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공은 둥글대두

AC밀란-인터밀란 4강전

딸기21 2003. 5. 9.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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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레알마드리드-유벤투스 경기에 이어, 오늘은 챔피언스리그 또다른 4강전, AC밀란-인터밀란 경기를 봤습니다. 오늘 회사 안 가고 노는 날이라서 내내 중계방송만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챔편스 32강전은 열심히 봤는데 16강전은 출장가 있느라(그넘의 전쟁...) 별로 보지 못했고, 8강전 시작된 뒤에는 MBC ESPN에서 AC밀란 경기를 안 보여줘서(죽일 넘들) 요새 'AC밀란 결핍증'에 걸려있었습니다. 게다가 밀란 더비를 보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에 그만큼 기대도 컸지요. 더비도 그냥 더비가 아니라 챔편스 세미파이널!!!

이번 경기는 AC밀란 홈인 산시로구장에서 열렸습니다. AC밀란은 최근 공격진이 괜찮았다고 들었고 또 홈이니깐 공격을 좀 할 것이고, 인터는 보나마나 수비-역습을 할 것이다 라고 생각했는데...역시나였습니다.
인터의 스타일로 보자면--'수비만 하는 축구'를 하다고, 쿠페르 감독이 8강전까지 치르는 동안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이번주 챔편스 하일라이트에 밀란 형제들을 집중조명하는 순서가 있었는데, 인터의 이번 시즌 경기 보신 분들이라면 다 아시겠지만--사실 발렌시아랑 붙은 8강전에서도 홈-어웨이 모두 발렌시아의 우세였죠. 인터가 4강까지 올라온 것은, 오로지 톨도 골키퍼의 힘이었다! 해도 될 정도로. 지난번 발렌시아랑 경기할 때 톨도 골킵이 자기네팀 디비아조에게 성질을 부렸는데(그때 톨도가 디비아조에게 무슨 말 했을까 굉장히 궁금했었는데, 어제 하일라이트 보니 "심판한테 항의하는 짓 그만하고 수비나 잘 해라"라고 했다더군요) 저는 사실 경기 도중 성질 부리는 선수들 아주 싫어하거든요. 그런데 8강전에서 톨도는 과연 성질낼만 했습니다. 독일팀이 월컵때 칸의 힘으로 올라왔다고 하지만, 이번에 인터야말로 골킵 덕에 출세한 케이스입니다.

이번 밀란 더비의 대략적인 라인업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우선, 골킵들 간의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됐었죠.
AC밀란의 골킵은 디다. 브라질 국대팀에서 마르코스 골킵의 대를 이을 선수입니다. 저는 지난해 상암구장에서 열렸던 한국-브라질 A매치에서 디다 골킵 봤지요^^ 인터는 앞서 말했듯이 톨도. 톨도는 196cm, 디다는 195cm. 둘다 신체조건은 아주 좋지요(실력은 물론 톨도가 한수 위!)

AC밀란에는 히바우두가 벤치에 앉은 대신 요즘 '수퍼 피포'로 날리고 있는 인자기(인자기 애칭이 '피포'예요)랑 셰브첸코가 투톱으로 나왔습니다. 인터에는 세계 최강의 투톱 비에리-크레스포가 있지만 비에리가 발렌시아전에서 다쳐서 못 나왔습니다(엉엉엉 눈물 주르륵). 그래서 크레스포-레코바 투톱이 나왔어요.

양팀의 빗장수비 경쟁 또한 볼만했죠(실은 볼 만했던 건 수비밖에 없더라는...-.-)
AC밀란의 수비는 그 유명한 말디니-네스타(네스타가 월컵 때 한국전에 못나온 건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그에 맞선 인터의 빗장은 칸나바로-마테라치, 막상막하. 두 팀 모두 포백을 썼지만 역시 유벤투스의 포백만은 못하더군요.

미드필드에서는 포르투갈 황금세대의 두 멤버 후이 코스타(AC밀란)와 콘세이상(인터)이 나왔는데 인터 쪽에서는 엠레 벨로줄루(혹시 기억하실지. 월컵 3-4위전 때 우리랑 붙었던 터키의 귀염둥이 발바리)가 많이 뛰었습니다. 후이 코스타는 전형적인 '플레이메이커'로 꼽히는데, 사실 AC밀란이 경기 잘 풀리는 날은 곧 후이 코스타가 잘 뛰는 날입니다. 저의 영웅인 바티스투타가 피오렌티나에서 '바티골'의 명성을 얻었던 것도 당시 같이 뛰던 후이 코스타 덕분이었다 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선수죠. 오늘도 섀도 스트라이커로서 멋진 플레이를 보여줬습니다.

전반 6분, '왼발의 레코바'라는 별명 답게 레코바가 멋지게 슛팅. 그러나 안 들어갔음. 인터는 경기 내내 수비에 치중하면서 간간이 역습을 했는데, 상대 문전까지 가는 역습은 볼만했지만 역시 비에리의 빈자리가 크더군요. 크레스포는 막강 스트라이커이긴 하지만 자력돌파하는 선수는 아니고, 레코바 또한 중량감에서는 비에리의 상대가 안 되죠. 하얀 티셔츠 입고 벤치에서 구경만 해야 했던 비에리가 얼마나 속이 터졌을까....

AC밀란은 상대적으로 공격을 많이 했고 후반 들어서는 거의 파상공세다 싶을 정도로 인터를 괴롭혔지만 인터의 수비는 진짜 만만찮더군요. 톨도는 오늘도 선방, 또 선방...중앙수비에 계속 막히니깐 후반 들어와서 후이 코스타가 중거리 슛을 두번 쐈는데 폼만 멋있었고 골은 안 들어갔습니다. AC밀란의 고릴라 가투조의 골 집착은 놀랍더군요. 그런데도 안 먹히니깐 결국 80분에 가서야(나쁜 감독) 히바우두를 내보냈습니다. 마드리드의 브라질리언은 제 몫을 하던데, AC밀란의 브라질리언은 오늘 별로였습니다.
경기 결과는--실망스럽게도 '노 골'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탈리아 클럽들이 욕을 먹는 거라구...후반 막바지 인터의 역습은 아주아주 인상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크레스포로는 역시 역부족. 특히 저를 열받게 한 건, 인터가 마지막 30초를 공돌리기 했다는 사실. 아무리 비에리 팬이라지만, 시간 때우려고 공돌리는 팀은 정말 싫다 싫어...

무승부로 끝났으니 어쨌든 어웨이에서 뛰었던 인터가 유리해진 거죠. 문제는 다음주 2차전에도 비에리가 못 나올 것 같다는 점. 어느 팀이 올라가든 결승에서 지구방위대와 붙어 이길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이지만, 그래도 인터가 이기길 바라고 있습니다. 호나우두-인자기 대결보다는 호나우두-비에리의 맞대결이 더 흥미진진할테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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