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90년에 대학에 들어갔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행복했던 연령집단일 90학번. 누구나 다 그렇듯 공부에 찌든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많은 걸 누릴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한번도 교복을 입어본 적이 없는 ‘X세대’였다. 해방둥이나 유신세대, 87민주항쟁 세대 같은 우리 역사의 마디들이 아니라, 미국의 X세대와 일본의 ‘신인류’가 우리와 통했다. 외국의 무슨 무슨 세대와 일치된 아이덴티티를 가질 수 있었던 집단은 우리가 처음이지 않았을까. 고속성장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국제화니 세계화니 하는 말들은 좀 허풍스럽기는 해도 생판 남의 나라 이야기같지는 않았다. ‘보통사람’이라 억지 쓰던 노태우 정권 후반기였고, 구로공단에서는 여공들이 10시간씩 서서 일하고 있었고, 강경대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