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4019

세계를 하나로 만든 만델라… 분쟁지역 어린이들은 촛불로, 에펠탑은 무지갯빛 조명으로

파키스탄 카라치의 어린이들이 둥글게 모여 앉아 촛불을 들었다. 인도 첸나이의 학생들도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모였다. 늘 싸우는 인도와 파키스탄이지만 이날의 촛불만은 ‘하나’였다.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은 무지갯빛 조명으로 물들었다. 미국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도 일곱 색깔로 빛났다. 팔레스타인 가자시티의 ‘무명용사들의 광장’에서는 지난 8일(현지시간) 시민들이 모여들어 이스라엘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는 시위를 했다. 이들의 손에도 이날만은 돌멩이가 아닌 촛불이 들려 있었다고 AP통신 등은 전했다. 파키스탄 최대 도시인 카라치 어린이들이 지난 6일(현지시간)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을 추모하고 있다. 8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 대 에버턴 경기가 열린 영국 런던의 에미리츠스타디움의 대..

큰딸이 말하는 만델라의 ‘마지막 순간’  

“죽음의 과정조차 ‘대단한 순간’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아버지의 죽음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자녀들, 손주들, 아내, 모두가 24시간 그의 곁에 있었고, 임종을 함께 했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큰딸 마카지웨가 만델라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 입을 열었다. 만델라와 첫 부인 에블린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 중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마카지웨는 9일 영국 BBC방송 인터뷰에서 가족들 모두가 함께 했던 아버지의 마지막 하루에 대해 털어놨다. 만델라의 가족들만델라의 ‘정치적 후광’은 누구에게? 만델라의 큰딸 마카지웨가 9일 영국 BBC방송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임종 순간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BBC 웹사이트 그의 말에 따르면 만델라를 치료하던 의사들은 목요일인 지난 5일 아침(현지시간)..

"내가 첫번째 피고입니다" 만델라가 남긴 말과 유산들

넬슨 만델라의 발언과 유산들, 그가 내세운 투쟁과 용서와 화합의 정책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가 역사적인 ‘리보니아 재판’에서 했던 ‘자유를 향한 이상’은 억압받고 차별당하는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됐고, 그가 집권한 뒤 펼친 ‘진실과 화해’ 정책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 여러 나라에서 과거사 규명과 통합의 모델이 됐다. “내가 첫번째 피고입니다” 만델라의 이름을 세계에 각인시킨 것은 1964년의 ‘리보니아 재판’이었다. 반역죄로 기소된 만델라는 프리토리아에서 열린 재판의 모두발언에서 자신의 투쟁노선과 인종평등의 사상,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꿈을 밝혔다. “우리의 싸움은 진실로 민족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고통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아프리카 동포들의 투쟁입니다. ..

만델라의 가족들

만델라는 트란스케이 출신의 동향 여성 에블린 은토코를 요하네스버그에서 만나 결혼했으나, 에블린이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되어 종교에 빠져들면서 결혼 13년만인 1957년 이혼했다. 만델라는 자서전 등에서도 에블린에 대해서는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을 간략하게 정리했을 뿐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만델라와 에블린은 큰 아들 마디바 템베킬레(템비)와 막가토 두 아들과 두 딸을 두었는데, 템비는 만델라가 로벤섬 감옥에 수감돼 있던 69년 23세의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숨졌다. 딸들과 차남 막가토도 역시 만델라보다 먼저 사망했다. 에블린은 2004년 세상을 떴다. 만델라의 정치적 동반자로서 ‘운명적 만남’을 했던 인물은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여성정치인으로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두번째 부인 위니 ..

만델라 할아버지는 어떤 분일까

넬슨 롤리흘라흘라 만델라(Nelson Rolihlahla Mandela). 넬슨 롤리흘라흘라 만델라(Nelson Rolihlahla Mandela). 미국인들에게 50년 전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외쳤던 마틴 루터 킹이 있었다면, 만델라는 그 꿈을 실현시킨 ‘세계인의 마틴 루터 킹’이었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들뿐 아니라 백인과 유색인종 모두에게 칭송받는 진정한 영웅이었다. 모든 영웅에게는 적이 있게 마련이지만, 그에게는 적은 없었다. 그는 대의를 위해 적들도 끌어안을 수 있음을, 그리하여 적 또한 벗으로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 인물이었다. 남아공 백인정권의 마지막 대통령 F.W. 데 클레르크가 만델라가 출감한 뒤 1994년 흑인정권을 출범시키자 스스로 부통령으로 내려앉아 만델라를 도왔던 것..

힘없는 동티모르 자원 빼앗으려 도청한 호주  

“호주 같은 큰 나라가 이웃에게, 친구인 나라에게 할만한 행동이 아니다. 충격적이다. 비생산적이고 비협조적인 짓이다.” 동티모르의 사나나 구스마오 총리가 ‘해도해도 너무한’ 힘센 이웃 호주에 분통을 터뜨렸다. 건물을 지어준다며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해저 개발을 함께 하자며 자원을 빼앗아가고, 국제법정에 제소하려 하자 증인을 가두고 변호인을 습격한 호주 정부의 행태 때문이다. 발단은 2004년의 협정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인도네시아에 점령당해 극도로 핍박받던 태평양 섬나라 동티모르가 독립한 지 겨우 2년이 됐을 때였다. 인도네시아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동티모르 입장에서는 가까운 경제대국인 호주의 원조와 도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동티모르 총리 사나나 구스마오. 사진 호주파이낸셜리뷰(afr.com) 호주는..

"지금껏 보도된 건 스노든 문건의 1%에 불과" 가디언 편집국장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미국 국가안보국(NSA) 시민감시 관련 자료들을 갖고 있는 영국 가디언 편집국장이 의회 청문회에 나왔다. 이 자리에서 앨런 러스브리저 편집국장은 “지금까지 보도된 내용은 전체 자료의 1%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러스브리저 국장은 3일 하원 내무위원회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스노든 문건 보도는 공익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보도를 계기로 정보수집 활동에 대해 공개적인 논의가 이뤄질 수 있었고 (시민감시를 제한하기 위한) 법률 검토도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러스브리저 국장은 “지금까지 보도된 내용은 전체 자료의 1% 정도”라며 앞으로도 보도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스브리저는 지난 6월 스노든 파일을 처음 보도한 가디언과 미국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해 4개국 미디..

우크라이나 사태와 야누코비치라는 인물

우크라이나의 빅토르 야누코비치(63) 대통령(사진)은 50대가 되어서야 우크라이나어를 배웠다고 합니다. 우크라이나의 동쪽 절반은 1000년 넘게 러시아 땅이었고 러시아계가 살아왔고 지금도 러시아어가 쓰이지만 서쪽 절반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 폴란드의 영토였고 현대에 들어와 ‘우크라이나’라는 민족적, 언어적 정체성을 굳혔습니다. 야누코비치는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하는, 동쪽 가난한 산업지대 출신입니다. 요즘 시끄러운 우크라이나... 이 사달이 난 이유를 제공한 장본인이 야누코비치라는 인물이니, 과연 어떤 사람인지 한번 알아볼까요. 구체제의 붕괴와 독립, 한 차례의 혁명(2004년의 오렌지혁명)을 거치면서 살아남은 야누코비치는 옛소련권 ‘앙시엥 레짐(구체제)’을 상징하는 정치인으로 꼽힙니다. 그와 같은 ..

유엔 "시리아 아사드 대통령에게 전쟁범죄 책임 있다" 첫 거론

유엔이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사진)의 ‘전쟁범죄’를 처음으로 공식 언급했다. 나비 필레이 유엔 최고인권대표가 2일 시리아 내전 과정에서 벌어진 반인도범죄의 책임자로 아사드를 지목했다고 AP통신등이 보도했다. 필레이 대표는 이날 스위스 제네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2013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세계를 돌아보니, 국제 공동체를 뼈아픈 시험대에 오르게 만든 상황들이 있었다”며 시리아를 예로 들었다. 그는 “(정부군과 반정부군) 양측 모두에 심각한 인권침해가 만연했다”며 “(시리아의) 국가원수를 포함한 정부 최고위급에 책임이 있음을 보여주는 수많은 증거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사드 대통령이 시리아 전쟁범죄의 책임자임을 명시한 것이다. 필레이 대표는 시리아 인권상황을 조사한 유엔 특별조사위원회가 만든 ..

우크라이나, '제2의 오렌지혁명'으로 가나

‘제2의 오렌지혁명’으로 가는 것일까요. 어제에 이어, 우크라이나 소식입니다. ‘유로마이단(유럽) 시위’라 불리는 우크라이나의 반정부 시위가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유럽과 러시아 중 어느쪽과 무역협정을 맺을 것인가 하는 문제로 촉발됐지만 그 속에는 유럽과 러시아로 대변되는 정치적·사회적·경제적 가치에 대한 모든 고민이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수도 키예프에서 1일 정오부터 다시 재개된 반정부 집회와 대규모 행진에는 35만명이 운집했으며, 일부 시위대가 불도저를 동원해 대통령 관저 주변의 바리케이드를 무너뜨렸다고 키예프포스트 등이 전했습니다. 시위대는 경찰과 투석전을 벌여 부상자가 속출했고, 이 과정에서 뉴욕타임스와 AFP통신 기자들을 비롯해 취재진 30여명도 다쳤다고 합니다. (흑흑 다치고 싶지는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