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세계를 뒤흔든 대사건을 의미하는 숫자로 ‘9·11’이 더 유명해졌지만 2001년 이전까지만 해도 새로운 세기를 규정하는 대사건을 가리키는 것은 ‘11·9’였다. 1989년 11월 9일,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소련 대통령의 개혁·개방이 가져온 파급효과가 통제 불능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반세기 동안 냉전의 두 진영을 가르던 장벽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무너져 내릴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 후 20년, 베를린 장벽 붕괴 뒤 세계는 그리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정말 많은 변화를 겪었다. 독일인들은 통일과 함께 찾아온 사회·정치적 격변을 지혜롭게 넘겼다. 하지만 동유럽에서는 성공적으로 자본주의에 안착한 나라들과 내전의 혼돈을 겪은 나라들 간 운명이 엇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