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의 천지닝(陳吉寧) 시장은 지린성 태생으로 칭화대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했다. 영국 런던 임페리얼칼리지에서 1993년 생물화학과 환경시스템 분석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35세에 칭화대 환경공학부 교수가 됐다. 환경학자로 명성을 쌓았고, 2012년부터 칭화대 총장을 지냈다. 당시 49세, 명문으로 꼽히는 이 대학의 최연소 총장이었다. 그러다가 2015년 1월 환경보호부 부장(환경부 장관)이 됐다. 이때도 리커창 내각에서 가장 젊은 각료였다.
천지닝이 주력한 것은 중국의 최대 현안 중 하나인 ‘스모그와의 전쟁’이었다. 장관이 된 지 2년이 됐을 때 그는 이례적인 ‘자아비판’을 하면서 중국의 대기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지 못한 스스로를 책망했다. 베이징과 상하이와 항저우 등 대도시의 미세먼지 농도가 올라가 숨을 못 쉬겠다는 아우성이 빗발치던 때였다. 그는 “죄의식을 느낀다, 나 자신을 비난하고 싶다”면서 20개 대도시 미세먼지 긴급대책과 지방정부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대책을 내놨다. 천지닝은 장관 시절 눈에 보이는 지표상으로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전문 지식을 바탕 삼아 환경정책의 토대를 닦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초안을 잡은 환경보호세법은 올해 1월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유명한 학자에 장관직을 거치긴 했지만 지난해 5월 그가 베이징시장으로 발탁된 것은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차세대 지도자로 국민들에게 각인될 수 있는 자리에 환경보호 전문가가 등용됐다는 것은 대기오염을 확실히 잡겠다는 시진핑 주석과 공산당 지도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인사로 풀이됐다. 천 시장이 취임하고 방문한 첫 공식 행선지는 행정 부도심 건설계획이 추진되고 있는 베이징 외곽의 퉁저우였다. 그곳을 찾아 “생태, 그린, 스마트 도시를 만들자”고 했다.
물론 베이징에서 대기오염을 줄이려는 노력은 그가 시장이 되기 전부터 시작됐다. 석탄난방을 천연가스 난방으로 급속히 대체하고 있고,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기준도 높였다. 인구 2200만명에 육박하는 거대도시에서 번호판을 제한적으로 발급해 전기차 구매를 유도하고, 외지에서 오는 차들을 통제하고, 노후차량은 아예 못 들어오게 막았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노후차량 200만대를 ‘길 위에서 제거’했다. 지하철 노선은 많이 늘어났다. 오염을 일으키는 공장 1만1000개가 문을 닫았다. 차이나데일리에 따르면 미세먼지 연평균 농도는 2013년부터 2016년 사이에 30% 정도 줄었다.
지난겨울 베이징의 하늘은 이례적으로 깨끗했다. 미세먼지 농도가 서울의 3분의 1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는 국내 언론들 보도도 있었다. 2012년 중국 정부가 제시한 미세먼지 농도 목표치를 5년 만에 달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천 시장이 생각하는 대기오염과의 싸움은 길고도 험한 노정이다. 그는 지난 1월 베이징 대기 질을 더 많이 개선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며 오래 걸리는 험한 싸움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서울시와 베이징이 미세먼지 문제에 공동 대응하겠다며 19일 핫라인을 가동하기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두 대도시의 대기 질 정보를 수시로 함께 나누고 공동연구를 하고 포럼을 정기적으로 연다고 한다. 환경부는 미세먼지(PM2.5) 환경기준을 일평균 50㎍/㎥에서 35㎍/㎥로 낮춘다고 20일 밝혔다. 이런 내용의 환경정책기본법 시행령이 이날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세계보건기구(WHO) 권고기준은 25㎍/㎥이다.
지난 겨우내 추위와 고농도 미세먼지가 되풀이되면서 삼한사온이 아니라 ‘삼한사미’라는 말까지 나왔다. 미세먼지 비상조치가 발령되자 서울시가 대중교통을 공짜로 이용하게 해준 날이 여러번이었다. 선심성 대책이다, 시민들에게 미세먼지의 심각성을 알리는 효과가 있었다 등등 평가가 엇갈렸다. 지난해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후보들 모두 미세먼지를 언급했다. 공기가 더러워 살 수 없다는 시민들 목소리가 컸던 때였다. 전 정부에서 고등어 탓을 하며 ‘산으로 끌고 간’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다들 목청을 높였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취임 뒤 노후 석탄발전소 가동을 일부 중단시켰지만 그새 새로운 석탄발전소들이 생겨나고 있다.
서울이 미세먼지로 몸살을 앓을 때 베이징에선 반대로 시민들의 마스크가 사라졌다고 한다. 대기오염 얘기만 나오면 중국 탓을 하지만, 우리가 그동안 쌓아둔 연구결과들이 없으니 중국을 상대로 따지고 싶어도 못 따질 판이라는 지적도 많다. 요 며칠 꽃샘추위와 봄비 속에 그런대로 하늘이 맑다. 곧 지방선거가 있다는데 서울시장 후보들이 여럿 거론되고 있지만 미세먼지 얘기는 그새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시민들의 숨 쉴 권리는 정치인들이 쏟아내는 백화점식 공약에 구색맞추기로나 끼워지는 것 같다. 공산당이 모든 걸 결정하고 임명하는 중국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한국에서 환경전문가가 수도의 시장이 되는 일은 먼 미래에나 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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