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어갈 무렵이면 그 해에 떠나보낸 사람들을 돌아보는 게 버릇이 됐다. 올해도 세계에서 많은 별들이 졌다. 4월에는 마술적인 서사를 펼쳐보였던 콜롬비아의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세상을 떠났다. 8월에는 ‘키팅 선생’ 로빈 윌리엄스의 자살이 미국은 물론 세계의 팬들에게 충격을 줬다. 미국에서는 퍼거슨이라는 소도시에 살던 평범한 18세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의 죽음이 흑인 대통령 시대 유색인종이 처한 실존적인 상황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브리트니 메이나드라는 29세 여성은 시한부 선고를 받고 소셜미디어에 죽음을 예고한 뒤 지난달 스스로 ‘존엄사’를 택했다. 어떤 이들은 그의 죽음을 응원했고, 어떤 이들은 그가 선택한 마지막 삶에 비판을 보냈다. 외국의 몇몇 기자들은 중동에서 이슬람 극단조직에 붙잡혀 끔찍한 비극을 맞았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죽어갔다. 학살이라는 말을 지난 1년간 수없이 기사에 썼지만, 그 속에는 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슬픔이 들어있었던 걸까. 우크라이나에서는 내전과 비행기 격추사건으로 무고한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에볼라로 세계에서 6000명 넘는 이들이 숨졌는가 하면, 생사의 기로를 넘나든 뒤 다시 빈국의 감염자들을 돕기 위해 아프리카로 향한 의료진의 결심도 들려왔다. 팔레스타인 땅에서 이스라엘군의 폭격에 어린 아이들이 죽어갔고 그 희생들은 부메랑처럼 이스라엘로 되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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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시인은 ‘나 거기 서 있다’라는 시에서 “몸의 중심은 심장이 아니다/ 몸이 아플 때 아픈 곳이 중심이 된다/ 가족의 중심은 아빠가 아니다/ 아픈 사람이 가족의 중심이 된다”고 말한다. 내 몸과 가족뿐 아니라 사회와 세계도 마찬가지다. 아픈 곳이 가장 중심이고, 그 아픔의 핵심에 죽음이 있다. 아픔이 세상을 고민하게 하고, 죽음이 삶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는 것을 가르쳐준 한 해였다. 슬픔을 나누고 기억한다는 것의 의미를 곱씹게 만든 한 해이기도 했다. 우리 모두 참 많이 슬프고 아팠다.
한 생명체에게 죽음은 너무나도 개인적인 종말의 사건이다. 동시에 모든 죽음은 ‘사회적’이다. 혈연에 의해, 공간에 의해, 여러 가지 인연에 의해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과 어떤 형태로든 연결돼 있으니, 어느 누구의 죽음도 오로지 개인의 사건일 수만은 없다. 가수 신해철씨의 죽음은 그가 사회에 남긴 메시지와 함께 의료사고 문제라는 심각한 현안을 부각시켰다. 생활고에 세상을 등진 ‘세 모녀 사건’은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얼마나 허술한가를 보여줬다.
무엇보다, 세월호가 있었다. 아마도 내 인생에서 2014년은 평생 잊지 못할 한 해이리라. 늘 우리 사회는 발전하고 있다고, 곡절이 있고 굽어갈지언정 세상은 조금이나마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세월호는 그 믿음을 조각내고 짓밟았다. 의지할 곳은 없다는, 내가 억울하고 아픈 일을 당할 경우 정부도 법도 나를 지켜주지 않으며 오히려 돌팔매질을 할 것이라는 좌절감. 슬픔보다 더 아픈 좌절감. 사고로 목숨을 잃는 것조차 ‘생존경쟁’에서 진다는 뜻이고, 피해자는 곧 패배자라는 손가락질이 난무하는 것같았다. 세상이 정글 같다지만 실상은 정글만도 못한 게 지금의 한국사회 아닌가 하는 자괴감을 안겨준 1년이었다.
베이고 갈라지고 덧난 상처들을 잊지 않는 것만이 치유의 길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이 희망이라면 희망이다. 힘겹게 주위를 둘러보며 눈물바람으로 서로 위로하던 기억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열광했던 것은 유족들을 어루만진 그의 손길을 통해 슬픔을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퇴색하지 않는 기억은 없다지만 많은 이들의 죽음은 또한 많은 다짐들을 남겼다. 결국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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