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4020

[구정은의 세상]라프토와 김대중, 그리고 이명박

토롤프 라프토(Thorolf Rafto). 노르웨이 베르겐 경제대학에서 경제사를 가르친 학자이자 인권운동가였던 사람이다. 라프토가 인권 분야에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공산정권 하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인 1968년 ‘프라하의 봄’ 때였다. 라프토는 체코 개혁파들을 지지하면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운동을 시작했고, 동유럽 민주화 전반으로 관심과 활동을 넓혀갔다. 1973년에는 소련의 오데사를 방문하고 돌아온 뒤 소련의 국내정치를 비판하는 칼럼을 이탈리아 신문에 실었다. 1979년 라프토는 대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하기 위해 프라하를 방문했지만 공산정권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을뿐 아니라, 심지어 공안요원들이 라프토를 붙잡아 구타하기까지 했다. 라프토는 1986년 64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당시..

[구정은의 세상]김성주, 김광석, 가족

"결혼은 1년에서 350~360일은 정말 행복한데, 나머지 열흘이 그렇게 고통스러울 수가 없다. 명절, 날카로운 말끝이 가슴에 닿아 생채기를 냈다. 가족을 설득하고 화내고 싸우는 일이 지겨워진 우리 부부는 왜 결혼이란 제도권으로 들어온 건지 후회가 된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몇 번 반복하면 이 짓이 익숙해질까." 지인은 페이스북에 저런 글을 올렸다. 결혼과 더불어 생기는 가족에 대한 고민들. 추석이 낀 달에는 한방병원에 찾아가 ‘화병’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연중 가장 많고, 그런 이들 가운데 여성이 남성의 4배라는 언론 보도도 눈에 띄었다. 여느 해보다 길었던 추석 연휴는 지나갔다. 가족의 존재 의미를 고민하게 하는 명절은 끝났다. 추석을 앞두고 가족을 다시 곱씹게 만든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첫째는 방송..

길 가다가 변을 당할 확률이 높은 나라들

보행자 사고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관련된 통계를 찾느라 OECD 데이타 페이지에 들어가봤다. 저기 나와 있는 나라별 숫자는 '길 가다 변을 당할 확률'이랄까, 그런 걸 일종의 지수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OECD의 설명을 빌면 길에서 교통사고로 다치거나 그 자리에서 숨지거나 혹은 사고로 30일 이내에 숨지는 사람 숫자와 건수, 주민 수와 교통수단 수를 기준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교통사고뿐 아니라 '길에서 자폭테러를 당할 경우' 같은 것들도 모두 반영한 수치라고. 수치들을 들여다보니 여러가지가 눈에 띈다. 조지아는 독립한 뒤에 계속 거리 상황이 안 좋아졌구나. 러시아는 늘 나빴고 지금도 나쁘구나. 그나마 나아진 것이 저 정도. 인도는 차량이 늘면서 갈수록 악화. 한국은 국가의 경제수준에 비해 꾸준히 -_-..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페이스북에 지인이 올린 글. "상암동 난지공원 북쪽에 요런 게 몰래 지어져 숨어있다. 동네 주민인 우리 회사 직원의 말에 의하면 일반 도서는 거의 없어 주민들을 외면한 도서관이라는데." 어떤 곳인가, 그냥 심심해서 검색해봄. 웹사이트의 이사장 인사말은 이렇게 돼 있다. "2017년은 근대화의 국부(國父)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돌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해입니다. 우리가 박정희 대통령을 기리는 이유는 박 대통령이야말로 애국애족(愛國愛族)의 정신으로 일평생을 조국 근대화와 굳건한 안보 구축을 위해 헌신하신 분이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정의의 율법과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을 통해 이 나라 국민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강철 같은 의지의 국민으로 환골탈태시킨 분이기 때문입니다. 박정희대..

[공영방송 제자리 찾기](3)전문가형 BBC, 시민형 ZDF···제도는 제각각, 언론자유는 ‘운영’이 좌우

2012년 아시아·태평양 방송연맹(ABU)은 ‘공영방송’에 대해 ‘민영도, 국영도 아니며 정치적·재정적으로 독립된 방송’이라고 규정했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시민의, 시민에 의해,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 공적 제도’로서 공영방송은 사회적 책무를 갖는다고 언론학자들은 말한다. 나라마다 공영방송 소유구조나 정부와의 관계는 조금씩 다르다. 공영방송들은 독립성을 강조한 ‘전문가모델’, 의회 다수당이나 정부에 의해 직접적으로 통제되는 ‘정부모델’, 의석 비율에 따라 정당들이 영향력을 갖는 ‘의회모델’, 의회 정당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집단들도 발언권을 갖는 ‘시민모델’ 등으로 나뉜다. 여러 모델들은 그 나라의 방송 역사와 시장 구조, 정부 방침 등에 따라 서로 다르게 발전해왔다. 방송 독립성 최..

'무릎 꿇은 장애아동 부모'를 보며...

아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특수학교와 담장을 맞대고 있었다. 시멘트 담은 아니었고 철망처럼 생긴 울타리였던 걸로 기억한다. 아이의 친구 중에는 특수학교 교사 부부의 딸도 있었고, 아이들은 옆의 학교가 특수학교라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울타리에 매달려 놀았다. 등하교 길에 특수학교 학생들을 오가며 보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아무도 특수학교에 대해 좋다 싫다 얘기하는 걸 본 적 없다. 아마도 '오래전부터 거기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없던 학교를 새로 짓겠다고 하면 그 동네 사람들도 반대하고 나섰을까? 그랬을 수도 있겠다. 지금 반대하는 지역의 민심이 '특별히 나빠서'는 아닐 테니까. 아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는 특수학급도 있었다. 학생은 단 두 명. 몇 번 얘기한 적 있지만, 나를 보..

[구정은의 세상] 김장겸의 '사소한 일'

2003년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정권은 미국을 도와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기 위해 ‘공작’을 했다.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이 핵무기, 생화학무기 등을 개발하고 있다면서 위험을 과장한 정보들을 줄줄이 국민들 앞에 내놓은 것이다. 영국은 참전했고, 영국 군인 179명이 먼 땅에서 목숨을 잃었다. BBC 방송이 문제를 제기했다. 블레어 정부가 참전 지지 여론을 키우기 위해 이라크에 관한 보고서에 “대량살상무기를 45분 안에 발사할 수 있다”는 내용을 슬그머니 끼워넣어 위험을 부풀렸다고 보도했다. 파문이 커지고 의회의 조사가 시작됐다. 블레어 총리의 측근이 의문의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까지 일어났다. 그러자 정부는 BBC를 맹공격했다. BBC 이사회는 저널리스트들 편에 섰다. 당시 이사회는 “기자들과 뉴스 제작진은..

[화학물질, 안전망이 없다]내 몸에 쓰는 물건, ‘알 권리’를 보장하라

‘릴리안 생리대 파동’ 전에도 여성들 사이에서 일회용 생리대가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줄 거라는 ‘의심’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화학물질이 걱정되는 소비자들은 ‘순면 커버’ ‘오가닉 코튼’을 내세운 비싼 상품을 찾거나 면생리대를 쓰는 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릴리안은 관련 정보도 적고 공론화되지도 못했던 생리대 안전성 문제를 물 위로 끌어올렸다. 생리대처럼 일상적으로 쓰이고 신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제품조차도 안전 관리가 충격적으로 부실하다는 점을 드러낸 것이다. ▶[화학물질 안전망이 없다](1) 주원인도 모르면서…식약처 “VOC만 전수조사” ▶[화학물질 안전망이 없다]안전을 돈으로 사는 시대, 탈출구 없는 저소득층 일회용 생리대 속의 화학물질은 외국에서도 논란거리였다. 미국에선 성분 정보를 공개..

[정리뉴스]렌즈용액, 아웃도어, 물티슈, 생리대까지...생활속 독성 화학약품들

가습기 살균제, 계란, 이번엔 생리대. 생활 속에서 흔히 먹거나 쓰는 것들에 유해한 독성물질들이 들어있다는 사실이 계속 드러나니 시민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비자들을 두렵게 만드는 생활 속 독성물질들, 그동안 문제돼왔던 것들은 어떤 게 있었나 정리해봅니다. 최근 문제가 된 것은 ‘깨끗한 나라’에서 만드는 릴리안 생리대입니다. 독성물질 논란이 불거진 릴리안 생리대를 사용해 부작용을 겪고 있다는 여성 10명 중 6명은 생리주기 변화를 호소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여성환경연대는 24일 서울 중구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생리대를 쓴 뒤 부작용을 겪은 여성들이 제보한 사례 3009건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릴리안 부작용 제보자 65.6%가 생리주기 변화 ▶릴리안 유해성..

[기타뉴스] 임상시험 대상자 630명 중 여성은 43명...약품 시험에도 ‘성평등’ 필요

제약업계가 신약을 만들어 출시하기 전에 통상 생쥐나 돼지 같은 실험동물을 상대로 임상시험을 합니다. 그 뒤에는 인체 대상 임상시험을 거칩니다. 시험대상이 되는 동물이나 사람의 체질이나 성별에 따라 약물에 대한 반응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표본’을 대상으로 시험을 하는지가 중요하지요. 동물 시험에서든 사람에 대한 시험에서든 암컷보다는 수컷을, 여성보다는 남성을 주된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여성에게 약물이 투여됐을 때의 치료효과나 부작용이 정확히 측정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의학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나왔습니다. 미국의 의사이자 저널리스트인 싯다르타 무케르지는 이라는 저서에서 “결핵 예방접종인 BCG는 임상시험에서 강력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그 효과는 위도상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