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고대 도서관의 역사

딸기21 2003. 10. 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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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에서 로마까지 | 원제 Libraries in the Ancient World (2001)
고대 도서관의 역사 라이오넬 카슨 (지은이) | 김양진 | 이희영 (옮긴이) | 르네상스


역사는 '문자의 발명'으로 시작된다. 인류의 시초를 선사(先史)부터 따지긴 하지만, `인간다운' 인간의 역사는 보통 문자와 함께 시작되고, 주로 문자를 통해 인간 정신의 요체가 전달된다. 문자가 모여 책을 이루고 책이 모여 역사를 만든다 해도 될 것이다. 문자에서 시작돼 지식의 집대성으로 가는 인류의 정신의 흐름을 `도서관의 역사'로 구체화시켜 해석한 것이 이 책이다. 고대 근동 제국의 도서관에서 그리스와 로마, 초기 기독교 시대까지 이어지는 수천년 도서관의 역사를 줄줄이 꿴다.

책의 중심을 관통하는 것은 문자와 책의 역사다. 파피루스와 점토판, 양피지, 그리고 `양장본'에 이르기까지 책의 발전 경로를 지리적, 시대적으로 따라다니며 설명해주고, 동시에 설형문자와 상형문자, 알파벳 같은 문자의 역사를 살핀다. 이는 문명의 흐름을 읽는 과정이기도 해서, 근동 수메르에서 이집트와 그리스, 뒤이은 로마에 이르기까지 저술과 번역으로 연결되는 문명의 전파경로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러나 `드러난 흔적'들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뒷면의 역사, 즉 `권력의 역사'다. 지식의 역사는 곧 지식을 모으고자 하는 권력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고대 근동 제국의 도서관이 `황제의 도서관'이었다면 그리스의 도서관은 특혜받은 자유로운 `시민들의 도서관'이었다. 유럽 초기 기독교 시대 이후 도서관은 `종교의 도서관'이 된다. 아시리야의 아슈르바니팔왕은 바빌론의 지배자였던 이복동생과의 싸움에 이긴 뒤 당대의 문화도시 바빌론을 정복하고 신전의 점토판들을 제 고장에 가져와 막대한 장서 목록을 구축했다. 


유럽문명의 기원인 그리스·로마와 이집트 문명 모두에 발을 딛고 있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두 가지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바로 클레오파트라와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이다. 포에니전쟁에서 한니발의 카르타고군을 진압한 영웅 스키피오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마케도니아 도서관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도서관은 지식의 흐름에 민감한 사람들에게 때로는 학문의 터전이 되고, 때로는 한담의 장소가 됐다. 그래서 그리스에서는 도서관이 젊은이들을 양성하고 단련시키는 체육관에 같이 있었고, 로마시대에는 유한계층의 놀이터인 목욕탕에 통합되기도 했다.


카이사르 시대가 되면 도서관이 갖고 있는 의미가 더 명백해진다. 카이사르는 공화파의 공격에 맞서 자신이 공화주의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공공도서관 건립 계획을 발표했었다. 아쉽게도 카이사르가 그 직후 암살당하지 않았더라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명성을 잇는 로마도서관이나 카이사르도서관이 탄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문명의 총체'로서 책이 만들어지고 유통되기 위해서는 문자와 식자층, 필경사, 서적상, 그리고 도서관에 이르는 종합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고대의 도서관장 자리는 당대의 지식인이 주로 맡았지만 때로는 매관매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도서관이 권력과 향방을 같이 했다는 것은, 그 시대의 중심이 곧 도서관을 소유했다는 얘기다. 


바꿔 말하면 도서관을 누가 소유하고 이용하는가 하는 질문은 그 시대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과 같은 것이 되는 셈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의 도서관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국가와 시민사회의 성장이 균형을 이루지 못했던 우리의 근대사가 텅 빈 도서관, 장서 없는 도서관에 반영돼 있는 것은 아닐까.

책의 내용은 아주 구체적이다. 바빌론과 하투사, 에블라 같은 고대 도시유적에서 출토된 점토판과 후대의 문서에서 퍼온 서지학적 지식을 망라했고, 주요 도서관의 장서 내용과 전문 사서의 명단, 도서관의 설계와 서가(書架)의 구조까지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런데 구체적이라는 것은, 꼼꼼하고 학술적이라는 말도 되고, 여간한 흥미가 없는 이들에게는 다소간 지루하다는 말도 된다. 


논평이 별로 없이 사실(史實) 위주로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이 책을 읽을지는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다름 아닌 `책의 역사'를 다룬 것이니 잡학(雜學)에 관심 많은 이들이나 책 욕심 많은 사람들은 읽어볼만하다. 저자는 이미 `고대의 여행이야기', `고대의 배와 항해 이야기'(가람기획) 같은 테마 위주의 역사책들로 국내에도 많이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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