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키리냐가

딸기21 2001. 6. 8. 11:42

키리냐가
마이크 레스닉. 열린책들.



   

방금 전 TV뉴스를 보는데, '우리는 지금'이라는 코너가 있네요. 처음 봤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가 '고쳐야 할 것들'을 지적하는 순서인 모양입니다. 질서 안 지키고 공공장소에서 떠들고 쓰레기 함부로 버리고, 우리 사회에서 고쳐야 할 것들, 범인인 저의 눈에도 거슬리는 것들이 숱하게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주제는 조금 특이해 보이네요. '점심 시간 너무 길다'가 그 주제였습니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점심시간이 너무 길어서 기업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강남의 한 대중음식점에서 와글바글 점심먹는 직장인들 모습을 보여주고 외국계 기업 주재원들의 '평가'를 덧붙인 것만 봐도 의도는 명백하죠. 강남의 저 식당에서 점심 때 부대찌개를 먹으면 기다리는 시간, 찌개 끓는 시간, 먹는 시간, 다 먹고 숨돌리는 시간 합해서 45분이 넘게 든대요. 

이 시간 계산법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저는 점심시간 45분이 그리 길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요. 마이크 레스닉의 판타지 아닌 판타지, SF 같지 않은 SF '키리냐가'를 읽으면서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오늘 집에 누워 뒹굴뒹굴(인간 본연의 자세는 직립이 아니라 뒹굴뒹굴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하면서 속독 겸 숙독(뒹굴뒹굴 하다보면 이것이 가능합니다)을 했는데 말이죠. 


케냐는 여러 종족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키가 크고 호전적인 마사이, 유목민의 흔적이 강한 삼부루, 농경을 기본으로 하는 키쿠유, 더 호전적이고 잔인하고 키가 작은 피그미 등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지금은 '케냐'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습니다만, 인근 탄자니아나 보츠와나 등 식민지 시대 이후 정치적 상황에 의해 나뉘어져 있을 뿐 뿌리는 결국 부족사회이고 지금도 농촌에서는 부족사회가 유지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얼마 전에 제가 삼부루족 소년에 관한 기사를 쓴 일이 있거든요^^) 

'키리냐가'는 그 중 키쿠유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키쿠유족 본연의 정체성을 잃고 정체성을 상실한 '케냐인'이 되어버린 키쿠유족의 현실을 안타까와 하던 한 키쿠유 노인이 서기 2130년대의 어느 시기 '유토피아 위원회'라는 범우주적 관리기구의 허가를 얻어 지구화된 무인행성 하나를 개척합니다. 이 노인은 부족의 주술사를 자처하며, 이 행성 '키리냐가'에 거주하는 키쿠유족을 '원래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전하기 위해 애씁니다. 옛 부족은 생각할 필요도, 발전할 필요도 없으며, 유럽식 사고방식을 절대로(마이신 연고 한 개라도)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지킨다'는 것과 '자란다'는 것 사이에는 언제나 대립이 존재합니다. 한쪽은 전통(긍정적 측면)이자 수구(부정적 측면)이고, 또 다른 한쪽은 발전(긍정적 측면)이자 정체성 상실(부정적 측면)입니다. 근대적 맥락에서는 원주민과 식민주의의 싸움이고, 기술 발전 이후의 상황에서는 보존과 개발의 딜레마와도 상통합니다. 참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 중층적인 대립구도 사이에 레스닉은 한 가지 중요한 주제를 더 끼워넣습니다. 인간의 자율성에 관한 겁니다. 노인은 자연스레 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요구하고 나선 부족민의 반발에 부딪쳐 결국 지구로 쫓겨나지만, 그의 실험이 성공했는지(키쿠유들이 지구에서의 식민화 경험 대신 자생적 발전의 길을 택해 역사의 승리자가 되었는지)는 소설이 끝나도록 미지수로 남습니다. 


독자들에게 던져진 질문은, '고민도 생각도 없이 누군가의 조정에 맞춰 걱정없이 사는 것이 과연 유토피아인가'하는 겁니다. 그 문제는 어려워서 해답을 통 모르겠네요. 만일 '유토피아가 아니다'라고 한다면, 문제의 키쿠유 노인같은 이는 "당신은 서구식 사고체계에 병들어 있을 뿐"이라고 반박할지도 모르니까요. 

저는요, 아침 6시(요새는 지각도 자주 하지만^^)에 출근을 합니다. 11시30분에 오전 업무가 끝나면 회사를 빠져나가, 오후회의 준비를 해야 하는 오후 2시30분(혹은 3시)까지 '놀다' 옵니다. 말하자면 저는 하루의 배꼽을 잘라, 먹고 떠드는 재미에 삽니다. 저의 점심시간은 대단히 긴 편이지요. 뉴스에서 지적한 45분의 무려 4배에 달하는군요^^ 점심시간은 저에게 재충전의 시간이자, 하루 생활의 즐거움의 원천입니다. 


그 시간 동안 답답한 사무실을 벗어나 어떤 때에는 홍대 앞에 가서 차도 마시고, 회사 부근 할리스 커피숍에서 모카커피도 먹고, 휴게실에서 낮잠을 자기도 하죠. 국가경쟁력이라는 이름 하에 점심 시간을 '외국기업에 맞춰' 줄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동양의 미학인 느림과 여유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말이죠. 서양에서도 일본식 선(Zen)이 유행을 한다는데, 밥 먹는 시간까지 '서양식 합리주의'에 맞추고 싶지 않거든요. 

'키리냐가'에 나오는 키쿠유 주술사 노인네의 소영웅주의와 독선, 아집, 여성비하 따위가 몹시 거슬리긴 했지만, 아무리 우리가 영어 없이는 못 사는 처지일 지언정 내가 점심을 몇 분간 먹느냐 하는 것까지 남의 잣대에 재단 되어 경쟁에 떼밀리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가 던진 어려운 질문의 해답은 잘 모르겠지마는, 때로는 '양보하기 싫은 것'들이 있는 법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