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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수알도 부팔리노, 그림자 박물관

가로등을 켜는 사람은 수염이 텁수룩한 신이나 마법사의 행동을 똑같이 흉내 냈다. 땅거미가 내릴 즘, 가로등 기둥에 사다리를 기대놓은 채 성냥 하나로 간단히 등 안에 숭고한 빛의 기적을 지펴 놓았다. 새벽에는 좀 서글퍼 보였다. 공중에 매달린 작은 유리 집의 불꽃이 희미해져 갈 때면 그가 살며시 나타나, 자객이 칼을 휘두르듯 심지 끄는 기다란 막대를 가볍게 쳐서 불꽃을 하나씩 끄곤 했다. 제수알도 부팔리노의 (이승수 옮김. 이레)에 나오는 구절이다. 10대의 어느 시기엔가, 독일 소설이나 뭐 그런 것들을 읽으면서 '점등사'를 그린 그림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하나하나 손으로 불을 켜야 하는 램프등이라니. 부팔리노의 책을 읽다가 '가로등 켜는 사람'에 대한 추억담을 보며 문득 묘하게 환상적이었던 오래된 책의..

딸기네 책방 2014.05.30

38. 1912-1913년의 발칸 전쟁

벌써 올해도 반이나 지나갔어요. 에효... 올봄은 세월호 이후 슬프디 슬프게 흘러가고 어느새 초여름이네요. 이대로라면 이 연재를 대체 올해 안에 끝낼 수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암튼 다시 정신 가다듬고 정리해 올립니다. 38. 1912-1913년의 발칸 전쟁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유럽 열강에 갈갈이 찢겨나가고, 힘겹게 '근대'로의 변모를 이루며 '터키 공화국'을 향해가던 20세기 초반. 그 주축에 선 것은 케말 파샤가 이끄는 청년투르크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내세운 '투르크 민족주의'는 제국의 폭넓은 틀 속에서 용인되던 '다민족 문화'를 뿌리부터 부정한 것이었습니다. 관용적인 제국이 협소한 투르크 민족주의로 향해간 것일 수도 있고, 열강에 맞선 투르크 엘리트들의 어쩔 수 없는 방어본능이라고도 할 수 ..

이집트 대선, 군부 지도자 엘시시 92% 득표  

이집트의 ‘봄’은 예상했던 대로 군부 지도자의 재집권으로 귀결됐다. 지난해 7월 쿠데타를 일으켜 무함마드 무르시 전대통령을 축출한 군부 지도자 압델 파타 엘시시(60·사진)가 26~28일 치러진 대선에서 90%가 넘는 지지율로 압승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알아흐람 등 이집트 언론들은 개표 결과 엘시시가 92.2%를 득표해 당선이 확정적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엘시시의 집권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던 것으로 보인다. 엘시시의 압승이 진작부터 점쳐졌으나, 투표율은 예상보다 낮았다. 당초 이틀 간 투표를 실시하기로 했던 것을 하루 더 연장하기까지 했지만 투표율은 44.4%에 그쳤다. 군부 재집권에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시민혁명’의 대의를 살릴 민주적인 지도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절반 넘는..

아프간의 덫... 오바마 "철군 연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철군 시간표’를 다시 내놨습니다. 올해 안에 군대를 모두 빼겠다던 당초 계획을 바꿔, 앞으로도 2년 반을 더 주둔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네요. '15년 전쟁' 될 아프간전 이미 베트남전을 넘어 20세기 이래 미국의 ‘최장기 전쟁’이 된 아프간전은 이로써 15년을 넘기게 됐습니다. 이기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군대를 물리지도 못해 실패한 전쟁을 질질 끌고가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오바마는 27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프간 주둔군 철군계획 ‘수정안’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초점을 맞췄던 10년여의 외교정책에서 한 페이지를 넘길 때가 됐다”며 “2016년말까지 아프간에 남아 있는 미군을 모두 철수시키..

팀 와이너, '잿더미의 유산'

잿더미의 유산한국전쟁에서 이라크전쟁까지 세계 역사를 조종한 CIA의 모든 것팀 와이너. 이경식 옮김. 랜덤하우스 5/26 내용이 내용인지라 재미도 있고, 알아두면 좋을 내용도 많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탈자가 많은 책은... 태어나 두 번째로 본다. -_- (내용 정리) 2차 대전 뒤의 이탈리아 공작 제임스 포레스탈과 앨런 덜레스는 월스트리트와 워싱턴의 친구들과 동료들인 기업인, 은행가, 정치인 등에게 손을 벌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할 수가 없었다. 포레스탈은 해리 트루먼의 가장 가까운 동료이자 재무부 장관이던 존 W. 스나이더에게 갔다. 그리고 추축국 포획물에 대한 예탁금으로 변환시켰던 환율안정기금의 일부를 융통해달라고 설득, 동의를 얻어냈다. 그 자금 가운데 2억 달러는 유럽 재건비용으로 책정돼..

딸기네 책방 2014.05.27

교황 "성학대 피해자들 직접 만나겠다" 중동 방문서도 잇단 파격

2박3일간의 중동 방문 일정을 끝내고 돌아온 프란치스코 교황에겐 숨돌릴 틈이 없다. 교황이 다음달 초 가톨릭의 최대 현안인 사제 성추행·학대 스캔들의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기로 했다. 사제들의 성학대 범죄에 대해 ‘제로 톨러런스(불관용)’를 천명한 교황이 이 문제를 해결할 돌파구를 찾을지 주목된다고 CNN방송 등이 26일 보도했다. "아동 성학대한 사제들에겐 관용 없다" 교황은 이날 전용기를 타고 바티칸으로 이동하면서 동승한 기자들에게 “성학대는 끔찍한 범죄”라며 “이 문제를 잘못 처리한 혐의를 받고 있는 주교 세 명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교황은 성학대 범죄를 저지른 사제들에게는 관용을 베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다음달 초 직접 피해자들을 만나겠다고 말했다. 아일랜드·독일을 비롯한 유럽국가들과..

나이지리아 소녀들은 집으로 올 수 있을까

나이지리아의 여학생들이 집단납치된 지 한 달이 훌쩍 넘었지만 아이들은 생사조차 알 수 없다. 세계를 놀라게 한 ‘보코하람 여학생 납치사건’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대체 나이지리아의 내륙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사건이 벌어진 것은 지난 4월 14일이다. 이슬람 무장세력 보코하람이 그날 나이지리아 동북부 보르노주 치보크에 있는 한 여자중학교를 습격했다. 이들은 학교에 불을 지르고, 기숙사에서 잠을 자던 16~18세 여학생 329명을 납치했다. 이 중 53명은 가까스로 탈출했지만 나머지 276명은 돌아오지 못했다. 보코하람은 지난 5일 “서구식 교육은 죄악”이라며 납치한 여학생들을 “노예시장에 내다 팔겠다”고 선언했다. 나이지리아의 폭력사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여학생 집단..

2014년 4~5월에 읽은 책들

28. 아랍의 봄. 장 피에르 필리외 글. 시릴 포메스 그림. 해바라기프로젝트 번역. 이숲. 4/3좀 많이 간략하긴 하지만 나라별로 스르륵 한눈에 훑어볼 수 있어 좋다. 29. 애플은 얼마나 공정한가- 세계 50개 기업에 대한 윤리보고서 프랑크 비베. 박종대 옮김. 열린책들. 4/5 30. 장자. 오강남 엮음. 현암사. 4/25 8년만에 끝내다. 31. 사유의 윤리 -현대 프랑스 철학에 대한 헌사알랭 바디우. 이은정 옮김. 길. 4/30 32. 양자혁명: 양자물리학 100년사. 만지트 쿠마르. 이덕환 옮김. 까치. 5/7 심란함과 우울증을 달래준 양자물리학...이라고 하면 우습게 들리겠지만(파인만도 이해 못하겠다고 한 양자물리학을 내가 무슨 재주로 이해해;;) 그럼에도 흥미진진. 33. 리듬분석. 앙리 ..

태국 육군참모총장 쁘라윳, 총리대행 취임 '정국 장악'

쿠데타를 일으킨 태국 군부 지도자가 스스로 총리대행 자리를 꿰찼다. 헌법은 정지됐고, 초헌법적 기구를 만들어 전국을 공포정치로 몰아가고 있다. 해임된 잉락 친나왓 전 총리 등 탁신계 정치인들은 줄줄이 군부에 소환됐다. 잉락 등 탁신계 정치지도자 소환, 155명 출국금지 방콕포스트는 쁘라윳 짠-오짜 육군참모총장이 23일 새벽 스스로 ‘총리대행’을 맡았다고 보도했다. 전날 쿠데타를 선언하고 헌법 효력을 정지시킨 쁘라윳은 ‘국가평화질서유지위원회(NPOMC)’를 구성한 뒤 이 기구의 위원장직도 함께 맡았다. “정부를 완전히 맡을 새 총리가 선출될 때까지”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이미 쁘라윳은 정국을 완전히 장악했다. 또 육군참모차장은 국방·치안·정보·외교부문을, 공군참모총장은 재무·산업·노동·에너지·교통 등 경제부..

[공감] 분노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

어제는 오랜만에 MBC 재방송을 보며 웃었다. 유재석의 사생활을 모두 까발리겠다는 노홍철의 ‘똘끼충만’ 공약을 보며 중학생 딸아이와 깔깔거렸다. 한 달 만에야 TV 예능프로그램 앞에 앉은 건 세월호 때문이다. 나는 TV 시청자이자 시민이고 엄마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지난 한 달은 우울함에서 헤어나기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그동안 보이고 들리는 소식은 온통 슬펐다. 눈물과 분노를 자아냈다. 미디어가 중개하는 것들은 대개 슬프고 화나는 소식이다. 그게 저널리즘의 본질이다. 아름다운 소식, 권장할 만한 내용을 전할 때도 있지만 그것이 주를 이룬다면 ‘계도’이지 저널리즘이 아니다. 미디어가 전하는 소식들에 불편해하고, 마음 상하는 것. 그것이 연대의 출발점이며 이를 끄집어내는 게 저널리즘의 의무다. 세월호에서 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