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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묘한 움직임

지난 2001년의 9.11 테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리고 올해 이라크전쟁을 거치는 동안 잠자는 호랑이처럼 숨죽이고 있던 이란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이라크전쟁 이후 미국을 '자본주의 질서'에 맞춰 재편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중동국가들의 반발에 부딪치고 있는 시점에 무하마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이 '역사적인 중동순방'에 나서, 이란의 의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타미 대통령이 12일 레바논 베이루트에 도착, 수만명의 인파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이날 베이루트 공항에서 하타미 대통령이 묵을 피니시아 호텔까지 이어지는 도로는 이란 이슬람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초상화와 이란, 레바논 깃발로 뒤덮였으며 시아파 무슬림 3만여명이 몰려들었다. 서구화된 레바논에서는 보기..

가브리엘 뱅상의 그림책들

떠돌이 개 Un Jour, un chien 가브리엘 벵상 (지은이) | 열린책들 | 2003-04-20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그림을 단편적으로 접해보기는 했는데, 제대로 본 것은 처음이다. 쓱쓱 질러나간 선 속에 개 한 마리가 있고, 길이 있고, 자동차들과 사람들이 오간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의 마음'이 돼버렸다. 마치 내가 저 떠돌이개가 된 듯이 외톨이가 됐을 때의 막막함과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을 보는 이방인의 외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좋은 그림책은 많지만, 뱅상이 보낸 개 한 마리가 가져다준 정서는 색다르다. 따뜻하다. 뱅상의 시선 언저리에는 따뜻함이 깔려 있다. 무슨 모험이 일어날까, 몇페이지 밖에 안되는 그림책을 넘기면서 두근두근 긴장되더니 어느새 마음이 따사롭게 풀려 있다. 거대한 알..

딸기네 책방 2003.05.11

[스크랩] 장정일, '삼중당 문고'

삼중당 문고 장정일 열다섯 살, 하면 금세 떠오르는 삼중당 문고 150원 했던 삼중당 문고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두터운 교과서 사이에 끼워 읽었던 삼중당 문고 특히 수학시간마다 꺼내 읽은 아슬한 삼중당 문고 위장병에 걸려 1년 간 휴학할 때 암포젤 엠을 먹으며 읽은 삼중당 문고 개미가 사과껍질에 들러붙듯 천천히 핥아 먹은 삼중당 문고 간행목록표에 붉은 연필로 읽은 것과 읽지 않은 것을 표시했던 삼중당 문고 경제개발 몇 개년 식으로 읽어간 삼중당 문고 급우들이 신기해하는 것을 으쓱거리며 읽었던 삼중당 문고 표지에 현대미술 작품을 많이 사용한 삼중당 문고 깨알같이 작은 활자의 삼중당 문고 검은 중학교 교복 호주머니에 꼭 들어맞던 삼중당 문고 쉬는 시간 10분마다 속독으로 읽어내려간 삼중당 문고 방학중에 ..

딸기네 책방 2003.05.10

AC밀란-인터밀란 4강전

어제의 레알마드리드-유벤투스 경기에 이어, 오늘은 챔피언스리그 또다른 4강전, AC밀란-인터밀란 경기를 봤습니다. 오늘 회사 안 가고 노는 날이라서 내내 중계방송만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챔편스 32강전은 열심히 봤는데 16강전은 출장가 있느라(그넘의 전쟁...) 별로 보지 못했고, 8강전 시작된 뒤에는 MBC ESPN에서 AC밀란 경기를 안 보여줘서(죽일 넘들) 요새 'AC밀란 결핍증'에 걸려있었습니다. 게다가 밀란 더비를 보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에 그만큼 기대도 컸지요. 더비도 그냥 더비가 아니라 챔편스 세미파이널!!! 이번 경기는 AC밀란 홈인 산시로구장에서 열렸습니다. AC밀란은 최근 공격진이 괜찮았다고 들었고 또 홈이니깐 공격을 좀 할 것이고, 인터는 보나마나 수비-역습을 할 것이다 라고 생각했는..

케이스 데블린, '수학의 언어'

수학의 언어 The Language of Mathematics (1998) 케이스 데블린 (지은이) | 전대호 (옮긴이) | 해나무 | 2003-05-06 대체 수학이라는 것은 어떤 학문일까. 고등학교 때 배웠던 미적분 공식은 대학입시만 치르고 나면 거짓말처럼 머릿속에서 지워진다. 수학이나 과학전공자가 아니라면, 고교 졸업 뒤 10년이 지나서 함수를 계산하고 사인 코사인 곡선을 그릴 일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평생동안, 4칙연산을 제외한 '고난이도' 수학 문제를 풀 일은 다시 없을 수도 있다. '수학의 언어'라는 책의 제목만 보면, 대체 이 책이 수학의 어떤 측면을 어떻게 설명하려 하는 것인지 감(感)이 잘 오지 않는다. 저자는 '수학은 패턴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수학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해준..

지구방위대-유벤 4강전

히히히히 하하하하 오늘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서 챔편스 4강전 첫 경기, 레알마드리드-유벤투스 경기를 봤습니다. 아침에 기사 쓸 것도 없으니까 혼자 수다나 떨며 놀아야지. 원래 제 홈에 축구얘기 올리는데, 오늘내일 저희동네 축구흥분당원들이 재방 봐야하기 때문에 '스포일링 금지기간'이거든요. ^^ 사실상의 결승전이었죠. 프리메라리가와 세리아의 자존심을 건. 특히 이번시즌에는 스페인에서 지구방위대만 올라오고(제가 젤 좋아하는 발렌시아는 떨어졌어요 흑흑) 유벤과 밀란형제들이 몽땅 4강에 진출했기 때문에 지구방위대가 절대로 지면 안 되는 경기였거든요. 경기 결과는 2대1로 지구방위대 1승. 그런데 지구방위대가 이렇게 큰 경기에서, 이렇게 고전하는 거 이번시즌 들어 첨 봤습니다. 스트라이커가 넘쳐나서 걱정이던 ..

영화 '그녀에게'

나는 알모도바로가 뭔지 몰랐다. 이 영화 설명하는데 '알모도바르'라는 말이 있었다. "**야, 저 영화 보자. 일모도바르래." "감독 이름이니" "나도 모르겠는데, 하여간 일모도바르래." 무덤덤한 관객과 무식한 관객, 내 친구 h와 나는 영화를 보러 갔다. 그녀에게. 하필 그녀는 춤추는 여자다. 불쌍하다, 알리샤. 그 좋은 나이에. 발레리나의 꿈(좀 상투적이군)을 안고 살던 너 식물인간이 돼서 식물처럼 늘어져있다니. 그 놈. 베니그노. 식물인간을 강간한 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제법 강렬하고 아름다울 수 있었던 커플. 마르코와 리디아. 내가 본 정말 몇 안 되는 스페인 영화 중의 하나인 '안나이야기'에는 서커스단이 나왔는데, 이번엔 투우사로군. 일종의 '과거와 현대 뒤섞기' 코드인 것인가. 리디아의 남..

살인의 추억, 김상경의 재발견

왠일이냐, 내가, 대박 터진 영화를 '제 때에' 보다니. 너무 무서울 것 같아서 머뭇거리다가 어제 씨네큐브에서 영화 '살인의 추억'을 봤다. 우선 재미있었고, 영화가 참 깔끔했다. 우리나라 감독들이 이렇게 영화를 테크니컬하게 잘 만들어버리면 대체 남의 나라 감독들은 어쩌라는 거야... 송강호 연기, 진짜 리얼하더라. 경찰서에서 봤던 형사들 모습이랑 거의 똑같애. 그런데 영화평 쓰는 기자들이 "범인은 1980년대였다!" 쿵짝쿵짝 한 건 솔직히 오버 내지는 영화사의 판촉작전에 놀아난 것이라는 생각이 짙게 들던걸. 여기저기 언론에 나온 걸 보니까 아마 감독이랑 제작사에서 그 쪽에 포인트를 맞춰서 홍보를 했던 것 같은데. 요새는 '386'이 광고 키워드니깐, 특히 영화에 있어서는 상당히 구매력 강한 그들의 '도..

인터내셔널가

대학시절의 친구를 만났다. 오늘은 메이데이다. 친구는 내게 "날씨 좋다, 집회 하기에"라고 말했다. 친구와 영화를 보고, 회사 후배들을 만나 놀다가 밤이 되어 들어왔다. 또치님이 인터내셔널가 모음을 올려놓으셨다. 그걸 들으면서 울고 있다. 눈물이 많이 나와서 뚝뚝 떨어진다. 이그나치오 실로네의 소설같은 읽은지 한참 된 책들과 알고 지낸지 10년이 지난 친구들과 '랜드 앤드 프리덤'의 토론 장면들과 어린시절의 감수성 따위가 뒤죽박죽이 되어있지만 나는 내가 왜 울고 있는지 안다. 나는 내가 지금 몇 살인지를, 얼마나 젊은 나이인지를 알고 있고, 내가 얼마나 나약한 인간인지도 알고 있고, 얼마나 무책임하고 무감각한지도 알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 이탈리아, 스페인의 인터내셔널가, 참 오랜만에 듣는 메아리와 최..

미국 주요 투자회사들 벌금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28일 투자자들에게 잘못된 투자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조사를 받아온 10개 투자회사들이 벌금과 투자자교육비 등의 명목으로 총 14억달러를 지불한다는데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SEC의 명령이라 할 수 있는 이날 투자회사들의 합의는 대형 금융기관들이 투자정보를 마음대로 주무르면서 소액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입힌 데 대한 징벌 성격이 강하다. 또 투자분석가들의 개인비리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도 함께 물은 것으로, 앞으로 미국 증권가에 미치는 파장이 대단히 클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미국 뿐 아니라 각국 증시 감독에 하나의 선례가 되는 '글로벌 규약'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파이낸셜타임스 등은 보도했다. SEC는 편향된 주식분석보고서를 만들어 투자자를 오도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