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94

[로그인] 떠나 보낸 사람들  

한 해가 저물어갈 무렵이면 그 해에 떠나보낸 사람들을 돌아보는 게 버릇이 됐다. 올해도 세계에서 많은 별들이 졌다. 4월에는 마술적인 서사를 펼쳐보였던 콜롬비아의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세상을 떠났다. 8월에는 ‘키팅 선생’ 로빈 윌리엄스의 자살이 미국은 물론 세계의 팬들에게 충격을 줬다. 미국에서는 퍼거슨이라는 소도시에 살던 평범한 18세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의 죽음이 흑인 대통령 시대 유색인종이 처한 실존적인 상황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브리트니 메이나드라는 29세 여성은 시한부 선고를 받고 소셜미디어에 죽음을 예고한 뒤 지난달 스스로 ‘존엄사’를 택했다. 어떤 이들은 그의 죽음을 응원했고, 어떤 이들은 그가 선택한 마지막 삶에 비판을 보냈다. 외국의 몇몇 기자들은 중동에서 이슬람 ..

[로그인] 주윤발의 수난시대  

“재키찬과 초우윤팟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외신을 훑다보니 이런 글들이 보인다. 여전히 내겐 ‘청룽’이나 ‘저우룬파’보다는 성룡, 주윤발 같은 한국식 한자이름이 익숙하다. 두 액션배우가 만나서 싸움을 한다면 누가 이길까? 두 스타가 길거리에서 한판 붙을 리는 없겠지만 지금 홍콩에서 대결을 벌인다면 응원전에서는 초우윤팟이 이길 것 같다. 나이가 들고 살이 쪘어도, 이제는 내가 그의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다 해도 그는 내겐 영원한 스타다. 언젠가부터 매스컴은 중국 ‘본토식’으로 그의 이름을 저우룬파라 쓰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중국에서 그의 영화들이 금지작이 돼버린 마당에, 열심히 그를 중국식으로 불러주는 것은 좀 우습지 않은가. 그는 홍콩 편이었고, 홍콩 시민들 편이었고, 홍콩의 민주화를 위해 거리..

[로그인] 숨을 곳이 없는 사람들

또 공습이다. 미국이 13년간의 대테러전에 이어 시리아에 전투기를 띄웠다. 스피리트, 이글, 팰컨, 호넷, 나이트호크에 이어 이번에 새로 등장한 것은 현존 최강의 전투기라는 랩터(F22 스텔스)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집권 이래 전쟁을 끝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대테러전 3라운드에 돌입했다. 1라운드가 9·11 테러 뒤 벌인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이었다면 2라운드는 주요 전투가 끝난 순간 시작됐다. 아프간과 이라크 테러조직들과의 지난한 싸움 말이다. 이 싸움이 끝나지 않았는데 오바마는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를 제거한다며 3라운드에 들어갔다. 이번 무대는 시리아다. 미국은 이 싸움이 ‘전쟁’이 아니라 하지만, 군사개입이든 군사공격이든 무력행사든 전쟁은 전쟁이다. 꼬일 대로 꼬인 시리아 내전..

[로그인] 슬럼과 전염병

라이베리아의 수도 몬로비아는 서아프리카의 대서양 연안, 세인트폴 강과 메수라도 곶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이 나라 인구 410만명의 4분의1에 이르는 100만명이 이 도시에 산다. 도시가 세워진 것은 1822년이다. 미국의 흑인 ‘해방노예’들이 정착해 나라를 세우고 이 도시를 만들었다. 몬로비아는 2차 세계대전 때 미군 기지로 쓰이면서 서아프리카의 주요 항구 중 하나로 성장했다. 7만5000명 사는 곳에 화장실은 4개 몬로비아의 바닷가에 웨스트포인트라는 지역이 있다. 항공사진으로 본 이 일대는 바다로 뾰족 튀어나온 리조트타운같다. 실상 이 곳은 슬럼이다. 형편은 말할 수 없이 열악하다. 몇해전 비정부기구 조사에서 이 지역에는 하수시설이 있는 화장실이 단 4개밖에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7만5000명이 사..

[로그인]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두 개의 지옥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또 공격하고 있다. 현지 방송 화면에 잡힌 가자지구의 모습은 참혹하다. 화면을 캡처한 사진 한 장은 도저히 눈뜨고 똑바로 바라보기조차 힘들다. 남성 두 명이 아이 하나를 들어옮기고 있다. 아이의 고개는 뒤로 꺾였고 몸은 축 늘어졌다. 얼굴은 뿌연 잿가루에 뒤덮여 있다. 차마 신문 지면에 실을 수도 없었던, 글자 그대로 지옥의 한 장면이다. 이스라엘은 공습을 하기 전에 미리 ‘가짜 미사일’로 가자지구의 민간인들에게 친절히 경고해준다고 주장한다. 알아서들 피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하늘만 뚫리고 사방이 막힌 감옥’과도 같은 가자지구에서, 어디로 도망칠 수 있단 말인가. 서쪽의 지중해 해안도, 남쪽 이집트와의 국경도, 북쪽과 동쪽의 이스라엘 국경도 모두 막혀 있는데 그들더러 어..

[공감] 분노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

어제는 오랜만에 MBC 재방송을 보며 웃었다. 유재석의 사생활을 모두 까발리겠다는 노홍철의 ‘똘끼충만’ 공약을 보며 중학생 딸아이와 깔깔거렸다. 한 달 만에야 TV 예능프로그램 앞에 앉은 건 세월호 때문이다. 나는 TV 시청자이자 시민이고 엄마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지난 한 달은 우울함에서 헤어나기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그동안 보이고 들리는 소식은 온통 슬펐다. 눈물과 분노를 자아냈다. 미디어가 중개하는 것들은 대개 슬프고 화나는 소식이다. 그게 저널리즘의 본질이다. 아름다운 소식, 권장할 만한 내용을 전할 때도 있지만 그것이 주를 이룬다면 ‘계도’이지 저널리즘이 아니다. 미디어가 전하는 소식들에 불편해하고, 마음 상하는 것. 그것이 연대의 출발점이며 이를 끄집어내는 게 저널리즘의 의무다. 세월호에서 죽..

[공감] 드론이 무서운 이유  

얼마전부터 무인기가 전국민의 관심사가 된 것같다. 이미 전쟁터에서 쓰인지 오래된 데다 이제는 일자리를 놓고 우리와 싸울 경쟁상대로 떠오른 게 무인기, 세칭 ‘드론’인데 마치 지구상에 처음 나타난 UFO라도 되는 듯 난리다. 이미 1915년 세르비아계 미국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가 ‘드론 편대’를 상상했고 1973년에는 중동전쟁 때 미국의 드론 ‘라이언 파이어비’가 이집트군을 죽이는데 동원됐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거 드론을 동원했다. 하지만 이 살상무기를 본격적으로 쓴 것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가 아니라 버락 오바마 정부 들어서였다. 명목상 동맹국인 파키스탄 내의 적들을 공격하려니 미군을 직접 투입할 수 없어 드론을 동원한 것이다. 재정이 바닥나 군인들을 철수시키는 과정이었다는 점도 작용했다...

[공감] 빙하공화국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주민투표 문제로 세계가 시끄럽다. 지금도 자치공화국이고 주민과 정부와 의회가 있지만, 이들이 분리를 하겠다고 하니 난리가 났다. 이유는 단 하나, 그냥 분리한다는 게 아니라 ‘러시아의 일부’가 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옛소련권 나라들이 떨어져나가고 거기서 또 다른 나라들이 가지치듯 분리독립할 때 박수치던 서방이 갑자기 국제법 위반을 들먹이며 반대한다.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적 통일성을 지지한다고 선언을 한다. 크림반도 사람들의 목소리는 아무래도 러시아 쪽으로 기우는 듯한데, 서방이 얘기하는 ‘주권’에는 크림반도 사람들의 권리는 들어있지 않은 듯하다. 그렇다고 주변국을 툭하면 찍어누르는 블라디미르 푸틴이 옳다는 얘기는 아니다. 국가란 무엇이고 주권이란 무엇인지 갸우뚱하던 차에 눈에 ..

[공감] 역사에 대한 부채의식

넬슨 만델라의 타계 소식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람들의 슬픔은 어떨까 생각해보다가, 만델라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나만 궁금했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세계 여러 언론에 남아공 ‘포스트 아파르트헤이트 세대’의 감정을 전하는 기사가 나왔다. 영국 가디언에는 시포 흘롱과네라는 1988년생 남아공 젊은이의 기고가 실렸다. “모두가 만델라를 이야기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진실이 있다. 만델라는 1999년 퇴임 뒤 남아공 정치를 떠났고, 뒤이은 정권들은 만델라의 화해정책이나 정신을 지워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에겐 우리 앞에 놓인 새로운 과제들이 있다”고 말한다. 정치적 자유를 당연시해온 자신들 세대에는 실업, 범죄, 에이즈 같은 새로운 도전들이 있으니 “다른 종류의 영웅이 필요하다..

[공감] 과거는 응답하지 않는다

나는 1990년에 대학에 들어갔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행복했던 연령집단일 90학번. 누구나 다 그렇듯 공부에 찌든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많은 걸 누릴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한번도 교복을 입어본 적이 없는 ‘X세대’였다. 해방둥이나 유신세대, 87민주항쟁 세대 같은 우리 역사의 마디들이 아니라, 미국의 X세대와 일본의 ‘신인류’가 우리와 통했다. 외국의 무슨 무슨 세대와 일치된 아이덴티티를 가질 수 있었던 집단은 우리가 처음이지 않았을까. 고속성장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국제화니 세계화니 하는 말들은 좀 허풍스럽기는 해도 생판 남의 나라 이야기같지는 않았다. ‘보통사람’이라 억지 쓰던 노태우 정권 후반기였고, 구로공단에서는 여공들이 10시간씩 서서 일하고 있었고, 강경대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