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두 번째 정상회담이 열리고 만 하루 동안 청와대 페이스북에 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통일각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두 번째 정상회담을 개최했습니다”라며 회담 사실을 공개한 글로 시작해 두 사람이 만나는 사진, “회담 결과는 27일 오전 10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밝힐 예정”이라고 예고한 글, 현장의 영상, 회담 결과를 전하는 문 대통령의 동영상, 발표문 전문, 기자회견 문답, NSC 상임위원회 회의결과 브리핑이 뒤를 이었다. 청와대 웹사이트와 트위터에도 비슷한 내용들이 그대로 올라왔다. 영상 제작 뒷이야기같은 ‘팬서비스’도 빠지지 않는다.
청와대 홈페이지
언론들은 남북 정상의 ‘번개’를 재빨리 속보로 전했고, 시민들 관심은 높았고, 주말 내내 분석·해설 기사들이 적잖이 나왔다. 그럼에도 숨가쁘게 돌아간 이 과정에 미디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별로 없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월요일자 신문에는 청와대가 밝힌 내용들을 전하는 기사와 스케치들, 전문가 해설과 외국 언론의 분석들이 실렸다. 새로움은 적었다. 어쩌면 이미 벌어진 일을 ‘확인’시켜주고 매체들이 제각기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는지 보여준 것이 신문들이 해준 최대한의 역할이 아니었나 싶다.
한 후배는 “요즘 미디어의 경쟁상대는 청와대”라고 했다. 뉴스의 소스를 넘어 전달·유통자 역할까지 하는 청와대와 언론이 경쟁을 해야 한다. 소통 마인드와 세련된 기술로 무장한 취재원과 직접 실력을 겨루기엔 기성 언론들이 너무 쳐져 보인다. 미디어는 기본적으로 ‘중개자’다. 하지만 빛의 속도로 돌아가는 시대에 전달자 노릇만 해서는 언론이 끼어들 공간이 없다.
일부 매체들은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나 북미 정상회담 관련해 오보를 했고, 분석기사보다 오보가 시민들의 (매우 부정적인) 관심을 더 많이 받았다. 북미회담 취소 소동이 벌어지자 어떤 이들은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의 북미회담 분석글을 온라인으로 공유해가며 ‘해설’을 덧붙였다. 국내 언론이 거짓 내용을 전할지 모른다는 ‘기레기 혐오증’뿐 아니라 한국 기자들의 분석력과 한국 언론의 수준에 대한 불신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시민들은 청와대 소셜미디어에 공개된 대통령 기자회견 동영상을 보면서 기자들의 질문 내용과 태도까지 품평한다.
전달경로를 독점하던 시절은 진작에 끝났는데 ‘심층’ ‘분석’으로 독자들을 잡아두지는 못하는 상황. 그 이유가 그저 네티즌들이 질타하듯 기자들의 게으름 때문일까. 기술과 인력의 한계 때문일까. 여전히 기자단 시스템과 경직된 보도방식에 의존하면서 진영논리로 사건을 해석하기 때문일까. 중개자의 자리는 사라졌는데 ‘저널리즘’의 위상을 찾기는 힘들다. 비공개 회담을 하고 ‘깜짝 공개’한 이번 사건은 좀 특수했다 하더라도, 빠르고 오픈된 뉴스 흐름 속에서 언론의 자리는 어디일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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