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ippo Inzaghi
Inzaghinho
인자기와 그의 동생 시모네의 우애는 각별하다. 섬유회사의 경영자인 아버지와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들 형제는 유럽 대개의 소년들이 그렇듯이 어렸을 때부터 축구에 매달렸고, 축구선수로서의 꿈도 함께 키워나갔다. 유년 시절부터 함께 축구를 해오며 깊은 우애를 쌓아온 이들 형제는 성인이 되어서도 변함없는 우애를 자랑하고 있다. 사람들은 인자기의 친동생 시모네를 가리켜 ‘Inzaghinho’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자기는 시모네가 자신과 같이 하위리그에서 임대생활을 보낼 때 동생에게 진심어린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았고, 동생의 성공을 옆에서 빌어주었다. 그 결과 시모네는 98/99 시즌 15골을 몰아넣는 괴력을 과시하며 형에 이어 성공신화의 주인공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물론 시모네가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는 시모네 본인의 노력이 가장 크게 작용했겠지만, 그의 형 인자기의 관심과 사랑도 시모네의 성공신화에 크게 일조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시모네의 아들이 태어났을 때 누구보다 기뻐한 것도 인자기였다. 평소 아이들을 좋아해오던 인자기는 시모네의 아들 톰마소 인자기(Tommaso Inzaghi)의 탄생을 기려 득점을 기록한 뒤 유니폼 아래에 받쳐입은 톰마소의 탄생을 축하하는 메시지가 담긴 언더셔츠를 들어올렸을 정도다. 지금도 “톰마소 없이는 살 수 없다”라며 조카에 대한 진한 사랑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 형제는 이탈리아 대표팀에 함께 차출되는 보기드문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으며, 99/00 시즌에는 유벤투스와 라치오 소속으로 스쿠데토 경쟁을 펼친 결과 동생 시모네의 승리로 끝난 바도 있다.
Marco van Basten
인자기의 어릴적 우상이자 가장 존경하는 선수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공겨수 쥬세페 메아차, 루이지 리바, 파올로 로씨가 아니다. 그는 네덜란드와 AC 밀란의 ‘골든 제너레이션’의 주축으로 활약하며 ‘스트라이커의 교과서’로 추앙받는 마르코 반 바스텐을 어릴적 우상으로 삼아왔으며, 지금도 가장 존경하는 선수로 주저하지 않고 반 바스텐을 꼽는다. 위치와 거리, 수비수의 방해에 전혀 개의치 않고 상대 골네트를 시원하게 가르는 반 바스텐의 플레이가 인자기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자국 선수 중에서는 알레싼드로 알토벨리를 존경하며, 독일의 칼 하인츠 루메니게 역시 그의 우상이다.
인자기는 반 바스텐이 달고 뛰었던 등번호 9번이 새겨진 AC 밀란의 유니폼을 입고 뛰는 것을 커다란 영광으로 삼고 있다. 인자기 본인은 반 바스텐의 기량에 다다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문전에서의 위치 선정 능력과 찬스에서 득점으로 연결하는 골 결정력만큼은 반 바스텐의 그것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다. 더군다나 패스의 줄기를 읽어내고 상대의 오프사이드를 절묘하게 뚫은 후 득점을 성공시키는 장면에서는 그의 영리함과 동물적인 감각을 느낄 수도 있다.
혹자들은 이러한 인자기를 가리켜 ‘주워먹기의 황제’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뛰어난 드리블링과 강력한 슈팅, 빠른 스피드만이 스트라이커가 지녀야 될 요소는 결코 아니다. 인자기는 호나우두의 현란한 드리블도 없고,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의 대포알 슈팅도 없으며, 마이클 오웬의 총알같은 스피드도 지니지 못했지만, 패스의 줄기를 읽어낸 후 뛰어난 공간 활용능력과 순간 스피드를 이용해 득점을 성공하는 모습, 그리고 볼이 없을 때도 쉽새없이 움직이는 그의 활발함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인자기가 가진 최정방 스트라이커로서의 능력이다.
Privacy
인자기는 운동선수임에도 축구와 공부를 병행하며 공인 회계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는 학구파다. 그의 어머니도 인자기의 이러한 모습을 자랑스워하고 있으며, 자신의 아들을 최고의 신랑감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정도다. 어렸을 때부터 미키 마우스 캐릭터를 좋아했으며, 지금은 어린이들을 상당히 좋아한다. 하지만, 이탈리아 언론을 통해 숱한 염문설이 나돌았던 탓인지, 언론을 통해 이성과 관련된 일이 공개되는 것은 극도로 꺼린다.
여가시간을 이용해 F1 레이스, 농구, 배구와 같은 스포츠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틈틈이 스포츠 잡지와 스릴러물도 읽는다. 고향 피아첸자에서 버섯 채취와 낚시를 즐기기도 하며, 테니스와 비치 발리볼도 즐긴다. 여름 휴식기에는 그의 절친한 친구들인 크리스티안 비에리, 파비오 칸나바로, 알레싼드로 델 피에로와 등과 함께 보내곤 하는데, 이들은 사르디니아와 같은 휴향지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특히 비에리와는 각별한 우정을 자랑하고 있다.
어두운 색을 좋아하는 인자기는 외출 시에도 검정색이나 회색, 짙은 파랑색 계통의 외출복을 즐겨 입으며, 경기에 임하기 앞서 음악을 즐겨 듣고 그날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면 경기가 끝난 후에 같은 음악을 반복해서 듣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인자기의 이상형은 이탈리아의 모델 겸 영화배우인 모니카 벨루치이며, 지금은 이탈리아의 뮤지컬 배우 사만타 데 그레네트(Samantha De Grenet)와 교제를 나누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벤투스 시절에는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딸 스테파니아 리피와의 염문설을 퍼트리기도 했다.
Biography
1973년 8월 9일 피아첸자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인자기는 19세가 되던 1992년에 고향 팀 피아첸자 성인팀에 합류하며 본격적으로 축구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하지만 인자기는 자신의 프로무대 데뷔 시즌인 91/92 시즌에 2번의 출장기회를 얻는데 그쳤고, 다음 시즌에는 세리에 C1 소속 레페로 임대생활을 떠나게 된다. 레페로 임대된 인자기는 21경기에서 13골을 터트리는 수준급 활약을 선보였지만, 또 다시 세리에 B 베로나로 임대되야만 했다. 하지만 인자기는 더 이상의 임대생활을 원치 않았고, 다미아노 톰마지, 지안루카 페소토 등과 함께 베로나의 주축 선수로 자리잡은 후 36경기에서 13골을 터트리는 활약으로 피아첸자에게 자신의 가치를 유감없이 증명해 보였다.
2시즌 동안의 성공적인 임대생활을 통해 피아첸자로 복귀한 인자기는 94/95 시즌에 15골을 터트리며 팀의 세리에 A 입성에 일조, 최근 몇 년간 세리에 B와 C를 전전하던 피아첸자가 꿈에도 그리던 세리에 A 승격에 일등공신 역할을 해냈다. 하지만 인자기와 피아첸자는 세리에 A에서는 동지가 아닌 적으로 만나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나 보다. 그간 자신의 활약상을 눈여겨보던 세리에 A 클럽들로부터 영입제의를 물리치지 못한 인자기는 결국 파르마를 선택하며 고향을 떠났기 때문이다.
많은 기대와 부푼 꿈을 안고 입성한 파르마에는 불가리아의 미국 월드컵 4강 주역 흐리스토프 스토이치코프와 지안프랑코 졸라와 같은 당대 최고의 포워드들이 즐비해 있었다. 세리에 A 경험이 전무한 22살의 어린 인자기에게 이들은 분명 넘기 힘든 산이었고, 오히려 배워야 될 부분이 많은 축구인생의 선배들과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인자기는 연습경기에서 전치 2달의 부상을 입는 바람에 몸 상태와 컨디션이 저하되며 15경기에 출전해 고작 2골만을 기록하는 그의 커리어 사상 최악의 오점을 남기게 됐고, 결국 당시 파르마의 구단주 스테파노 탄지와 감독 네비오 스칼라는 에르난 크레스포와 엔리코 키에사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인자기의 방출을 선택하게 됐다. 파르마에서의 방출후 인자기는 훗날 스스로 ‘생애 최고의 선택'으로 꼽는데 주저않는 아탈란타 행을 선택, 재기의 꿈을 펼치게 된다.
파르마에서의 실패를 바탕으로 세리에 A의 하위팀 아탈란타에 입단한 인자기는 한 때 이탈리아 최고의 유망주로 꼽혔던 지안루이지 렌티니와 투톱을 이뤄 신들린 듯한 득점행진을 이어갔다. 결국 인자기는 그 해 24골을 기록, 삼프도리아의 신예 스트라이커 빈첸조 몬텔라와 AS 로마의 아벨 발보와의 치열한 경쟁 끝에 22골의 몬텔라와 아벨 발보를 제치고 세리에 A 득점왕에 등극하는 생애 최고의 영광을 안게 된다. 이 때부터 인자기는 이탈리아의 전국구 스타로 자리잡았고, 결국 1997년에는 이적료 1,000만 달러에 이탈리아 최고의 명문클럽인 유벤투스에 입단한다.
인자기는 유벤투스 입단 첫 시즌에 세리에 A와 챔피언스리그에서 각각 18골과 6골을 뽑아내며 팀의 세리에 A 우승에 일조, 자신이 큰 물에서도 통할 수 있는 선수라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이때의 활약으로 98 프랑스 월드컵에 출전할 이탈리아 대표팀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지만, 본선에서는 크리스티안 비에리와 로베르토 바죠 투톱에 밀려 교체멤버로 2경기에 출전하는데 그쳤다.
98/99시즌과 99/00시즌에도 각각 13골, 15골 씩을 뽑아내며 팀 내에서 최다골을 기록하며 세리에 A의 정상급 스트라이커로서의 명성을 드높인 인자기는, 유로 2000에서는 크리스티안 비에리의 부상을 틈타 이탈리아 대표팀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출전하게 됐다. 하지만 인자기는 많은 이들의 기대와는 달리 페널티 킥과 필드 골로 각각 한 골씩만을 넣는데 그치는 부진을 보였으며, 프랑스와의 결승전에서는 벤치에 앉아 팀의 쓰라린 역전패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유로 2000을 통해 인자기는 대표팀에서 자신의 입지를 넓혀나갈 수 있게 됐고, 2002 한일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도 7골을 터트리는 맹활약으로 이탈리아의 본선행에 크게 일조하기도 했다.
00/01 시즌에 접어들며 인자기는 또 다른 시련을 맞이하게 됐다. 그의 소속팀 유벤투스는 챔피언스리그 1차예선에서 E조 최하위로 조기 탈락하는 망신을 당했고, 시즌 초반부터 슬럼프 기미를 보인 인자기는 시즌 막판에 가서는 유로 2000에서 이탈리아를 침몰시키는 골든골을 뽑아냈던 다비 트레제게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게 된 것이다. 이때 인자기가 기록한 11골은 그의 유벤투스 커리어 사상 가장 적은 골 수이며, 인자기는 당시 감독 카를로 안첼로티와의 마찰로 결국 3,500만 달러 가량의 이적료로 AC 밀란 입단을 택하게 됐다.
AC 밀란 입단 첫 해 인자기는 12경기에서 6골을 뽑아내는 상승세를 보이며 안드레이 셰브첸코와 함께 팀의 공격진을 이끌었지만, 키에보와의 경기에서 골키퍼 루파텔리와 충돌하며 전치 3개월 가량의 부상을 입는 바람에 초반 상승세에 찬 물을 끼얹게 됐다. 하지만 부상에서 복귀한 인자기는 잔여 8경기에서 4골을 성공, 도합 20경기에서 10골을 뽑아내며 5시즌 연속 두 자리수 득점 행진을 이어갈 수 있었다.
2002 월드컵에서도 대회 직전에 입은 부상의 여파로 비에리와 토티에게 주전 자리를 내줘야만 했으며, 어렵사리 진출한 16강에서도 홈팀 한국을 맞아 안정환에게 연장 골든골을 얻어맞으며 자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밖에 없었다. 인자기가 2002 월드컵에서 남긴 기록은 크로아티아전 후반 교체출장과 멕시코전 선발출전후 교체가 전부였다.
인자기는 월드컵에서의 실패후 02/03 시즌을 맞아 최고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세리에 A와 챔피언스리그에서 연일 득점포를 쏘아올리며 팀 동료 안드레이 셰브첸코의 부상 공백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해주었으며, 유럽컵 대항전에서도 알레싼드로 알토벨리의 종전 이탈리아 기록(39골)을 훌쩍 뛰어넘어버린 것이다. 이제 인자기는 독일의 게르트 뮐러의 기록(67골)에 과감한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클럽에서의 활약에 비해 대표팀간의 메이져 대회에서는 이렇다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인자기. 선수생활에 있어 마지막 메이져 대회가 될 것으로 보이는 유로 2004와 2006 독일 월드컵에서 그의 대활약을 기대해 본다. 더불어 유벤투스에서 이루지 못한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AC 밀란 소속으로 차지할 수 있을지 여부도 궁금해진다.
“He is the most dangerous forward in Europe“ - Karl-Heinz Rummenigge says
“인자기는 비범한 능력을 지닌 스트라이커다. 그는 강인한 육체와 빠른 몸놀림, 여기에 뛰어난 두뇌까지 갖춘 선수다. 그는 경기 내내 그라운드에 두 발을 붙이고 있는 법이 없었다. 그와 함께 투톱으로 출전한 히바우두가 이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는 바람에 그는 고립될 수밖에 업었지만, 이런 것들이 인자기의 골을 향한 본능을 제지할 수는 없었다.”
“현재 그는 유럽에서 가장 위협적인 스트라이커이다. 그가 게르트 뮐러의 기록을 깨는 것을 원한다고 했는가? 그는 아직 29살의 젊은 나이이기에 충분히 가능하다. 나는 뮐러의 플레이를 지켜봤지만, 인자기는 뮐러와는 다른 유형의 선수다. 그는 뮐러보다 더 많이 움직이며, 더 빠른 스피드를 지녔다.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뮐러와 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인자기는 뮐러와는 다른 유형의 새로운 챔피언이다.”
※ 바이에른 뮌헨 vs AC 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홀로 2골을 뽑아내며 AC 밀란의 승리를 이끄는 인자기를 지켜본 후. (칼 하인츠 루메니게 - 80년대 독일 축구를 이끌어온 전설적인 스트라이커. 현재는 바이에른 뮌헨의 부회장 직을 역임하고 있으며, 클럽의 실질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P.R.O.F.I.L.E
생년월일 : 1973년 8월 9일
국적 : 이탈리아
신장 : 181cm
체중 : 74kg
별명 : Super Pippo
포지션 : 스트라이커
세리에 A 데뷔 : Atalanta 1-1 Parma (1995.08.27)
A매치 데뷔 : Italy 3-3 Brazil (1997.06.08)
소속팀 : AC 밀란 (2001~ )
이전 소속팀 : 피아첸자(91/92, 94/95), 레페(92/93), 베로나(93/94), 파르마(95/96), 아탈란타(96/97), 유벤투스(97 ~ 2001)
주요경력 : 96/97 세리에 A 득점왕, 97/98 세리에 A 우승, 97 이탈리아 슈퍼컵 우승, 98 프랑스 월드컵 출전, 유로 2000 출전, 2002 한일 월드컵 출전
(사커라인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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