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863

후쿠야당 딸들

후쿠야당 딸들유치 야요미 (지은이) | 서울문화사(만화) | 2000-12-07 간만에 만난, 너무너무 재미있는 만화. 일본에 갈 기회가 있으면 H2와 이 책, ‘후쿠야당 딸들’을 꼭 소장판으로 장만해오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맛의 달인, 초밥왕 류의 만화를 싫어함. 미각이 발달하지 않은 나같은 사람에게는 신경과민으로까지 보이곤 한다. 먹을 것 갖고 누가누가 더 맛있게 만들었나 싸우다니. 맛있게 만들었으면 맛있게 먹음 됐지, 왜 싸우냐고... 이 만화는 다르다. 일본 전통과자 얘기를 귀엽게 늘어놓으면서 동시에 교토라는 지역의 생리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놓는다. 일본의 전통을 자랑하는 것 같은데, 밉지 않고 신선하고 재미나다. 주인공인 후쿠야당 세 딸들의 이야기는 하나같이 스토리로 꽉 차있다. 그들의 개성, 그..

딸기네 책방 2003.07.11

우리가 정말 사랑하고 있을까

우리가 정말 사랑하고 있을까 생 텍쥐페리 (지은이) | 유혜자 (옮긴이) |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 2000-04-01 생텍쥐페리는 명상가이고 시인이다. 야간비행, 사막, 바람과 모래와 별들. 그리고 실종. 영화처럼, 소설처럼, 그림처럼 낭만적인 말들로 이뤄진 그의 생애. 의 문구들은 언제 읽어도 가슴에 저며온다. 네 개의 벽과 기둥이 지붕을 덩그러니 받치고 있다고 해서 모두 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붕을 올리고, 벽돌을 쌓아올렸다고 모두 집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 공간에 대한 추억과 애착만이 그것을 진짜 집으로 만들어주며 그곳에 담긴 인간의 영혼을 보호해준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바로 곁에 있는 것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고, 눈에 보이지 않아도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감정의 풍요로움을 ..

딸기네 책방 2003.07.09

스티븐 제이 굴드, '인간에 대한 오해'

인간에 대한 오해 스티븐 제이 굴드. 김동광 옮김. 사회평론 작년 5월 스티븐 제이 굴드가 지병으로 숨졌을 때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찰스 다윈 이후 가장 유명한 생물학자가 사망했다"고 선언했다. 신문에 쓰인대로 굴드는 '스타 과학자'였다. 30년 가까이 수많은 에세이와 저술을 남긴 대중적인 과학자이기도 했지만, 그가 갖고 있는 스타성은 학문적 업적과 날카로운 사회적인 메시지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공허한 것이 아니었다. 굴드가 숨진지 1년이 넘어서, 굴드의 최대 역작 중 하나인 이 책이 출간됐다. 책은 생물학적(유전적) 결정론에 대한 비판서로 요약할 수 있다. 굴드의 다른 저서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주제가 명확하다. '인간의 지능에 대한 신화'를 깨뜨리는 것이다. 센세이셔널하게 표현하면 'I..

최재천,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최재천의 동물과 인간 이야기 -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최재천 (지은이) | 효형출판 | 2001-01-20 서울대 생명과학부 최재천교수가 일간지에 썼던 과학칼럼들을 모은 것인데,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조금씩 재미있게 읽었다. 저널에 실리는 글들이 재미는 있지만 정작 내용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최교수의 글은 그렇지 않다. 과학자들 중에 글 잘 쓰는 두 사람이, 최재천 교수와 모씨라고 하는데 그냥들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사람에게건, 동물에게건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다. 정말 본받을 일이고, 또 힘든 일이기도 하다. 최교수의 글은 제목처럼 '생명이 있는 것' 모두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 인간세상의 일에 대해서도 안타까움과 연민, 애정을 듬뿍 보낸다. 해마다..

아리엘 도르프만, '도널드 덕'

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 - 디즈니 만화로 가장한 미 제국주의의 야만 How to Read Donald Duck : Imperialist Ideology in the Disney Comic (1984) 아르망 마텔라르, 아리엘 도르프만 (지은이), 김성오 (옮긴이) | 새물결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는 슬픈 사랑이야기이지만 디즈니의 `머메이드(Mermaid)'에 이르면 극단적인 이분법 대결구도로 바뀌어 헐리우드식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내용의 단순성은 차치하고, 동글동글 예쁜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폭력적인 행동은 가관이다. 디즈니의 인어공주를 보고 자란 아이들이 뒤에 안데르센의 책을 본다면 "속았다"고 느끼지 않을까. 우리 모두 그렇게 속았던 경험이 있다. `마징가Z'와 `요술공주 새리'가 일본만화였다는 ..

딸기네 책방 2003.06.30

[스크랩] 탱고를 통해 본 아르헨티나 사회

라틴 아메리카, 영원한 위기의 정치경제 이성형 (지은이) | 역사비평사 | 2002-09-25 [스크랩] 탱고를 통해 본 아르헨티나 사회 눈빛들의 대화 1997년 어느날 밤, 산 텔모의 탱고 바에서 난 눈빛에서 흘러나온 에로티시즘을 처음 만났다. 그래 탱고도 ‘엿보기’야, 관음증 환자들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게임이라고! 난 두 번째 찾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얻은 발견에 흥분했다. 가장 에로틱한 부분은 허리 아래나 몸놀림이 아니라 10대의 두 무용수가 서로 교환하는 교태스런 눈빛이었다. 그 눈빛에 홀렸을까? 그날 난 동료들과 포도주와 반도네온의 흐느낌에 빠져들었다. 동네사람들이 찾는 로컬 바에 동양인들이 자리를 뭉개고 있는 것이 이상했던지 일행 중 누가 나와 노래를 한 곡 하라고 한다. 피아노, 반도네온,..

딸기네 책방 2003.06.19

신대철, '그냥 돌이라고 말하려다'

(바람구두님 홈에 올렸던 글입니다) 그냥 돌이라고 말하려다 신대철 "산책 좀 합시다" 고비 노인이 이른 아침부터 서두른다, 사막에서 무슨 산책을? 사막에도 갈등이? 하고 말하려다 나는 흔쾌히 따라나선다, 걸어서 한시간 삼십분, 낮을 대로 낮아진 구릉들 흐르다 문득 사라진 곳에 검푸른 바위들 반들거린다. "운석입니다, 별똥별이지요, 아직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여길 산책하고 나면 살아가는 일이 신비롭습니다, 여기선 무엇이든지 들립니다" 무엇을 들었지요? 하고 물으려다 구릉 사이 분지형 바위들을 가리키며 성소 같군요 했다, 내 얕은 탐석체험에 의하면 이 바위들은 경도 5도쯤 되는 변성암이고, 그의 신비체험에 의하면 생의 비의가 서린 바위 이상의 장소이리라, 그는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혼자 얼마나 많은 ..

딸기네 책방 2003.06.18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홍영남 옮김. 을유문화사 책 표지에 '진화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써 있고, 느낌표까지 찍혀 있다. 그 말이 아니더라도, 워낙 유명한 책이라서 제목 정도는 안 들어본 이가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이제야, 큰맘먹고 읽었다. 1976년에 발표됐다가 이번에 개정판으로 나왔는데 내가 본 것은 을유문화사에서 새로 나온 책이다. 널리 알려진 책이고, 그동안 재미나게 읽었던 매트 리들리의 이 모두 이 책을 바탕으로 쓴 것이어서, 정작 도킨스의 '획기적 이론'(발표 당시)은 아주 낯익게 다가와버렸다. 이기적 유전자 개념이나 확장된 표현형 개념은 수긍이 가고, 또 다양한 시뮬레이션 과정이 참 재미있는데, 정작 인간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뜬금없다 싶었다. 동식물(개체)은 '이기적인' 유전..

[스크랩] 권태로운 애륜에게 주는 글

bbs에 몹시 권태로운 글을 남겨놓은 애륜을 위하여. 퍼다놓은 글이 상당히 길다. 그렇지만 진정 권태로운 마음가짐으로, 아주아주 권태롭게 이 긴 글을 끝까지 한 단어 한 단어 읽어보길 바람. 스크롤바 주르륵 내려서 밑에 쪽에 과연 재미난 것이라도 있나 염탐하지 말고, 차근차근 읽어보기를. 먼저 올리는 글은 시인 이상의 '권태' 라는 에세이다. 이 글을 읽는 '방법'이 있다. 뭐냐면, 아주 권태로울 때, 아주 아주 천천히 읽는 거야. 권태롭지 않은 사람이라면, 권태의 나락을 보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면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없고, 또 한줄 한줄 천,천,히, 읽어내려갈 마음의 여유도 없을 거다. 이 글을 읽을 때에는 그야말로 천천히, '나의 권태를 남의 권태로 죽이러간다'는 심정으로 곱씹어야 한다. 상상의 나..

딸기네 책방 2003.06.15

[스크랩] 마법의 도시, 탕헤르 - 미셸 투르니에

짧은 글 긴 침묵 미셸 투르니에 (지은이) | 김화영 (옮긴이) | 현대문학 | 2004-04-17 탕헤르에서의 회식 미셸 투르니에, 중에서. 우리들 주위로 백악질의 야산에 층층이 쌓아올려진 도시 탕헤르가 그 수많은 창문에 불을 켰다. 지평선 저쪽에는 지브랄타르 바위 위로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의 오른쪽에는 지중해의 고요한 물 위로 달이 떠올랐다. 왼쪽에는 마지막 석양빛이 잠겨드는 대서양의 거친 물결. 에드몽 샤를로가 알제리아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 그가 겪은 그 수많은 지진들, 특히 그 자신은 기억도 할 수 없지만, 그의 부모가 정원에서 져녁식사를 하고 있을 때 집이 무너져 어린 그의 요람을 덮쳤던 첫번째 지진 이야기를 막 들려주었다. 그는 또한 구름 떼처럼 몰려들던 마지막 메뚜기떼들의 재난도 경험..

딸기네 책방 2003.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