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880

선계전 봉신연의

봉신연의 후지사키 류 (지은이) | 대원씨아이(만화) 후지사키 류의 '봉신연의'. 어제 22권까지 부리나케 읽었는데, 오후에 연합뉴스에 '봉신연의 23권 완간'이라는 기사가 떴더군요. 신나라~ 내가 원하는 게 바로 이런 거였습니다. "치고 박고 싸우고 갈수록 전력이 강화되는, 이 폭력의 미학"... 이라고 생각하는 건 결코 아니지만, 평소 저의 취향과는 정 반대인 이 만화를 제가 왜 그렇게 재미있어 하느냐. 전 이 세상에 없는 이상한 것들을 꼭 보고 싶은데, 이 만화에는 참으로 이상한 것들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기묘한 얼굴의 도사와 선인들은 물론이고 동식물에 연원을 둔 여러 종류의 요괴 따위 말이죠. 글구 제가 은빛 여우를 타고 다니게 된 동기이기도 한, 희한한 영수(靈獸?)들! 주인공 태공망의 영수는,..

딸기네 책방 2001.04.03

[스크랩] 서정주,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네가 죽으면

석남꽃 서정주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네가 죽으면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나도 죽어서 나 죽는 바람에 네가 놀래 깨어나면 너 깨는 서슬에 나도 깨어나서 한 서른 해만 더 살아 볼꺼나 죽어서도 살아서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서른 해만 더 한번 살아 볼꺼나 머리 속에 오래동안, 그것도 꽤 자주, 맴돌던 시가 바로 저 이었다. 고3 때였던 것 같다. 우리 학교의 책상은 흰 종이로 씌워서 비닐을 덮게 돼 있었는데, 시험 기간에는 한 반의 절반씩이 반을 바꿔 다른 교실로 간다. 어느 시험에서였는지 내가 옮겨가 앉은 책상에 저 시가 씌여 있었다. 문학소녀였던 그 자리의 주인이 베껴놓았던 것 같은데, 하는 구절을 맘 속에 넣어두고 있었지만 누구의 시인지는 알지 못했다. 어린 시절인데, 왜 저 시가 그렇게 가슴에 남았을까...

딸기네 책방 2001.04.01

하워드 진, <오만한 제국>

오만한 제국 Declaration of Independence: Cross-Examining America Ideology 하워드 진 (지은이) | 이아정 (옮긴이) | 당대 혼자 살고 있는 한 사나이가 있었는데, 누군가가 문을 두드려서 대답을 했다. 문을 열자 강건한 몸집에 잔인한 얼굴을 한 '폭군'이 서 있었다. 폭군이 물었다. "복종하겠느냐?" 사나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옆으로 비켜섰다. 폭군은 들어와서 사나이의 집을 차지했다. 사나이는 수년 동안 그를 시중들었다. 그리고는 그 폭군은 음식에 든 독 때문에 앓아눕게 되었고, 죽었다. 사나이는 그 시체를 싸서 문을 열고 나가 치워버리고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문을 닫았다. 그리고 단호히 말했다. "아니오" 역사에 관한 책을 읽고 나서, 굉장히 ..

딸기네 책방 2001.03.29

게놈 - 23장에 담긴 인간의 자서전

게놈 - 23장에 담긴 인간의 자서전 매트 리들리. 문과 공부를 한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나는 '비교적' 과학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관심의 이유는 지적 호기심, 혹은 지적 허영심, 쉽게 말하면 '알고 싶은 게 많아서' 이고, 어렵게 말하면 내가 물질 중심의 사고관을 갖고 있기 때문인데, 이 모든 이유들을 한마디로 하면 '알고싶어서'다. 인식의 지평을 넓힌다는 것. 올해에는 특히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소식들이 많았다. 내 호기심을 자극한 첫번째 것은 인간게놈지도가 완성됐다는 것. 인간게놈지도를 완성시킨 것은 두 집단인데, 하나는 '모험(벤처)적인 과학자' 크레이그 벤터가 이끄는 셀레라 제노믹스라는 '기업'이고, 또 하나는 '공리적인 과학자' 존 설스턴이 이끄는 HGP(인간게놈프로젝트)라는 단체..

마쓰모토 레이지, '니벨룽겐의 반지'

마쓰모토 레이지의 '니벨룽겐의 반지'(서울문화사) 1부와 2부를 읽었습니다. 마쓰모토 레이지 하면, 우리나라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우주전함 야마토, 하록선장, 그리고 은하철도 999. 국민학교 저학년 때 은하철도 999 만화책을 몇권 봤는데, 기분이 아주 이상하고 음침한 느낌이 들었다는 기억만 남아 있습니다. 재작년에 극장용 후속편을 비디오로 빌려다봤는데 영 꽝이더군요. 니벨룽겐의 반지는 아시다시피 독일의 전설이죠. 그리고 바그너(와그너?)의 오페라이기도 하구요. 마쓰모토는 바그너의 팬이라고 하는군요. 이 만화는 그 오페라를 모티브로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물론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는 아니고, SF물입니다. 첫 장면부터 저의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우주선입니다. 일본의 SF물은 메카닉..

딸기네 책방 2001.03.21

[스크랩] 에필로그 - 칼 세이건이 인류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

에필로그 - 칼 세이건이 인류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 (Billions and Billions) 칼 세이건 (지은이), 김한영 (옮긴이) | 사이언스북스 칼 세이건. 의 작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대중적인 우주과학자. TV에 많이 등장했고 각종 사안의 코멘터로도 애용됐던. 그 외에, 내가 이 사람에 대해 갖고 있는 지식은 없었다. 는 말 그대로 에필로그다. 과학저술가로서 명성을 떨쳤던 세이건이 골수암으로 죽어가면서 '인류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다. '마지막'에 방점을 찍는다면, 그가 남긴 에필로그가 환경파괴에 대한 경고문이라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저 광활한 우주를 바라보고 살았던 스타 과학자가 하고 싶은 얘기가 바로 환경 얘기였다. 물론 책 뒷부분에는 낙태에 대한 입장 등 기고문과 연설문들이 몇개 실..

기억창고에서 끄집어낸 해적판 이야기

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최근 읽은 만화 한 편을 소개하면. '하늘은 붉은 강가'는 바로 '나같은 사람', 나이도 잊은 채 어렸을 때 만화방에서 죽때리던 기억에 사로잡혀 헛된 망상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만화다. 여기서 잠시 딸기의 전사(前史)를 알아볼 필요가 있음. 국민학교 때부터 각종 만화방을 섭렵했었다. 그 때 가장 감명깊게 읽었던 만화 중의 하나가 바로 '나일강의 소녀' 시리즈였으니. 작가 이름은 당시 해적판에는 '유혜정'이라고 돼 있었음. 1부인 '나일강의 소녀'에 이어 '나일강의 여신', '나일강의 사랑', '나일강이여 영원히', 그리고 연속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나일강의 수수께끼'와 같은 후속편들이 줄줄이 따라붙는 대작이었다. 이 만화를 보고 고고학자가 될 결심을 했다니,..

리드뱅

Lie-De-Vin (리드뱅) Berlion (글) | Corbeyran(그림) | 비앤비(B&B) 여러 만화제에서의 수상경력이 가장 먼저 눈에 띄임. 첨엔 무슨 엽기물처럼 보이다가, 그 다음에는 이웃집 미스테리 여인을 둘러싼 탐정소설로 보이지만 결국에 가서 보면 한 소년의 '성장'을 둘러싼 이야기. 아주 재미있음. 엄마 없는 소년. 성격이 판이한 '고모들'과 함께 사는 고아. 얼굴엔 포도주색의 반점이 있음. '룰루'라는 개를 키웠음. 왜 하필 주인공은 개 이야기를 이렇게 많이 하는 걸까? 룰루가 어떤 끔찍한 경위로 인해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대체 무슨 엽기적인 이야기가 나올까 의심해가며, 대체 이 만화의 장르는 무엇일까를 생각했음. 이 때까지 나의 결론- 이건 탐정물이다! 이웃집 여인의 살인극 ..

딸기네 책방 2001.02.20

부유해진 세계, 가난해진 사람들

부유해진 세계, 가난해진 사람들 Richesse du Monde, Pauvrete's des Nations 다니엘 코엔 (지은이) | 주명철 (옮긴이) | 시유시 파리 제1대학 경제학교수인 다니엘 코엔의 저서입니다. 아시아 경제위기 이전에 쓰여졌다는 점과, 프랑스의 학자가 쓴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었습니다. 유럽인들은 가난한 나라들의 세계 무역시장 진출을 마치 무슨 야만인들의 침략이나 되는 양 경계하고 무서워하고 있는데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말고 내부적으로 잘 해라, 내부의 불평등을 없앨 궁리를 하는게 세계화에 대한 가장 올바른 대처방식이다, 그런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세계화-> 불평등 확산'의 직접적인 등식을 거부하고 있네요. 여기저기 쓴 글을 모아놓은 것 같아서 크게 재미있지는 않았는데 하..

딸기네 책방 2001.02.02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The Lexus And the Olive Tree 토머스 L. 프리드먼 (지은이) | 장경덕 (옮긴이) | 21세기북스 뉴욕타임즈의 국제문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토머스 프리드먼이 세계화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잔소리를 늘어놨다. 세계화의 껍데기만 뒤집어쓰면 뭐든 되는 줄 믿고 있는 이른바 '글로벌리스트'들을 향한 잔소리가 아니고, '아직도 세계화될 준비가 안 된 팔불출들'에게 쏟아놓는 잔소리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혼다자동차의 인기 브랜드네임을 빗댄 '렉서스'는 세계화, 기술, 인터넷 등등을 뜻하는 것이고, '올리브나무'는 국가, 민족, 문화, 정서 따위를 지칭하는 말이다. 저자 자신이 유태인이다보니 올리브나무를 '옛스런 감정'의 대유물로 삼았나보다. 하필이면 이 책을 보고 있..

딸기네 책방 2001.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