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애플 독사과’의 주인공, 천재과학자 앨런 튜링 61년만에 사면

딸기21 2013. 12. 24.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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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명석하고 특별한 인물이었다. 12월 24일자로 그를 사면한다.”

 

컴퓨터 개념을 만들어낸 비운의 천재, 애플사의 ‘한 입 베어문 사과’의 주인공이라는 소문이 돌았던 영국의 과학자 앨런 튜링이 61년만에 ‘사면’을 받았다. 크리스 그레일링 영국 법무장관은 왕실의 사면령에 따라 튜링을 사면한다고 23일 발표했다. 그레일링 장관은 튜링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암호를 해독해 전쟁의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는 사실엔 의문의 여지가 없다며 ‘뒤늦게’ 그를 칭송했다.


튜링의 사면은 1962년 동성애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지 61년만이다. 런던에서 태어난 튜링은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 등에서 수학을 공부하고 수학자 겸 암호 전문가로 활동했다. 2차 대전 중에는 정부 암호·신호학교(GC&CS)에서 독일 해군의 암호를 해독하는 일을 맡았다. 



독일은 이미 1차 대전 때 아르튀르 셰르비우스가 개발한 암호 제작·해독 기계인 ‘에니그마’를 만든 바 있으며 2차 대전 당시 암호 기술에서는 연합군을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튜링은 이 암호를 풀기 위한 연산 알고리듬을 개발, 독일 해군의 작전계획을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튜링이 개발한 알고리듬은 훗날 컴퓨터의 모델이 됐으며, 이 때문에 그는 ‘컴퓨터의 아버지’라 불린다.

 

하지만 개인으로서 튜링의 삶은 불운을 맞았다. 전쟁이 끝난 뒤 국립물리학실험실에서 일하던 그는 정보저장용 컴퓨터의 최초 모델인 ACE를 개발했으며 1948년에는 맨체스터대학에서 컴퓨터 제작을 주도했다. 문제는 그가 동성애자라는 것이었다. 당시 영국에서 동성애는 형법에 따라 처벌받는 범죄였다. 유죄판결이 내려졌고, 당국은 그를 감옥에 보내지 않는 대신 여성호르몬을 투입하는 ‘화학적 거세’ 처분을 받았다.

 

튜링은 이런 ‘강제치료’를 못 견디고 1954년 시안화칼륨(청산칼리)을 묻힌 사과를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망 당시 튜링은 42세 생일을 2주 앞두고 있었다. 튜링의 가족들은 자살이 아닌 사고사였을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당국은 자살로 결론내렸다.

 

정부는 그를 죄인으로 만들었지만 후대 사람들은 컴퓨터의 창시자인 그를 기렸다. 훗날 스티브 잡스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히긴 했지만, 애플이 한 입 베어문 사과를 로고로 삼은 것이 그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숱한 ‘신화’들 속에 튜링은 사후에 훨씬 더 유명해졌다.

2009년 고든 브라운 당시 영국 총리는 “정부를 대표해 그가 받았던 끔찍한 처우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다. 2011년부터는 사후에라도 그를 사면하라는 온라인 청원운동이 시작됐고 3만4000명 이상이 서명했다. 하지만 정부는 튜링에 대한 당시 판결은 적법한 것이었다며 거부했다. 지난해 5월 상원에는 튜링에 대한 사면과 공식 사죄를 요구하는 법안이 제출됐다. 


마침내 사면안이 발표되자, 사면법안을 냈던 로드 샤키 의원은 “튜링이 받았던 것 같은 잔인하고 부당한 처분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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