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수도 오타와에서 22일(현지시간)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소행으로 보이는 총격사건이 일어났다. 스티븐 하퍼 총리와 집권 보수당 의원들이 모여 있는 국회의사당 회의실 가까이까지 무장 괴한이 진입해 총기를 난사했다. 범인은 현장에서 사살됐지만 캐나다는 물론 세계가 다시 극단주의자들의 테러 공격에 휘말릴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범인은 무슬림으로 개종한 몬트리올 태생의 마이클 제하프-비보(32)라는 남성으로 드러났다. 제하프-비보는 의사당에 들어가기 전 인근 국립전쟁기념관 앞에서도 총을 쏴 경비병 1명이 숨졌다. 캐나다 전체가 이번 사건으로 충격에 휩싸였다. 일간 토론토스타는 “캐나다 민주주의의 심장부가 공격받았다”고 보도했다. 의사당 총격 뒤 긴급대피했던 하퍼 총리는 이날 저녁 TV로 중계된 대국민연설에서 이번 사건을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 규정하고 “캐나다는 결코 위협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국은 범인이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와 관련 있는지, 범행 동기와 공범 여부 등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범인이 IS 조직원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미국과 국제동맹의 시리아·이라크 공습에 반발한 무슬림 극단주의자의 공격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 캐나다는 미국의 요청에 따라 이라크에 전투기 등을 투입, IS를 상대로 한 폭격 작전에 참여하고 있다. 22일은 미국이 시리아 공습을 시작한 지 한 달 째 되는 날이기도 하다.
캐나다는 지난 10여년 간 미국의 대테러전에 충실히 협력해왔다. 특히 2006년 집권한 하퍼 총리는 대외 정책에서 미국에 지나치게 밀착됐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지, 언론과 외교전문가들의 비판을 받은 적도 있다.
정부가 대테러전에 깊숙이 개입하는 동안 100만명 규모에 이르는 캐나다 내 무슬림공동체 안에서는 극단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커졌고, 당국의 테러용의자 색출작전이 수시로 벌어졌다. 지난해 4월 미국 보스턴 마라톤대회 폭탄공격이 벌어졌을 때 캐나다에서는 철도 폭탄테러 음모를 꾸몄던 용의자들이 체포됐다. 최근에는 IS에 합류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당국은 캐나다 국적의 IS 자원자가 100명이 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벌어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자생적 테러공격’
2010.5.1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파키스탄계 미국인의 차량 테러 기도 적발
2010.12.11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이라크계 무슬림의 차량 자폭테러
2013.4.15 미국 보스턴 국제마라톤대회 폭탄공격으로 3명 사망, 183명 부상
2013.5.22 영국 런던 울위치에서 나이지리아계 영국인 2명이 현역군인 리 릭비 살해
2014.10.20 캐나다 퀘벡주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자동차로 군인을 치어 살해한 뒤 사살됨
이라크전이 끝난 뒤 2000년대 중반 영국·스페인 등 곳곳에서 알카에다의 공격방법과 자금을 전수받은 자생적 극단조직의 테러공격이 잇따랐듯 IS 동조세력의 연쇄 테러가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캐나다는 이번 사건 뒤 미국 워싱턴의 대사관을 임시 폐쇄했다. 미국도 오타와 주재 미 대사관을 긴급 폐쇄했으며 워싱턴 인근의 경계를 강화했다. IS 자원자가 늘어 고심 중인 호주와 뉴질랜드 등도 테러 경계를 강화했다.
대테러전-보복테러 악순환 또 반복될까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뒤 세계 곳곳에서 알카에다와 연계된 집단들이 테러공격을 저질렀다. 미국이 동맹국들을 끌어들여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에 돌입하자, 이번엔 캐나다에서 극단주의자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총격사건이 벌어졌다. 아직 이 공격을 ‘IS에 동조한 테러’로 단정짓기에는 이르지만, 캐나다 정부는 개연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지난 10년여 동안 반복돼온 대테러전과 보복테러의 악순환이 다시 시작되는 것은 아닌지 각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 뒤 세계는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공격에 몸살을 앓았다. 2004년 스페인 마드리드 기차역에서 잇따라 폭탄이 터져 190명이 사망하고 1800여명이 다쳤으며 이듬해에는 영국 런던의 지하철역과 버스정거장 등에서 동시다발 테러가 일어나 52명이 사망했다. 같은 해 인도네시아 발리 폭탄테러 때에는 한국인 관광객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이런 테러를 저지른 것은 알카에다와 느슨하게 연계된 소규모 조직들이었다. 이들은 인터넷으로 테러수법을 공유하고, 알카에다의 자금과 기술 지원을 받았다. 최근 알카에다를 넘어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IS는 지난달 22일 “미국의 공습에 참여한 나라들에서 민간인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IS는 알카에다보다 더 적극적으로 ‘자원병’을 모집하고 있으며, 미국·영국 인질 참수 동영상에서도 영어로 선전포고를 하는 등 고의적으로 서방을 자극하고 있다.
과거 알카에다 연계조직이 주로 남아시아·북아프리카 청년들로 이뤄져 있었던 것과 비교해 IS 자원자들 중에는 서방 출신이 크게 늘었다. 이 또한 각국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다. 잇단 대형 테러들을 겪으며 대응역량이 강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해 미 보스턴 폭발공격처럼 ‘외로운 늑대’라 불리는 자생적 테러범의 소규모 공격이 일어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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