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정부는 남미 ‘마약과의 전쟁’을 지원하고 나선 미국의 압박 속에 코카 재배를 금지시키고 코카를 키우는 가난한 농민들을 탄압했지만, 안데스 원주민들은 이 식물을 오래 전부터 식용·약용으로 써왔다는 점을 들며 맞섰다. 코카를 코카인으로 정제해 마약으로 공급하는 것이 문제이지, 원주민들의 전통에 뿌리 박힌 코카 자체를 금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특히 대부분의 코카 재배농이 가난한 원주민이라는 점 때문에, 코카는 ‘백인-친미-기득권층 대 원주민-반미-빈민·서민층’ 대결의 상징이 돼버렸다. 이 싸움을 이끈 원주민 운동가가 후안 에보 모랄레스 아이마(54) 현 대통령이었다.
현지 일간 로스티엠포스는 12일 대선 잠정집계에서 모랄레스가 59.7%의 지지율로 3선에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모랄레스는 선거 뒤 수도 라파스의 무리요 광장에서 당선 승리 연설을 하면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와 베네수엘라의 고 우고 차베스를 비롯해 자본주의, 제국주의에 맞서 싸워온 모든 민중들에게 영광을 돌린다”고 말했다. 야당인 민주연합(UD)의 사무엘 도리아 메디나 후보는 25.1%를 득표하는 데 그쳐, 결선투표 없이 모랄레스의 승리가 확정됐다. 대학 문턱도 밟아본 적 없는 원주민 운동가에서 남미의 대표적인 좌파 지도자가 된 그의 인생은 단순한 성공스토리를 넘어, 남미 정계의 큰 흐름이 된 ‘원주민 정치’의 과거와 현재를 그대로 보여준다.
모랄레스는 볼리비아의 극빈층, 그 중에서도 정치적·사회적·경제적 권리를 박탈당한 아이마라의 원주민 혼혈(메스티소) 가정에서 태어났다. 형제가 7명이나 됐으나 그 중 4명이 생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숨졌다. 아버지는 아르헨티나를 오가는 농업노동자였다. 모랄레스는 목동, 벽돌공장의 잡부, 빵 장수, 순회악단의 트렘펫 연주자 등을 전전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1980년 농업지대를 초토화시킨 엘니뇨 재앙이 닥친 뒤 가족과 함께 1983년 코차밤바로 이주했다.
그는 이곳에서 1980년대 말부터 ‘코칼레로’라 불리는 원주민 코카 재배농들의 운동을 이끌었다. 1995년 사회주의운동(MAS)이라는 정당을 만들었고, 2년 뒤 의회에 진출했다. 반정부 시위로 카를로스 메사 대통령을 중도퇴진시키고 2006년 대선에서 승리해 집권했다. 볼리비아 역사상 첫 원주민 출신 대통령의 탄생이었다. 브라질·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 좌파 정상들을 모두 초빙, 원주민 의상을 입고 취임식장에 선 모랄레스의 모습은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모랄레스는 2009년 60%가 넘는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국민들 사이에 ‘에보’라는 애칭으로만 불리는 모랄레스는 집권 이래 친환경·원주민 권익옹호·반자본주의 정책들을 추진해왔다. 각료들의 급여를 절반으로 깎은 뒤 원주민 활동가와 좌파 지식인들로 정부를 구성했고, 쿠바·베네수엘라의 도움을 받아 빈곤을 줄이고 문맹을 퇴치하는 데 역점을 뒀다. 집권 초기 문맹률이 16%에 달했으나 2009년에는 유네스코가 인정한 “문맹 없는 나라”가 됐다. 농지개혁을 하고 기간산업을 국유화했다. 2008년에는 원주민들의 오랜 전통인 ‘땅에 뿌리 내린 삶’을 근간으로 삼은 새 헌법을 만들었다. 외국 자원개발 회사를 밀어내고, 자연과 공존해온 원주민의 이념을 정책의 토대로 삼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미국과의 마찰이 불가피했다. 특히 천연가스 등 에너지 부문의 국유화와 코카 재배 합법화 정책으로 미국과 대립했고, 외교관 추방 등의 갈등이 번번이 일어났다. 사회주의 정책으로 빈곤을 줄이는 효과가 있었지만 여전히 볼리비아는 1인당 국내총생산이 구매력 기준 5500달러(2013년)에 불과하다. 매년 5%를 웃도는 높은 성장률을 보여주고는 있으나 이 또한 천연가스 수출 덕이 컸다.
3연임에 도전하고 나선 뒤로는 ‘사실상의 장기집권 독재’라는 보수우파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의회를 장악한 MAS 당이 모랄레스가 4연임을 할수 있도록 개헌을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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