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기협 칼럼] CBC의 단청

딸기21 2018. 2. 21.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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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CBC방송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100일가량 앞두고 평창에 중계 스튜디오를 꾸렸다. 인터넷에 공개된 스튜디오의 모습은 단아하다. 원목과 대리석 바닥의 간결한 디자인에 동계올림픽 느낌이 물씬 나는 색조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현대적인 감각 뒤의 디테일이다. 푸른 빛이 감도는 창호지와 한국 전통 문창살에 캐나다식 벽난로를 붙였다.

이 방송의 올림픽 중계 화면과 그래픽은 연꽃과 한복의 문자 문양, 초롱으로 수놓여 있다. 캐나다 선수가 국기를 들고 웃음짓는 모습에 한복 문양이 겹쳐지고, 경기 종목을 소개하는 안내문과 선수 소개 그래픽에도 하나하나 한국 전통 장식들을 따넣었다. 후원기업을 소개하는 광고 이미지에까지 단청으로 띠를 둘렀다. 이렇게 정성스레 한국 전통 디자인을 살린 방송 프로그램은 국내에서도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과 한글 모양새를 살린 이 방송의 한국 디자인 화면은 국내 소셜미디어에서도 화제가 됐다. 이 방송이 홈페이지에 올린 수호랑 소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 문화 퀴즈 등은 ‘한국보다 더 한국적’이라고 해서 몇몇 언론에도 소개됐다.

Preview of CBC/Radio-Canada’s PyeongChang Olympic studio. Photos courtesy of CBC. _ www.newscaststudio.com

 

올림픽 홍보 동영상이나 화면 그래픽은 세계 어느 미디어들이나 대개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운영하는 올림픽방송서비스(OBS)에 의존하기 때문에 대동소이하지만 그 나머지는 개별 미디어의 섬세함에 달렸다. 캐나다가 겨울 스포츠 강국이고 이번 올림픽에도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230명을 보낸 나라이기는 하나, CBC의 관심은 유독 두드러진다. 평창 스튜디오를 꾸민 아카(AKA)크리에이티브는 뉴스 스튜디오 디자인에 특화된 업체다. 이미 BBC와 스카이뉴스 등의 굵직한 프로그램과 스포츠 행사 스튜디오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디자인보다 더 돋보이는 것은 CBC가 올림픽이 열리는 나라를 자국 시청자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쏟는 관심과 애정이다. 

1936년 문을 연 CBC는 영어와 프랑스어 외에 캐나다의 8개 원주민 언어로도 방송을 한다. 정부 돈이 들어가는 공영방송이지만 영국 BBC같은 모델과는 달리 광고 수익이 재정에서 상당한 몫을 차지한다. ‘캐나다 미디어 길드’라는 고풍스런 이름이 붙은 노조는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 직원을 늘리는 회사에 맞서 2005년에 5500여명이 참여하는 싸움을 벌였고 록아웃(공장폐쇄) 사태를 맞기도 했다.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가운데 캐나다 안에서 CBC의 문화파워가 줄고 있다는 분석이 많지만 그런 와중에도 미국 북부와 카리브 지역에까지 전파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이 방송을 보자니, 우리는 대형 스포츠 이벤트를 보도하면서 개최국이나 참가국의 문화와 역사를 들여다보는 소중한 기회로 삼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자문하게 된다. 몇 해 전 올림픽에서는 국내 한 방송이 참가국을 소개하면서 서아프리카의 가나를 기독교 성경의 가나(카나)로 잘못 전하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위키피디아 검색만 했어도 될 것을 무신경과 무지함으로 치운 것이다. 이번 올림픽 방송 자막이나 캐스터들의 소개에선 그 정도의 실수는 없었지만 그다지 많이 앞으로 나아가지도 않은 듯했다. 세상 여러나라들을 보면서 면적이나 메달 수, 랭킹을 넘어 ‘알아야 할 친구’로 받아들이게 되기까지 아직도 갈 길이 먼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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