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879

[스크랩] 투르니에, '심장이 내는 소리

나는 낙관적인 사람이고 싶다. 어떤 상황에서도 농담 한마디 던질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깨끗한 죽음이 예정되어 있는 모양이니 좋은 일'이라고! 투르니에 할아버지, 당신 참 대단한 분이셔요. 블리니 종합병원에서 초음파 심장검진을 받다. 대수롭지 않은 검사이거니 했는데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같은 불쾌한 소음이 기계를 통해 들렸다. 내 심장이 내는 소리라고 했다. 검사 결과 분명한 심장비대임이 판명되었다. 나는 오히려 기분 좋은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심장이 그렇게 커졌다 이 말이지! 그런데 사실 죽음에는 두 가지가 있지 않은가. 암으로 인한 더러운 죽음과 심장으로 인한 깨끗한 죽음 말이다. 그렇다면 내겐 깨끗한 죽음이 예정되어 있는 모양이니 좋은 일 같다. -미셸 투르니에, 에서 이래서 투르니..

딸기네 책방 2004.09.15

게으름에 대한 찬양- 러셀, 그리고 게으름.

이런저런 게으름...의 늪에 빠져 살고 있는 날들. 베이비박스에 '게으른 엄마의 변명'을 적었더니 또치 왈, 다른 엄마들도 딸기님처럼만 게으르면 좋겠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 버트런드 러셀의 을 읽었다. 러셀이 핵폭탄에 반대한 것을 알고 있고, 혼자 조용히 반대한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서명운동에 가두시위까지 앞장섰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외에는-- 없다. 영국 사람이라는 것 정도일까나. 맑스의 사위이기도 한 폴 라파르그의 라는 책을 몇년 전에 읽었다. 가만있자, 그게 언제였더라. 아마도 1996년 정도가 아니었던가 싶은데. 라파르그의 책과 러셀의 책을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됐는데, 내용은 사실 비슷하다. 노예가 아닌 그리스 '시민'들의 자유로운 사고와 사색을 예로 든 것도 그렇고, 여가를 강조한..

딸기네 책방 2004.09.11

반지제왕- 골룸을 만나던 날

반지제왕, 아주 오랜시간에 걸쳐서 읽고 있다. 이미 10년전쯤에 처음 소설책을 구입한 이래 수차례 '완독'에 실패한 것은 내 게으름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의외로 내겐 이 책이 그닥 흡입력이 없었다. 솔직히 앞부분, 지겨웠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1편은 버섯마을같이 생긴 귀여운 호빗네 마을만 기억나고, 2편은 거의 기억이 안 난다. 3편은 제법 장관이어서 재밌게 봤다. 스펙터클에 압도되기도 했고. 하지만 (반지팬들께는 죄송하지만) 뭐 그렇게 감동적인 영화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배우가 없는 영화'라는 점도 맘에 안 들고,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을 잘 살린것 같지도 않고. 그 영화 만드는데 돈이 꽤 들어갔을 것 같기는 하다. 다시 소설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어느 순간, 소설가의 '느낌'이 나에..

딸기네 책방 2004.07.31

후지따 쇼오조오, '전체주의의 시대경험'

전체주의의 시대경험 후지따 쇼오조오 (지은이) | 이홍락 (옮긴이) | 창비(창작과비평사) 리뷰를 쓰려고 마음먹은지는 오래됐다. ‘서평’이라고는 하지만 어차피 ‘나를 위한’ 독후감이다. 이 책을 읽고서 내가 나에게, 아무 말 없이 넘어가서는 안 될 것 같아서 반드시 독후감을 정리를 해야겠거니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리뷰를 쓰기가 참 힘들었다. 이 책, 몇마디 말로 정리해버릴 수 있는 그런 책이 아니다. 다른 분들의 리뷰를 읽었다. 알라딘에 올라와 있는 리뷰 3편, 별이 열다섯개. 거기에 지금 내가 별 다섯개를 더 붙이고 있다. 몇편 안 되는 리뷰이지만 이렇게 일관되게 ‘별 다섯개’를 받을 수 있는 책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더우기 재미난 소설책도 아니고, 뭔가 대중적인 흥미를 불러일으킬 요소 따위란 눈..

딸기네 책방 2004.06.17

요새 읽은, 그러나 정리가 잘 안 되는 책들

재미난 책들을 읽었는데 꼼꼼히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일본에 온 이래로, 나는 '글'이다 생각되는 것을 거의 적지 못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어쩐지, 이 곳에서의 내 생활은 현실성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요새 일본 드라마 'Long Vacation'에 푹 빠져 있다. 도쿄에서 보내는 나의 1년은, 아마도 내 인생에 드물게 찾아오는 'Long Vacation'이라 해도 될 것 같다. 어느새 나의 일상이 되어버린 서른세살까지의 생활에 너무 푹 젖어있어서인지, 나는 도쿄에서의 생활을 아주 즐겁게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이 생활의 '비현실성'을 더더욱 실감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차분히 뭔가를 정리하고, '예전처럼' 생각한다는 게 힘들기만 하다. 라이브러리를 멋대로 방치해둔 자의 변명 아닌 변명인 동시에, 지..

트레이시 슈발리에, '진주 귀고리 소녀'와 몇가지 기억들

진주 귀고리 소녀 Girl with a Pearl Earring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은이) | 양선아 (옮긴이) | 강 | 2003-08-25 주변의 평에 비하면,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베르메르... 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대학교 때 마구잡이 발표 수업이 있었는데, 미술에 대해 아무거나(!) 주제를 잡아서 발표하면 되는 거였다. 그때 나는 베르메르에 대해 발표를 했었다. 내용은 개판이었으므로 여기서 까발기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림의 모델이 되어본 경험도 있다. 어릴 적 우리집 2층 마루는 엄마의 화실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화실이 따로 없었던 엄마가 그림 도구를 널려놓은 공간이었다. 엄마는 어릴적 나한테 이런저런 자세를 취해보라고 하셨었는데, 제일 많이 했던 것은 흑염소 옆에 가서 서있는 것과..

딸기네 책방 2004.06.17

안토니오 네그리, '제국'

제국 Empire 마이클 하트 | 안토니오 네그리 (지은이) | 윤수종 (옮긴이) | 이학사 이탈리아는 좌파의 전통이 강한 나라라고 하지만, 이탈리아 작자들의 책을 읽은 것은 아주아주 오랜만이다. 이탈리아 좌파의 학문적 경향이 어떤지는 전혀 알 수 없고, 안토니오 네그리가 제법 유명한 사람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다. 이 책을 공동저술한 마이클 하트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책은 아주 재미있었다. 저자들은 근대-제국주의-제국주의적 (국가)주권이라는 것과, 탈근대-제국-제국주권이라는 한 쌍의 시대를 구분한다. 전자는 안과 밖, 대립, 위기와 대응 같은 '이분법'이 통용되는 시대였지만 탈근대, 즉 제국의 시기에는 그같은 이분법은 적용되지 않는다. 핵심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밖'이 없는 시대라는 ..

딸기네 책방 2004.06.17

[스크랩]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

꼼양 동화책 보여준다는 핑계로 내가 맨날 동화책 보고 있다 얼마전에 읽은 재미난 이야기. 엄마는 빨래를 좋아한다. 어제도 빨래를 했는데 "오늘 날씨 좋네" 이러면서 또 빨래를 한다 고무다라이에 옷 집어넣고 커튼까지 떼어 집어넣고 빨래를 한다 빨래를 다 한 엄마는 또 빨 것이 없나 찾아보다가 아이들한테 "빨래할 것 찾아와라!" 아이들이 찾아보니깐 강아지가 젤 더럽다 아이들이 잡으려고 쫓아오니깐 강아지가 도망가면서 '고양이가 더럽다'고 한다 아이들이 고양이를 쫓아가니깐 고양이가 도망가면서 '닭이 더럽다'고 한다 아이들이 닭을 쫓아가니깐 닭이 도망가면서 또 뭐가뭐가 더럽다고 한다 "멈춰!" 엄마의 명령이 떨어진 순간, 몽땅 멈춰버렸다 엄마는 아이들이랑 강아지랑 고양이랑 닭을 다 잡아서 빨았다 마당의 빨랫줄로는..

딸기네 책방 2004.06.11

요새 읽은 책들

제대로 독후감을 올리지 못하고, 대충 '기록 & 정리' 차원에서 목록(이랄 것도 없지만)만 쓰고 넘어가야겠다. 1. 일그러진 근대/박지향/푸른역사 2. 윤리21/가라타니 고진/사회평론 3. 어깨너머의 연인/유이카와 케이/신영미디어 작년에 씬지한테서 뜯어낸 책인데, 이제야 읽었다. 소설, 특히 이런 류의 사랑얘기 읽은 것이 너무 오랜만이어서, 좀 어색하기도 하고, 무지무지하게 재미있기도 했다. 그런데... '싱글즈'하고 거의 똑같잖아. 싱글즈 원작소설이 일본 꺼라고 들었는데 혹시 이 책??? 4. 신화의 힘/조셉 캠벨-빌 모이어스 대담/이끌리오 멋지다! 이런 것도 '원츄~~'라고 해야 하나? 여러모로 재미났지롱. 5. 나의 미카엘/아모스 오즈/민음사 소설도 멋지고, 번역도 멋졌다. **님이 문학적인 글을 ..

나의 미카엘

나의 미카엘 My Michael 아모스 오즈 (지은이) | 최창모 (옮긴이) | 민음사 | 1998-09-30 책을 읽으면서 마구마구 흔들려버릴 때가 있다. 책 속의 이야기, 그리고 나의 이야기, 혹은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머리 속에 뒤죽박죽 되면서 이것이 소설속의 이야기인지 혹은 나의 이야기인지, 현재의 이야기인지 과거의 경계선이 모호해져버리는 듯한 느낌. 이것은 ‘공감’과는 좀 다른 경험인데, 소설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끄덕 하게 되는 것에서 그치지를 않는다. 오히려 그보다는, 소설 속의 주인공들과 나를 동일시하는 단계를 넘어서 누가 누구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그런 상태. 기분이 좋다 나쁘다 어느쪽인지조차 알수 없게 되어버리는 상태, 이성도 감성도 엉망으로 엉켜버리는 그..

딸기네 책방 2004.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