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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지프 나이, <국제분쟁의 이해>

딸기21 2001. 5. 30. 15:54

국제분쟁의 이해
조지프 S. 나이 (지은이) | 양준희 (옮긴이) | 한울

 


1. 세계 정치에 일관된 분쟁의 논리가 있는가?

1) 두 가지 이론적 전통: 현실주의와 자유주의

2) 국제정치란 무엇인가?


근대 이전 유럽의 3가지 세계정치 체제-세계제국체제(로마), 봉건체제, 무정부국가체제
1648 베스트팔렌 조약-주권영토국가 체제의 확립

▲무정부정치에 대한 두 가지 견해
① 현실주의-국제정치연구의 지배적인 전통. 리처드 닉슨과 헨리 키신저가 대표적. 
"국제정치는 무정부체제다"라는 전제에서 출발.
② 자유주의-국가 뿐 아니라, 지구적 사회(무역, 시민사회, 국제적인 관습 등)의 영향력도 중시.
③ 새로운 조류-'연역적 이론'(일종의 미시적 국제정치 이론), 신자유주의자들.
국제체제에 의해 제재를 받는 합리적 행위자로서의 국가 모델. 
④ 구성주의-국가, 주권 등의 개념 모두 특정 사회 내에서 구성된 것임을 중시. 

▲건축용 블록-행위자, 목표, 수단
① 행위자-국가가 아닌 행위자들의 증가. 거대 다국적 기업, 국제기구, 비정부기구, 인종·종교그룹.
② 목표-위험의 내용이 변하면서 안보의 정의도 변하고 있다. 군사적 안보 외에 경제문제, 마약, 에이즈, 환경 같은 다른 이슈들이 주요 안보문제로 부상.
③ 수단-하드 파워(군사력) 외에 경제적 상호의존, 커뮤니케이션, 국제기구, 다국적 행위자의 활용 등 소프트파워가 주요 수단으로 등장. 

3) 펠로폰네소스 전쟁

▲긴 이야기의 짧은 버전-작은 조약돌이 눈사태를 일으키듯이 연쇄적인 반응을 유발, 국제전으로 확대.

(코르키아와 코린트의) 다툼-(아테네의) 딜레마- (아테네의) 개입-(스파르타 내의) 논쟁-(스파르타의) 선택-(아테네와 스파르타 간) 전쟁

▲원인과 이론
투키디데스-전쟁을 불가피하게 만든 것은 아테네의 힘의 증가와, 그것이 스파르타에 가져다준 두려움이었다. 
페리클레스의 '제국론'-"여러분의 제국은 독재자와 같습니다. 제국을 가지는 것이 틀렸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포기하는 것은 확실히 위험합니다"
안보딜레마-나라를 지키자니 힘을 길러야 하고, 힘을 기르니 이웃이 겁을 낸다...한 국가가 자국의 안보를 위해 선택한 행위가 다른 국가를 위협. 각 행위자(각 국가)의 합리적 선택이 오히려 안보 위협을 가져오는 것.
'수인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를 피하려면-커뮤니케이션과 신뢰의 문제.

▲필연성과 미래의 그림자
'전쟁은 필연적이다'라는 생각이 바로 전쟁을 일으킨다.
'미래의 그림자'가 길어야만('공동의 미래'가 길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각 행위자들은 협동하게 된다. 상대가 배신하면? 나도 배신한다. 상대가 도우면? 나도 돕는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서로 돕는 것이 이롭다는 사실을 배운다.

▲도덕적 질문과 국제정치
국내정치에서보다는 역할이 작겠지만, 도덕은 국제정치에서도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한다.
아테네의 고백-"강자는 가진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약자는 자신들이 받아들여야 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필리스 슐라플라이-"핵무기는 신이 자유세계에 내리신 것"
오늘날에는 용납되기 힘든 말들이다. 그럼 오늘날에는 '도덕'이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된 걸까?
도덕적 주장을 심판할 수 있는 3가지 기준-동기, 사용된 방법, 결과 내지는 종합적인 영향

▲국제정치에서 도덕의 한계
국내정치에서보다 국제정치에서 도덕의 역할이 작은 이유
① '가치'에 대한 국제적 합의가 약하기 때문.
② 국가라는 행위자는 추상적인 존재다-정치가들의 행위는 '개인의 행위' 때와는 가치평가가 달라진다
③ 원인 변수가 복잡해서 점수를 매기기가 힘들다.

▲도덕의 역할에 관한 3가지 견해
① 회의론자-도덕적 범주는 국제정치에서 의미가 없다. 질서를 보장해줄 기구가 없기 때문. 힘만이 정의를 만든다. 
과연 그럴까? 국제정치는 무정부상태이긴 하지만, 100%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상태는 아니다. 최소한의 질서는 존재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하는 정치가들, 실제로는 선택할 것들이 있었는데 안 한 것뿐이다!
② 국가도덕주의자-국제정치에도 '규칙'은 있다. 가장 중요한 규칙은 국가주권('좋은 울타리가 좋은 이웃을 만든다').
③ 세계주의자들-국경은 도덕적 지위가 없다, 국경은 불평등을 가려주고 있을 뿐이다.
굶고 있는 에티오피아 어린이들을 보면 눈물이 난다-국가차원을 넘는 공동체 의식은 분명 존재한다!

2. 20세기 대전쟁의 원인들

1) 국제체제와 원인의 차원들(Levels)


세력균형과 '체스판 동맹'-적의 적은 나의 친구. 근접성 여부가 국가들의 행동방식을 상당부분 암시.

▲분석의 차원-개인(지도자), 국가(해당 국가의 사회체제), 국제체제

▲체제: 구조와 과정

국제체제의 과정을 결정짓는 요인 
① 체제의 구조(일극인가 다극인가, 혹은 양극인가) 
② 각 국가의 문화적, 제도적 배경 
③ 국가가 목적과 수단 양 측면에서 혁명적인가, 온건한가 

▲19세기 체제의 구조와 과정
다극체제에서 양극체제로-독일 vs 러시아와 프랑스
산업기술의 발달-대량 살상수단 개발

▲국내정치와 외교정책
① 레닌-"독점자본은 전쟁을 추구한다". 그러나 반대로 자본은 이익을 위해 평활르 추구한다는 시각도.
따라서 이 견해는 입증된 바가 전혀 없다.
② 자유주의적 견해-"무역이 발전하면 전쟁이 사라진다". 이같은 시각은 1차 대전으로 신뢰 상실.

▲자유주의의 부활
60, 70년대 일본의 발전-무엇이 평화를 가져오는가.
① 무역(경제발전)
② 개인 대 개인의 접촉(커뮤니케이션)
③ 국제제도의 발전
현실주의자들의 반론-유럽연합에 자유주의적 제도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안보딜레마가 재현될 것이다.

2) 가상사실

'만일 -했다면'-역사에서도 '가정'은 의미가 있다.
가상사실을 제대로 구성하기 위한 기본 요건
① 신빙성-"나폴레옹이 스텔스기를 가졌더라면" 하는 가정은 무의미. 가정의 조건들이 공존 가능해야.
② 시간의 근접성-"클레오파트라가 2차대전의 원인?" 시간적으로 멀어질수록 상관관계가 떨어진다.
③ 이론과의 관계-"미국이 사회주의국가였다면". 양극체제이론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④ 사실-가정 외의 나머지 사실을 정확하게 반영해야. 

3. 세력균형과 제1차 세계대전

1) 세력균형

▲권력

권력은 인구, 영토, 자연자원, 경제력, 군사력, 정치적 안정과 같은 특정 자원의 소유 여부와 밀접.
권력의 전환-자원(잠재적 권력)을 현실적 권력으로 전환하는 능력,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배치하는 능력

▲세력균형의 3가지 측면
① 권력의 분배로서의 세력균형
② 정책으로서의 세력균형-종종 오류가 생겨 전쟁으로 이어진다.
③ 다극체제로서의 세력균형-1차 대전 직전, 독일의 성장으로 다극체제가 붕괴.

2) 제1차 세계대전의 기원

▲분석의 3가지 차원

① 구조적 차원-독일 국력의 증가와 동맹체제의 경직성 강화
② 과정-민족주의(범슬라브운동)의 출현, 평화에 대한 지나친 자만으로 온건주의가 설 땅을 잃음.
③ 독일의 국내적 상황-'호밀과 철의 연합'이 주도한 해외 팽창정책.

▲전쟁은 불가피했는가?
전쟁의 원인
① 근원적(deep) 원인-세력균형의 구조와 국내 정치제제의 변화
② 중간원인-독일의 정책, 평화에 대한 자만심, 지도자의 개인적 특성
③ 촉발원인-페르디난드 암살
촉발원인이 없었다면? ①과 ②에 의해, 그래도 전쟁은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②도 없었다면? 안 일어났을 수도 있고, ①이 변화했을 가능성도 있다.

▲어떤 종류의 전쟁인가?
가상사실에 따른 4가지 전쟁 시나리오
① 오스트리아-세르비아 간 단순한 국지전
② 러시아, 독일이 끼어든 단일전선의 전쟁
③ 영국이 없는 양면전쟁-독일·오스트리아 vs 프랑스·러시아
④ 미국이 참전하지 않는 전쟁-독일 잠수함들이 미국 상선들을 공격하지 않았더라면.

4. 집단안보의 실패와 제2차 세계대전

1) 집단안보의 흥망성쇠


우드로 윌슨-"세력균형은 사악한 질서이다. 우리의 미래에 세력균형은 없어도 된다"
주권국가를 없앨 수는 없지만, 국제제도를 통해 '길들일' 수는 있다는 발상.

▲국제연맹-집단안보를 조직하기 위한 기구와 규칙.
집단안보의 특성
① 한 국가의 국력이 아니라, 그 국가가 호전적인지에 초점을 맞춘다
② 어느 국가가 침략국이 될지 모르므로 동맹이 형성되지 않는다
③ 중립국이나 무임승차 국가가 없는 보편적인 체제
주권과 국제법의 딜레마-아무도 국제법 때문에 주권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미국과 국제연맹-주권은 포기 못해! 결국, 집단안보의 고안자인 미국 자신이 국제연맹에 참가하지 않았다.

▲초창기의 국제연맹
동상이몽-프랑스는 독일의 손발을 묶는 것이 관심사. 반면 영국은 프랑스의 세력화를 의식, 비협조. 베르사유조약(1919)으로 망하다시피 한 독일은 겱구 1925 로카르노 조약으로 국제연맹 가입, 기사회생.

▲두 가지 실패
① 만주에서의 실패-1차 대전 뒤 강대국으로 인정받기 원했던 일본은 중국을 침략, 만주국 수립. 그러나 국제연맹의 대응은 느리고도 효과가 없었다. '집단안보 실험'은 실패했다.
② 에티오피아에서의 대실패-이탈리아 1935 에티오피아 침략. 국제연맹은 경제제재만으로 이탈리아를 철수시킬 것이라고 믿었지만, 무솔리니는 멈추지 않았다. 영국과 프랑스는 집단안보 개념이 아닌 전통적인 세력균형 개념에서 독일을 의식, 이탈리아를 계속 끌어들이려 애썼다.

2)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

▲히틀러의 전쟁?

히틀러는 분명 2차 대전의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다.

▲히틀러의 전략-4가지 단계
① 베르사유 조약의 틀을 깬다-국제연맹 탈퇴, 조건을 달아 '복귀 의사' 흘리며 서구의 눈을 속임
② 이웃 작은 나라들 상대로 팽창-체코 침략
③ 거짓전쟁의 시기-폴란드 차지, 대륙에서 지배권 획득. 짧은 잠복기
④ 과대팽창의 시기-전면전.

▲체제와 국내적 원인들
제1차 대전은 '독일이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① 서구 국가들은 계급대립과 이데올로기 전쟁으로 분열돼 있었다.
② 대공황으로 인한 독일 경제의 붕괴
③ 미국의 고립주의 정책
그러므로 제2차 대전의 원인은
① 1차 대전의 잔재인 체제적인 원인(근원적 원인)
② 독일에서 히틀러의 등장을 불러오고 민주주의 약화시킨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혼란(중간원인)
③ 패권을 향한 히틀러의 전략(촉발원인)

▲태평양전쟁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한 이유-전쟁을 하지 않는다 해도 결국 패망할 것. 목 졸려 죽느니 전쟁을 선택?
태평양전쟁에 대한 3가지 차원의 분석
① 개인의 역할-팽창주의적 군부(일본), 적극적 제재를 주장한 루스벨트(미국)
② 국내정치-일본 내 군국주의 심화, 중국의 국내정치 혼란
③ 체제적 원인-대공황으로 일본이 자원획득하기 어려워짐. 베르사유 조약은 일본의 야심을 막지 못함.

▲유화정책과 2가지 종류의 전쟁
유화정책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닌데, 시기가 중요하다. 독일을 달랬어야 할 20년대에는 가혹하게 했고, 단호히 대처했어야 했을 30년대에는 달래려 한 것이 국제사회의 실수.
1차 대전과 2차 대전은 '우연한 전쟁'과 '계획된 침략'이라는 두 상반된 모델로 표현되곤 한다. 그러나 1차 대전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고, 2차 대전도 히틀러의 침략 이상의 것이었다.

5. 냉전

1) 억지와 봉쇄


핵무기의 도래와 함께 수퍼 파워들은 침공 뒤 방어하기보다는 침공 자체를 그만두게 하는 쪽을 선택.
'코끼리의 비유'-교실에 코끼리가 들어왔을 가능성은? 3차대전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 '억지' 때문이었나?

2) 냉전에 대한 3가지 접근

① 전통주의자-스탈린과 소련이 냉전을 시작했다(당시 미국은 고립주의 전통 잔존)
② 수정주의자(60-70년대)-2차 대전 뒤 소련은 약했고 미국은 강했다. 냉전은 미국이 촉발. 온건파 수정주의자들은 강경파인 트루먼 대통령의 개인 성향 강조, 강경파는 미국 팽창을 지향하는 자본주의의 본질에 주목.
③ 탈수정주의자(70-80년대)-책임공방은 무의미하다, 냉전은 전후 세력균형의 양극체제 때문(불가피). 팽창은 경제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 무정부체제(더우기 유럽이라는 쿠션이 없어진)에서의 전통적인 안보딜레마 때문이었다.

▲적개심의 악순환-강경노선은 강경노선을 낳는다
스탈린-"이 전쟁은 과거와는 다르다. 영토를 점령한 그 누구든지 자신의 사회체제를 강요한다"
루스벨트-"이 지구적 전쟁에서 정치적으로든 군사적으로든 미국이 관심이 없는 문제는 없다"

3) 루스벨트와 스탈린의 정책

4) 분쟁의 단계

▲냉전의 단계 구분

① 점진적 개시기(1945-47)
② 선언기(1947-49)
③ 절정기(1950-62)

▲냉전을 촉발한 6가지 이슈
① 폴란드와 동유럽-소련은 자신들이 폴란드를 해방시켰다고 생각, 꼭두각시 정부를 수립.
② 1945년 5월 미국의 대소 원조 중단
③ 독일의 전쟁배상금-소련은 서독에서 받고 싶어하고, 서구는 동독에서 가져가라 하고.
④ 동아시아-"소련은 파티에 너무 늦게 도착했다"는 것이 미국의 인식
⑤ 핵무기-전쟁 직후만 해도 미국이 독점
⑥ 지중해 동부와 중동-소련군의 이란 진주, 그리스 공산주의 내전

▲트루먼 독트린
미국은 그리스와 터키를 원조할 것인가, 유럽에서 영국의 공백을 메워줄 것인가. 이 결정은 전통적인 미국 외교정책과의 단절을 의미. 단절을 선택한 트루먼은 "지중해 동쪽에서 세력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하는 대신 "전세게 자유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며 국민을 설득. 미국의 개입을 위한 도덕적, 이데올로기적인 논리가 만들어지기 시작. 이같은 '과장'은 냉전의 본질을 바꾸는데 일조했다. 

▲필연성
냉전의 시작은 필연적이었는가-'높은 개연성'은 분명 있었다. 그러나 개연성이 높았다 해도, 그렇게 치열했을 필요는 없었다. 과장과 이데올로기의 역할이 개입, 점점 심각해졌다.

5) 분석의 차원

왜 곰(소련-육상세력)과 고래(미국-해양세력) 사이의 노동분업이 불가능했는가-세력균형을 깨뜨릴 수 있는 국가들(유럽, 일본)이 소련의 주위에 있었기 때문.

▲냉전에서 미·소의 목표
① 소련의 팽창과 히틀러 팽창의 차이-소련의 팽창은 호전적이지 않았다. 즉, 스탈린은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또 소련은 모험적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기회주의적이고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냉전이 진행될수록 '노동자 계급의 해방'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덧칠돼 소련의 팽창을 부추겼다.
② 미국의 목표-봉쇄 
'모호함'의 문제-소련을 봉쇄할 것인가, 공산주의를 봉쇄할 것인가. 이에 대한 모호함은 냉전 후반기 혼란의 원인이 됨. 한국전쟁에 중국이 개입하자 미국은 공산주의를 '하나'로 인식, 결국 베트남전에 개입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6) 냉전의 여론

쿠바 핵미사일 위기로 미·소 모두 핵전쟁 경각심 느끼고 데탕트에 들어갔지만 데탕트는 80년대에 깨져버린다.
① 소련의 국방력 증가
② 소련의 앙골라, 에티오피아, 아프가니스탄 개입
③ 미국의 보수화 경향
그러나 데탕트가 깨졌다 해도, 80년대에는 레이건조차 군축을 얘기했을 정도로 '분별'이 있었다.

7) 냉전의 종식

냉전은 왜 끝났는가? 봉쇄가 작동한 것이었다면, 왜 끝나기까지 40년이나 걸렸는가? 
냉전이 끝난 3가지 배경
① 촉발원인-고르바초프라는 개인. 개혁·개방정책, 포지티브 섬을 주장한 외교정책(이른바 '신사고'), 최대한의 핵무기가 아니라 방어를 위한 최소한의 핵무기를 갖는다는 '충분원칙' 등. 시기적으로 봐서 80년대 후반 소련 원로지도자들 모두 사망, 흐루시초프 하에서 자라난 이른바 '생성세대' 집권.
② 중간원인-자유주의적 아이디어와 제국적 과대팽창. 고르바초프의 신사고, 초국가적 통신과 접촉 증가, 서구의 경제적 성공이 가진 전시효과. 이에 상반되는 소련의 엄청난 방위예산과 경제 낙후.
③ 근원적 원인-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쇠퇴와 소련경제의 실패(계획경제의 실패)

8) 핵무기의 역할

▲물리학과 정치-핵무기의 정치학

① 40년대-핵무기는 전쟁의 성격을 바꿨지만 세계가 조직되는 근본적인 방식을 바꾸지는 못했다. 
소련이 유럽을 인질로 잡고 있었다-미국은 재래식 무기를 이용한 소련의 유럽공격을 겁내야 하는 상황.
아인슈타인-핵무기 통제를 위한 미국의 바루크 플랜이 실패하자 "물리가 정치보다 쉽다"
② 수소폭탄시대-핵무기의 소형화. 전쟁은 단순한 정치적 수단의 연장을 넘어섰다. 목표와 수단의 불균형(작은 것 얻으려고 지구를 멸망시켜?) 초래. 결국 핵무기는 '마비됐다'는 말까지. 

▲수소폭탄의 정치적 함의
① 총력전에서 다시 제한전으로.
② 위기는 있었지만, 결정적인 '전쟁'은 없었다
③ '억지'가 수퍼파워의 주요 전략이 됐다.
④ 수퍼파워들의 '분별력'이 '레짐'을 이루며 발전. 핵전쟁을 회피한다는 공동의 이익이 생겨난 것.
⑤ 핵무기는 실질적인 전쟁의 수단에서 제외됐다(규범적 자제)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
핵무기가 만들어낸 특이한 형태의 세력균형. 무력 실험은 물리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심리적인 것이 됨.
양극체제는 커뮤니케이션과 계산을 단순화하기 때문에 안정적이라는 주장도. 그러나 양극체제는 유연성이 없기 때문에 베트남전과 같은 주변부 전쟁을 심각하게 만든다.
수정공 효과(crystal ball effect)-'그날 이후'를 겁내며 핵무기 사용을 자제. 

▲핵 억지의 문제들
핵무기가 없었다면 냉전이 열전으로 바뀌었을까(핵 억지의 효과)?
억지의 요건-피해를 줄 수 있는 능력, 그 무기가 사용될 것이라는 믿음.
그러나 양극체제가 굳어지기 이전에도 미국은 사용을 자제. 도덕과 여론도 일정한 역할. 

▲쿠바 미사일 위기
핵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사건. 그러나 이 작은 가능성이 전쟁을 '억지'했다.
그러나 지금은? 핵을 가진 국가들이 자제력과 분별력을 배울 시간이 있을까?
핵과 비전통적 무기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6. 개입, 제도, 지역분쟁

1) 주권과 개입

▲개입의 정의

(광의) 다른 주권국가의 국내 사건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적 행위
(협의) 다른 국가의 국내사건에 영향을 주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것
강제성의 정도에 따른 스펙트럼: 연설, 방송-경제적 원조-군사자문-지원반대-봉쇄-제한된 군사적 행동-군사적 침략 

▲개입에 대한 판단
① 현실주의자에게는 질서와 평화가 국제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이며, 세력균형이 가장 중요한 제도. 따라서 개입을 정당화. 예) 냉전 시기 미소의 행위
② 세계주의자에게는 정의가 중요한 가치, 그러므로 '선한 개입은 허용된다'.
③ 국가도덕주의자들에게는 국가와 국민의 자치권이 지상가치. 따라서 개입은 정당화되기 힘들다.

▲규칙의 예외들
마이클 월저가 제안한 '개입이 정당화될 수 있는 4가지 예외'
① 적들의 침략움직임을 제압하기 위한 선제개입
② 균형을 위한 개입-남의 개입을 무효화하기 위해 나도 개입하는 것
③ 대량학상 우려가 있는 경우
④ 대표성이 입증된 분리운동을 지원할 경우

2) 국제법과 기구

▲국내적 유추

국제기구(유엔)의 한계
① 회원국의 주권이 헌장에 의해 그대로 보호된다
② 기구의 약체성-사법권도 없고, 유엔총회의 '1국가 1투표' 자체가 비민주적, 국제법은 강대국 없이는 집행력도 없다. 결의안의 구속력도 없고 관습법의 해석도 나라마다 다르다.

▲그럼에도 국제법과 기구가 현실 국제정치에서 중요한 이유-예측가능성(predictability)과 정통성을 주기 때문.
① 수에즈운하 위기-나세르가 수에즈운하를 국유화하자 영국은 프랑스, 이스라엘과 이집트를 침략. 그러나 유엔은 평화유지군을 투입, 분쟁 당사자들을 '떼어놓는' 전략, 미국은 유엔을 지원, 최악의 상황은 피해감.
② 1967 중동전쟁 말기에 통과된 유엔안보리 결의안 242호-전쟁 전 국경 회복을 요구. 아랍국가들은 전쟁에서 졌지만, 유엔 결의안을 들어 이스라엘을 '압박'할 수 있었다.

▲유엔평화유지와 집단안보
냉전기간 집단안보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으면서 유엔의 '예방외교' 개념 대두. 침략자 처벌보다는 유엔 평화유지군을 투입해 분쟁당사자들을 떼어놓는 수에즈 위기 때의 모델이 작동한 것.
걸프전은 40년 만에 유엔의 집단안보가 가동된 사례.
① 이라크의 침략이 너무나 명백했고
② 그런데도 유엔이 집단안보에 실패한다면 탈냉전시대 집단안보체제는 물 건너갈 처지였던데다
③ 후세인의 침략논리가 다른 약소국에도 적용될 위험이 컸기 때문.

그러나, 유엔의 집단안보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① 유엔체제는 명백한 침략이 있을 때에만 작용. 따라서 내전의 경우 적용하기가 힘들다
② 거부권을 가진 미국과 러시아, 중국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 언제라도 무력화된다
③ 강대국이 자원을 제공하지 않으면 작동할 수가 없다

3) 중동분쟁들

▲민족주의의 문제

시오니즘의 사례-70∼80년대에는 유엔 결의안으로 '인종차별'로 규정, 91년에 이스라엘 로비로 결의안 무효화.
민족은 국가통합의 주요한 도구-20세기 식민지 해방운동 세력들은 반대로 '국가가 민족을 만들 수 있는 권리'를 주장. 식민통치자들이 만들어놓은 국가기구를 이용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

7. 상호의존, 세계화, 정보화 시대

1) 상호의존의 개념 

▲상호의존의 자원

상호의존의 여러 차원을 결정짓는 개념-자원, 이익, 상대적 비용, 대칭

▲상호의존의 이익과 비용
단기적 민감성(sensitivity)과 장기적 취약성(vulnerability)-민감성은 의존효과의 양과 속도를 가리키는 개념, 취약성은 상호의존체제의 구조를 변화시킬 때 드는, 즉 게임의 법칙을 변화시키는데 드는 비용. 그러나 민감성 취약성

▲상호의존의 대칭성
상호의존하고는 있지만, 두 나라의 관계에는 불균형, 즉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경우가 대부분. '비대칭'은 상호의존 정치의 핵심. 석유는 있는데 시장이 없거나, 기술은 있는데 자원이 없거나. 
비대칭에서의 '교환'-무역에서는 내(일본)가 흑자를 보지만 군사적으로는 너(미국)의 우산에 들어가 있을 때에는 일방적으로 비대칭의 장점을 누릴 수가 없다. 이처럼 비대칭의 요인들을 '교환', 역관계의 균형을 잡는 것. 국제제도는 어젠다를 설정하고 이슈 영역을 정의함으로써 상호의존관계에서 교환의 규칙을 설정. 여기서도 '주도권'이 중요.

▲현실주의와 복합적 상호의존

현실주의의 3가지 가정을 뒤집어보면 복합적 상호의존의 정치학이 드러난다.
① 국가만이 주요 행위자가 아니고, 초국가적 행위자들 또한 주요 참가자다
② 무력 뿐 아니라 경제적 조정과 국제제도의 사용도 지배적인 도구가 된다
③ 안보가 아니라 복지가 지배적인 목표다
그러나 현실주의자의 가정이나, 위의 가정이나 모두 '단순화'의 한계가 있다. 실제로는 미-중 관계처럼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경우가 많다.

2) 석유에 관한 초국가적 정치

▲7공주(Seven sisters)에서 OPEC로, 국제 석유레짐의 변화가 이뤄진 배경은.
① 민족주의와 탈식민지화라는 세력균형의 변화(현실주의자)
② 석유 이슈 자체 내의 세력균형 변화(현실주의 수정된 형태)
③ 다국적 기업과 OPEC 등 국제제도의 역할 변화-다국적 기업의 협상력 쇠퇴를 강조

▲권력자원으로서의 석유-현실주의와 복합적 상호의존 사이에 존재하는 이슈의 본보기
오일쇼크가 미국의 정책까지 바꾸지는 못했다-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국가들은 미국에 너무 많이 투자하고 있었기 때문. 역으로, 오일쇼크가 미국의 숨통을 죄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군사적 개입이 없었던 것. 

3) 초국가적 행위자

오일쇼크 때 군사적 충돌이 없었던 또 하나의 요인-한 국가 내에도 고유가를 반기는 세력이 여럿 존재.

4) 권력과 정보화 시대의 상호의존

8. 신세계 질서?

1) 미래를 위한 대안적 구상


① 세계연방주의-만국이 무기를 버리고 하나의 중앙정부를 만드는 것
② 기능주의-주권국가의 껍데기는 유지하되, 호전적인 요인들만 제거하는 것. 분야별 국제협력 강화도 포함.
③ 지역주의-지역별 블록 형성
④ 생태주의-희소자원을 공유하기 위한 범지구적 체제.
⑤ 사이버 봉건주의-국가는 존재하겠지만, 정보화시대에는 중요성이 한층 떨어질 것이다

2) 민족주의와 초민족주의

3) 신세계질서?

▲미래의 권력 배치-다중적 차원의 상호의존

지금 세계는 일극 패권인 듯 보이지만, 경제적으로는 미-일-유럽의 삼극체제, 중국까지 포함하면 4극이 될 수도.

4) 미래에 대한 생각

오늘날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정치에 대한 현실주의와 자유주의자의 견해를 모두 이해해야 하고, 구성주의자가 강조하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도 민감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이상적인 형태를 동시에 생각할 필요가 있다. 현실주의도, 완벽한 복합적 상호의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두 가지는 모두 이상형이다. 

미래는 얼마나 과거를 닮을 것인가? 유럽은 어느 정도까지 미래로 돌아갈(back to the future) 것인가?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할 것인가? 문명간 전쟁이 일어날 것인가? 정보화시대는 더 민주적이고 평화적일까?
신세계는 깔끔하지는 않겠지만, 거기서 당신은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