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구정은의 세상]남북의 시간은 같이 흐른다

딸기21 2018. 5. 2.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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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말은 담담하면서도 논리적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의 말에서는 민족, 혈통, 핏줄이 훨씬 더 강조된 느낌이었다. 남북 정상의 산책과 회담과 만찬의 순간순간들을 담은 동영상들이 이렇게 인기를 끌다니. ‘정상회담 덕후’들이 곳곳에 생겨난 모양이다. “누군가 방명록에 사인하는 걸 실시간 생방으로 지켜볼게 될 줄이야”라는 어떤 이의 말처럼, 정상회담은 국가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인 동시에 지켜보는 모든 이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준 아주 특별한 이벤트였다.

 

민족의 운명, 공동번영, 자주통일. ‘민족’은 얼마나 무거운 말인가. 핏줄이나 혈통, 이런 것들이 강조하는 무언가를 생각하면 중압감이 든다. 나 개인을 넘어선, 내가 존재하기 전부터 있어왔던 무언가를 전제로 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런 말들 앞에서 개인은 한없이 작아진다. 민족은 부정할 수 없으면서도 무겁고 종종 짐스러우며 때론 극도로 폭력적이 되는 그런 것이다. 거기에 ‘주의’가 붙어 민족주의가 되고 의사, 열사의 이미지까지 겹쳐지면 무게감은 몇 곱절이 된다.



그래서 통일이라는 말을 들으면 언뜻 설명하기 어려운 부담감과 어색함을 늘 느낀다. 어릴 적에는 늘상 독재정권의 강요 속에 경전을 외우듯 형식적으로 통일 노래를 부르고 글짓기와 표어를 쓰고 포스터를 그렸다. 그러면서 동시에 ‘빨갱이 공산당’ 적대 구호를 외치는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그 이중성을 깨닫게 된 것은 성장한 이후였다. 그 뒤로 북한이나 통일은 이성적 사고와 판단의 대상이었지, 적대감이나 핏줄 의식 혹은 민족이라는 감성에 따라 생각되는 무언가가 아니었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백두에서 한라’를 외쳐대는 운동권들의 구호도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는 이미 철 지난 외침처럼 들렸다.

 

군비경쟁을 끝내고 섬처럼 고립된 한국이 대륙과 이어지면 우리의 사고체계도 섬 시절의 것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걸어서 넘을 수 있는 국경이 생기고 어딘가로 이어질 길이 열리면 우리의 상상력 전체가 바뀔 것이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 멀게만 느껴지는, 가능성 없는 상상처럼 생각됐다. 지금도 그런 미래가 당장 손에 잡힐 듯 와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데 남북 정상이 만나 악수를 하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것을 보니 눈물이 났다. 이 감정은 분명 민족이나 핏줄 의식이라는 교육된 감성에서 나오는 것일 터다. 갑자기 뭉클해지는 나를 발견하며 민족이라는 그 미묘하고 난해하고 무겁고 때론 감동적인 것에 대해 곱씹게 됐다.

 

김 위원장이 방명록에 쓴 인삿말에 ‘력사’가 두 번이나 들어갔는데,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박진감은 있었지만 압도당하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그의 말에서 느껴지는 친근함이었다. 면밀히 선택하고 조율해 쓴 표현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다. 그냥 보통의 언어처럼 들려서 신선했다는 얘기다. 북한 지도자의 동그란 얼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쓰는 같은 말. 이웃집에 처음 놀러온 새댁같은 리설주의 말과 표정도, 문 대통령이 “남한에서 스타가 됐다”고 표현한 김여정 제1부부장의 잰 몸놀림도 그랬다. 상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 같은 시간대를 살고 있다는 발견 때문에 즐겁다. 다른 구조,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의 시간 중에는 우리의 시간과 같이 흘러가는 것들이 많이 있구나.

 

몇 해 전 북한을 여행하고 돌아온 호주 친구에게 감상을 물었다. 한국에서 산지 1년쯤 됐던 그 친구는 남과 북의 차이가 너무 크다며 “내가 보기엔 두 나라가 합쳐지는 건 불가능할 것같다”고 했다. 이번 정상회담 뒤 고등학생 딸아이는 “통일이 되지는 않더라도 여행이라도 갈 수 있는 나라였으면 좋겠다”고 한다. 일전에 ‘보그’ 잡지에 북한의 거리 모습과 몇몇 건물의 인테리어를 담은 사진들이 실렸다. 거대 건축물과 동상에서 엿보이는 절대적 권위주의로만은 해석될 수 없는 독특한 색감이 인상적이었다. 인터넷에선 탈북자가 만들어 파는 ‘두부밥’ 동영상이 인기다.

 

민족이라는 서사가 앞서면 누군가는 배제되기 마련이다. 다행이랄까, 정상회담 뒤 소셜미디어의 타임라인은 눈에 띄게 밝아졌지만 이번 회담 뒤의 ‘랭면 열풍’에선 2000년의 들뜬 분위기나 ‘겨레의 재발견’과는 좀 다른 발랄함이 느껴진다. 앞으로 한층 친해질 북한 사람들에게서 발견하고 싶은 것은, 그리고 우리가 함께 느끼고 만들어내야 하는 것은 민족이라는 집단적 소속감이 아니라 바로 그런 동시대성과 보편성이다.

 

서울과 평양의 시간이 같아지고 철도가 이어진다고 한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철도를 타고 근대화된 시간과 공간이 확장돼나갔다. 철도가 한반도의 ‘재근대화’를 불러올까. 다만 같은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이, 세계에서도 가장 빠르게 돌아가는 숨가쁜 우리의 시간을 그들에게도 강요하는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골프장 짓고 광산 파내고 저임금 노동자를 양산하는 것으로 남북이 하나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하기야, 서울 시내에 사드를 배치하겠다는 얘기가 유명 정치인 입에서 나오는 것을 보면 우리 안에서조차 시대가 다르게 흐르는 것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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