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877

버나드 루이스, '이슬람 1400년'

이슬람 1400년. 원제 The world of Islam 버나드 루이스. 김호동 옮김. 까치글방 이슬람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싶어하는 사람에게는 버나드 루이스의 책은 필수다. '서구 중심 시각'이라는 비판이 만만찮기는 하지만, 어쨌든 루이스만큼 이슬람세계의 역사와 문화를 풍부하게 알고, 펼쳐보일 수 있는 학자가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학자로서, 저술가로서 루이스의 장점과 단점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중동 정치나 유럽과의 관계 못잖게 이슬람 사회의 제도와 조직체계, 도시생활, 문학, 미술, 건축, 음악까지 사회문화적 측면들을 다양하게 소개했다. 화질은 떨어지지만 삽화와 사진도 많이 넣었다. 사실 루이스가 아니면 서구의 어느 학자가 이란의 시와 아다브 문학, 모스크의 건축원리같은 것들을 이렇게 ..

딸기네 책방 2003.08.18

볼츠만의 원자

볼츠만의 원자 | 원제 Boltzmann's Atom (2001) 데이비드 린들리 (지은이) | 이덕환 (옮긴이) | 승산 | 2003-08-05 `물리학에 혁명을 일으킨 위대한 논쟁'이라는 다소 센세이셔널한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루드비히 볼츠만이라는 오스트리아의 탁월한 과학자가 원자 이론을 확립해가는 과정을 소개한 일종의 전기이다. 그러나 단순한 위인전으로 읽기에는 내용이 복잡하다. 한 사람의 인생을 연대기적으로 그린 저술이 아니라, 한 과학자가 어떤 논쟁과 비판을 거쳐 하나의 가설을 이론으로 확립해갔는지 보여주는 과학사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번역자는 이 책을 `과학 이론의 전기'라고 표현했다. 볼츠만이 태어나 활동했던 19세기는 기계적, 실증주의적 과학관이 활개쳤던 시기였다. 당시 학자들의 눈..

아이와 같이보면 좋을 신간 그림책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도와주는 그림책들이 여러권 나왔습니다. 하나같이 풍성한 색감에 재미난 발상으로 어린이들의 눈길을 확 잡아끌 것 같은 책들입니다. 국내 동화작가들의 것도 있고, 프랑스와 아르헨티나, 미국, 일본 유명작가의 작품들도 있습니다. 여름날을 소재로 한 동화들을 골라 읽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단연 눈에 띄는 책은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림작가 아이린 하스의 (비룡소). 그림이 그야말로 '환상'입니다. 위의 그림이 이 책의 한 장면이예요. '엄지공주'의 모티프를 훨씬 몽환적으로 만들어서, 부드럽고 따뜻한 색채로 그렸습니다. 아마 제가 어린 시절에 이 책을 봤으면, 완전히 뿅갔을 거예요. 또다른 미국 작가 마크 티그의 (달리)도 재미있습니다. 흑백톤과 파스텔톤이 번갈아 ..

딸기네 책방 2003.08.05

장애와 소통하는 법

토베 케이코 글·그림. 자음과모음. 노라 엘렌 그로스. 한길사 몇해전 전문직종에서 제법 잘 나가는 사람을 취재차 만났다. 심심찮게 신문에 이름이 거론되기에 "언제 출마하실거냐"고 물었더니 "지금은 아니"란다. 그분 아이가 자폐아라고 했다. 정치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아이에게는 아직 아빠가 필요한 때라는 얘기였다. 토베 케이코의 만화책 `사랑하는…'의 주인공 히카루는 자폐아다. 싸우고 울고지새던 일중독자 아빠, 마음 약한 엄마가 자폐아를 매몰차게 대하는 사회와 맞부딪쳐 함께 싸우는 것이 책의 줄거리다. 사회는 장애를 가진, 혹은 그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뿐인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 과학저널리스트인 매트 리들리는 다운증후군 아기를 낳을까 싶어 낙태를 하는 세태를 비꼬면서 "사람들은 `그저 ..

딸기네 책방 2003.07.28

후쿠야당 딸들

후쿠야당 딸들유치 야요미 (지은이) | 서울문화사(만화) | 2000-12-07 간만에 만난, 너무너무 재미있는 만화. 일본에 갈 기회가 있으면 H2와 이 책, ‘후쿠야당 딸들’을 꼭 소장판으로 장만해오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맛의 달인, 초밥왕 류의 만화를 싫어함. 미각이 발달하지 않은 나같은 사람에게는 신경과민으로까지 보이곤 한다. 먹을 것 갖고 누가누가 더 맛있게 만들었나 싸우다니. 맛있게 만들었으면 맛있게 먹음 됐지, 왜 싸우냐고... 이 만화는 다르다. 일본 전통과자 얘기를 귀엽게 늘어놓으면서 동시에 교토라는 지역의 생리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놓는다. 일본의 전통을 자랑하는 것 같은데, 밉지 않고 신선하고 재미나다. 주인공인 후쿠야당 세 딸들의 이야기는 하나같이 스토리로 꽉 차있다. 그들의 개성, 그..

딸기네 책방 2003.07.11

우리가 정말 사랑하고 있을까

우리가 정말 사랑하고 있을까 생 텍쥐페리 (지은이) | 유혜자 (옮긴이) |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 2000-04-01 생텍쥐페리는 명상가이고 시인이다. 야간비행, 사막, 바람과 모래와 별들. 그리고 실종. 영화처럼, 소설처럼, 그림처럼 낭만적인 말들로 이뤄진 그의 생애. 의 문구들은 언제 읽어도 가슴에 저며온다. 네 개의 벽과 기둥이 지붕을 덩그러니 받치고 있다고 해서 모두 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붕을 올리고, 벽돌을 쌓아올렸다고 모두 집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 공간에 대한 추억과 애착만이 그것을 진짜 집으로 만들어주며 그곳에 담긴 인간의 영혼을 보호해준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바로 곁에 있는 것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고, 눈에 보이지 않아도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감정의 풍요로움을 ..

딸기네 책방 2003.07.09

스티븐 제이 굴드, '인간에 대한 오해'

인간에 대한 오해 스티븐 제이 굴드. 김동광 옮김. 사회평론 작년 5월 스티븐 제이 굴드가 지병으로 숨졌을 때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찰스 다윈 이후 가장 유명한 생물학자가 사망했다"고 선언했다. 신문에 쓰인대로 굴드는 '스타 과학자'였다. 30년 가까이 수많은 에세이와 저술을 남긴 대중적인 과학자이기도 했지만, 그가 갖고 있는 스타성은 학문적 업적과 날카로운 사회적인 메시지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공허한 것이 아니었다. 굴드가 숨진지 1년이 넘어서, 굴드의 최대 역작 중 하나인 이 책이 출간됐다. 책은 생물학적(유전적) 결정론에 대한 비판서로 요약할 수 있다. 굴드의 다른 저서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주제가 명확하다. '인간의 지능에 대한 신화'를 깨뜨리는 것이다. 센세이셔널하게 표현하면 'I..

최재천,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최재천의 동물과 인간 이야기 -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최재천 (지은이) | 효형출판 | 2001-01-20 서울대 생명과학부 최재천교수가 일간지에 썼던 과학칼럼들을 모은 것인데,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조금씩 재미있게 읽었다. 저널에 실리는 글들이 재미는 있지만 정작 내용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최교수의 글은 그렇지 않다. 과학자들 중에 글 잘 쓰는 두 사람이, 최재천 교수와 모씨라고 하는데 그냥들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사람에게건, 동물에게건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다. 정말 본받을 일이고, 또 힘든 일이기도 하다. 최교수의 글은 제목처럼 '생명이 있는 것' 모두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 인간세상의 일에 대해서도 안타까움과 연민, 애정을 듬뿍 보낸다. 해마다..

아리엘 도르프만, '도널드 덕'

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 - 디즈니 만화로 가장한 미 제국주의의 야만 How to Read Donald Duck : Imperialist Ideology in the Disney Comic (1984) 아르망 마텔라르, 아리엘 도르프만 (지은이), 김성오 (옮긴이) | 새물결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는 슬픈 사랑이야기이지만 디즈니의 `머메이드(Mermaid)'에 이르면 극단적인 이분법 대결구도로 바뀌어 헐리우드식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내용의 단순성은 차치하고, 동글동글 예쁜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폭력적인 행동은 가관이다. 디즈니의 인어공주를 보고 자란 아이들이 뒤에 안데르센의 책을 본다면 "속았다"고 느끼지 않을까. 우리 모두 그렇게 속았던 경험이 있다. `마징가Z'와 `요술공주 새리'가 일본만화였다는 ..

딸기네 책방 2003.06.30

[스크랩] 탱고를 통해 본 아르헨티나 사회

라틴 아메리카, 영원한 위기의 정치경제 이성형 (지은이) | 역사비평사 | 2002-09-25 [스크랩] 탱고를 통해 본 아르헨티나 사회 눈빛들의 대화 1997년 어느날 밤, 산 텔모의 탱고 바에서 난 눈빛에서 흘러나온 에로티시즘을 처음 만났다. 그래 탱고도 ‘엿보기’야, 관음증 환자들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게임이라고! 난 두 번째 찾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얻은 발견에 흥분했다. 가장 에로틱한 부분은 허리 아래나 몸놀림이 아니라 10대의 두 무용수가 서로 교환하는 교태스런 눈빛이었다. 그 눈빛에 홀렸을까? 그날 난 동료들과 포도주와 반도네온의 흐느낌에 빠져들었다. 동네사람들이 찾는 로컬 바에 동양인들이 자리를 뭉개고 있는 것이 이상했던지 일행 중 누가 나와 노래를 한 곡 하라고 한다. 피아노, 반도네온,..

딸기네 책방 2003.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