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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착취자의 나라

중간착취자의 나라이한. 미지북스 비정규직 문제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다. 아니, 따지고 들면 전 세계의 모든 문제는 이리로 귀결된다 해도 될 것 같다. 노동력이 값싼 물건이 되고, 더불어 일을 하는 사람도 값싼 상품이 돼버린. 이 책의 저자는 변호사다. 책은 비정규직이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부정적 효과,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이며 어떤 방향으로 해결해야 할 것인가를 설명한다. 사례집이나 현장과 밀착된 연구서라기보다는, 뭐랄까, 비정규직 개념과 정의를 중심으로 원리원칙을 다지고 드는 학술서같은 느낌. 프롤로그는 인력관리 아웃소싱회사에서 일했던 사람의 인터뷰다. 도급계약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도급 금액, 기간, 인원, 결원율 한계죠. 이를테면 몇 억으로 도급 금액을 줄 테니 이 사업장에..

딸기네 책방 2017.09.25

베른트 하인리히, 홀로 숲으로 가다

나는 열 살 때까지 북부 독일의 숲으로 피난을 가서 6년 동안 살았다. 우리 가족이 가진 것은 아주 적었지만 나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까마귀를 애완용으로 키웠고 딱정벌레를 수집할 수도 있었다.상쾌하고 맑고 영원한 마법에 싸인 세상. 이제는 그저 이따금씩 떠오르는 그 생생함을 다시 맛볼 수 있을까? 난 이미 그런 조건들을 많이 갖추고 있긴 하다. 우리 가족이 미국으로 이주해온 이후 나는 메인 주의 시골에서 십대를 보내면서 사냥을 하고, 낚시를 하고, 덫을 놓는 법을 배웠다. 메인에서 만난 스승들은 이미 오래전에 내게 집에서 맥주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라이플총을 가지고 있고 통나무 오두막은 벌써 지어놓은 상태다. 나머지는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그래서 한번 해보기로 했다. (7쪽) 얼마전..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페이스북에 지인이 올린 글. "상암동 난지공원 북쪽에 요런 게 몰래 지어져 숨어있다. 동네 주민인 우리 회사 직원의 말에 의하면 일반 도서는 거의 없어 주민들을 외면한 도서관이라는데." 어떤 곳인가, 그냥 심심해서 검색해봄. 웹사이트의 이사장 인사말은 이렇게 돼 있다. "2017년은 근대화의 국부(國父)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돌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해입니다. 우리가 박정희 대통령을 기리는 이유는 박 대통령이야말로 애국애족(愛國愛族)의 정신으로 일평생을 조국 근대화와 굳건한 안보 구축을 위해 헌신하신 분이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정의의 율법과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을 통해 이 나라 국민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강철 같은 의지의 국민으로 환골탈태시킨 분이기 때문입니다. 박정희대..

오랜만에 리움

지난 금요일, 오랜만에 리움.달항아리는 언제나 그렇듯 좋았고. 그래도 역시 자기는 청자~~~고려청자는 비싸겠지... -_-;;청자에다가 철화를 넣는 이유를 모르겠다.힘들게 청자 만들어서 왜? 왜? 김홍도의 병진년 화첩... 감각이 현대적이면서 따뜻해서 좋다.이번에 최고 좋았던 건 김환기. 역시 김환기...사정이 사정인지라 김환기 특별전 하려다가 취소했다는데 아쉽다. 로비에 있는 나와 코헤이의 사슴은...얼핏 보면 특이하니 이쁜데, 저 안에 시체;;가 있다고 생각하면 섬뜩.데미안 허스트의 나비 작품들도 그렇고.... 아니쉬 카푸어의 ....요런 것도 좋아하지 말입니다. 데미안 허스트의 약 아파트;;(원제는 찾아보니 '죽음의 춤')을 예전에 보았을 때 참 좋았는데 그건 없고 약장(원제는 '두려워할 것 없다'..

호세 무히카 조용한 혁명

한 권을 다 읽고 새 책을 펴는 것이 아니라 이 책 저 책 펼쳐놓고 읽다가 덮었다가 하다 보니, 한 권 다 끝내는 데에 몇 달씩 걸리기 일쑤다. 그렇게 읽다가 잊어버린 책들이 책꽂이, 책상 위, 서랍 속에서 발견되는 일도 종종 있다. 앞부분 읽은 내용도 다 잊어버려서 다시 들춰봐야 하는 것들. 그렇게 '발굴'한 것들 중에서 두 권, 토요일에 카페에 앉아 드디어 끝장을 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마우리시오 라부페티, 박채연 옮김, 부키)이었다. 재미있었다. 이 책을 쓴 저널리스트 라부레티는 "예전에는 우루과이에서 왔다고 하면 바로 ‘축구'가 나왔지만 지금은 많은 지역에서 ‘무히카'를 말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17쪽)고 썼다. 그 말 그대로다. 내게 우루과이는 '우루과이 라운드' 혹은 '제1회 월드..

딸기네 책방 2017.09.14

[공영방송 제자리 찾기](3)전문가형 BBC, 시민형 ZDF···제도는 제각각, 언론자유는 ‘운영’이 좌우

2012년 아시아·태평양 방송연맹(ABU)은 ‘공영방송’에 대해 ‘민영도, 국영도 아니며 정치적·재정적으로 독립된 방송’이라고 규정했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시민의, 시민에 의해,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 공적 제도’로서 공영방송은 사회적 책무를 갖는다고 언론학자들은 말한다. 나라마다 공영방송 소유구조나 정부와의 관계는 조금씩 다르다. 공영방송들은 독립성을 강조한 ‘전문가모델’, 의회 다수당이나 정부에 의해 직접적으로 통제되는 ‘정부모델’, 의석 비율에 따라 정당들이 영향력을 갖는 ‘의회모델’, 의회 정당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집단들도 발언권을 갖는 ‘시민모델’ 등으로 나뉜다. 여러 모델들은 그 나라의 방송 역사와 시장 구조, 정부 방침 등에 따라 서로 다르게 발전해왔다. 방송 독립성 최..

'무릎 꿇은 장애아동 부모'를 보며...

아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특수학교와 담장을 맞대고 있었다. 시멘트 담은 아니었고 철망처럼 생긴 울타리였던 걸로 기억한다. 아이의 친구 중에는 특수학교 교사 부부의 딸도 있었고, 아이들은 옆의 학교가 특수학교라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울타리에 매달려 놀았다. 등하교 길에 특수학교 학생들을 오가며 보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아무도 특수학교에 대해 좋다 싫다 얘기하는 걸 본 적 없다. 아마도 '오래전부터 거기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없던 학교를 새로 짓겠다고 하면 그 동네 사람들도 반대하고 나섰을까? 그랬을 수도 있겠다. 지금 반대하는 지역의 민심이 '특별히 나빠서'는 아닐 테니까. 아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는 특수학급도 있었다. 학생은 단 두 명. 몇 번 얘기한 적 있지만, 나를 보..

[구정은의 세상] 김장겸의 '사소한 일'

2003년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정권은 미국을 도와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기 위해 ‘공작’을 했다.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이 핵무기, 생화학무기 등을 개발하고 있다면서 위험을 과장한 정보들을 줄줄이 국민들 앞에 내놓은 것이다. 영국은 참전했고, 영국 군인 179명이 먼 땅에서 목숨을 잃었다. BBC 방송이 문제를 제기했다. 블레어 정부가 참전 지지 여론을 키우기 위해 이라크에 관한 보고서에 “대량살상무기를 45분 안에 발사할 수 있다”는 내용을 슬그머니 끼워넣어 위험을 부풀렸다고 보도했다. 파문이 커지고 의회의 조사가 시작됐다. 블레어 총리의 측근이 의문의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까지 일어났다. 그러자 정부는 BBC를 맹공격했다. BBC 이사회는 저널리스트들 편에 섰다. 당시 이사회는 “기자들과 뉴스 제작진은..

스페인 내전

스페인 내전 -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 The Battle for Spain 안토니 비버 (지은이) | 김원중 (옮긴이) | 교양인 | 2009-05-01 스페인 내전을 다룬 책은 조지 오웰의 밖에 읽은 적이 없었다. 관심을 갖고 들여다봐야 한다는 생각은 늘 했지만 어쩐지 손이 가지 않았다고나 할까. 더 정확히 말하면, 스르륵 훑어보기엔 너무나 크고 깊은 이야기여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안토니 비버의 이 책, 을 결국 읽고 말았다. 그리 긴 시간이나 넓은 공간을 다룬 것이 아닌데다 꽤 담담하게 내전 중 벌어진 일을 적어내려가고 있음에도, 역시나 무게감이 압도하는 느낌. 저자의 말마따나, 패배한 이들의 목소리로 해석되는 극히 드문 전쟁이다. 이미 결과를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보는 내전의 기록이라니..

딸기네 책방 2017.09.05

[화학물질, 안전망이 없다]내 몸에 쓰는 물건, ‘알 권리’를 보장하라

‘릴리안 생리대 파동’ 전에도 여성들 사이에서 일회용 생리대가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줄 거라는 ‘의심’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화학물질이 걱정되는 소비자들은 ‘순면 커버’ ‘오가닉 코튼’을 내세운 비싼 상품을 찾거나 면생리대를 쓰는 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릴리안은 관련 정보도 적고 공론화되지도 못했던 생리대 안전성 문제를 물 위로 끌어올렸다. 생리대처럼 일상적으로 쓰이고 신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제품조차도 안전 관리가 충격적으로 부실하다는 점을 드러낸 것이다. ▶[화학물질 안전망이 없다](1) 주원인도 모르면서…식약처 “VOC만 전수조사” ▶[화학물질 안전망이 없다]안전을 돈으로 사는 시대, 탈출구 없는 저소득층 일회용 생리대 속의 화학물질은 외국에서도 논란거리였다. 미국에선 성분 정보를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