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하워드 진, <오만한 제국>

딸기21 2001. 3. 29. 09:59
오만한 제국 Declaration of Independence: Cross-Examining America Ideology
하워드 진 (지은이) | 이아정 (옮긴이) | 당대

혼자 살고 있는 한 사나이가 있었는데, 누군가가 문을 두드려서 대답을 했다. 문을 열자 강건한 몸집에 잔인한 얼굴을 한 '폭군'이 서 있었다. 폭군이 물었다. "복종하겠느냐?" 사나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옆으로 비켜섰다. 폭군은 들어와서 사나이의 집을 차지했다. 사나이는 수년 동안 그를 시중들었다. 그리고는 그 폭군은 음식에 든 독 때문에 앓아눕게 되었고, 죽었다.
사나이는 그 시체를 싸서 문을 열고 나가 치워버리고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문을 닫았다. 그리고 단호히 말했다. "아니오"

역사에 관한 책을 읽고 나서, 굉장히 기분이 좋아질 때가 있다. 요즘 읽고 있는 조너선 스펜스의 '현대중국을 찾아서'라든가 스탠리 월퍼트의 인도 이야기 같은 책들은 저자의 박학다식함과 유려한 문장, 필생의 노력과 열정 어린 시선 때문에 '역사책' 읽기가 재미있게 느껴지는, 그런 경우다.


그와는 다른 의미에서 기분 좋은 느낌을 주는 '역사에 관한 글'들도 있다. 대학시절 읽었던 김칠성의 '역사 앞에서', 진지함과 겸허함이 묻어나는 강만길의 '역사에세이'가 바로 그런 글들이었다. 딱히 새로운 이론이나 사실(史實)이 담겨서가 아니라, 그 학자적인 자세가 읽는 사람까지 맑아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의 '오만한 제국'도 그런 책 중의 하나다. 이 책의 원제목은 'Declarations of Independence', 즉 '독립선언'이다. 국내 번역본에는 '미국의 이데올로기로부터 독립'이라는 부제와 함께 '오만한 제국'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미국의 여러 가지 '나쁜 점'에 대한 비판은 그렇다고 치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책에서 많이 들어왔고, 별로 코멘트 할 것이 없다. 내 눈에 띈 것은, 말 그대로 산전수전 다 겪은 이 노학자가 인생을 살며 겪은 것들을 적절히 곁들여가면서 들려주는 '역사를 보는 눈'에 관한 것이었다. 얼핏 국제정치의 역학관계를 다룬 듯 보이지만, 이 책에서 빛나는 것은 역사를 대하는 그의 '마음'과 '시선'이다.


저자는 '마키아벨리즘을 경계하라'는 데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보통 학자들은 현대 국제정치의 흐름에 현실주의와 자유주의의 양대 산맥이 있다고들 하는데, 저자는 '자유주의'에 대해서도 '자유주의적 현실주의'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국제정치를 보는 주류의 시각에는 현실주의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실주의(Realism)라고들 하는데, 그렇다면 현실(Reality)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서 그는 출발한다.

주류들이 얘기하는 현실이란 결국 힘의 논리이고, 그것이 구현되는 형태는 전쟁과 억압일 뿐이다. 이 논리에 기대고 있는 이 세상의 힘센 이들은 '폭력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프로이트식 개념을 받아들인다. 이에 대해 저자는 "생물학과 유전공학이 발달하고 있지만, 인간의 본성 중에 '폭력'이 들어가 있다는 증거가 대체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한다.


"이른바 본능이라 불리는 것 중 어느 것도 '문화적 가치관에 대한 감정적인 충성'만큼 위험하지는 않다"(동물학자 콘라드 로렌츠)

주류의 논리에 맞서는 그의 저항은 '객관성'에 대한 관점에서 잘 드러난다. 

"역사가가 되기 전에 나는 쓰레기가 뒹구는 뉴욕의 어두운 뒷골목에서 자라났고 시위대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가 경관에게 정신을 잃을 정도로 두들겨맞기도 했다. 3년 동안 조선소에서 일했고, 전쟁의 폭력에 가담했다. 이러한 경험들은 나에게,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리고 역사를 쓰는데 있어서도 '객관성'에 대한 모든 희망을 잃게 만들었다."

생존과 자유, 행복 추구를 할 수 있는 모든 인간의 동등한 권리 보장을 근본적 가치로 삼고 그 가치를 확고히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편견'을 갖기로 결심했다고 그는 회고했다. 다만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에 있어서는 유연하고자 했다는데, 이런 시각은 사실 굉장히 중요하다. 90년대 초반 이른바 소련의 '현실사회주의'가 무너지고 난 뒤에 패닉상태에 빠진 사람들이라면, 정말 새겨들을 만한 얘기다. 

"역사에서 어떤 (불리한) 내용이 밝혀진다고 해서 내가 추구하는 가치, 목적, 이상을 폐기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를 정직하게 해석하는 일이 내가 추구하는 목적을 해치게 될까 두려워 과거 역사를 왜곡시켜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의 범죄를 인정하는 연설을 했을 때에도 이른바 '사회주의적 가치'들에 대한 확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신념과 함께 그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불의에 맞선 저항이다.


"이 땅에서 나가"
"왜?"
"내 것이니까"
"너는 그걸 어디서 얻었지?"
"우리 아버지한테서"
"그는 그걸 어디서 얻었지?"
"싸워서 얻으셨지"
"그래, 그렇다면 나도 그것을 위해 너와 싸울테다"

-칼 샌드버그, '민중들, 그래요' (The People, Yes)


2차 대전 때 폭격기 조종사로 직접 전쟁에 참가했었던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반추하면서 '정의'와 '저항'과 '반전(反戰)'에 대해 거듭 강조한다. 때로는 불복종의 형태로, 때로는 시위대의 형태로, 또 어떤 때에는 법정 투쟁의 형태로, 그렇게 끊임없이 계속되는 약자들의 저항 말이다.

"희망이 없다는 이유로, 즉 총과 돈을 쥐고 있는 자들 그리고 권력유지의 결의를 완강히 내보이는 자들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힘이 압도적으로 우세해 보인다는 이유로 정의를 위한 투쟁을 포기해서는 절대 안 된다."

지난 세기를 살아온 한 역사학자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는 바로 그 것이다. 책을 통해 하워드 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신념을 갖고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어려운 일인지를 역으로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고, 이 노학자를 존경하게 됐다. 


9.11 테러에 대한 하워드 진의 시각

9.11 테러 뒤 'Progressive'에 실린 하워드 진의 글입니다.
번역은 안주식님께서 해 주셨습니다.


폭력은 안된다.

텔레비전에 비춰진 모습은 정말 가슴아픈 것이었다. 백층이나 되는 건물에서 탈출하기 위해 불 붙은채 뛰어내리는 사람들. 먼지와 연기 사이를 헤치며 고통과 공포속에서 질주하는 사람들.

수천의 사람들이 건물밑에 살아 있으리란걸 알지만, 곧 그들은 거대한 잔해속에서 시체로 변할 것이다. 충돌과 화재 그리고 끝이 다가오는 동안 납치된 비행기의 승객들 사이에서 벌어진 테러는 단지 상상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상상은 나를 공포에 떨게 하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조금후,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이 텔레비전에 등장했다. 나는 다시 공포에 떨었고, 우울해졌다. 그들은 복수를, 앙갚음을, 징벌을 이야기 했다.
우리는 전쟁중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내 생각엔 그들은 20세기의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20세기의 역사는 복수와 앙갚음, 전쟁의 백년이었고, 테러리즘과 반테러리즘, 그리고 어리석게도 악순화된 폭력과 폭력이 만난 백년이었다.

우리는 수천의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그들의 대의명분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 미친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끔찍한 분노를 느낀다. 그렇지만 그 분노를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공포에 눌린 채로 단지 우리가 얼마나 센지 보여주기 위해 폭력적이고 무차별적으로 폭격을 감행하는 반응을 보여야만 하나? 대통령은 발표했다 "우리는 테러리스트와 테러리스트 비호하는 국가를 구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단지 폭탄이 "구분하지 못하는" 무차별적인 속성이 있다는 그 이유로 어쩔수 없이 아프간을 폭격해 무고한 사람들을 죽여야만 하는가? 테러리스트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그 이유로 우리가 테러를 자행해야 하는가?

이미 우리는 전에 같은 일을 했다. 이 방식은 오랜된 사고방식이고, 오래된 행동방식이다. 그러나 절대 먹혀들지 않았다. 레이건은 리비아를 폭격했고, 부시는 이라크와 전쟁을 치뤘으며, 클린턴은 아프간과 수단의 제약공장을 폭격했다. 이 모든 폭격의 이유는 테러리스트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지금 뉴욕과 워싱턴의 공포스러운 사태가 벌어졌다. 테러리스트들에게 폭력을 통한 메시지 전달이 전혀 효과가 없고, 단지 또다른 테러만 낳는다는 것이 이제 명확해지지 않았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에서 어떤 교훈도 얻지 못했나? 팔레스타인 측이 자행한 차량폭파는 이스라엘 정부의 공습과 탱크 공격을 유발했다. 이러한 짓거리가 수년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행동은 전혀 효과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양측에서 무고한 사람들만 죽어가고 있다.

그렇다. 이것은 오래된 사고방식이고, 우리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 전세계에 있는 미국이 벌인 군사행동의 피해자들이 느꼈던 분노를 생각해야만 한다. 네이팜탄과 집속탄을 사용해 농촌마을을 폭격하는 테러행위를 당했던 베트남. 독재자와 살인부대를 지원했던 칠레와 엘살바도르등 남미. 경제 봉쇄조치로 인해 수백만의 사람들이 죽어간 이라크.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사태를 정확히 이해하는데 중요한 지역이기도 한 가자지구와 웨스트뱅크 점령지역. (이 지역에는 수백만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잔혹한 군사 점령하에 살고있고, 우리 정부는 이스라엘에게 첨단 무기를 공급해주고 있다.) 

우리는 지금 텔레비전을 통해 목도하고 있는 고통과 죽음의 광경들이 실은, 세계 다른 지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행돼왔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우리정부의 정책 결과로 지금에서야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이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가 어떻게 침묵의 분노를 넘어 테러행위에 참여하게 되는지 이해해야만 한다. 

새로운 방식의 사고가 필요하다. 약 3조달러의 군사예산은 우리에게 안전을 보장하지 못했다. 전세계의 군부대와 오대양의 전함들은 안전을 보장하지 못했다. 지뢰와 "미사일 방공망"도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진 못할 것이다. 세계에서 우리의 위치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다른 민족 혹은 자기나라 민중을 억압하는 국가에 무기를 주는 행위를 멈추어야 한다. 정치가와 미디어가 무슨 이유를 갖다대며 떠들어도 우리는 전쟁을 절대 해서는 안된다고 결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시대 전쟁은 항상 무차별적이어서 결국 무고한 사람들과 아이들을 상대로 한 전쟁이 되기 때문이다. 전쟁은 수 백번의 사례가 보여주듯 테러리즘이다. 

우리의 안보는 총이나 비행기 폭탄이 아니라, 민중의 건강함과 복지에서 나오는 우리의 국부에 의해 보장된다. 모든 이에게 개방된 무상진료, 교육, 주거보장, 적정한 봉급, 모두를 위한 깨끗한 환경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다. 지금 어떤 정치지도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자유를 제한하는 것으로 우리의 안보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확장해야만 보장된다. 

우리는 이러한 본보기를 "복수"와 "전쟁"을 외치는 군사지도자와 정치지도자에서 찾아선 안된다. 이러한 본보기는 난장판속에서 생명을 구하는데 헌신한 의사, 간호사, 의대학생, 소방관 그리고 경찰들에게서 찾아야 한다. 그들은 폭력이 아니라 치료를, 복수가 아니라 자비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Howard Zinn: Violence Doesn't Work


September 14, 2001

Violence Doesn't Work

The images on television have been heartbreaking.
People on fire leaping to their deaths from a hundred stories up. People in panic and fear racing from the scene in clouds of dust and smoke.
We knew that there must be thousands of human beings buried alive, but soon dead under a mountain of debris. We can only imagine the terror among the passengers of the hijacked planes as they contemplated the crash, the fire, the end. Those scenes horrified and sickened me.
Then  our political leaders came on television, and I was horrified and sickened again. They spoke of retaliation, of vengeance, of punishment.
We are at war, they said. And I thought: they have learned nothing, absolutely nothing, from the history of the twentieth century, from a hundred years of retaliation, vengeance, war, a hundred years of terrorism and counter-terrorism, of violence met with violence in an unending cycle of stupidity.
We can all feel a terrible anger at whoever, in their insane idea that this would help their cause, killed thousands of innocent people. But what do we do with that anger? Do we react with panic, strike out violently and blindly just to show how tough we are? "We shall make no distinction," the President proclaimed, "between terrorists and countries that harbor terrorists." Will we now bomb Afghanistan, and inevitably kill innocent people, because it is in the nature of bombing to be indiscriminate, to "make no distinction"? Will we then be committing terrorism in order to "send a message" to terrorists?
We have done that before. It is the old way of thinking, the old way of acting. It has never worked. Reagan bombed Libya, and Bush made war on Iraq, and Clinton bombed Afghanistan and also a pharmaceutical plant in the Sudan, to "send a message" to terrorists. And then comes this horror in New York and Washington. Isn't it clear by now that sending a message to terrorists through violence doesn't work, only leads to more terrorism?
Haven't we learned anything from the Israeli-Palestinian conflict.
Car bombs planted by Palestinians bring air attacks and tanks by the Israeli government. That has been going on for years. It doesn't work.
And innocent people die on both sides.
Yes, it is an old way of thinking, and we need new ways. We need to think about the resentment all over the world felt by people who have been the victims of American military action. In Vietnam, where we carried out terrorizing bombing attacks, using napalm and cluster bombs,on peasant villages. In Latin America, where we supported dictators and death squads in Chile and El Salvador and other countries. In Iraq,  where a million people have died as a result of our economic sanctions,  And, perhaps most important for understanding the current situation,  in the occupied territories of the West Bank and Gaza,  where a million and more Palestinians live under a cruel  military occupation,  while our government supplies Israel with  high-tech weapons.
We need to imagine that the awful scenes of death and suffering we are now witnessing on our television screens have been going on in other parts of the world for a long time, and only now can we begin to know what people have gone through, often as a result of our policies. We need to understand how some of those people will go beyond quiet anger to acts of terrorism.
We need new ways of thinking. A $300 billion dollar military budget has not given us security. Military bases all over the world, our warships on every ocean, have not given us security. Land mines and a "missile defense shield" will not give us security. We need to rethink our position in the world. We need to stop sending weapons to countries that oppress other people or their own people. We need to decide that we will not go to war, whatever reason is conjured up by the politicians or the media, because war in our time is always indiscriminate, a war against innocents, a war against children. War is terrorism, magnified a hundred times.
Our security can only come by using our national wealth, not for guns, planes, bombs, but for the health and welfare of our people - for free medical care for everyone, education and housing guaranteed, decent wages and a clean environment for all. We can not be secure by limiting our liberties, as some of our political leaders are demanding, but only by expanding them.
We should take our example not from our military and political leaders shouting "retaliate" and "war" but from the doctors and nurses and medical students and firemen and policemen who have been saving lives in the midst of mayhem, whose first thoughts are not violence, but healing, not vengeance, but compassion.


Howard Zinn is a columnist for The Progress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