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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카플란의 '타타르로 가는 길'

딸기21 2003. 11. 20. 10:32

원제 Eastward to Tatary (2000)
로버트 카플란의 타타르로 가는 길
로버트 카플란 (지은이) | 이순호 (옮긴이) | 르네상스 | 2003-08-27



로버트 카플란이라는 사람의 책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중동-이슬람에 대한 책을 뒤져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국내에 번역출간된 관련 책들 중에 유명도나 책의 완성도 면에서 손꼽을만한 사람은 버나드 루이스와 토머스 프리드먼이다. 루이스는 세계적인 중동사학자이지만 서구편향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루이스 책을 몇권 읽어봤는데, 사실 국내 번역본들 중에선 '서구편향'이라고 꼬집어 비판할만한 것은 별로 없었다.  

프리드먼은 루이스하고는 성격이 다르다. 프리드먼은 미국 뉴욕타임스의 국제문제 전문기자이고,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명한 언론인'이다. 80년대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저널리즘의 공식 명칭은 '레바논 내전') 무렵 레바논과 이스라엘에서 근무했었고, 현재는 주로 컬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유태계 미국인인 프리드먼은 미국에선 주류언론의 대명사이면서 민주당 색채가 진한 것으로 유명한, 동시에 유태계 소유로도 잘 알려져 있는 뉴욕타임스의 얼굴마담격 컬럼니스트다. 우리 식으로 하면 '대기자' 쯤 되겠다.
프리드먼의 책은 국내에 3권이 나와 있다.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 것은 '예루살렘에서 베이루트까지'다. 레바논 내전 이후, 주로 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까지의 중동 사정을 다루고 있다. 시리아 등 중동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은 날카롭지만, 이 당시만 해도 프리드먼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정착과정에 대해 낙관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국내에선 프리드먼의 책들 중에 가장 먼저 출간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는 중동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국제문제 전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핵심은 '세계화'다. '세계화에 동참하지 않으면 뒤떨어진다, 선진국 후진국 다 돌아다녀보니까 세계화 안 하면 안 되겠더라, 후진국들이여, 어서 세계화의 행렬에 끝자리라도 차지하려 애써라' 냉소적으로 표현하면 이런 것이다. 물론 프리드먼은 그렇게 '냉소적인' 사람은 아니다. 책에는 미국인이기에 가능한, 세계화에 대한 확신이 배어있다. 열정적인 기자에서 '초강대국 미국의 외교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유력자'로 출세한 프리드먼의 자신감이 자연스럽게 묻어 나온다.

90년대 후반 프리드먼의 뉴욕타임스 컬럼을 몇번 읽어봤다. 당시만 해도 프리드먼은 어느 정도 균형잡힌 시각을 유지했었다. 일종의 '뉴욕타임스 스타일'인데, 중동 분쟁을 다루되 이스라엘의 잘못된 점들도 간간이 지적하면서 빌 클린턴 정부에 적극적 개입을 주문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가장 최근에 출간된 '경도와 태도'에 이르면 프리드먼의 논조가 급반전한다. 결정적인 계기는 물론 9.11 이었다. 당시 프리드먼의 컬럼들은, 과연 이것이 프리드먼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쉽게 말하면 보수우익화됐다. 9.11 이라는 사건은 일류 저널리스트로 손꼽혔던 프리드먼에게도 엄청난 충격을 주었는지, 말투가 냉소적 공격적으로 변한 것 뿐만 아니라 내용도 '이슬람 테러세력'에 대한 비난 일변도로 바뀌었다. 정부에 대한 '조언'도 테러와의 전쟁 류로 전환됐다.


우습게도 이렇게 보수화된 프리드먼조차도, 중동 정책에서 적어도 말빨 깨나 날릴 것으로 예상되는 그조차도, 조지 W 부시 정권 하에서는 진정한 '이데올로그'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럼 부시 정권의 중동정책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인간은 누구인가? 대체 어느 개쉐이가 멍청이 부시와 셈 빠른 그 떨거지들에게 신앙에 가까운 십자군 의식을 심어줬단 말인가? 부시를 전쟁광으로 만든 것은, 미국의 군수/에너지자본만은 아니다. 분명 부시 쉐이는 확신범이다. 부시 행태의 심리적 측면에 영향을 미친 것이 바로 로버트 카플란이라는 작자다. (부시의 정신적 스승을 한 명만 꼽는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 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카플란의 책과 소개에 따르면 그렇다)


카플란은 프리드먼처럼 유수 언론사의 기자는 아니다. 그만큼 자유롭다. 무엇에서? 저널리즘의 형식논리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형식적인 윤리에조차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이 쯤에서 리뷰의 본론, '타타르로 가는 길'이라는 책에 대한 평가를 내리자면--


책은 굉장히 재미있다. 동유럽 사회주의국가들에서 출발해 중앙아시아로 가는 여정을 통해 카플란은 이슬람권 주변부 국가들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준다. 프리드먼의 책과 카플란의 책에 공통된 장점이 있다면 '발로 뛴 기록'이라는 것이다. 오랜 시간 현지에서 상하좌우를 세밀히 관찰하고, 저널리스틱한 문체로 그것을 포장한다. 그런 관찰기가 재미없을 리 없다. 대단히 재미있다. 특히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부분은, 국내에 관련 서적이 전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더욱 새롭고 재미있었다. 


카플란의 글은 논지도 명확하다. "일찌감치 사회주의 글러먹었다는 사실 알아차리고 산업화에 매진한 헝가리는 지금 잘나가는 반면 루마니아는 지금도 지지리 못난 열등생이다" "기독교 아르메니아가 열심히 자본주의 적응 훈련을 하면서 나라를 가꾸고 다듬은 반면 그 동네 각종 '~스탄'들, 이슬람 나라들은 개판이다"  

카플란의 시각은 분명하다. '공산주의-전체주의-독재-이슬람'이 팍스아메리카나 시대 대표적인 '못난이 그룹'이라면 '자본주의-민주주의-기독교'는 우등생 소질이 많다는 것이다.


프리드먼과 카플란 중에, 부시가 누구를 좋아했을지는 분명하다. 딩동댕~ 카플란이다.


부시는 카플란의 책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스스로 말했고, 부시네 이너써클에선 이 책이 필독서였단다. 카플란이 부시를 가르쳤는지, 아니면 부시의 적성이 카플란과 들어맞았는지는 따질 필요 없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하는 것과 똑같을 뿐이다. 이 책에 C일보 국제부 기자가 아름다운 추천사를 썼다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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