더비에서는 인터 응원했는데 어제 2차로 절망. 안 되면 호나우두-히바우두 맞대결이나 기대해보자 하면서 하루를 견뎠는데 오늘 3차로 완전히 좌절. 이제 남은 것은 AC밀란을 응원하는 것 밖에 없군요.
지구방위대 라인업은 진작부터 불안하다는 얘기가 나왔었죠. 1차전에 선발출장했던 호나우두(대체 왜 그렇게 자주 다친단 말이냐) 대신에 라울이 원톱으로 나왔는데요, 맹장염 수술한다고 한 달이나 쉬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중앙에서는 마켈렐레가 빠지고 캄비아소가 투입됐는데요, 참 좋아하는 선수입니다. 챔편스 초반에 AS로마와 할 때였나요, 놀랍도록 아름다운 돌파를 보여줬었죠. 아르헨 리그 득점왕 출신이고요. 문제는 캄비아소가 들어왔다는 게 아니라, 마켈렐레가 빠졌다는 점. 마켈렐레같은 플레이어를 축구용어로 '살림꾼'이라고 하지요. 전형적인 살림꾼이 없다는 것 때문에 어딘가 불길하더라구요, 처음부터. 여튼 지구방위대 중앙에는 캄비아소-콘세이상-구티가 섰어요.
반면 유벤은 '최상의 전력'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넘의 다비즈를 비롯해 몬테로와 타키나르디가 다 복귀한 것을 비롯해 1차전에서 괜찮은 모습을 보였던 트레제게도 컨디션 좋아보였고요. (재미난 것은 양팀이 모두 팀 컬러를 블랙-화이트로 하고 있다는 사실... 나만 재미있나?)
오늘 경기는 시종 유벤 분위기였습니다. 전반 초반부터 유벤이 마드리드 길목을 요소요소 차단해서 환상 패스웍이 전혀 발휘되지 못했고요. 네드베드-델피에로-트레제게로 이어지는 전반 12분 첫 골. 전반 내내 유벤이 몰고가다가 결국 43분에 델피에로가 두번째 골을 터뜨렸습니다.
뚱뚱이아저씨는 결국 콘세이상을 빼고 후반 7분에 호나우두를 투입했습니다(울 회사 후배-양촌장이라고 말 못함-는 자꾸만 호나우두가 간질발작이라고 주장해서 저를 화나게 만들곤 합니다). 그러나 별무소득.
후반 22분, 호나우두가 애써 얻어낸 피케이. 그런데 피구가...그걸 못 넣었다 이겁니다. 누구누구는 피구 망신살이라고 했는데, 사실 그런 건 아니란 말예요...제가 피구 광팬이어서가 아니라(꼭 아닌 것도 아니지만) 포워드들이 그렇게 못 뛰는데 미드필더가 그 정도 해줬으면 됐죠. 머리가 아프다고 배로 공부할 수 있나요...(ㅠ.ㅠ)
여튼 이날의 실축, 피구 인생에 남을 것 같아요. 피구가 피케이 못 넣는 거 두번 봤는데--오늘의 실축은 사실 변명의 여지가 없죠. 부폰한테 다 읽히고서 찬 꼴이니. 원래 피구가 피케이 넣을 때 타이밍 조절을 아슬아슬하게 아주 잘 하는데, 왜 그랬나 몰러.
뒤이어 지단님마저 황금찬스를 놓쳤기 때문에 거의 절망적인 상황으로 치달았습니다. 그리고 후반 27분, 네드베드가 기어이 쐐기골을 넣어버렸습니다. 캄비아소 대신 뒤늦게 맥마나만이 투입됐지만 유벤 쪽에서 트레제게를 빼고 카모라네지(수비도 잘 하고 공격도 잘 함)를 넣는 것으로 맞받아쳤지요.
후반 44분에 지단님이 한 골 넣기는 했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어디셔널 타임 5분까지 지나고, 3:1로 유벤 승리.
유벤이...오늘 사실 너무 잘 했습니다. 막강 포백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고 네드베드의 활약은 진짜 눈부셨습니다. 유벤이 지단 보내고 네드베드 들여올 때 걱정들 많이 했는데 지금은 팬들이 더 잘 된 일이라고 좋아하고 있다면서요. 다만 멍청하게도 네드베드가 아무 쓸데 없이 노란딱지 받아 정작 결승에 못나온다는 점. 경기 끝나고 이겨놓고도 엉엉 우는 걸 보니 안됐더군요. 부폰이랑 다비즈(블랙리스트~) 꼴보기 싫은 두 놈도 진짜 잘 했고...
호나우두가 오늘 '존재감'으로 상대팀을 방해한 것 외에 활약하지 못했던 것, 그리고 '챔편스리그의 사나이'인 라울이 거의 못 움직인 것, 그래서 지단과 피구의 플레이도 미드필드에서부터 막혀버린 것 등등등 레알의 패인을 찾으라면 많겠죠. 델보스케 감독은 아무래도 이에로를 빼야할 것 같아요. 사실 이에로보다 파본 나왔을 때가 더 기민하게 움직였었거든요.
여튼 델보스케 감독은 골치아프게 됐어요. 자칫 두 마리 토끼를 놓칠 형편이니. 지금 라 리가 순위가 3위로 밀려났죠. 이제 다섯 경기 남았다는 것 같은데, 지난번에 마요르카한테 그렇게 깨지고 꼴찌팀인 레크레아티보 상대로 해서도 졸전을 펼치고... 저는 이 감독을 좋아하거든요. 델보스케는 '마드리드맨'입니다. 여기저기 명문팀 돌아다니는 '명장'이 아니라, 마드리드 헬스센터 관리를 거쳐서 유스팀에 있다가 기어이 1군으로 올라온 사람인데, 그래서 유스팀 출신 선수들을 잘 기용한다고도 하더군요. 하긴, 그렇게 보면 리피감독도 '유벤 맨'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이제 유벤과 밀란의 결승만 남았네요. 델피에로와 인자기라니, 흥이다 흥. 둘다 대단한 선수들이긴 하지만 테크니션들끼리의 대결은 재미 없잖아요. 분명 쪼잔한 경기가 될 거야...(저주 --파파팟) 여튼 밀란 이겨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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